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훈남 변백현 2
네 예상과는 다르게 백현이는 평소와 같은 태도로 너를 대했어. 그 날의 무언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어쩌면 백현이는 노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너는 백현이가 이끄는대로 끌려갈 뿐이야.
장마가 끝날 무렵이었을 거야.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적은 만큼 너희는 자유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어. 그 날도 남자애들은 자유롭게 축구를 했고 너희 여자애들은 스탠드에 앉아 남자애들이 축구를 하는 걸 구경하거나 수다 떨기 바빠. 넌 그냥 멍하게 앉아있었어. 같은 반 여자애들보다는 다른 반에 친구가 더 많은 탓에 같이 얘기하기가 어색했거든. 저 멀리서 백현이가 공을 몰고 가는 게 보여. 햇볕이 이렇게나 쨍쨍한데 개의치 않고 축구를 하는 게 딱 제 나이 또래의 남학생들이랑 다를 게 없어. 종대가 패스하는 걸 가만히 보던 너는 점점 더 짙어지는듯한 햇빛에 인상을 써. 5교시 체육이라니, 너무해. 그래도 수행평가 연습을 하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축구에 집중하기 시작한 너는 문득 백현이의 부재를 깨달아. 이리저리 둘러봐도 백현이의 가지런한 뒷통수는 어디에도 없어. 쉬고 있나 스탠드를 봤지만 역시 없었어. 어쩐지 힘이 빠지는 느낌이야. 수업이 끝나려면 30분은 더 이 땡볕에 앉아있어야 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빨리 교실로 돌아가고 싶어.
그 순간 네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찰나의 시원함에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 그림자의 주인을 확인한 너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여. 우스운 일이야. 그저 얼굴을 확인했을 뿐인데. 너조차도 걷잡을 수 없는 네 속내가 부끄러워진 너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모아진 무릎만 쳐다봐.
이것 좀 맡아줘.
하얀색 명찰 위에 쓰여진 변백현이라는 이름이 햇빛에 따사롭게 빛나. 너는 말없이 체육복을 건네받아. 고개를 다시 들면 너와 마찬가지로 백현이도 말없이 너를 바라보고 있어. 하얀 티셔츠가 네 시야에 닿고, 너는 문득 백현의 백이 흴 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이거.
어?
더워보이길래.
그리고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백현이를 너는 부를 수 없었어.캔 위에 맺혀있던 물기와 차가움이 네 손을 빠르게 적셔. 수줍은 미소가 피어오르고 너는 뜨거워진 볼 위에 캔을 갖다대. 그것만으로도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아. 너는 다시 한 번 하얀 명찰을 바라봐. 변백현. 너는 캔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아무렇게나 개어진 체육복을 곱게 접어. 언뜻 코 끝에 닿아오는 섬유유연제 향이 여름의 한낮 속에 흩어져. 네 옆을 차지한 푸른 색의 포카리 스웨트. 그리고 아득한 백현이의 향. 너는 이 무더움도 그리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쉬는 시간 종이 울렸어도 너는 계속 스탠드에 앉아 백현이가 오길 기다려. 비워진 캔과 이젠 네 옷깃까지 물든 섬유유연제 향과 함께 말이야. 가만히 체육복을 끌어안고 있으니 백현이가 물기 어린 머리카락을 조금씩 털며 네 앞으로 다가와. 종대나 세훈이의 머리카락도 젖어있는 걸 보아 수돗가에서 머리를 적신 듯 해. 백현이의 머리카락 끝에 매달려있는 물방울들이 반짝반짝 빛나. 백현이의 시선이 비워진 캔을 지나 네 품 안의 체육복에 다다랐어. 단정한 입술 끝에 어렴풋이 지어진 웃음이 너를 닮았어.
가자.
교실 쪽으로 향해진 탄탄한 등을 보자 왠지 다시 수줍어진 너야. 도드라진 날개뼈와 파릇파릇하게 물든 옷자락.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묘한 감정.
안 가?
말간 얼굴이 너를 돌아보고, 너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네 얼굴이 붉은 이유가 단순히 더워서라고 생각한 백현이는 아무렇지 않게 멈춘 발을 다시 움직여. 그 뒤를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면 운동장에 드리워진 두 그림자가 마치 포옹한 것처럼 하나로 맞춰져. 경계선 위의 너와 백현이. 장마가 끝난 늦여름의 어느 날, 너는 드디어 저 편의 백현이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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