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下
비가 오지 않음에도 나는 우산을 들고 출근했다.
혹시 어제 그 남자가 찾으러 올지 모르니까...
오늘 카페는 꽤 한산했다.
그래서인지 점장님은 하루종일 구석구석 청소를 시키셨다.
조금이라도 쉬는 꼴 못 보겠다 이거지 뭐...
돈 받고 일하는 을의 입장이니 그냥 입 다물고 굳이 청소가 필요 없는 깨끗한 곳 까지 광이 나도록 쓸고 닦았다.
그렇게 온 몸의 근육들이 아우성을 칠 때 쯤에야 청소를 다 끝낼 수 있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앞치마를 벗어 정리한 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여기 주문이요.”
짐 싸는데 열중한 나머지 문소리도 듣지 못했나 보다.
들리는 목소리에 대답을 하며 뒤를 돌아서니 익숙하면서 낯선 어제 그 남자가 서있었다.
“어, 우산!”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가 입을 막았다.
이게 무슨 예의 없는 짓이야...
나의 놀란 모습이 우스운지 어제와 비슷한 미소를 짓는 남자였다.
부끄러운 마음에 괜히 큼큼 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뭐 제일 잘해요?”
“네?”
“○○씨가 제일 잘 만드는 거요.”
“어... 라떼?”
“그럼 그거 두 잔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계산을 하려는 지 지갑을 뒤적거리는 남자에 바로 뒤돌아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제 우산의 보답으로 커피정도면 되겠지?
커피를 다 만들고 내 포인트로 커피를 결제했다.
“커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저 계산 안했는데...”
“제가 했어요. 어제 우산 감사드려서, 그리고 여기 우산이요.”
남자에게 우산을 건네주고 시간을 확인하니 퇴근시간이 몇 분 지나있었다.
가방을 메고 점장님께 인사를 한 뒤 카페를 나서는데, 그 남자가 쫄래쫄래 뒤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놀랐는지 살짝 흠칫 하다가 제 손에 있던 라떼 한 잔을 나에게 내미는 남자였다.
“이거 ○○씨 꺼.”
“... 네?”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뭐 이렇게 혼자 빨라요. 선 긋는 것처럼.”
“...”
“아... 나 어제 비 맞아서 좀 아픈 것 같아요.”
갑자기 제 머리를 짚으며 두 눈을 지긋이 감는 남자에 어찌할지 몰라 당황했다.
아니, 그러게 왜 우산을 빌려줘서...
안절부절 하는 내 모습을 보던 남자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이에요. 장난.”
“아...”
“아 귀여워서 자꾸 장난치고 싶네.”
남자의 말에 두 볼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괜시리 떨려오는 심장이 이질적으로 느껴져 “저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가볼게요.”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았다.
하지만 내 손목을 잡고 돌려세우는 남자에 한발자국도 체 떼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냥 그쪽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래요.”
“...”
“내 이름은 권순영이고, 요기 앞에 세봉기업 다녀요. 나이는 27살 이고, 맛있는 거 좋아해요?”
자기소개를 하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에 당황해 “네? 네, 네...” 하고 홀린 듯 대답하니 “나도 좋아하는데, 그럼 나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면 되겠다. 그쵸?” 자연스레 묻는 남자였다.
질문에 대답 대신 바보같이 “어... 어...” 거리니 살짝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가는 남자였다.
“○○씨가 좋아하는 거 다~ 사줄게요.”
양 팔을 쭉 펴 원을 그리며 다~ 사줄게요 하는 남자가 나이와는 맞지 않게 귀엽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니 “어? 웃었다 방금. 맞죠? 웃었죠? 웃음은 긍정의 의미라고 배웠거든요 나는." 능청스럽게 말하는 남자였다.
“... 가요. 맛있는 거 먹으러.”
근거 없는 소리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남자의 뻔뻔함이 귀여우면서 진실 되게 느껴져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내 대답에 함박웃음을 짓던 남자는 “초밥 좋아해요?” 물었다.
“네. 좋아해요.”
“아 초밥이 부럽긴 처음이네.”
“네?”
“초밥 같은 남자가 될게요.”
“네??”
뚱딴지같은 소리에 다시 한 번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자 “어? 또 웃었다!” 하며 좋아하는 남자였다.
우리는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길을 걸었다.
문득 하늘을 보니 우중충한 게, 어쩐지 비가 올 것만 같았다.
오늘은 비가와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우산도 있고, 우산 같이 쓸 사람도 있고.
@@@
핳.. 카페 알바생에게 작업거는 수녕이...
뭔가 아쉬운 느낌이 있지만 그게 단편의 묘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