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 랜선 연애
w. 지젤
몸이 전적으로 지치는 하루였다. 하루라고 하기도 조금 뭐한. 하루를 훌쩍 넘겨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왔다. 알콜에 쩔어 흐물한 느낌이 드는 몸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욕조에 담그고 방수팩에 담긴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모든 아이돌 그룹이 마찬가지겠지만 올해가 가장 바쁜듯 한 느낌이다. 컴백과 동시에 방송 활동, 행사, 팬사인회, 심지어 해외 콘서트까지. 시상식 무대도 준비하려면 몸이 3개여도 부족할 것 같아 12월 캘린더를 가만히 보다 입을 꾹 다물었다.
- 크리스마스에 못봐서 어떡하냐.
평소보다 두배로 미안한 목소리로 웅얼거리길래 살풋 웃음이 났다. 왜 시간 낼 수 없는지, 왜 우리가 만날 수 없는지 모르는거 아닌데 미안해하는 윤기가 귀여웠다. 이럴 땐 조금 연하 느낌이 난단 말이지. 나도 그때 동기모임 있어서 괜찮아. 공연 잘 하고 와. 차분한 목소리로 달래자 핸드폰 너머로 이번엔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학교 동기들과의 망년회.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는 동기들에 작년에도 첫차를 타고 집에 들어온걸 아는 윤기는 굳은 목소리로 신신당부 했다.
- 집에 들어오면 무조건 전화해 너.
....전화 하라더니... 받지도 않고...
조금 전, 같은 멤버가 트위터에 올린 영상에 아 지금쯤이면 숙소에 도착했으려나 싶어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아직 자는 것 같지는 않은데.. [ 자? 나 집에 들어왔어- ] 카카오톡으로 보낸 메세지 옆 숫자 1이 사라졌는데도 답이 없었다. 다시 전화를 해 봐야 하나 싶어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데 오는 메세지.
[ 일찍 좀 다니지? ]
전화로 못하면 문자로라도 잔소리 할 민윤기지. 암. 그럼. 절로 음성지원되는 메세지에 슬쩍 웃다 톡톡톡, 핸드폰을 두드렸다.
- 내년엔 더 일찍 들어올게. 아직 안잤어?
[ 너 안들어왔는데 어떻게 자. ]
- 얼른 자. 내일도 공연하잖아. 피곤하겠다..
[ 약간. 술 많이 마셨어? ]
-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주먹을 흔드는 제 이모티콘을 보낸 윤기에 푸흐흐- 소리내 웃었다. 몸을 감도는 술기운에 입술을 살짝 깨물다 톡톡, 액정을 두드렸다.
- 보고싶어..
메세지 옆 숫자가 사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딱히 투정은 아니었지만 술기운을 빌려 보내본 메세지였다. 한참을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잠들었나.. 답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바라보다 물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코 끝까지 물이 차오르는게 느껴질 무렵, 경쾌한 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푸핫-!"
급하게 물에서 나와 핸드폰을 켰다. 주황색의 재생버튼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눌렀다.
[ ....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볼륨을 최대한 높였다. 뭐지...? 잘못보낸건가..? 볼륨을 최대한 높였지만 흐르는 정적에 고개를 갸우뚱 하려는 찰나,
[ ..... 나도. ]
욕실에 작게 울리는 윤기의 목소리에 오소소, 등에 소름이 돋았다. 잘못 들은건가 싶어 다시 재생버튼을 누르고 핸드폰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기를 여러번.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얘기하는 윤기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 미안. 전화하고 싶은데 지민이가 자서. ]
아무도 모르게 하는 연애. 가족도, 친구도, 멤버도. 아무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연애이기에 제약이 많았다. 호텔방에서 하는 짧은 통화도 어렵고, 숙소에서 몰래 하는 영상통화도. 카카오톡 메신져도.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잘자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노곤한 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머리 맡에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잠이 들었다.
-
울렁거리는 속과 지끈한 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진하게 내린 커피를 들고 아일랜드 테이블에 앉아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고 머리야. 적당히 마실걸. 아무리 매년 다짐한다 해도 꼭 동기모임이 끝나면 술병이 나 골골거리곤 했다. 울렁거리는 속에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자 속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곤 핸드폰을 켜니 윤기에게서 와있는 메신.
[ 괜찮으니까 걱정말고 있어. ]
알 수 없는 얘기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뭐가 괜찮다는거지?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다 시간을 확인했다. 내가 이렇게나 많이 잤나? 시간이 벌써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다. 메세지가 온 시각은 오전 9시. 어제 늦게 잤을텐데 또 아침일찍.. 고생하는 윤기에 코 끝이 찡해졌다. 핸드폰 속 저장된 윤기의 사진을 하나 하나 넘기는데 울리는 알림에 핸드폰을 고쳐쥐었다.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는 윤기이기에 윤기의 소식은 소속사에서 듣는게 더 빠를 것 같아 팔로 해 뒀었는데.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톡- 액정을 터치했다. 그리고 그대로 커피를 식탁 위에 쏟았다.
아프다니. 얼마나 아프면 당일 공연을 취소하고 병원에 갈 정도인거지.
지끈거리는 머리가 이제는 술기운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아랫입술을 잘근 잘근 깨물며 거실을 빙글빙글 돌았다. 답답했다. 윤기가 아파서도 답답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도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어쩔줄 몰라하다 문득 윤기의 메세지가 생각났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멍하니 서서 그 메세지를 한참을 보고 또 봤다. 사람들하고 함께 있을 것 같아 차마 답장은 하지 못했다. 아이디를 만들고 아무것도 올린 적이 없는 텅 빈 트위터로 윤기에게 멘션을 남겼다.
@BTS_twt 아프지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우스워 물끄러미 핸드폰을 바라보다 침대에 엎드렸다. 처음부터 충분히 알고 시작한 연애였지만 가끔은 미치도록 힘들었다.
[ 우리가 만난다면 아마, 제대로 된 연애는 절대 아닐거야. 고작 랜선으로 하는 연애가 다겠지. ]
사귀기 전, 윤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게 우리의 연애였지. 너와 나의 랜선 연애.
------
낯선 여름, 뜨거운 @@
사제
글이 불마크여서 모두 삭제됐네요ㅠㅠ
아쉽습니다 ㅠㅠ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