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p de Foudre
08
(부제: 원우왕 전다정)
회사가 가기 싫어졌다. 몹시 가기 싫어졌다. 그렇지만 한숨을 푹푹 쉬며 돈 벌이를 위해 회사에 나갔다.
앞으로 회사 가기가 평생 싫어질 것 같다. 직원들의 눈초리가.... 장난이 아니어서. '올ㅋ'이런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게,
부담스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제발. 나를 쳐다보지 말아 주세요....
다른 부서의 여직원들이 나를 스캔할 때면 그냥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뭘 그렇게 사람을 봐요, 보길! 보지 말라니까!
"와, 솔직히 나 돗자리 펴도 되죠."
"......알아서 하세요."
"팀장님이 근데 그 자리에서 말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박력 있는 분이시네요."
".....그걸 왜 저에게."
"언제 사귈 거에요?"
회사 가기 싫어진 건 다 당신 때문이야. 이석민을 노려봤지만 이석민은 난 아무 것도 몰라요, 라는 표정으로 날 볼 뿐이었다.
정말 천진 난만하게 언제 사귈 거냐고 묻는 이석민의 입을 꼬매 버리고 싶었다. 걔랑, 나랑, 지금 얼마나 혼돈의 카오스를 빚는 지 알아요?
"어제 그래서 잘 들어가셨나."
"예예. 정말 잘 들어갔네요."
"이제 사귈 일만 남았고...."
"......참나."
어제 쪽팔릴 정도로 전원우 앞에서 펑펑 울고 나서 정말 어색한 정적이 맴돌았던 것만 기억난다.
내가 그렇게 눈치가 없었나, 싶기도 하고, 앞으로 전원우라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잘 대한다고 소문이 날까...하는 고민이 머릿속에 생겼다.
아니, 진짜 걔를 어떻게 봐야 되지? 피해 다녀? 말 걸면 씹어? 아니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굴어?
"지금 팀장님을 어떻게 봐야 하나, 그 생각 하고 있었죠?"
".....아, 아니거든요!"
"나 진짜 다 때려치우고 무당이나 할까 봐요."
"정말 쓸모 있는 재능 가지고 계시네요."
"아, 근데 세봉 씨랑 팀장님이랑 초중고 동창이라면서요?"
"네."
"혹시 팀장님이 그 때부터...?"
지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봐요! 직접 가서 물어보라니까?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에서 죽을 것 같은데 옆에서 이석민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쫑알거리니까
더 짜증나서 죽을 것 같았다. 그건 전원우한테 직접 물어 보라고! 내가 그걸 어떻게 대답해!
세상에 어느 여자가 맞아요, 제가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흠모해 왔대요, 대단하지 않아요? 대박. 이렇게 말하겠냐구요.
이석민을 슬쩍 흘겨 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팀장님 안 그렇게 생겼는데...."
"......"
"뭐 무성요...아니, 금욕주의자같이 생기긴 했지만...."
"......"
"해바라기인가 보네요."
더 듣고 있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문서를 출력해야 해서 그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런 내가 재밌는지 이석민은 쫄래쫄래 따라오며 계속 전원우 얘기를 했다. 아니, 진짜 무슨 복학생 오빠도 아니고....
왜 그렇게 사람 성 가시게 구냐구요! 오늘부터 진짜 선배 싫어할 거에요.
"이석민 씨 내일도 야근할 겁니까?"
"헐.... 팀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왜 일 하는 사람 방해를 하고 그럽니까."
이석민이 왠일로 조용히 입 다무나 했더니 전원우가 소리 없이 옆 복사기에서 문서를 뽑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아, 근데.... 전원우네. 뭘 어떻게 해야 되지. 어색할 정도로 프린터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또 야근 하고 싶냐는 전원우의 말에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는 이석민이었다.
갑자기 석민 선배가 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들었다.
안 가면 안 돼요? 이거 문서 엄청 양 많은데 둘이 있으면 어색할...거 같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석민은 떠났다. 지금 이 자리에서 녹아 내려서 없어지고 싶다.
도대체 어디다가 시선을 둬야 하나요. 눈 깔고 있기에는 무슨 죄 지은 사람 같아서 싫은데....
그렇게 눈만 도륵도륵 굴리고 있다가 결국에는 전원우랑 눈이 마주쳤다.
"어, 조, 좋은 아침이에...요."
"......."
"티, 팀장님. 하하하, 하하...."
"...잘 들어갔어요?"
그냥 나한테 애쓴다, 너 한심하다, 라고 말하던 전원우가 백만배는 더 나은 것 같다.
전원우 입에서 정상적...그러니까, 인간적인 단어들이 나오니까 더 어색해서 미칠 것 같다.
그러게 나는 왜 좋은 아침이라는 말을 해 가지고.... 전원우도 여간 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한참 뒤에 대답하는 걸 보니까. 직장이라서 그런지 존댓말을 쓰는 게 더 부담스러운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증발해 버리고 싶다.
"아...네. 하하. 저는, 늘 잘 들어가죠! 하하!"
"원래 그렇게 잘 웃어요?"
"아, 아니요. 아니요? 아니, 네. 저 원래 호탕한 사람이에요! 하하!"
"......."
"그럼 저 지나가야 ㄷ...."
전원우는 웃지도 말고 나한테 말을 걸지도 말아라! 왜 고백(이라고 말하기엔 다소 격앙 돼 있긴 했지만)을 받은 내가 더 우물쭈물대는진 모르겠다만,
전원우가 뭐 잘못 먹은 사람처럼 인자한 미소를 띄우며 나에게 말을 거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라 더 미칠 것 같았다.
알레르기 걸리는 기분이야. 문서 프린트가 끝나서, 누구보다 빠르게 그 자리를 지나가려고 했다가....
엄마....
"왜 그렇게 허둥지둥해요?"
"......"
"앞 잘 보고 다녀요."
전원우가 안 잡아줬으면 넘어질 뻔했지만 차라리 넘어지는 게 더 나을 뻔 했기도 하고....
*
"솔직히 이제부터 우리 세봉 씨는 빼고 먹어요."
"세봉 씨도 인정하는 바죠?"
"왜냐면...."
"팀장님이랑 먹어야 되니까!"
이석민...당신을 제거해 버리고 싶다. 그게 나의 소원이다.
첫번째는 이석민을 제거하는 것이오, 두번째도 이석민을 없애는 것이요,
세번째도 이석민이란 존재를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오. 옆에서 같이 쿵짝이 잘 맞는,
순영 선배도 밉다. 둘이 여론 몰이를 시작하자마자 주변에 있는 선배들이 다 동요 돼 버렸다.
결국에는 나는 버려지게 됐다. 너무해.... 너무해요. 날 체하게 만들고 싶은 거죠? 다들?
"저는 선배들이랑 먹고 싶은데요...."
"세봉씨. 우리랑 먹고 싶어요?"
"예...."
"그러나.... 팀장님은 우리를 용납하지 않을 거에요."
이석민 선배도 밉고, 권순영 선배도 밉고, 저 부승관인지 부승간인지 이름이 헷갈리는 선배도 밉다.
왜 다들 나에게 이런 시련을.... 나 이제 직장에서 잠정적 왕따인 건가. 원래 여직원들은 나랑 안 놀아 줬고(몇몇 생각이 깨어있는 분들 빼고),
그나마 나랑 얘기하던 저 셋이 나를 가차 없이 버려 버리니 나는 그냥 허허벌판에 남겨진 꼴이 됐다.
앞으로 그냥 다이어트로 밥을 굶을까? 아냐, 그래도 한국인은 밥심인데.... 아, 울고 싶다.
"헐. 저기 팀장님 나오셨어요."
"이제 오붓한 시간 보내시고...."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갑니다. 외로운 사내 놈들끼리... 좋네요."
"승관아, 너만 여자친구 없는 걸 왜 우리라고 치부해."
"......정말 너무들 하시네요."
그렇게 셋은 궁시렁대면서 식당으로 가 버렸고, 나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남겨졌다.
그리고 나는 몇분 후에 전원우와 마주보고 밥을 잡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무슨 연예인 된 기분이다. 아니면 동물원에 있는 희귀 생물이라던가....
x나 특별한 년이네, 하는 표정들로 나를 보는 게 정말 낯 뜨거울 정도였다.
그리고 한 명은 내 얼굴을 뜯어보는 것 같은데 분명히 이따가 내 얼굴을 조목조목 나누어 평가할 게 틀림없었다.
내 얼굴.... 깔 거 많아요. 예. 인정합니다.
"빨리 먹으면 체 할 걸요."
"아뇨, 저 태어나서 체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옛날에 배 아프다고 조퇴했잖아요."
"......그랬었나? 하하하."
제발 나한테 말 걸지 말아 주세요. 엉엉.
쓸데없이 기억력은 좋은 전원우가 조퇴했잖아요, 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회사에서도 반말 찍찍 썼으면서 왜 지금 갑자기 존댓말 쓰게 만드냐고!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런 나를 계속 보던 전원우가 이내,
생전 첨 보는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웃는 건 또 처음 보...네.
"설마 어제 일 때문에 어색해서 그러는 거에요?"
"......네?"
"맞나보네. 얼굴 빨개진 거 보니까."
"......아, 아니거든요. 그거 기억 속에서 편집했는데요."
"아니면 왜 자꾸 나 보면 피해 다니고,"
"......큼."
"말 걸면 동문서답해요."
"......."
"응?"
눈치 빠른 전원우가 어디 가겠어. 전원우가 하는 말에 반박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내 마음을 읽힌 것 같아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 내가 졌다.
"예.... 맞아요."
"......."
"어색해서 그런 거 맞거든요. 아니, 아. 팀장님이!"
"......."
"제 입장이 돼 봐요.... 진짜 경황 없, 없거든요...."
"......푸흐."
"아니, 왜 웃으세요.... 저 진짜. 저 진짜 굉장히, 어색, 하고. 경황이 없고. 어떻게 해야할 지...."
"아니, 그냥. 귀여워서요."
*
"솔직히 퇴근도 강제 동반 퇴근 해야 되지 않나요?"
"팀장니임.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여자를 혼자 귀가길에 내보내십니까. 네?"
이젠 부승관 당신도 싫어.... 난 그냥 혼자 고독을 씹으면서 음악을 들은 채로 퇴근을 하고 싶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혼자 독단적으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 버렸다. 이석민의 와, 너무한다. 라고 말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지만,
진짜 진짜 미칠 것 같단 말이에요! 내가 연애라고는 한 번밖에 못 해 본 연애 고자고 고백 받은 거는 이번이 첫번째라서! 도대체 뭘!
어떻게! 잘!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구요!
"어휴.... 세상 힘들다...."
"원래 그렇게 빨리 걸어?"
"....악! 아씨!"
이제 좀 벗어난 곳이겠다, 싶어 세상 힘들다는 한탄을 내뱉자,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치길래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아, 너 왜 또 여기 있어! 내가 지금 너무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여 있어서 허상이 보이는 건가? 그렇다고 해 줘라 줘....
"......야, 너 진짜."
"......."
"그래. 너 입장 이해는 해."
"......"
"근데 그렇게 내가...."
"......"
"......싫냐. 하루 종일 그러고...."
전원우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요즘 들어 보기 드문 모습만 보여주는 전원우다.
내가 그렇게 싫냐고, 상처 받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쭉 내밀고 있는 전원우가 낯설었다.
그냥, 원래 이런 애였는데 내가 혼자 얘를 나쁜 애라고 포장한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알았어.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나 보...."
"시, 싫은 거 아냐."
"......."
"나도 진짜, 갑작스러워서 그런 거지.... 어...그니까, 내 말은."
"......."
"어색...해서 그런 거지."
"......."
"나도 좀 시...간이 필요해."
내 말에 전원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러고 보니까 정말 애 같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내 말에는 약간 풀이 죽기는 했지만.
"아무튼 너 싫어하는 거 아니라고.... 어."
싫어하지 않는 거 이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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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재개그입니다!
이번 편부터는 눈에 띄게 브금도 밝아지고...
정말 적응할 수 없을 정로 글의 분위기도 바뀌었슴다...
이상하다고 느끼실 거에요... 왜냐면 저는 정말 그 화의 콘티를 아주 짧은 3문장으로만
구상해 놓고 쓰기 때문에... 굉장히 즉흥적입니다..^^ 제 정신 상태에 또 동요되구요..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의 글이 탄생했지만 잘 봐 주세요.. 애들 깨 볶자나요...ㅠㅅㅠ
심장이 아파... 전원우를 납치하자..!
그리고 저 크리스마스날 힙콘 갑니다! 워! 구했다! 표! 박수를 친다!!(짝짝)
가서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은 없길 바랍니다 아재개그를 좋아하게 생긴 사람이 있다면 저겠죠 껄껄
그러면 모두 굿밤 저는 9화를 또 쓰러... 아니면 조각글을 찌러..(시험 끝난 자의 여유)
그럼 안녕히주무세븐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