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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훈과 연락을 끊고 산지 딱 이틀이 지났다. 전화를 끊고도 당장 내일부터가 막막해서 잠이 오지 않았고, 눈을 뜨니 역시나 막막했다. 하루를 기다려보자 싶어서 하루는 멍하니 밥먹다 이지훈 걱정, 컴퓨터 하다 이지훈 걱정, 술마시다 이지훈 걱정 (제일 고비)이였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정신없이 바빠보자 하는 생각에 친구 녀석이 활동하는 크루에서 준비하는 안무 디렉팅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역시나 당장 바쁜 것보다 당장 없는 이지훈이 먼저였다. 밥은 먹었는지, 또 울고 있는 건 아닌지, 엄한 생각으로 우울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머릿 속이 이지훈 투성이였다. 너무 이기적이였나. 섣부른 판단이였나. 후회가 막심했다. 이지훈이 나에게 더 이상 가까워지지 말자 라던가, 친구로만 지냈으면 좋겠어 라던가 하는 말을 할 것 같아 두려운 게 아니고, 당장 이지훈이 힘들어 하고 있을 그 순간이 걱정 됐다. 내가 조금만 기다렸어도 이렇게 걱정되진 않았을텐데. 내가 조금만 참았어도. 바쁘게 움직이는 춤사위 너머로 둥둥 떠다니는 이지훈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음악이 페이드 아웃 되고 있었다. 


 "야야, 10분만 쉬었다 하자. 10분 쉬고 안무랑 동선 수정 좀 할게. 담배나 한대씩 피고 와."


 태연한 표정으로 연습실에서 녀석들을 내보내고 괜히 신경질이나 쇼파에 몸을 묻었다. 도대체 뇌에 어디에 이지훈이 이렇게도 찰싹 달라 붙어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괜히 욕지기가 나왔다. 이지훈 하루 없다고 이렇게나 정신 놓고 살다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난 정말 이해 안 간다고 했던 그런 행동, 한 사람한테 미쳐서 제 생활을 다 놓치는 그런 미련한 행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였다. 이렇게까지 되고 나니 이지훈은 정말 나의 굳은 살임이 틀림 없었다. 이렇게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달라 붙어서 매 순간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으니. 내가 이지훈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 마저도 버릇이나 습관이 분명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 이런 생각과 그에 대한 확신이 서버리니 기가 찼다. 실없이 소리내어 웃었다. 연습실이 쩌렁 쩌렁 울리도록 웃었다. 미쳤네, 권순영. 그러면서도 손은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서 이지훈을 찾고 있었다.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 메세지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래. 그런 거 원래 신경 쓰는 놈이 아니니까. 차라리 시시때때로 바뀌면 눈치로라도 알지. 아오. 저 고목 나무 같은 성미, 참 좋아했는데 이렇게나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들 줄이야. 핸드폰을 쇼파 위에 집어 던지고는 노트와 펜을 들고 연습실 구석에 주저 앉았다. 동선이나 다시 수정하자. 자, 권순영. 집중. 집중. 







 안무는 생각보다 훨씬 완성도 높게 뽑혔다. 전곡을 다 마친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진도를 길게, 만족스럽게 뺀 덕분에 사우나에서 땀을 쫙 빼고 나온 것처럼 홀가분하고 개운한 기분이였다. 밤부터 새벽까지 붙들고 아둥바둥한 결과다. 그 결과, 새벽 네시. 그래 한 서너시간은 이지훈 생각 안 하고 용케도 버텼네. 피식 웃음이 났다. 친구를 포함한 크루 녀석들이 소주 한 잔하고 들어가라며 날 물고 늘어졌지만 괜히 술 마시고 새벽 감성이다 뭐다 핑계로 이지훈한테 진상이라도 부릴 것 같아 한사코 거절했다. 하도 움직였더니 몸이 노곤 노곤한 게, 집에 가면 당장에 뻗어 잠들 것 같았다. 패딩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우리 이지훈은 뭐하고 있으려나. 여기서 집까지 걸어가는데는 10분. 이지훈 생각하다보면 금방 끝날 시간이다. 이렇게 이지훈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도중에 이지훈이 짠, 하고 나타나주면 얼마나 좋을까. 수도 없이 한 생각이지만 오늘 따라 너무 간절했다. 이런 생각을 가장 처음 했던 게 고등학교 3학년 이 맘 때였다. 학원에 다니던 때에 별로 친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던 녀석이 대뜸 찾아와서는 나보다 좋은 학교에 자기가 붙었다며 우쭐 거려 속이 부글 부글 끓었었다. 그래서 학원에 같이 다니던 원우를 붙잡고 한참을 씩씩 거리다가 집에 돌아오는데, 그 길에도 이지훈이 너무 보고 싶어서, 이지훈만 보면 다 괜찮을 것 같아서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만나자고 졸라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이지훈을 만나고 집에 오면서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아휴, 이지훈이 뭐라고. 권순영, 이지훈 멍청이네. 권순영은 이지훈 바보야. 이렇게 말하면서.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난 여전히 이지훈을 생각하면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제어 할 수가 없다. 그 때보다 나이만 더 먹었을 뿐, 그리고... 



 "이지훈?"


 이지훈이 내 눈 앞에 있고. 아니, 그냥 내 눈 앞에 있는 게 아니고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보고싶어 하던 이지훈이 처음으로 내가 간절히 원하는 때에 마법처럼 나타나 있는 거다.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은 이지훈에 깜짝 놀란 나는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뛰어가 이지훈의 앞에 섰다. 시간이 몇 신데 이렇게 집 앞에서. 


 "..뭐하다 이제 왔냐. 너무 춥다. 한참 기다렸잖아."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뗀 이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 시간 쭈그려 앉아 있었던 건지 몸을 휘청 거렸다.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아, 볼 차가운 거 봐."


 양 손으로 볼을 감쌌다. 꼭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근데, 어째 눈이 퉁퉁 부은 것만 같았다. 긴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두덩이가 어쩐지 붉게 보였다. 괜히 덜컥하는 마음이 들어 침을 꿀꺽 삼켰다.


 "나 너무 춥다.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 되냐."


 어어, 그래. 대문을 열고 계단을 먼저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다. 이지훈은 천천히 내 뒤를 쫓아 올라와 현관문을 닫고 꼭 제 집처럼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밖에서 나를 기다렸을 이지훈이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보일러부터 켰다. 얼마나 기다렸을지 걱정 됐다. 또, 약속 어기는 걸 싫어하는 이지훈인데 그런 이지훈이 4일이란 약속을 먼저 깨고서 날 찾아온 이유가 뭘지 궁금했고 걱정됐다. 그 와중에 날 기다렸다는 이지훈의 말이 너무 기분 좋았지만. 여하간, 얼마나 기다렸을진 모르겠지만 이 겨울날 밖에서 무작정 기다렸을 이지훈에게 당장 따뜻한 음료를 내주고 싶지만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에 유자라던가, 하다 못해 커피믹스 같은 거라도 있을 리 만무했다. 급한대로 옷방 구석에 박힌 담요를 꺼내 방으로 향했다. 이지훈은 낮은 매트리스에 걸터 앉아 주머니에 손을 꽂고 몸을 바들 바들 떨고 있었다. 담요를 펼쳐서 무릎 위에 덮어주자 담요 안으로 몸을 웅크렸다.


 "너 언제부터 기다렸어? 연락이라도 하지."

 "연락 하려고 했는데, 내가 먼저 4일 후에 보자고 해놓고 불쑥 만나자고 하는 게 좀 쪽팔려서."

 "뭐가 쪽팔려. 친구 사이에."

 "그냥. 여러모로."


 코를 훌쩍 거리던 이지훈이 나를 쳐다봤다. 선뜻 무언가 말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꼭 먼저 물어봐주길 바라는 듯한 저 얼굴. 밝은 빛 아래서 보니 확실했다. 꽤나 울고 온 듯 했다. 


 "그래. 네 말대로 약속 먼저 잘 안 무르는 네가 날 왜 벌써 찾아 왔는데. 뭐, 아주 뻥 차버리려고? 속 시원하게?"


 내 말에 웃은 이지훈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혹시라도 표정이 굳으면 어쩌나, 내가 너무 무리수를 둔 거면 어쩌나 했는데. 


 "그 사람이 날 찾아 왔어. 아까 밤에."

 "...."


 눈썹이 삐죽 움직였다. 그리고 혈압이 상승함을 느끼고, 욕이 튀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말하지 않아도 뒷 이야기는 뻔했다. 하지만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자고."


 그럴 줄 알았다. 아, 하느님 아버지시여.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당장 그 무모한 고백을 했던 날로 돌리고 싶었다. 차라리 그 고백을 하지 않고 이틀 간 내가 이지훈 옆에 찰싹 달라 붙어 있었더라면 오히려 더 좋았을 걸. 이지훈이 울 이유도 없었는데. 그 새끼 쯤이야 한 번에 떼낼 수 있었는데. 짜증이 밀려와 이마를 짚었다.


 "다시 만나자고 하는데, 좀, 멘붕이라고 해야하나. 좋아한 건 맞아. 근데, 반갑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이상하더라, 감정이."

 "...."

 "그래서 그냥 가라고 했어. 가줬으면 좋겠다고. 근데 자긴 당장 답을 들어야겠다고, 안 가겠다고 하는 거야."

 "..미친 새끼."

 "너무 화가 났어. 헤어지던 날에도 나에 대한 배려가 없고, 헤어진 이후에도 나에 대한 배려가 없고, 날 만나고 싶다고 찾아 온 사람이면서도 나에 대한 배려가 없더라."

 "너랑 처음 만나기 전부터 배려 없었던 새끼야, 그 새끼는."

 "그래서 그냥 내가 나왔어."


 야, 씨. 뭐 훔쳐가면 어쩌려고. 고개를 번쩍 들며 이지훈을 쳐다보자 날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웃기는. 사람은 심장 떨려 죽겠는데. 포커 페이스를 할 여유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러고 나와서 그냥 계속. 계-속 걸었어. 네 말처럼 나는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은 커녕 친구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걷다보니까 너네 집 근처 와서, 근처 온 김에 들리려고 왔는데 네가 없는 거지. 그래서 그냥 너 올 때까지 기다렸어.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좀 했지."

 "...지 아쉬울 때만 내 생각해. 약아빠져가지고."

 "의심 했어. 네가 우리에 대한 진한 우정을 되게 사랑인 것처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근데 또 막상 하나 하나 되짚어 보니, 그런 거 하나도 없더라."

 "사람 마음을 혼자 농락하네, 이지훈."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쳤지만 누군가가 내 숨통을, 아니 이지훈이 손으로 내 숨통을 꽉 쥐었다, 놨다 하는 것처럼 죽을 것 같았다. 내가 날 어디까지 제어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만큼. 입술이 바짝 바짝 말랐고 온 몸이 굳는 것 같았다. 괜히 양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내가 작고 말도 별로 안 하고 그러니까, 꼭 여자애들 취급하는 그런 새끼들 있었잖아. 학교 체대 애들. 그 때 네가 우리 학교까지 찾아와서 으름장 놓고. 그러고나서 나 게이냐고 네가 남자친구냐면서 걔네가 나 놀리고 농락하고 그러니까 네가 와서 죽상을 만들어놓고 갔잖아."

 "그 새끼들은 진짜, 아주 죽여버려야 돼. 내가 진짜 깽값 더 물까봐서..."

 "씁. 권순영이 또. 내 말 들어. 아직 안 끝났다."

 "아니, 빡이 치니까.... 말해."

 "또 생각했는데, 나 힘들 때 진짜 맨날 너 내 옆에 있었더라. 내가 태어나서 제일 아팠던 날, 감기 몸살 독하게 걸려서 누워 있던 날도 네가 있었고, 고등학교 때 계단에서 굴러서 정신줄 놓고 누워있던 때도 네가 옆에 있었고. 그러다가 멍하니 누워있는데 할 게 너무 없어서 너랑 한 카톡을 막 올려 보는데 끝도 없이 올라가는 거야. 근데 내용이 막, 웃긴 거, 슬픈 거, 화나는 거. 세상의 희로애락이 우리 카톡에 다 있더라. 신기하지 않냐."


 이지훈의 말에 집중 하고 있었지만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당장 먹통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 바닥에 굴러다니던 과자 봉지를 접었다.


 "뭘 새삼."

 "그리고 진짜 또 신기한 게 뭐였는 줄 아냐."

 "뭐. 뭐가 그렇게 신기 했냐."


 꼬깃했던 과자 봉지를 깔끔하게 다 접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이지훈을 바라봤다.


 "그렇게 할 거 없이, 되게 우울하게 우중충한 기분으로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방에 혼자 누워 있는데 네 생각이 난다는 거. 그게 신기하더라. 그래서 나는 네가 정말 나한테 없어선 안되는 친구인 걸까 싶었어."


 지지 않고 내 눈을 마주하는 이지훈의 모습에 괜히 민망해져 딴청을 피웠다.


 "근데, 아까 그 사람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어."

 "뭐가."

 "그 때 네가 우리 집에 와줬던 날에는 그 사람이 와서 나 좋다고 하면 난 분명 흔들릴 거라고 확신 했어. 그리고 바보처럼 다시 만날 거라고도 확신했고. 너도 알잖아."

 "알아서 속이 터진다고, 내가."


 바닥에 벌러덩 드러 누웠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봤다. 지금 내 멘탈 상태. 그야말로 KO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도 서론이 긴 건지 모르겠다.


 "흔들렸어."

 "야, 미친아."


 흔들렸어, 그 네 글자에 벌떡 몸을 일으켜 이지훈을 바라봤다. 이지훈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였다. 누구는 당장이라도 뚜껑이 열릴 것 같은데 뭐가 저렇게 침착한지. 그 모습에 더 화가 나 잔소리라도 한 바가지 해줄 심산으로 입을 떼려는 찰나, 다시 입을 다물었다.


 "너한테."


 그렇게 모든 게 멈춘 것처럼 내 모든 감각들이 멈췄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뭐 이유야 어떻든 날 다시 만나자고 하는데 자꾸 네 생각이 나니까. 너한테 자꾸 흔들리잖아, 내가."

 

 이지훈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고, 난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손바닥에서 땀이 베어나왔다.


 "그래서 너보면 내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 이게 더 확실 할 것 같아서 왔어. 걷다 보니 너네 집 앞이라는 건 진부한 거짓말이고."


 그나마 말라있는 손등으로 얼굴에 베어 나온 땀을 닦았다. 저리도 아무렇지 않은 이지훈 앞에서 쩔쩔 매는 내 모습이 너무 바보 같았지만 이제 난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


 "너만큼이나 내가 널 좋아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너 없으면 안되겠더라. 네가 만일 어느 날 사라져 버리면 나 돌아버릴지도 몰라. 어느 날,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나 떠나면 나 진짜 아무 것도 못하고 살 것 같아. 확신해."

 "..."

 "사귀자, 너랑 나랑."


 이지훈의 목소리가 머릿 속을 맴돌았다. 귀로 들어와 내 몸 안을 온통 헤집고 다녔다. 멍청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선은 어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지훈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했지만, 난 완전히 먹통이 되어버렸다. 부속이 빠진 로봇처럼, 건전지 없는 장난감 자동차 처럼. 물론, 이지훈을 보지 못 하던 이틀 남짓한 그 시간동안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긴 했다. 하나는 이지훈이 나와 사귀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면 내가 더 멋지게 고백해서 그래, 라는 대답을 받아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였고, 하나는난 그냥 친구가 좋은 것 같아 라고 말하는 이지훈에게 그래, 딱히 무슨 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였어, 라며 쿨한 척 하는 내 모습을 분명 상상했다. 근데, 이건 너무 예상치도 못한 변수잖아. 태어나 고백을 받아 본 경험도 없는데, 하필이면 그 첫 고백이 이지훈이라니. 


 "권순영, 너 내 말 들어?"

 "어, 어..."


 멍청이 같은 게. 이지훈이 제 손 끝으로 내 볼을 탁 쳤다.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 오는 듯해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사귀자고, 우리 둘이. 좋으면 오늘 나 재워주고, 아니면 나 데려다주고."

 "..둘 다 내가 수고스러운 일 아니냐?"

 "둘 다 네가 좋은 일이지. 나랑 더 오래 있을 수 있는 건데."


 뻔뻔한 이지훈의 모습에 그제야 반짝 정신이 났다. 원래 저렇게 당돌한, 아. 아니, 뭐랄까. 원래 직설적인 성격이긴 한데. 


 "..자고 가, 병신아. 데려다주기 귀찮으니까."


 어디서 저렇게 끼부렸을 걸 생각하니 배알이 꼴려서 말을 모나게 뱉었다. 힐끔 본 이지훈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새삼 그게 예뻐보여 못 본 척 벌떡 일어나 옷장 서랍을 뒤졌다. 이지훈이 입던 옷이 어디있더라. 서랍을 뒤지는데 피식 피식 웃음이 세어나왔다. 꿈인지, 생신지 잘 모르겠다. 서랍 안에서 티와 바지를 꺼내 이지훈에게 건네주자 이지훈은 받지 않고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왜. 뭘 봐."

 "야, 너 지금 좀 부끄럽고, 뭐 그러 거냐?"


 안 그래도 얼굴이 화끈 거리는 느낌에 미쳐버리겠는데 이지훈이 저렇게 꼬집어 말하니 정말 얼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지훈의 손을 잡아 올려 티와 바지를 품에 안겨줬다. 그리고 욕실로 등을 밀었다. 패딩이라도 벗자며 발버둥 치는 이지훈은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어째 평소와 달리 전세가 역전된 기분이였지만 마음 한 구석이 괜히 간질거리는 건 부정 할 수가 없었다. 난 이지훈의 패딩을 받아 들고 방으로 향했고, 이지훈은 여전히 멍청해보이는 날 보고 푸핫, 하고 웃곤 욕실로 들어갔다. 방으로 향해 옷걸이에 이지훈의 패딩을 걸고 매트리스 위에 몸을 뉘였다. 드디어 수년간의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었다. 드디어. 이제서야. 꿈을 꾸는 기분에 볼을 쿡 찔러도 보고, 꼬집어도 봤다. 꿈이 아닌 현실이였다. 


 정말 우연찮게 이지훈을 만나 나도 모르게 투박한 마음을 이지훈에게 다 쏟아붓다보니 어느덧 사랑을 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지나 권순영과 이지훈이 우리가 되어 언제부턴가 우리 두 사람은 친한 친구라고 믿었는데, 우정을 나누는 우리가 아니였던 나 권순영은 이지훈이 너무도 좋아서 꽤 긴 시간 마음을 움켜 쥐었다. 혹여 제 마음이 이지훈의 우리에 해를 끼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렇게 맘 졸이던 게 몇 년. 이제 드디어 권순영과 이지훈이 완벽한 우리가 되어 다시 새로운 우리의 1일을 시작했다. 꿈이라면 영원히 잠들어 있어도 좋을만큼 행복한 순간이다.




하는 순영이와 지훈이가 연애를 한다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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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좋아요졸앙요좋아요아이이리ㅏ 아 대사하나하나가 너무 좋아요 지훈이가 진짜 오랜생각끝에 말하는게 느껴지고 순영이 마음이 느껴지고 ㅜㅜ 작가님 다음편도 얼른 써주시와요ㅜㅜ
8년 전
독자2
와진짜이지훈ㅠㅠㅠㅠㅠㅠ너한테 대사 발림ㅠㅠㅠ순영이도 너무 귀엽고ㅠㅠㅠㅛ작가님 감사합니다ㅠㅠ글 잘보고 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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