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병원 : 03
w. Shelter
루한의 복부에 꽂힌 칼날 제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예상대로 메스는 깊이 박히긴 했지만 다행히 중요 내장 부위를 간신히 빗겨간 바람에 무리없이 수술을 끝낼수 있
었다. 아직 수술부위가 마취되어 있어 깨어날 기미가 없이 깊게 잠들어 있는 얼굴은 그새 수척해져 볼이 깊게 패이고 말라졌다. 인공호흡기 사이로 내쉬는 숨도 어딘가 허전해
보였다. 담당 의사는 잠에 빠져든 그에게 당분간 움직이지 말고 몸과 마음을 쉬게 놔두기를 권했고 루한의 곁을 지키고 있던 첸이 그를 대신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루한을 첸에게 맡긴 의사가 병실을 나섰다.
"네가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겠어."
잠든 루한의 머리를 정돈해주며 말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제 물기 하나 없이 말라있었다. 다정한 손길을 알리가 없는 루한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다들 네 걱정을 해. 어서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
"하지만 너가 다시 건강해지면 내가 네 멱살을 잡고 놔주지 않을거니까 각오하는게 좋을거다."
"......."
"걱정시키는 방법도 가지가지네, 루한. 이건 친구한테 못할 짓이라고.."
"......."
"듣고있지."
"......."
"...그럼 끝까지 들어. 일어나더라도, 다 낫고 일어나라. 아픈채로 일어나면. 난 너한테 그 어떤짓도 하지 못할거니까."
"......."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정말."
첸이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힘없이 놓여지는 손가락이 그저 안쓰러웠다. 거칠게 내리는 비의 소리가 병실 창문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그 소리에 혹시나 편히 잠든 루한
이 깰세라 창가로 걸어가 블라인드를 쳐주려 했다. 그러던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블라인드로 향하던 손길을 멈춘채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억을 되짚었다.
정확히 2주전 오늘. 그날도 지금처럼 비가 내렸다.
첸은 청양이라는 환자에 대해 떠올렸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루한의 일도.
청양은 처음 병원에 들어올때부터 의사의 손길을 미친듯이 거부하던 환자들 중 한명이였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을 원하지
삐딱함에 세워진 특정적인 관심을 바라는게 아니였다. 특정적인 관심이라 함은, 곧 편견에서 우러나오는 차별적 태도였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정신병동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이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곧 의사요 저 자들은 환자이니 이것은 그저 자신의 직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에 모든 각에 맞추고 틀에 끼워 대다수 환자를 그
리 대하는게 일상다반사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루한은 달랐다. 남들이 머리로 환자의 아픔을 감추려 할때 루한은 온 힘을 다해 그들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루한이 자발적으로 청양의 주치의를 맡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루한을 거부할 줄 알았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으니까. 모든 의사를 거부하며 힘들게 치료받고 살아왔으
니까. 그러나 의외로 청양은 루한을 싫어하지 않았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루한의 손길과 말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게 우스울정도로 청양은 오히려 웃으며 그를 따랐다. 거기
서 사람들은 루한을 보통과 다르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2개월간을 함께 했다. 이제는 모두가 청양과 루한의 관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당연시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날, 2주전 오늘. 루한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루한의 부모가 베이징에서 찾아와 그를 보러 왔다고 했었다, 아마도. 그래서 그가 자리를 비웠다. 하루를 꼬박
비운게 아닌 단 30분이였다. 평소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청양의 곁에서 멀리 떨어졌을때, 지금껏 보내온 많고 많은 순간중 하필 그 때. 그래, 그 때였다.
루한이 없는 틈에 그녀가 머물던 환자실에서 눈 깜짝할새 사라진 것이다.
청양은 다른 생각 없이 그저 곁에 있던 루한이 없어지자 찾아 나서려 한 듯 했다. 오랫동안 혼자 있는게 두려웠는지 청양은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루한을 만나러 돌아다녔
다. 인식이란건 무서운 고정관념이다. 모든 사람들은 루한의 손 외에는 그녀가 모조리 거부한다는것을 알았다. 그런 이유로 청양이 복도를 휘젓고 온 몸에 더러운 이물을 어디
선가 묻혀와 그렇게 하고 돌아다녀도 사람들은 그녀를 본체만체 했다. 그 결과 청양은 결국 병동 밖까지 이탈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된 것이다.
루한이 부모님을 만나고 온 뒤에는 이미 너무나도 늦은 상황이였다.
모두가 청양을 찾으러 병원 밖을 돌아다닐때 루한은 그 소식을 듣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제 손으로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는걸 알았지만서도 그는 곧바로 찾아 나설수가
없었다. 순간 자신의 인내심이 바닥 저 끝까지 추락함을 느꼈다. 정신을 놓을뻔 루한이 간신히 잡고 급히 가운을 벗어 던진채 병실 밖으로 뛰쳐 나가 청양을 찾으려던 그 때,
누군가 청양을 바깥에서 데려와 아주 억지로 들쳐업고서 땀에 젖은채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 루한씨, 잘 들었죠. 」
「 ....... 」
「 허구언날 본인 능력만 믿지 말고. 환자의 밑바닥까지 잘 감시하란 말입니다. 」
「 ....... 」
「 그...인간의 능력이란게 언제까지 갈지, 또 언제 바닥칠수 있을지 모르는거니까요. 」
며칠전 아침 회의가 끝난후 루한을 능욕하며 충고하던, 짧은 머리의 그 남자였다.
'우웨이'. 그가 입고 있던 가운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등허리 위에서 격하게 움직이는 청양을 여전히 놔줄 생각이 없어보이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원장 앞
에 섰다.
루한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찾을 수 없었다면, 청양을 찾지 못했다면. 루한에게서는 평생의 짐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생각도 하기 싫었고 아찔함이 눈
앞에 몰려왔다. 루한은 오히려 우웨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것도 아주, 정말로 많이.
그렇게 루한은 환자 관리 미약으로 당분간 모든 환자의 주치의 권한에서 박탈을 당하게 됐다. 그리고, 그녀의 남은 치료는 우웨이가 하기로 위에서 결정이 났다. 루한은 변명
할 생각따위 없이 잘못을 인정했고 위에서 내린 지시사항을 거부하지 않았다. 청양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면, 그 상처를 준게 나라면. 순순히 물러서야 했다.
"루한. 넌 진짜.. 등신인가보다."
여기까지 생각한 첸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미간을 사정없이 구겼다. 그는 알고 있었다. 루한은 그때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는걸. 나가기 전 청양에게 잠시만 자리를 비우겠다며
양해까지 구했다는걸. 그런 사람이였다. 루한이란 사람은 바보같았지만 그랬다. 제 사적인 일까지도 환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그런 남자.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같은 의사였다.
그 모든건 첸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우웨이...."
그리고 당신. 우웨이, 당신이라는 사람. 환자를 밑바닥이라고 표현하는게 한계인 당신이란 남자. 처음 청양을 데려왔을때 드러낸 그 당당함은 이번에 어디로 숨은건가요.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환자가 자해를 하고 병동에서 그 난리를 치는 위험한 지경이 될때까지, 루한이 칼에 맞아 쓰러질때까지 당신이 한 것은 대체 뭔가요. 사람들 사이에 숨
어 벌벌 떨기. 의사라는게 고작 그것밖에 할 수 없었으면서.
첸의 마음속에서는 차마 언어로 담을수 없는 감정적인 분노가 크게 치밀어 올랐다.
"우웨이."
루한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첸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네가 지난 과거의 일을 지울수 있다고 한다면, 그 상태로 조금 더 잠들어 있어도 괜찮을것 같아. 네가 속죄하기 위해 청양에게 달려든거라면, 너는 네 죄 값을 치룬거야.
"당신은 모를거야."
그걸로 됐다. 루한. 당분간 쉬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길 바란다.
"당신은 루한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는걸."
-
"사직서를 내겠습니다."
"...진심인가."
"예."
"......."
"진심입니다."
루한이 수술을 받고 난지 이틀이 지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며칠간 첸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살아 숨쉬고 움직이기에 적응을 했다. 문득 자신의 수술부위를 내려다보며 바로
얼마전에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그래서 내가 그 자리에 누워있던거구나. 결코 좋은 경험은 아니였지만, 그는 원치않게 쉬게되어 조금은 편안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깨어나자마자 한 일은 두 번째 원로과장에게 찾아가 사직서를 적어 내는 일이였다. 저번 일로 주치의 자격에서 박탈당한게 가벼운 징계였다면, 이번에는 그가 직
접 나가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난리를 피운건 루한이 아니였다. 그것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을 잃은것과는 완벽히 다른 차원으로, 처음으로 일을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첸은 다 알고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차피 루한이란 의사는 병원에서 무척이나 아끼는 인재중에 인재였다. 첸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가 사직서를 낸다고 해서 과장이 그를
바로 내치지는 않을거라 예상했다. 첸은 생각보다 영악했고, 또 여유로웠고, 루한은 생각보다 강하지 못했다.
"........"
"그동안...감사했습니다."
"자네, 다시 생각해보지 않겠는가."
"......."
"14년간 이 한곳에 몸 담으면서 자네만큼 환자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있었어도 그닥 자네 만큼은 아니였다고. 우리 아들놈도 자네한테 아직 배울
점이 많다는걸 자주 느껴."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첸은 지금도 완벽해요. 저 없이도 잘 해낼 사람입니다."
"아직 멀었지. 완벽에는 자네가 가깝네."
"과찬이십니다."
사실 첸은 처음부터 이 병원에서 두 번째 가는 원로 과장의 아들이였다. 그 역시 한국인이였고, 굳이 루한에게도 숨기지 않던 사실이였다.
"궁금한게 하나 있네. 대체 뭐가 자네를 그렇게 만들었나? 소동을 끝내고자 하여 나서서 다친 사람이 어째서 먼저 병원을 나가겠다고 하는건지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아."
"그 어떤것도.. 아닙니다."
"그 어떤것도 아니다..?"
"......."
"뭔가 이유는 있겠지. 하지만 생각이 깊은 자네가 말을 아끼는거라고 생각하네. 세상에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으니.."
"......."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거 알고 있어. 나도 딱 루한 자네 나이때에 겪은게 많아, 그리 생각했거든.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부 다 내 일 같았어."
"......예."
"죄책감을 가지는것도 좋아. 그래. 그래야 발전을 할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는거니까."
"......."
"하지만, 그렇다고 상실감까지 동시에 짊어질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
그가 루한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루한은 상실감이라는 말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것 같았지만 그것을 숨기려 끝내 고개를 들지 않고 입술만 깨물었다.
"어디 다친곳은 괜찮은겐가."
"..괜찮습니다. 조금만 안정을 취하면 다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래."
"......."
"그렇다면 안정을 취해야지. 그렇지?"
"......."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것도 좋네만, 한 번쯤은 자네에게 기회를 주도록 해봐."
"저는 정말로,"
"당신에게 안정이란 환자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사는게 아닌가."
"........"
"아니라고 못하는걸 보니 꽤 솔직하구만."
"..그게."
"첸과 함께 한국으로 떠나게."
"..........예?"
루한이 반문했다. 제대로 듣고도 뭐라고 하는건지 이해가 안가는 소리였다. 루한이 그제서야 놀라 고개를 들어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딱히 거부하지 않을걸세. 자네가 간다고 하면 그 아이는 금새 따라갈거야. 오랜 동료이지?"
"과장님. 잠시..."
"문제라도 있는건가."
"..그건 아닌것 같습니다. 그건 첸에게 불리한 일이에요. 관둬도 저 혼자 관두겠습니다. 첸과는 엮지 말아주세요. 그 아이는. 그 친구는 잘못이 없어요."
"아, 자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직서를 낸거로구만. 그래?"
"....그게.. 과장님, 어쨌든 안됩니다. 첸은 상관이 없어요. 제가 이 일을 하면 안된다고 말씀 드리는거에요. 제가 안돼요."
"잘못에 관련된게 아니고. 벌을 주려고 보내는것도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 않나 버리기 아까운 인재라고. 그 생각 할 시간에 환자 하나를 더 관리하는게 빠르겠어."
"과장님."
"명목을 하나 만들어 주지. 그간 여기서 있었던 일을 지우게 하기 위해서라면 나름 가뿐한 명목이 되겠는가?"
"그게, 그게 아니라."
"한국에 남는 자리가 있다고 하니 첸과 함께 떠나도록 해."
"......."
"내가 억지로 시키는게 아니란걸 자네도 그 아이도 알고 있을거야."
"......."
"자네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사실 추호도 없는게 아닌가. 굳이 회피하려 하지 말게."
"......."
"아들놈에게는 내가 말해둘테니, 곧 함께 떠나도록 해."
"과장.."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일세. 자네, 어차피 한국말을 할 줄 알지 않나? 첸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 둘이 있을때는 한국말로 대화한다며. 영 똑똑한 사람이
야, 자네는. 그정도만 봐도 큰 무리 없을테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네."
"......."
"주치의 박탈권은 다시 없애도록 하지. 지금 내가 자네에게 새롭게 내리는 지시사항이야."
"......."
"사직서도 다시 가져가. 그리고 다시는 이런거 가져올 생각도 하지 말았으면 하네."
사직서를 가져가라는 말은 틀림없는 한국말이였다. 이해했으면 알아서 지시에 따르라는 뜻이였다.
과장은 그 말만을 남기고 오전 회진을 위해 진료 차트와 의료 기구를 가볍게 들고서는 루한을 뒤로 한채 개인 사무실을 나갔다. 그는 루한이 써낸 사직서를 거두지 않았고 책
상 위에 그대로 놔뒀다. 종이조각이나 봉투의 머리도 조금도 건들지 않은 상태였다.
루한은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과거를 지우기 위해 홍콩을 벗어나라니. 나는 단지.. 단지.
"루한."
"........."
"어쩔래."
"........."
"나랑 같이 한국 갈래? 네 결정이 무엇이든, 나도 같이 따를게."
"........첸."
"응."
"......김종대.."
얼마만에 불러보는 첸의 본명인지, 루한이 그를 끌어안으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어느새 제 아버지의 사무실에 들어온 첸이 어쩐지 루한의 등을 본인도 모르게 다독이고 있었다.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었다. 분명 제 아버지가 현명한 선택을 했
을거라 믿고 있었다.
첸은, 정말로 생각보다 영악했다.
"네 눈물, 동의로 알아먹어도 되는거지?"
"......김..종대.."
"응. 네 친구 여기있어."
"......."
"같이 갈거야. 네 파트너는 늘 나였으니까."
"......."
"..가자. 청양이 너에게 했던 말대로, 그리고 너가 청양에게 했던 말대로."
"........."
"우리, 여기를 벗어나자."
-
우웨이는 곧 병원에서 퇴직을 당했다. 면치 않을수 없는 일이였고, 우웨이는 원장실 앞에서 발악했다. 남자 간호사들이 그의 작은 짐을 싸고 있는 중이였다. 그가 온동네를 시
끄럽게 하며 난리를 피웠다.
멀찍이서 그걸 바라보던 루한과 첸은 서로를 보며 미묘하게 웃음을 흘렸다.
"웃으면 안되는데."
"응. 근데.. 웃기잖아."
"..그래도. 웃지마, 첸."
"...풉."
루한과 첸은 약속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홍콩에 돌아오기로. 루한이 마음의 짐을 덜었을때, 그 때 다시 돌아오기로 말이다.
-
루한이 떠나기전 청양의 병실에 들렸다. 청양은 영혼을 잃은 눈빛으로 자신의 무릎을 두 팔로 끌어안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 눈에는 그 어떤 빛도 눈에 담지 않
고 있었다. 혹시나, 다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루한은 그녀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많이 망설이고 있는 루한을 첸이 가볍게 쳤다.
"가보지 않고 뭐해."
"아. 아니.."
"어서 가봐. 지금은 많이 진정되서 괜찮을거야."
".....응."
루한은, 그녀가 루한을 찔러서 그걸 무서워한게 아니였다.
다시 나를 거절하면 어쩌지. 내가 다가갔는데 내 손을 쳐내면 어쩌지. 나를 기억 못하면... 떠나는 나에게 관심 하나도 없다면.
거부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두려움에 마음 한켠이 두배로 두려웠던 것이였다. 그러면서도 루한은 앞으로 당분간 청양을 보지 못할거라는 생각에 두렵지만 용기내어 다가갔
다. 그때는, 그때는 그녀가 위험해서 두려움이고 뭐고 없었지만.
"청양.."
"......."
그가 청양의 뒤에서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청양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루한이 무어라 입을 달싹이려 했다. 미안하다고 하면, 뭐때문에 미안하다고 하
는건지 청양이 알아들을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너무나 많이 미안했는데, 미안하다고 하면, 단지 그 말 하나로 모든게 다 전달 될 수 있을까.
루한이 두 눈을 꼭 감고 청양,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침대 앞으로 섰다.
".......청양."
"......."
그런데 그때,
청양이 루한의 허리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주 세게.
"......."
"미안합니다.."
"......."
".....아팠지요."
"......."
"....많이 아팠을거죠. 미안합니다.."
"........청양."
그녀가, 먼저 사과했다.
루한을 찌른것에 대해, 그녀가 먼저 사과했다. 루한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만져줄수도, 머리를 쓰다듬어줄수도, 팔을 풀어내 자
신을 쳐다보게 할 수도. 그 어떤것도 할 수 없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 흐르는 눈물에 덩달아 그도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 뿐. 루한은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제 아무리 능력이 좋고 머리 좋은 의사라고 할지언정, 막상
사람과의 감정 앞에서 맞닥뜨리게 되니 그 어떤것도 해낼수 없었다. 손을 들어 안절부절 하다가 결국은 그 손이 그녀의 머리 위로 올려졌다. 그리고 쓰다듬었다. 한참을 쓰다
듬으며 괜찮다며 대답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미안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 둘은 한참을 함께 끌어안고 울었다.
첸이 멀찍이서 그들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작게 내쉰 첸은, 곧 뒤를 돌아 루한이 챙기지 못한 짐을 마저 챙겨주러 개인 진료실
로 향했다.
루한.. 넌 환자들 곁은 죽어도 못 떠나. 바보야.
죄값을 치룬다는건, 그에 맞는 댓가를 치룬다는 것.
그에 맞는 댓가를 치룬다는건, 죄의 근거지로부터 용서를 받는다는 것.
용서를 받는다는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건, 다시 아름답게 살아갈 기회를 받는다는 것.
-
이전편에서 댓글 달아주셨던 분들께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서 감히 답댓글을 써드릴수가 없었어요. 제 글은 읽기 싫은데, 독자님들 댓글은 계속해서 읽었어요. ㅠㅠ
너무 감사합니다. 다들 바쁘고 시간도 없으실텐데.. 코멘트창을 꽉꽉 채워서 써주신 그 정성에 저는 눈물을 흘립니다.. 아흑.. 곧 답글 달아드리러 갈게요.. 사랑해요ㅜㅠ
암호닉 ☞ 낫닝겐 / 너구리 / 핫바 / 치즈스틱 / 조무래기 / 노란색연필 / 변골반 / 모카 / 이든 님
이번 편은 루한 위주로 썼는데, 아무래도 멤버수가 많다보니 프롤로그에서 2편까지 보니까 정말 전개가 지저분하더라구요. 이제는 이렇게 띄엄띄엄 쓸 생각이에요ㅎㅎ 나중
에는 지금까지 쓴 내용을 조금씩 지우고 수정하는 작업을 하게될것 같습니다. 혹시나 재탕...하실일은 없겠지만 다시 보게 된다면 어? 이부분에 이 글이 있었는데? 하는 부분
도 간혹 있으실겁니다.. 그럼 그건 제가 다 딜리트 한거라고 생각하시면..... ㄷㄷㄷ
아, 그리고 커플링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하나 스포를 해드리자면..............저는 루민러입니다 (....)
+) 아. 그리고 Shelter의 뜻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안식처라는 뜻이에요. ^.^ (흐흐)
감사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