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분들 읽으시라고 썼는데 오히려 이 글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시면 어떡하지 (황급히 눈을 돌린다)
http://instiz.net/name_enter/29086868 이거 내가 독방에다가 짧게 쓴 거 살 붙인 글 맞아요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農訪歡時歡訪農 농방환시환방농
願使謠謠他也夢 원사요요타야몽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노중방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 길밖에 없는데
내가 그대 찾아 떠났을 때 그대는 나를 찾아왔네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정국은 서자의 신분이었다. 조선의 신분 사회에서 절대로 날개를 펼칠 수 없는 낮은 계급. 제 아비와 형들의 그늘에 가려 세상의 빛을 볼 수 조차 없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제 읽은 홍길동전 속 홍길동의 대사가 기억 한 켠에 남아있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받지 못할 때면 고요하고 평안한 정원에서 검을 손에 쥐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바람을 벨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칼날로 칼 끝과 움직임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아름다운 몸짓. 그 순간 만큼은 자신에게는 유난히 각박한 세상에서 빛이 나는 것도 같았다. 검은 나에게 있어 그런 의미였다. 나를 이 세상에서 인정하는, 내가 존재함을 알리는 도구. 그 처절하고 고독한 몸짓에 궁을 몰래 빠져나와 세상 구경을 하던 너가 걸려들기 전까진 말이다, 내 인생에서 별 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누구십니까.'
태어났을 때부터 세상과 사람들의 눈초리를, 심지어 제 아우들마저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던 인생에서 딱 하나 장점을 찾을 수 있었다. 아까 전부터 풀숲에 숨어 나를 흘끔거리는 시선을 진작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것. 허공을 가르던 칼의 몸부림이 시선의 주인공으로 향했다.
'들켰네.'
목소리에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왔다. 몰래 보다가 들킨 자의 행동 치고는 몸짓에서 여유가 넘쳤다. 읏챠- 쭈그리고 앉았던 다리를 피며 옷에 묻은 풀을 툭툭 터는 너를 바라보다가 재차 얘기했다.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신분을 가리겠답시고 대충 걸친 옷 마저도 하늘하늘 팔랑거리는 비단이 꽤나 비싸보였다. 자연스럽게 말을 낮추는 언행에서부터 어느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인지 대강 유추할 수 있었다.
'몰래 봐서 미안하네. 자네의 칼 끝이 아름답고도 수려하여 근처를 지나고 있던 나의 시선이 향할 수 밖에 없었네.'
'그렇습니까.'
'검 실력이 꼭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 나비의 힘찬 날개짓을 그려놓은 그림 말이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칭찬을 해주시는 것 아닙니까.'
검 실력만큼 머리가 비상한가 보구나. 저보다 함뼘 낮은 시선에서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자꽃이 가득한 꽃밭에서 서있는 네 모습이야 말로 그림이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혹시 나에게 이름을 알려 줄 수 있겠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보는 너를 보자니 많은 생각이 겹쳤다. 아마도 신분을 떠나 나 자체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너가 처음이겠지. 울컥하고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냥, 감정이 그랬다.
'정국. 전정국이라고 합니다.'
'그래 정국아. 너의 이름을 알려주었으니 나도 내 비밀을 하나 풀겠어. 쉬이, 귀를 가져다대보아. 이건 아무에게도 밝히지 말아야 해.'
'제 이름으로 약속 하겠습니다.'
'좋아. …사실 내가, 이 나라의 세자다. 훗날 이 나라의 하늘이 될 위인이란 말이네. 놀랍지 않은가?'
네 말을 듣고 허공을 봤다가 이해를 하자마자 성급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세자 저하. 무례함을 용서하시옵소서. 이런 행동에 넌 눈에 띄게 당황을 했다. '정국아 어서 일어나. 난 신분을 숨기고 이 자리에 온 것이란 말이네. 들키면 아마 평생을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 다급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머리를 제외한 채 다른 몸은 움직일 기색도 보이지 않자 넌 그 조그만 손으로 나를 이끌어 들었다.
'정국아 할 말이 있어. 얼마 만나지도 않은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게 가탕키나 하겠냐만은 이상하게 너에게는 믿음이 가서 말이다.'
'제가 믿음을 안겨다주는 사람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네 눈동자를 보면 마음이 편해져.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어?'
'친구가… 없습니다. 서자의 신분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제게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흠, 친구가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 말일세 내가 제안을 하나 하겠네.' 너는 나의 신분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기색을 띄었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이었으니까. 이 모든 상황이. 이러다가 정말 눈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이를 더 세게 악물었다. 사내 대장부가 이 상황에서 갑자기 울어버리면 그만큼 우스운 꼴이 없으니 말이다.
'무엇을… 말입니까?'
'아버지께서 내 옆을 지켜 줄 호위무사를 고르고 계신다. 아무래도 평생을 함께 할 사이니 신중에 또 신중을 가하는 것이 옳겠지.'
'…….'
'내가 궁에 돌아가면 너를 적극적으로 추천 할 것이야. 너와 평생을 하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일 것이다.'
'…….'
'내, 호위무사가 되어주겠나?'
'어찌, 어찌 제게….'
'정국아 너의 인생에서 좋은 벗이 되어주겠네. 그러니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어.'
마지막 말을 마치고 유순하게 웃는 네 얼굴을 보며 어린 시절의 제가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앞으로 내 한 몸 바쳐서라도 너를 꼭 지켜내겠다고. 내 세상의 문에 처음으로 문을 두드려준 사람이니까.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이다.
*
쾅! 밖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소음에 정국의 기억이 과거에서 현재로 되돌아왔다. 불에 탄 목재가 제 앞으로 우스스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국은 코 앞까지 끼쳐오는 열기에 숨을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밤 중에 일어난 반역이었다. 수많은 궁녀와 신하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더이상 지체를 할 수 없었다. 검을 쥔 정국의 손이 잘게 떨렸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이 생각만을 곱씹은 채 너를 향해 애틋한 시선을 보냈다. 눈에 꼭꼭 담아놓으려는 생각이 컸다.
"세자저하, 더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반역자가 몰려들기 전에 어서 빠져나가세요."
"어찌… 어찌 널 두고 내가 그냥 가라는 말이냐. 난 절대로 널 이 곳에 두고 가지 못한다."
"여기는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세자저하는 지켜야 할 백성들이 있지 않습니까? 걱정 마세요.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뒤따라 오겠다고 너의 이름으로 내게 약속을 하거라. 내 명을 어기는 시엔 절대로, 기필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예. 저 전정국의 이름으로 맹세 하겠습니다."
지민과 한참동안 눈을 마주쳤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반역군들의 소리에 등을 떠밀었다. 네 옆에 몇 남아있지 않은 신하들이 지민을 감싼 채 뒷길로 빠져나갔다. "정국아 나는 널 믿는다. 그러니 꼭 와야해. 알겠지?" 가는 길에 지민이 등을 돌려 급하게 얘기를 꺼냈다. 정국은 환히 웃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의 발 끝마저 자취를 감출 때까지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세자저하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
"세자를 데리고 오거라."
반역을 일으켰던 주동자들이 내 주위를 에워쌌다. 입에서 비웃음이 비식 흘렀다. "당신들 같이 더러운 손에 잡히실 분이 아닙니다." 제 말에 수많은 눈이 분노를 뿜어댔다. 반란의 주동자였던 자가 제 칼집에서 칼을 꺼내 목에 들이밀었다. 칼의 날카로운 감각이 목 아래 서늘하게 끼쳐왔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네. 세자를 잡아서 이 몸 앞에 데리고 와. 내 말을 거역 했다가는 목숨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미 바친 목숨, 세자저하보다 소중하겠습니까."
정녕 그게 네 뜻이라면 할 수 없군. 이죽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제 앞에 선 자가 주위를 둘러싼 또 다른 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죽여." 그 말을 들은 자가 제 칼집에서 칼을 뽑아 망설임 없이 내 배를 관통했다. 윽. 순식간이었다. 제 인생의 반을 함께 보내온 검에 찔리는 기분은 이런 것이구나.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울컥 쏟아져나오는 피의 덩어리들에 정신이 아득했다. 아득한 정신에서도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검을 힘겹게 뽑아 들었다. 힘이 주어지지 않아 풀리려는 주먹을 억지로 붙잡고 등을 돌려 떠나려는 자의 등에 칼을 깊에 꽂았다.
주먹과 동시에 다리에 들어간 힘이 풀렸다. 털썩 소리를 내며 제 몸이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감기려는 눈을 희미하게 뜨자 하늘 위에 떠있는 달이 보였다. 달이 참 붉구나. 자신의 비극적인 결말을 하늘이 위로라도 해주는 것 같았다. 제 손을 떠나가려는 삶의 끝에서 문득 네가 많이 보고 싶어졌다.
세자저하 깊이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기필코 용서하지 마세요. 제 마지막 바람입니다.
다음 생에는 부디….
정국의 말이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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