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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온앤오프 샤이니
l조회 777l 5

 

 

 

 

와.... 쓴 블로그에 비밀글로 올려논 날짜가... 2010년 8월 달이네요.... 루시퍼 한참 할때네..

 

갑자기 생각 나서 꺼내서 올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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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참 예쁘다.

 

 

 


엄마는 참 예쁘다. 매일같이 하시는 젊을때 전성기얘기가 과장이 아닌것 같이 느겨질 만큼이나 예쁘다. 넷이나 되는 자식들을 낳았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게 말이다.

눈도 이쁘고, 코도 이쁘고, 입도 이쁘고, 그래서 엄마는 결혼도 하지않았었다.

 

제 예쁜 미모는 모두의 것이라나? 여하튼, 그리하여 우리 네형제는 각각 아버지도 다르고, 덕분에 생김새도, 성격도 모두 달랐다. 그 중 내가 막내 아들이다.

 

 

 

 

*

 

 

 

 

 "니가 김성욱네 아들이었나? 아닌가?"

 

 

 

연년생인 종현이형과 기범이 형은 성도 같아서 엄마가 종종 이같이 묻곤 하신다. 결혼은 하지 않되, 자식은 좋다고,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남자를 떠나고, 이패턴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엄마, 내가 김성욱네 아들이고, 김기범은 김재성 아들이고, 자기가 만나서 낳아놓고 자기가 몰라,"

 

 

 

 

종현이형은 언제나 까칠하다. 기범이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스크림이나 베어먹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게 어디 엄마 때문이니? 하필이면 김재성 그새낀 김씨라가지고 말이야. 그래도 걔가 엄마를 4년이나 따라다녔어 얘, "

 

"그남자는 속도 없지, 지가 좋아하는 여자가 딴 놈애를 둘씩이나 낳는데도 벨없이 쫓아다니기나 하고,"

 

 

 

 

밴드한다고 고등학교를 하루건너 하루가는 종현이형은 역시 학교에서 배우는 인성이란것을 제대로 못 배운것이 틀림없다. 엄마 표정이 쌜쭉해지는 데도 아무 상관없단듯이 기타줄만 둥둥 튕기고 있다. 엄마가 한마디 할라고 입을 쩍 벌리려는데,

 

 

 

"그래서 김기범 저새끼는 자존심이고 뭐고 암것도 없어요, 재수없게,"

 

 

 

그리고, 퍽, 먹던 아이스크림이 날라왔다. 종현이형이 매일아침마다 한시간씩을 공들여 투자하는 빤딱빤딱하게 왁싱한 머리위로 분홍색 아이스크림이 주륵하고 흘러내린다.

 

 

 

 

"아오, 이 씨발 쌔끼가!!!"

 

 

 

역시나 흥분한 종현이형, 벌떡 일어난다. 기타를 치켜든폼이 꼭 기범이형한테 날려버릴 기세다. 아까워서 하지도 못할거면서,

 

 

 

 

"어쩌라고, 자존심이고 암것도 없어도, 성깔은 있거든? 쳐봐, 쳐보라고,! 야 처봐 그걸로 쳐봐 김성욱 아들아 쳐봐, 니네 아빤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내가 때려주고 싶을만큼 얄미운 말투다. 무표정으로 비꼬는데, 진짜 진짜 재수없다. 종현이형은 머리 끝까지 열이 차오른듯, 아오- 저걸- 하며 숨을 몰아쉰다. 그러면서도 치켜든 기타는 슬그머니 내려 놓는다. 풉, 기범이형이 웃는다. 종현이형은 그런 자신이 쪽팔렸는지, 얼굴은 시뻘개져서는, 삿대질을 해댄다.

 

 

 

".. 야, 니, 오,오늘 운 좋은줄 알어, 너,너.."

 

 

 

 

기범형은 귓등으로도 듣질 않고, 종현이형은, 자리서 씩씩대다 기타를 품에 안고 제방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그 와중에 종현이형이 뱉은 씨발새끼란 단어에 충격먹으신 우리 예쁜 엄마는 입을 벌리시고 어버버 거리신다. 나는 엄마곁으로 가, 빵긋 웃으며 엄마를 부축해드렸다.

 

 

 

 

"엄마, 걱정마세요. 막내 태민이가 있잖아요."

 

 

 

 

 

엄마는 금새 마음이 풀어져서 글썽글썽거리신다. 역시 우리 막내야. 근데 늬아버지가 누구였지? 하는 표정으로 날 애틋하게 바라보시는 엄마에게 저는 이성한네 아들이잖아요.라고 답하려는 순간 띵동띵동-하는 초인종소리가 들려옴으로써 막내아들은 엄마의 마음에서 뒷전이 된다.

 

 

 

 

"어머- 우리 민호 벌써 오니?"

 

 

 

 

늘 옆에서 보필해드리는 막내보다는, 전교등수가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첫째가. 엄마의 피로회복제다.

 

 

 

 

 

*

 

 

 

 

 

늘 조용하고 듬직하면서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첫째, 고3 최민호, 사고뭉치에 툭하면 욕에, 불같은 성격, 겉멋빼면 시체인 둘째,고2,인데 맞는지 모르겠는, 김종현, 시크하고 쿨하고 관심없고 인생에 달관한듯한 셋째, 고1 김기범, 그리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착하고, 싹싹하고,엄마의 삶의 기쁨조인-민호형이 없을시에- 막내, 중3 이태민, 우리형제는 대략 이렇게 성격도, 성적도 생김새도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뉘집아들인지 잘생기긴 했다. 하기야 이쁜엄마와 얼굴은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이쁜엄마에게 걸맞게 잘생겼을 우리네들의 아빠들 사이에서 났는데, 암 잘생기고 말고, 덕분에 우리엄마는 우리보다 더 잘생긴 남자가 없다며 나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남자를 만나지 않으셨다. 말버릇처럼, 니네가 내 아들만 아니였어도- 하며 우리를 수상하고도 음침한 눈빛으로 훑어보시는 엄마, 엄마가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때마다 기범이형은 주책이라며 욕하고, 종현이형은, 15년만 젊었어도, 내여자라고 왈왈 대고, 민호형은 커서 엄마같은 여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큰일날 소리- 대처한다. 나야 실실 웃으며 넘기지만,

 

 

 

그런데, 어느날, 엄마한테도 진짜, 진짜, 영계가 찾아왔다.

 

 

 

 

 

*

 

 

 

 

요즘들어 평생 안울리던 엄마의 핸드폰이 한시간마다 한번씩 울리고 있다. 그런데도 엄마는 아예 받지를 않는다. 그럼 매너모드를 하던지, 수신차단을 하던지, 그냥 내비두는 엄마때문에 기범이형은 우주대폭발을 하기 직전이다.

 

 

 

 

"아나, 아줌마- 매너모드 좀 하시라고요-!"

 "얘가, 어디서 엄마한테 아줌마야? 난 결혼도 안한 처녀라곳!!"

 "늙어서 주책이야 증말, 애 낳으면 다 아줌마지, 하여튼 핸드폰이나 끄라고-!!"

 "..내가 알아서해, 니 신경이나 꺼,"

 

 

 

 

보통 하루에 14번정도 성사되는 기범형과 엄마의 팽팽한 말다툼 요근래 들어선 엄마의 끊임없는 벨소리에 두배로 뛰었다.

 

 

 

 

"도대체가 왜.안.끄.는.데!!!!!!!!!!!"

 

 

 

펑!
드디어 폭팔
인간 김기범 죽어도 소파에서 떼지않던 오만한 궁둥짝까지 들어올리며 장렬히 폭파

 

 

 

 

"왜,왜 화를 내고 그래..."

 

늘 무심하고 시크하던 셋째의 어마어마한 폭파에 겁먹으신 엄마는 울먹이기 까지 하신다.

 

 

 

 

 

 

*

 

 

 

 

" ..그러니까, 왠 새파랗게 어린놈의 새끼가 뭘 뜯어먹을 라는것인지 애 넷딸린 유부녀는 아닌 아줌마를 쫓아다닌다고? 아쉴울것 하나 없는 놈이 엄마를?"

 

 

 

음모론이나 믿으며 세상에 모든 부정적인 생각이란 생각은 다 하는 기범이형이 한껏 비꼬아대었다.

 

 

 

"....야, 그래도 니보단 나이 많어,.."

 "어쨋든, 근데 그놈이 엄마한테 계속 전화를 건다고?엄마는 20살도 넘게 차이가 나는 놈이 부담스러워서 전화를 안받는거고,"

 

 

 

 

비꼬아도, 정리는 명료하게 떨어졌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있다는 얼굴로 끄덕이는 엄마,

 

 

 

 

"그럼, 수신차단을 해, 왜 안해?"

 "....사실...그게 뭔지 몰라."

 

"뭐?"

 

"수신차단이 뭔데? 너네 정말, 이 엄마가 나이가 좀 많고, 응? 막 그래도, 어? 막 모르는 단어만 쓰고,그러는 거아니다! 흑, 서러워서 증말,"

 

 

 

 

결론적으로 수신차단이란 어려운 단어덕분이었다. 기범이 형은 기가막힌다는 표정으로 엄마의 핸드폰을 몇번 만지작 거리더니 금새 해결을 보았다. 엄마는 미안하신지 저녁으로 맛있는걸 해주시겠다며 장바구리를 들고 총총 사라지셨다.

 

 

 

 

 

*

 

 

 

 

 

수신차단덕분에 한 삼일정도 잠잠했던 우리집은 며칠전부터 또 다시 뒤집어져 버렸다. 그, 엄마가 좋다며 쫓아다닌다는 어린 형아가 어떻게 알아냈는지,집앞까지 찾아온 것이다. 종현이형과 기범이형은 기가막히다는듯이 혀를 내둘렀고, 민호형은 묵묵히 공부를 하였다. 나도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그형이 나타나 소란을 피울때면 두 귀를 쫑긋 세워 엿들으려고 애를 쓴다.

 

그 형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자총지종을 들은결과 ,나름대로 미대를 나오신 엄마가 대학동기가 운영하는 입시술학원 에서 선생님을 하시는데, 미래가 촉망되는, 미술경연대회 수상실적만도 A4용지 한면을 꽉 채우는 천재 미술학도가 엄마 밑으로 들어온 것이다. 애가 두부처럼 물렁물렁한게, 미술성적 받아오는거와 다르게 악바리가 아니구나, 완전 순둥이구나, 했었는데, 엄마밑에서 3개월간 별문제없이 잘 배우던 아이가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아와 같이 축하파티 겸 저녁식사를 하던중에 사건이 펑 터진것이다.

 

 

 

"...선생님, 좋아해요."

 

 

 

평소에 비싼거 좋은거 엄청 밝히는 엄마답게 스테이크에 폴링럽 해서 한귀로 흘리며 대충 대답해준것이 화근이었다.

 

 

 

"응, 나두"

 

"그럼 선생님,.. 저랑 사귀실래요?"

 

 

 

 

평소에 진지하기만 하던 애가 웬 실없는 소릴하길래 엥?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더니, 애가 역시 예의 그표정으로 샐샐 웃고 있길래, 얘가 농담을 다하네, 하는 맘으로 그러겠노라 대답해버린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부터 미래가 촉망받는 학생은 19년간 제 인생을 바친 미술을 다 내팽겨치고 울엄마한테 매달린다는 것이다. 어쩌다 안 핸드폰번호로 계속 전화에 문자에, 나중에 수신차단 당하니까 학원에 문의해서 집주소까지 알아내 찾아오기까지 하는것이다. 엄마는 친구네 학원이라니까, 잠깐 알바식으로 다녔던것이고, 역시 학원보단 과외해주는것이 더 낳다며, 약속된 기간 끝나자마자 엄마는 미련없이 끊어버렸고,이 형도 나름대로 진심이었으니까, 그뒤로도 애타게 연락하고 기다리고, 엄마는 또 엄마 나름대로 젊은애 미래도 있는데, 망치기 싫어서, 여하튼 이것저것 상황이 겹치고 꼬인걸, 엄마 성격대로 방치해 두는 바람에 근 1달동안 그 형이고, 엄마고, 계속 고생한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다며 그형은 24시간중에 거진 일고여덟시간을 우리집앞에서 초인종 누르며 죽치고 앉아있는 것이다. 처음엔 엄마도 달래고, 회유했지만, 미술하는 악바리 근성이 거기서 튀어나와 도저히 들어먹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혼내고 끌어내고, 협박까지 하며 돌려보래려는데, 역시나 말을 듣지 않는다.

 

 

 

"너 정말, 무슨 생각이니? 아니 생각 하는건 맞니? 너 미술 계속 할거잖아, 나 애도 넷이나 있고 나이도 마흔하나야, 너 이제 겨우 열아홉이야, 우리 첫째랑 동갑이라고, 제발 말 좀 들어라 진기야, 응?"

 

 

 

현관앞에서, 그 형이랑 싸우는 엄마 기범형은 티비를 보고, 종현형은 음악을 듣고, 민호형은 공부를 하고, 이제 다들 익숙해진 풍경속에서 다들 제 각각의 자리를 찾는데, 나는 일주일하고도 사흘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도저히 그곳에서 관심을 거둘 수가 없다. 간간히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그것이 조금, 듣기 좋은 소리였다.

 

 

 

"선생님, 저 정말 장난치는거 아녜요, 계속 어린애취급하지 마세요. 선생님도 저만한 나이에 아이도 낳고, 사랑도 하고 그러셨잖아요."

 

 

 

엄마가 소리를 지르던, 잡아끌던 아무 흔들림도 격양도 없는 목소리가 되게 좋은것 같다. 노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들고, 얼굴을 보고싶다. 소파에 둥글게 몸을 감고 앉아서 현관에 귀를 기울였지만, 엄마가 아예 밖으로 나가서 얘기하려는듯, 현간문소리가 쾅 닫히는 소리만 들릴뿐, 그뒤론 정적이었다.

 

 

 

 

*

 

 

 

 

학교에서 운동회연습따윌 한다며 학생들을 모두 남겼다. 덕분에 거의 7시가 다되어서 집에 돌아온 나는 착한 학생답게, 단정한 교복을 단정히 입고, 단정한 가방과 단정한 신발을 신고 단정히 걸어오고 있었다. 최근들어 이시간까지 밖에 있다가 집에 가본적이 없어서, 서서히 노을이 지면서, 하늘이 빨갛게 번져있는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보게되었다. 계속 하늘을 올려다 보며, 걷느라, 앞을 보지 못하고, 대문까지 걸어가고 있는차에 앞에 누군가가 서있는것 같아, 고개를 내려보니, 참 착하게 생긴 근처 명문예고교복을 입은 형이 저보다 조금 키가 작은 나를 내려다 보고있었다.

 

 

 

"너가 선생님네 막내아들이야?"

 

 

 

아, 그형이구나, 질문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약간 저음인 목소리의 톤이 매일같이 엄마를 찾아오는 그형임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목소리와 잘어울리는 얼굴과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멋있으면서도, 보기 좋았다. 나는 석양에 물들어 발개진 얼굴로 형을 올려다 보았다. 고개를 들자 붉은빛이 더 내리쬐는 것같았다.

 

 

 

"형이 그 형이죠? 맨날 엄마 따라다니는,"

 

 

 

하하, 하고 웃자, 눈이 길게 찢어졌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뭐가 웃긴지 잘 모르겠다.

나머지 형제들은 엄마 하나도 안닮았던데, 넌 정말 선생님을 꼭 빼닮았다. 너 이름이 뭐야?

나는 형이름을 알았다. 진기, 성은 모르지만 말이다. 저번에 엄마가 진기형을 내좇을때 한번 성까지 붙여 소리지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기범이형이 믹서기를 쓰는 바람에 위잉 소리에 그만 묻히고 말았었다.

 

 

 

 

"저, 이태민이요."

 

"어? 난 이진긴데, 너랑 성이 똑같네, 넌 누구네 아들일까, 우리아빠네 아들인거 아냐? 너같이 귀여운 동생 있었으면, 좋겠다."

 

".....저도 형같은 형 있었으면 좋겠어요."

 

 

 

빈말이었는데, 어쩐지 뱉고나니까 진짜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무뚝뚝하지도 않고, 무심하지도 않고, 놀리지도 않는 진짜 착한 형이,

 

"안돼, 그건 난 너네 엄마를 좋아하거든,"

 

 

 

나는 할말을 조금 생각하다 딱히 해줄말이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형이 될수 없다니, 조금 아쉬웠다. 난 진심이었으니까.

 

 

 

 

*

 

 

 

 

 그후로 그 형을 자주 만났다.

 

 

 

형과 만난뒤로도 많이 바뀐것은 없었다. 여전히 형은 집앞으로 찾아오고 엄마는 화내고, 나는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형들은 제각각의 일을 하고, 하지만 한가지 바뀐점이라면 나는 가끔씩 그 형을 만나기 위해 6시반쯤에 집에 들어가곤 한다. 그러면 늘 웃으며 반겨주는 형이 되게 친절해서 좋았다. 역시나 좋은사람임에 틀림없다.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석양지는 시간이 당겨질수록 나는 그때에 맞춰 집으로 향했다. 붉은 배경아래에 형이 서있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기 때문이다.

 

 

 

"노을 좋아해?"

 

 

 

노을아래 서있는 형이 좋아요.

목끝까지 말이 차올랐다. 하지만 뭔가 어감이 이상해 관두었다.

 

 

 

"네, 예쁘잖아요."

 

"남자애가 되게 감수성이 풍부하네 나도 꼭 너같았는데, 딴애들은 다 저게 뭐가 예뻐, 하면서 지나칠때도 나는 노을이 이쁜곳이면 멍청히 서서, 저걸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감수성이 풍부하단 소릴 어릴때부터 많이 들어왔던 나는 그말은 여자애들이나 듣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창피해하고, 싫어했었다. 어쩌면 그것이 형이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 된다는 말에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니네 엄마가 제일 이쁜것 같아,"

 

 

 

그말을 하며, 나를 쳐다보며 환히 웃는다. 지금 집안에선 엄마가 한창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계신다. 요즘엔 형은 엄마가 바쁠시간에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엄마를 배려하는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엄마가 저녁준비때문에 빠쁠때쯤 내가 형을 찾아가기 때문일 수 도 있다. 나는 후자였음 좋겠다고 늘 생각하고있다. 엄마생각을 하는건지, 허공을 올려다보는 형의 얼굴에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 옆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노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얼굴이 붉게 타오른다. 심장도 두근두근 뛴다. 그리고, 형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리고 웃는다.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

 

 

 

 

"너! 정말-! 너 한번만 더 찾아오면 정말 신고할거야 너개념은 있는애니? 니 지금 고3이야!! "

 

"선생님, 저 제발 받아주세요. 진짜 다신 선생님같은 사람 못만날 것같아, 제발, 네? 제발요."

 

"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너 겨우 열아홉이야. 대학가고 사회나가면 나보다 훨씬 잘나고 잘빠진 여자가 줄을 서있어, 너 정말 다신 찾아오지마, !"

 

 

 

다른날보다 유난히 더 격한 오늘의 싸움, 엄마가 다를때와 다르게 강경하게 나온다. 덕분에 형은 더욱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울음을 참는듯 목소리까지 부들부들 떨리며 나온다. 나는 덩달아 눈물이 찔끔 새어나올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너, 정말 너네 아빠한테 전화드리기 전에 오지마,"

 "아,안되요! 선생님, 정말 그건 안되요!!"

 "그러니까, 찾아오지 마, 제발 정신 좀 차려!"

 

 

 


그리고 정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기범이형도 종현이형도 민호형도, 모두다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기울일뿐 현관에서의 일은 안중에도 없다. 가시 돋힌 엄마는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다. 눈을 치켜뜨고, 상대방을 잔뜩 상처입힐 말만을 내뱉는다.상처받은 상대방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끝까지 말한다.

 

 

 

...그래도, 사랑해요.

 

들어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도,

 

 

 

 

 

*

 

 

 

 

오늘은 학교가 일찍끝나서 노을까지 기다릴수 없었다. 어쩔수 없이 형이 없는 현관을 지나, 집으로 들어오자 엄마가 막내가 오랜만에 이른귀가를 했다며 엉덩이를 팡팡 때리셨다. 나는 대충 대답하며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바닥에 드러누웠다. 엄마는 수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받지않는듯 몇번 끊었다가 다시 거는 전화, 달크닥달크닥 거리는 수화기 소리에 노곤히 잠들려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이제 잠의 수마가 내게 다가오려는데,

 

"네, 진기 아버님 되시나요?"

 

눈이 번쩍 뜨였다. 엄마는 형의 아버지에게 전화를걸고 계셨다. 네,네, 진기가 요즘 갑자기...네, 아 정말 죄송합니다. 네,한 일곱시쯤, 네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더 감사하죠. 네 안녕히계세요. 전화가 끊기고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돌아 누웠는데,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입꼬리가 자꾸 삐죽삐죽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

 

 

 

 

 

생각보다 진기형은 좋은집안의 아들이었나보다. 밖에서있는 까만세단이 우리 후줄근한 단독주택에는 위화감이 서릴정도로 낯설게 느껴졌다. 오로지 종현형만이 창가에 붙어, 차를 내려다 보며 우와- 하고 소리지를 뿐이었다.

 

 

 

"놔!!!! 놓으라고-!!!!"

 

 

 

집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지르는 생격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소파에 꼭 붙어앉아 답잖게 불안해 하고 있었다. 오늘도 엄마에게 애원하던 중이었던 형은 웬 남자 둘한테 양팔을 잡혀 버둥거리면서도 엄마를 고래고래 불렀다. 늘 조용하던 목소리가 고양되어 높은소리를 내고, 갈라지는것이 낯설었다. 놓으라고- 한번, 선생님- 한번, 까만 세단까지 질질 끌려가던 형은 완력으로 안된다는 것을 알고, 남자들에게 무언가 부탁하느것 같았다. 차문을 열어두고, 양쪽 팔은 놓지 않았지만, 억지로 쑤셔넣으려 하지 않았다. 진기형은 힘겹게 왼팔로 눈물을 훔쳐내었다.

 

 

 

"선생님!!! 진짜, 진짜, 너무 사랑해요!!!! 사랑해요-!! 네? 사랑해요!!! 미안하고요. 진짜 사랑해요오!!!!"

 

 

 

멀리서도 시뻘개진 얼굴이 보였다. 눈물이 자꾸 흐르는듯이, 얼굴을 훔쳐내며, 소리를 질러댔다. 갈라지던 목소리가 쇳소리가 되자, 형은 제자리에 서서 고개를 푹숙이고만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세단 뒷자석에 올라탔다. 차문이 닫히고, 두남자가 각각 운적석과 조수석에 나눠앉았다. 잠시후 차는 출발했고, 골목 너머 까만점이 되자마자, 나는 엉엉 울었다. 다시는 못볼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범이형과 종현이형, 심지어 민호형까지와서 왜그러냐며 나를 달래주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흔들뿐이었다.

 

 

 

 

 

*

 

 

 

 

그리고 며칠, 나는 형이 찾아오지 않음에도 계속 노을이 질때 집으로 향했다. 꼭 형이 서있을것 같은 풍경이었다. 전보다는 해가 짧아졌지만, 그래도,

 

 

 

역시 아무도 없었다. 골목에는 한할머니와, 여자꼬마아이가 지나가고, 골목 저끝에는 한 사람이 손톱만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현관으로 들어가려다 우편함에 삐죽 튀어나와있는것을 발견했다. 둘둘말려서 고무줄로 가운데가 고정되어있는 흰도화지였다.집에 들어가려다말고 멈춰서서 종이를 펴보는데,

 

 

 

[노을 좋아한댔잖아, 너 줄라고 그린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만나서는 못줄것 같아서,

내가 몰래 갖다주는 거야, 그리고 그림에 쪼그만한 사람은 너야,

맨날 노을 질때 너가 오니까 그 모습 그려봤는데, 맘에 들었음 좋겠다.]

 

 

 

까만 펜으로 쓴 단정한 글씨,서둘러 뒷면을 돌려보니, 우리가 늘 만나던 그시간대를 그대로 그림에 옮겨놓은듯한 빨간 노을의 풍경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지평선 조금 아래에 그려져있는 나, 급하게 골목으로 뛰어 나가 좌우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참아보려고 하는데도 눈물방울은 계속 흘러내렸다. 그림을 한번 더 내려다 보고 가슴에 꼭 앉았다. 그림속에 사람은 꼭 내가 학교가는길에 멀리서 보던 우리 집앞의 진기형같았다.

 

 

 

 

*

 

 

 

 

 

엄마는 여전히 평화롭다. 우리가족 모두가, 아직 나는 가슴속 한구석이 아리지만서도, 그림은 엄마때문에 내방 구석에 처박아 두고 가끔씩, 아주 가끔씩만 꺼내어 본다.

암만봐도, 그림속엔 진기형이있다. 나는 결국 못견디고 까만펜을 꺼내 맘대로 편지끝에 말을 더 달았다.

 

사랑해, 뭐 이정도 단어는 형도 쓸라다가 깜빡했겠지, 자기합리화 시키면서,

 

 

 

 

*

 

 

 

 

종현이형은 잠깐 2박3일 동안 밴드동아리 mt가 있다며-무슨 그런게 다있어- 집에 없은지 이틀째고, 기범이 형도, 김종현은 놀러나갔는데, 나는 집에 짱돌처럼 처박혀 있어야 하냐며 툴툴대다가 친구랑 놀겠다며 나버렸다. 그리고 오분도 안되서 돌아와 급히 우산을 챙겨나갔다.

 

 

"아! 무슨 구월달에 비는 내리고 지랄이야,"

 

 

엄마는 지랄이라는 단어에 기함을 하며 혼낼 준비를 했지만 기범이형은 그냥 슝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엄마는 금새 평정을 찾고, 그럼 민호 우산좀 가지고 데릴러 가야겠다며 우산을 두개나 챙겨 나갔다.

 

 

 

 

"태민아, 엄마 아마 민호랑 밥먹고 올것같으니까, 뭐라도 시켜먹어, 알겠지?"

 

 

 

 

만원짜리가 식탁위에 올라갔다.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나는 다시 주워 올리며 응, 하고 대답했다. 그럼 다녀올께, 현관닫히는 소리가 나고 빗소리가 더 거세졌다. 나는 괜스레 센치해져가지고는 라디오를 좀 듣다가 지직거려서 꺼버리고 내방으로와 그림을 꺼내들었다. 노을한번 보고 형한번 보고, 계속 그러다가 결국 좀 글썽이고, 그림을 다시 잘 구석에 모셔놓는데, 현관밖에서 요란한 빗소리와 함께 희미한 소리가 섞여들려왔다. 나는 귀를 기울이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다. 잘들어보니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였다. 무서운 마음에 벌벌 떠는데, 흐느끼는 와중에도 뭐라고 중얼대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안에서 밖을 내다볼수있는 동그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는데,


진기형이었다.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우는 모습, 뭐라 웅얼 거리는 목소리, 내 얼굴에서도 눈물이 길을 내며 떨어졌다.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가 빗속을 뚫고, 형은 온몸이 비에 젖어 더 힘들어보였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과 눈물이 섞여 흘러내렸다.

 

 

그래도...사랑....정.....는데..

 

 

 

들릴락 말락하는 혼잣말, 감정이 격해지는듯이 점점 커져갔다.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정말이었는데,..!"

 

 

 

 

 

빗속에서도 뚜렷하게 들리는 목소리, 그럼에도 너무 힘이 없었다. 고개를 뒤로 젖힌 형은 크게 울었다. 감정덩어리가 속에서 부터 치고 올라오는 듯해보였다. 조그만 구멍에 계속 매달려있는 내눈에선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한참을 괴로운 소리를 지르다 정면으로 향한 얼굴은 슬프다못해 분노까지 느껴졌다.


쾅- 현관문이 차였다.

 

 

 

 

"씨발!!!!!!왜 자꾸 안된대!!! 아아악 씨발!!!"

 

 

 

 

 

분에 겨워서, 자신을 주체못하고 폭발하는 형은 결국 주저 앉았는지, 조그만 렌즈구멍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쿵쿵 주먹으로 두들기는 힘이 아래쪽에서 느껴졌다. 나역시도 현관을 따라 흘러내었다. 형이 힘없이 중얼 대는 목소리를 따라 귀를 옮겼다. 미안해, 사랑해, 형의 입역시 현관문에다 직접 속삭이는듯 가까이 들렸다. 그곳에 귀를 바짝 갖다대었다. 중간중간 울음이 섞인 고백을 온전히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다. 자꾸만 흐느 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사랑해, 흑, 사랑해요. 미안하고, 진짜 사랑했어,"

 

 

 

 

 

 

 

진기형은 울먹울먹 거리며 입술을 차가운 현관에 바짝대고 속삭인다. 그 속삭임을 마지막이었다. 일어나는듯한 추적이는 소리와,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비가 현관을 날카롭게 때리는 소리만 남았다.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남겨진 나는 이유도 모르는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었다. 진짜 사랑했어, 형의 마지막 목소리가 자꾸 귀바퀴를 타고 맴돌았다. 우둘투둘한 현관문을 긁으며, 먹먹히 잠긴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나도,

 

 

 

 

 

들어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도,

 

 

 

 


-


 

 

 



 
독자1
아...아련하다...됴르르............ㅜㅜㅜㅜㅜ
11년 전
독자2
이 글 너무 좋아요.. 정말 개인소장하고싶을정도ㅋㅋㄱㅜㅜㅠㅜㅜㅜㅜ진기야ㅜㅜㅜㅜㅜ태민아..ㅜㅜㅜㅜㅜㅜㅜㅜ
11년 전
독자3
ㅠㅠㅠㅠㅠㅠㅠㅠ아련하고 너무 좋아요ㅜㅜㅜㅜㅜ
11년 전
독자4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좋아요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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