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시겠어요?"
웃음을 잃지 말자! 진지하다는 티를 그렇게 내고 싶은건지 대문짝만하게 궁서체로 적어놓은 사장님의 인생모토는 언제 봐도 짜증난다. 아침에 늦잠자서 버스를 놓쳐도 웃음을 잃지말고, 하필이면 버스가 많이 안오는데 이사해서 다음 버스가 20분이 남았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하며, 버스 손잡이에 단추가 걸려서 정류장을 놓치고 그 단추마저 떨어져버려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한다. 오는 길에 비둘기들의 파라다이스인 공원을 지나가야해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하고, 흰 와이셔츠에 어제 산 립스틱이 묻어도, 그 립스틱 묻은 흰 와이셔츠를 8시간동안 입고 있어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하며,
"아…저는…오렌지에이드로…"
제일 만들기 어려운 오렌지에이드를 하루 한번 시키는 이 남자를 보고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도데체 어떻게된게 남자가 오렌지에이드밖에 먹지를 않냐! 하고 생각해보다가, 아 이건 남녀차별인가 싶기도 하고. 얼굴은 반반하게 생겨가지고 매일 이 시간만되면 오렌지 에이드만 시켜먹는다.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만드는건 진짜 고역이다. 특히 생과일주스를 고집하는 이런 카페에서는 직접 오렌지를 갈아야만하기 때문에 악력에는 자신이 없는 나로써는 에이드 종류를 시키는 사람들은 다 명치를 때려주고 싶다는거다. 근데 이 남자는 왜. 어째서? 매일 그것도 정신없는 아침에 와서는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가.
"오천오백원입니다"
"아…여기…."
그래도 다행인건 혼자와서 조용히 똑같은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있다가 가는 것. 여러분 잘 들으세요. 카페 알바생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시키고 조용히 앉아있다 가는겁니다. 좀 조용히 좀 해라 제발. 여튼 아침에 제일 사람 없을 때 와서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빨간 색 스트로우를 잘근잘근 씹다가, 카운터 쪽을 쳐다봤다가,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가. 사실은 별로 의미없는 행동만 하고 간다. 오픈하고 20분쯤 있으면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작은 카페라 그런지 오렌지를 갈고 나면 오렌지 향이 온 카페를 뒤덮는다. 요즘에는 그게 조금 괜찮은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이 남자가 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까도 말했듯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다. 월급을 더 받는 대신 오픈을 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늦어지면 곤란해지는 입장에 있어서, 열심히 뛰어왔지만 20분이나 지각을 했다. '망했다!' 하고 생각했을 때 스쳐지나간 그 남자의 얼굴에 다시 한번 '망했다!' 하고 생각했다. 남자는 카페 문 앞에서 카페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제발 저 사람이 사장에게 나를 꼰지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빌면서 뒷문으로 들어가 오픈 준비를 했다. 오렌지 에이드를 시키고 카운터에서 두자리 옆의 자리에 앉은 남자는 여느 때와 똑같았는데, 다른게 하나 있다면 오늘은,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하는거다. 어라. 우리 카페 화장실 저기 대문짝하게 적혀있는데. "어…저기 모퉁이 도시면 있는데요." 하고 대답하는데 자신도 '화장실'이라고 걸려있는 팻말이 누가봐도 절대 모를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한숨을 쉬고는 뒷머리를 긁더니 화장실으로 쏙 사라졌다. 저 남자 좀 이상하다. 라고 한참동안 생각하고 있다가, 오렌지 에이드는 반도 안마셔놓고 빨간색 스트로우만 엄청나게 구겨놓은 것을 보고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 한적함을 느끼면서 그 남자 좌석 옆의 잡지라도 정리하자 싶어서 가까이 가는데 스트로우 구겨진게 아무래도 신경쓰여서 바꿔주려고 스트로우를 들었을 때, 놀란 표정으로 남자가 나왔다.
"이거 구겨져서 바꿔드릴게요"
"그럴…필요는…없는…"
"바꿔드릴게요. 새걸로."
너무 띠꺼웠지 않나 방금. 스트로우를 가지러 가려는데 남자가 나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서는 새 스트로우를 집어서 자신의 오렌지 에이드에 꼽았다. 이 남자 진짜 이상하다. 뭐하는 남자야.
"괜찮아요! 괜찮아요 정말로"
"아…네."
저 새끼 뭐야. 남의 호의를 저렇게 무시하기 있냐? 엉? 사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 친구1은 "
빼박이네! 그 사람 너한테 관심있다. 얼굴도 잘생겼다며? 잘해봐라 좀!" 하고 얘기 했었기에 정말 티끌만한! 완전 개미똥구멍만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다. 근데 이런 대접이라니 세상에. 이거 완전 똥차에 인쓰다! 내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카운터로 가서 다시 컵을 정리하고 있다가 왠지 모를 시선에 앞을 쳐다봤는데, 웬. 남자랑 눈이 딱 마주쳤다. 남자는 놀란 듯 급하게 눈을 돌리고 다시 오렌지 에이드를 마시기 시작했다.
"저기요."
"………."
"저기요, 오렌지 에이드."
"저요?"
"네. 그쪽이요. 왜 자꾸 나 처다보고 그래요?"
"메뉴판 봤는데요."
"오렌지 에이드 시켜놓고 무슨 메뉴판이예요."
"진짠데요."
아 시발. 친구1 진짜 죽인다. 오늘 능지처참이 뭔지 보여주마. 쪽팔려! 쪽팔린다! 20년 인생이 이렇게 쪽팔리는 일도 다있고!
김너봉 완전 대박인생이다!
남자를 머쓱하게 쳐다보고는 너무나도 쪽팔려서 준비실로 들어가서 잠시 얼굴을 싸매고 앉아있다가 남자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하는데 어디서 저기요,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알바도 한 명인데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먹고 가주세요 제발. 지금 완전 쪽팔려요."
"김너봉씨."
"뭐요."
"고개 좀 들어봐요. 얼굴 좀 보자."
언제봤다고 반말이래. 나는 고개를 쳐들고 남자를 노려봤다. 뭐 이새끼야. 난 하나도 안쪽팔리다. 나는 당당하다. 라고 온 몸으로 아우라를 풍기면서. 남자는 그런 나를 보고 살짝 웃더니 "아…진짜…," 하고 문에 기대서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니가 봐도 완전 답이 없죠? 아니 나는 진짜 니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고. 내가 20년 인생에서 엄청나게 용기 있게 말한건데 그렇게 쪽을 주냐 엉? 나 오늘부로 여기 그만둔다. 속으로 계속해서 남자를 씹으면서 노려보고 있었는데, 남자가 문에 기댄 상태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내일은 일찍 와요. 나 시간 없어. 그러니까 빨리 와."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남자는 내 머리를 한번 톡 치고 유유히 사라졌다. 저 새끼 뭐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날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아니 하루종일 생각을 해봐도 그 남자가 뭐라고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갔다. 내가 그 남자에게 당당하게 얘기를 했던 쪽팔림은 남자가 나에게 했던 말의 의미에 대한 탐구에 의해 묻혀버렸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한테 관심이 있는거다. 라고 다시한번 말하는 친구1의 멱살을 한번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 와서도, 이빨을 닦으면서도, 잠옷을 입으면서도, 자기 직전까지도, 그 남자가 도데체 무슨 생각이였을지에 대해 탐구했다. 남자가 여자한테 느끼는 감정이 이런걸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당연히 내가 일찍 잤을리는 없고, 맞춰놓은 알람도 못듣고 일어났더니 지각이다. 하핫, 이거 참. 오늘은 20분 늦게 일어났네! 버스가 있을까 너무 기대된다! 화장도 거의 하지 못한채로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려 카페에 도착했을 때, 어제의 남자는 문 앞에서 서서 카페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헐. 설마 기다리신거예요?"
"네."
"여기 말고도 오렌지 에이드 맛있는데 많은데……."
아 진짜 오늘 여러모로 사장님한테 까일 말 많이 하는구나. 미쳤구나. 방금 전에 입을 뗀 나를 살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면서 카페를 오픈하고 있을 때 남자가 크게 웃으면서 "그런거 말해도 되요?" 하고 나에게 물어왔다. 당연히 안돼요. 빠가야. 이거 말한거 들키면 저는 모가지예요. 알바 6개 광탈하고 드디어 하나 얻었는데 짤리면 나 월세 못내요. 카페 문을 열고 서둘러 앞치마를 매고는 웃음을 잃지 않은채로 카운터에 서 있으니 남자가 자신이 항상 앉는 자리의 의자를 내려놓고는 카운터 앞으로 왔다. 웃음을 잃지 말고,
"주문하시겠어요?"
"어제는 나 째려보더니."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
"주문없으시면 나가셔도 좋습니다."
"위험한 발언 많이 하네 진짜. 내가 얼마나 애먹었는지도 모르고."
"저기요 오렌지 에이드씨. 주문 안 하실거예요?"
"오렌지 에이드말고, 오늘은."
"뭐요."
"나랑 얘기 좀 해요."
지금 나한테 작업 거는건가?
"지금 작업 거는건데."
복화술 써? 하고 생각하며 놀란표정을 짓자 "복화술 안써요." 하면서 웃는다. 뭐 이 새끼야. 뭐가 웃겨.
"너무 표정에 티가 나서."
"오렌지 에이드 마시고 가세요 얼른. 오천오백원."
"아직 주문 안했는데? 얘기 좀 하자니까요."
"할 얘기 없어요."
"난 있는데."
"전 없어요."
사실 말하자면 이 남자가 신경쓰이긴 했다. 일단 잘생겼고, 무엇보다 친구1의 설레발이 가장 컸다.
작업거는건데? 부터 이미 나는 완전한 패닉상태에 빠져있었고 눈도 쳐다보지 못하고 애꿎은 냅킨만 접고 있었다. 김너봉 인생에 이렇게 봄날도 오는구나 싶었지만서도 막상 이런게 닥치니까 무섭기도 하고 뭔가 기분이 오묘한 것이, 일단은 튕기자! 하는 생각으로 눈도 안보고 막 말했다.
"내 눈도 안볼꺼야?"
"………."
남자는 아무 말 않고 냅킨만 접고 있자 손을 뻗어 냅킨을 집어 들고 내 앞에서 흔들었다. 냅킨을 접던 시선을 냅킨을 쫓아 위로 올라왔고, 당연히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거 보단 내가 잘생겼잖아."
"왜 반말해요."
"아… 미안해요."
내가 2n년만에 이런 일을 겪어보는 것도 너무 웃기고, 내가 반말 왜 하냐고 물어보니 바로 존댓말 쓰는 이 남자도 웃기고, 카페 오픈 준비도 안한채로 이러고 서 있는 것도 너무 웃기고.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피식, 웃으니 남자가 놀란표정을 짓다가 따라 웃었다.
"왜 웃어요."
"그냥 웃겨서요."
"김너봉씨. 나는 최승철이야. 22살이고."
"네."
"너랑 잘해볼 생각 10중에 10이야."
***
나중에 들어보니 최승철은 내가 여기 알바 시작하기 전부터 단골이였는데, 내가 알바 첫 날 완전 환하게 웃으면서 자기한테 주문받는게 너무 예뻤다나 뭐라나. 사장님의 인생모토에 감사함을 느꼈다면서, 내 입꼬리를 위로 잡아 올리면서 "웃는게 예뻤어." 하고 말했다.
맨처음에는 오렌지 에이드만 시키려고 한건 아닌데, 니가 오렌지 에이드 마시는거 보니까 이게 진짜 맛있어 보이더라고. 스트로우 계속 씹다가 이거 바꾸러 간적 몇번 있었는데 그때 너 스칠 때 마다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잖아. 세번째로 왔었을 때 니가 나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까봐 엄청 마음 졸였다고. 이 자리 카운터 제일 잘 보이는 자리인거 알아? 나 원래 여기 테이크아웃만 했었는데 요즘에는 자리잡고 앉아서 너만 봤잖아, 내가. 용기내서 너한테 뭐라도 말해보려고 했는데 그 때 말하려고 했던거 다 까먹어서 화장실 어디있냐고 물어봤고. 니가 나 완전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길래 이거 망했다 싶었지. 근데 나보고 왜 계속 쳐다보냐고 물어보는데 니가 나 의식하는거 알겠으니까 막 사람이 멈출 수가 없더라고. 아, 특히 니가 나 노려보면서 얘기할 때 나 완전 뻑갔잖아. 제일 좋았던거는 니가 나한테 먼저 막 쎄게 나오다가 내가 쎄게나오니까 당황하는거. 그거 진짜 귀여웠어. 그래서, 우리 이제 사귈래?
안녕하세요..세봉맘~^^입니다~
첫 글잡인데 어떻게..맘에 드셨을랑가요..
오늘 우리 아들램..콘서트 못가서 슬푼 맘으로.. 한번 써봤읍니다~^^
화장실이 어디죠?만 들으면.. 망상이 폭발해부러서~~*
요즘 제 맘 때리는 우리 승처뤼로 한번.. 망상 써보았읍니다~**
소심했다가 강하게 나가는 우리 승처뤼^^ 넘 남자답네요~^^
저희 맘들은 강하게 나갔다가 승처뤼에게 넉~다운되는~~^^
앞으로들 잘 부탁드리고.. 메리 클쑤마쑤~^^되세요~
그럼 장미 한송이 놓고 갑니다 @>------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