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 우리의 끝은 잔인해졌다 下
잠에서 깨어난 성열은 평소와 다르게 비워진 제 옆자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욕실로 향했다. 대충 세수를 하면서 성열은 오늘 아침이 유난히 밝다고 생각했다. 세수를 마치고 나온 성열은 11시를 살짝 넘어간 시간에 눈을 크게 뜨고 시계를 붙잡았다. 말도 안되. 작게 중얼거린 성열은 어제 명수가 들어간 방으로 향했다. 명수는 없었다. 대신 협탁에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성열아, 잘 가, 꼭 가. 성열은 포스트잇을 찢어버렸다. 언제는 가지 말라면서 왜 지금은 가라고 하는 걸까. 호원에게 가지 않겠다. 호원에게 가지 않겠다고 전화를 하려는 순간 집 앞으로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그리고 차 안에서 호원이 내렸다. 급하게 수화기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신발을 신고 호원에게 향한 성열은 자신을 보며 웃는 호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성열아!”
“호원아, 나”
“얼른 가자!”
“호, 호원아.. 나 안 갈래..”
“뭐?”
안 갈래, 호원아. 성열에 말에 호원은 멍하게 성열을 쳐다봤다. 성열의 손을 억지로 잡아끌며 호원은 성열을 차에 태우려고 했다. 성열은 울기 시작했다. 가기 싫어. 그때 호원의 차 옆으로 차 한 대가 더 들어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명수가 내렸다. 호원의 표정이 굳었다. 성열은 명수가 온 것도 모르고 호원에게 울며 가지 않을꺼라 이야기 했다. 호원은 저를 빤히 쳐다보는 명수의 시선에 성열을 일으켜 세우더니 제 차로 향했다. 성열은 그런 호원의 품에서 빠져나오더니 호원에게 가지 않을꺼라며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호원은 성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성열에게서 한발자국 떨어졌다. 호원의 차가 사라지고 성열은 계속 울었다. 그런 성열에게 명수가 다가갔다. 명수는 울고 있는 성열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등을 토닥였다.
“성열아, 왜 안 갔어?”
“못 가겠어, 흡, 명수야, 나, 못 가..”
“열아, 제발 가라.. 응?”
“싫어, 안가..”
자신에게 떠날 것을 요구하는 명수에 고개를 든 성열은 명수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명수도 울고 있었다. 성열은 내심 놀랐다. 제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을 거 같던 명수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명수는 무작정 성열에게 입을 맞췄다. 맞닿은 입술 새로 눈물이 흘러들어왔다. 자신을 끌어안고 한참을 있던 명수는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조금 후, 명수는 덩달아 울고 있는 성열의 눈물을 닦아주더니 차를 타고 사라졌다. 성열은 멍하게 명수의 차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봤다.
“사랑해..”
성열은 명수가 조심스럽게 제게 속삭인 그 말을 계속 생각하며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명수가 돌아 올 거라고 믿으며 한참을 울었다.
-
성열이 눈을 떴을 때는 침대 위였다. 명수가 와 준건가. 환하게 웃던 성열은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저를 반기는 차가운 공기에 성열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비춰졌다. 그리고 곧 침대 옆 협탁에 붙은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제발 가, 사랑해 ’
성열은 멍하게 포스트잇을 쳐다봤다. 어째서 너는 나를 그렇게 보내려고 하는 걸까. 성열은 옅은 미소를 띠웠다. 명수가 나를 자꾸 밀어낸다면,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움직여 성열은 방으로 향했다. 마당에 명수가 서 있었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명수야. 하고 불렀다. 그러나 명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헛것, 헛것을 보다니. 명수야. 성열은 울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옆에 있던 전화기를 쳐다보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명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고 명수가 전화를 받았다.
“명, 수야..”
-...미안해
“명수야.. 제발.. 제발..”
성열은 울부짖었다. 명수의 이름을 부르며 제발, 그 한마디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수는 성열의 제발, 그 한마디에 담긴 모든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성열의 울음소리를 듣는 건 고역이었다. 명수는 제가 그렇게 잘못 한 것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잘못하긴 한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잘못해서, 더 이상 성열에게 다가갈 수도, 성열이 다가오게 할 수도 없었다.
“명수야, 여기로 와, 명수야..”
전화를 그대로 뚝 끊겨버렸다. 성열은 멍하게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웃었다. 그 웃음이 울음으로 변했다. 이제는 내가 보기 싫은 걸까. 성열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거실로 내려갔다. 소파에 앉아 까만 TV화면을 쳐다봤다. 눈물에 젖은 제 얼굴이 비춰지자 성열은 인상을 찌푸렸다. 제 얼굴이 보기 싫은 듯 TV를 켠 성열은 신나게 웃고 떠드는 화면 속 사람들의 모습에 다시 울었다. 얼마를 그렇게 울었을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성열은 고개를 들었다. 명수는 소파에 앉아서 놀란 듯 멍하게 저를 쳐다보는 성열을 끌어안았다. 명수는 이렇게 성열을 놓지 못하고, 성열의 한마디에 와버린 제 자신이 한심했다. 돌아가자, 명수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작게 말하는 성열에 명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안 돼..”
“왜.. 왜 안 돼..”
“...안 돼, 안 돼”
내가 다시 너를 힘들게 하면 나는 내 자신을 도저히 견뎌내기 힘들어 질 것이다. 내 곁에서 지쳐 또 다시 누군가와 사랑을 키워 나간다면 성열을 놓아줄 자신이 없었다. 명수는 성열에게 작게 속삭였다. 우리 이제 다시 보지말자. 그리고 명수는 집을 빠져나갔다. 명수는 몰랐다. 성열의 끝은 지금이라는 걸. 제가 성열을 놓으면 성열은 무너져 내린다는 걸 명수는 몰랐다. 성열은 멀어져가는 명수의 차를 보면서 웃었다. 한순간에 다 뒤바뀌어버렸다. 저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던 명수는 저를 놓고 이제는 저를 멀리 하려고 한다.
“왜 그래, 응? 왜 가버려, 명수야?”
성열은 거실 창을 통해 명수의 차가 빠져나가는 걸 쳐다봤다. 명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가는 가 싶더니 명수는 결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성열은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명수야, 제발 다시 돌아와. 입술을 꾹 깨물었으나 흐르는 눈물에 성열이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끝을 맞이하게 하지 마, 제발, 나를 살려줘. 한참을 울다가 성열은 수화기를 들었다. 꾹꾹 숫자를 누르던 성열은 신호음이 가기 시작하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성열아? 호원이 전화를 받았다.
“명수가, 나를 두고, 가버렸어”
-그게 무슨 소리야.
“명수가 나를 두고, 가버렸어, 나한테 끝을 맞이하게 했어”
-성열아? 끝이라니?
“명수야,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앞으로도 쭉 사랑해”
-성열아, 왜 그래..
성열은 조심스레 수화기를 내려놨다. 전화가 끊어진 걸 확인하고 성열은 웃었다. 성열은 제가 사라지면 호원이 제 말을 대신 명수에게 전해줄 걸 알았다. 아직까지 꺼지지 못한 TV에선 밝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저와 다르게 밝은 노래에 성열은 인상을 쓰더니 TV를 끌 생각도 않고 무작정 리모컨을 TV에 던졌다. 화면에 금이 갔다. 꺼지지 않는 TV에 성열이 신경질적으로 걸어가 코드를 뽑아버렸다. 성열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발코니에 나온 성열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추워. 작게 중얼거린 성열은 살짝 웃었다. 내가 추워서 떨면 항상 꼭 끌어안아줬잖아, 명수야, 언제와. 성열의 눈에서 톡, 눈물이 떨어졌다. 성열은 마당으로 들어서는 호원의 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성열아!!”
“... 명수가 아니잖아..”
작게 중얼거리는 성열의 말을 듣지 못한 호원이 올라오지도 못하고 아래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나 지금 안 죽어, 호원아. 성열의 말에 호원이 주먹을 꼭 쥐더니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너는 명수가 아니니까, 내가 니 앞에서 죽을 이유는 없어. 끝 방부터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성열이 서 있는 발코니와 연결된 방 문이 열렸다.
“성열아”
“나 지금은 안 죽어.. 넌 명수가 아니니까, 난 죽지 않아”
성열의 말에 호원이 멍하게 성열을 쳐다봤다. 호원을 쳐다보다가 차가 들어서는 소리에 마당을 쳐다본 성열은 살짝 웃었다. 호원아, 니가 명수 불렀어? 성열의 물음에 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열은 그런 호원을 보며 웃었다. 빠른 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지르는 명수를 성열이 불러 세웠다. 그러나 명수는 성열의 말을 듣지도 않고 마저 마당을 가로질렀다. 호원아, 고마웠어. 성열의 말에 호원이 한발자국 성열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 호원아. 성열의 말에 호원이 한발자국 더 다가갔다. 발코니 난간에 위태롭게 앉은 성열은 다리를 앞뒤로 왔다 갔다 거리며 작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니가 필요한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없이 울부짖는 나의 마음”
“성열아”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나가는 꿈을 꾸는 산산조각 난 나의 마음”
“성열아, 제발”
“부탁해, 부탁해 부디 부서진 내 맘을 치유해 주길 바래”
“이 성열”
저를 부르는 호원의 목소리에도 성열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한발자국 더 다가가려던 호원은 성열이 노래를 갑자기 뚝, 끊어버리자 가려던 것도 멈추고 성열을 쳐다봤다. 호원아, 안녕. 성열은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모두에게서 멀어진 마음 쉴 새 없이 부서지는 수 천 개의 마음. 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호원이 방 문을 쳐다봤다. 들어오던 명수가 눈을 크게 떴다. 명수의 행동에 발코니를 다시 돌아본 호원은 멍하게 난간을 쳐다봤다. 성열이 사라졌다. 호원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자리에 멈춰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명수는 조심스럽게 난간으로 다가갔다.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는, 붉게 물들어가는 성열이 보였다. 열아, 장난치지 마. 호원은 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걸었다. 호원이 통화를 하는 동안 명수는 점점 붉어져가는 성열은 빤히 바라봤다.
“열아, 나 왔어.. 열아..”
“야!! 너 미쳤어!?”
성열에게로 점점 몸을 기울여가던 명수를 호원이 붙잡았다. 야, 정신 차려. 명수는 멍하게 성열을 바라봤다. 호원이 명수의 팔을 잡고 흔들자 명수가 주저앉았다. 멍하게 있던 명수는 웃었다. 내가 열이를 죽게 한 거야? 자신에게 묻는 명수의 말에 호원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명수는 울기 시작했다.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호원은 명수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멍한 얼굴의 명수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호원은 성열을 들것에 실어가는 구급대원에게 명수도 맞겨 버렸다. 꼭 제가 둘을 이렇게 만든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해 졌다. 성열아, 너는 살아라, 그래서 그 자식 곁에서 행복해라. 움직이는 앰뷸런스 안에서 성열에게 조심스럽게 중얼거린 호원은 쓰게 웃었다. 지독하다, 너는 그 자식에게서 벗어나려 했으면서, 왜 벗어나니까 죽어버리려고 하는 거야. 성열을 쳐다보는 호원의 입 안에 쓴 맛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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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편이 제일 기네요 ㅋㅋ..
아, 참고로 성열이가 부른 노래는 Nell - 치유 입니다! 개인적으로 요새 이노래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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