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이는 바람이 교실창문으로 들어왔다. 여름과 가을의 문턱의 날씨는 찰랑이였다. 저와 백현 빼고는 텅 빈 교실이 한산했다. 갑작스레 크게 불어오는 바람에 제 앞자리책상에 놓여있던 공책과 책이 촤르륵 흩어졌다. 옆에 누워 잠을 청하던 백현의 눈 주위가 움찔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깨에서 쌔액, 쌔액 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이 흩어진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흩어지는 머리가 보드라왔다. 제 손놀림에 눈을 뜬 백현이 멍하니 저를 쳐다보았다.
"……."
"…깻어?"
제 손으로 머리를 계속 스다듬자 눈을 감고 그것을 느끼던 백현이 다시 눈을 떠 눈을 끔뻑였다. 입을 벌려 얕은 하품을 하고는 이내 살랑이는 바람에 섞여 눈을 접어 웃음을 띄었다.
"나 몇시간이나 잔거야?"
"얼마 안잤어"
백현이 찬열의 손목에 걸쳐져있는 손목시계로 눈길을 옮기더니 눈을 크게 뜨고는 저를 쳐다보았다. 뭐야! 두시간이나 잤잖아
"기다리지말고 깨우지 그랬어…"
"많이 기다린거 아니라니까, 더 자지 그랬어"
"미안, 기다리게해서…"
"우리 똥깡아지 누가 데려갈까 해서 기다렸지."
내 말에 백현은 나의 손을 치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너도, 너도 얼른 일어나. 어두워진다구이제. 서두르는 백현을 잡아 자리에 다시 앉혔다. 나랑 같이있는게 싫구나? 내 장난스런 말에 백현이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말을 했다. 아니야, 그건 아닌데 너 집에 빨리 들어가야하잖아. 엄마 걱정하셔.
"나는 네가 내 걱정해주면 좋겠는데?"
내 말에 귓가부터 빨갛게 달아오르는 백현이 보였다. 붉게 물들어가는 얼굴이 귀여웠다. 몇년을 봐 왔어도 제 말이면 언제나 붉어지는 백현이 마냥 귀여웠다. 제 머리를 백현의 앞으로 쑤욱 뻗어 다가갔다. 언제나처럼 제 눈앞이 찬열로 가득 차 오르자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 백현이었다.
촉, 촉
코와 입을 번갈아 가며 입술을 부딪히자 백현이 부끄러움에 눈을 내리깔았다.
"왜그래에…"
많이, 많이 가까운 거리에 백현이 입을 열때마다 서로의 입술이 맞부딪혔다. 그것이 또 부끄러운지 머리를 뒤로 내빼는 백현의 뒷통수에 제 손을 밀어넣어 단단히 고정했다. 결국 백현도 포기한건지 눈을 두어번 깜빡이더니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백현아, 뽀뽀"
계속해서 맞부딪히는 입술에 백현은 눈을 감고 내 입술에 촉, 하고 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백현의 입술을 꽉 물고 깊게 입을 맞추었다. 깊은 입맞춤에 갈 길을 잃은 백현의 손을 제 손에 꽉 잡아 끼워넣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덥게 느껴졌다.
몇분을 붙어 있었을까, 미약하게 숨이 고르지 못해 헥헥거리기를 시작하는 백현을 놔 주었더니 헥헥 빠르게 숨을 머금었다. 숨이 차오르는지 일리분 정도를 숨을 고르는데 사용한 백현이 고개를 들고 다시 웃었다. 부끄럽게 왜그래…
어느 새 창 밖에 붉고 푸르른 노을이 지었다.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저를 쳐다보고만 있는 백현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우리 엄마보다, 네 어머니가 너 걱정 더 하셔. 늦둥이잖아. 백범이 형이 맨날 나 잡아 먹으려고 한다 너 데리고 늦게 다닌다고.
"서방님 안힘들게 하고 싶으면 집 가자 이제 백현아"
저의 가방은 제가 메고, 백현의 가방도 자연스레 팔에 들어올린 찬열이 한 손으로 백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서스럼 없이 끌려나온 백현과 찬열의 뒤로 붉은 빛이 머물렀다.
단조로운 벨소리가 백현의 집 앞에 머물렀다. 두어번을 더 벨을 누르자 백현의 어머니가 나와 찬열과 백현을 반기었다.
"찬열이아니야? 얼른 들어와, 얼른!"
"아, 안녕하세요"
"인사 할 필요 없어, 맨날보는데. 전골 했는데 먹고가. 만들다 보니 네 것 까지 해버렸지 뭐니 얘, 백현아 너도 얼른 들어와! 백범이 오랜만에 집 왔다!"
어? 백범이 형 집에 있어요? 백현이 반색을 했다. 형, 형!! 반가운듯 저를 내팽겨 치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는 백현을 바라보던 찬열이 고개를 젓고는 푸르르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실례지만 감사합니다. 제 말에 백현의 어머니가 문을 활짝 열어 옆으로 살짝 비켜 서 주셨다.
언제 와도 따스했다. 백현을 닮아서 그런가, 항상 집은 햇살 속에 머무른 듯 했다. 주방으로 걸어들어가니 백범의 곁에 서서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쫑알이는 백현이 보였다.
전골이 나오자 빠르게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한 손에는 숟가락, 한 손에는 젓가락을 쥐고 땅땅, 식탁을 장난스레 두어번 치는 백현이었다. 빨리 주세요. 빠알리-
누가 막내 아니랄까봐, 애교있는 목소리에 분위기가 더 밝아졌다. 보글보글, 끓는 전골이 나오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빠르게 전골로 젓가락이 달렸다. 함께 익는 고기를 서둘러 먹다 입이 데인건지 파닥거리는 백현을 가볍게 제압해 입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묘하게 저와 백현을 쳐다보는 분위기에 주춤거리며 손을 내리곤 눈치를 봤다. 어느 새 귓가부터 빨개진 백현도 눈만 도륵 도륵 굴리었다. 이 순간에도 변백현이 너무 귀여워보인 나는 이정도면 중증이었다. 중증.
묘한 분위기를 애써 푸는 백범이형이 내게 눈치를 주었다. 안다고요. 근데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나. 앞에만 없으면 걱정되고 파락거리는 것만 봐도 가슴이 덜렁거리는데.
저녁이 끝나고 빠르게 백현은 제 방으로 달려갔다. 씻고 올테니까 가지 말고 기다려 찬열아아!! 빠른 외침이 들리우고, 알았다는 말을 전했다. 잠깐 나좀보자. 오랜만의 백범이형은 나를 밖으로 불러내었다.
"야 임마, 조심 좀 해"
"뭘요."
"아까 못봤냐? 주방에서 분위기 싸해지는거."
"…, 봤죠"
"우리집 엄청 엄해. 백현이 엄마가 엄청 싸고돈다고. 걸리면 진짜 백현이 전학 갈지도 몰라."
"알아요"
"나라서 응원도 해주고, 이해도 해주고, 충고도 해주는거지. 쓰게 듣지는 마라. 백현이는 내가 아는것도 모를꺼야"
그러니까, 백범이 형에게 우리를 들킨 것은 두 달 전일이었다.
* * *
방학식을 하고 이틀이 지나고, 나와 변백현은 하루종일을 맞닿아있듯이 했다. 하루는 우리짐에서, 또 하루는 백현이의 집에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게임을 하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내 잦은 스킨쉽에 얼굴이 붉게 닳은 현이를 관찰하기도 하고. 더위를 못이긴 백현이 침대에 엎어져 헥헥거리며 숨을 뱉고있었다.
뜨거운 햇살은 쨍쨍거리며 창문을 타고 흘러오고, 매미우는소리가 크게 울렸다. 더워, 더워…백현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부채로 살살 바람을 일으켜주니 엎드린 상태에서 눈만접어 웃는 백현이 보였다. 몸을 찌뿌둥히 돌려 천장을 본 백현이 다시 나릉 향해 웃었다.
촉, 촉, 촉
습관적인 세번의 입맞춤에 백현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헤헤, 웃음을 터뜨림이 익숙했다. 어느 새 또 붉어진얼굴에 나는 부채질의 강도를 조금 더 높였다. 더워? 응. 더워…
"더우면 선풍기 가져가!!!"
아래층에서 현이의 형인 백범이형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밑으로 내려가니 쇼파에 앉아 삐딱하게 저를 보는 백범이 보였다.
"백현이랑 무슨사이냐"
빈정거림이 분명한 어투가 제 귀로 날아와 박혔다.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체 입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기를 오분째 결국 백범은 답답한듯 표정을 찌푸려뜨리며 제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안들키게 조심해"
"…"
"니 둘 들키면 진짜 좆된다."
게이도 유전인가. 게이 형 밑에 게이 동생이려니. 백범이 작게 중얼이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잠시 백현이 따라 내려왔나를 확인했다. 없구나, 다행이다. 고개를 두어번 젓고 다시 백현이 기다릴 방으로 올라갔다.
* * *
보송보송해진 백현이 저를 바래다주겠다는 고집에 못이겨 결국은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은 전골도 맛있었고, 너도 같이 먹어서 더 맛있었어! 백현이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들석거림에 나는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더 걸으니 항상 집에 들어가기 전 멈춰서 노니는 놀이터가 나왔다. 당연하게 정자에 꼬물거리며 들어간 백현이 다리를 척, 꼬곤 고고한 척 저를 바라보았다.
"나 좀 섹시하나?"
변백현의 발칙한 말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섹시한데-? 어디선가 들은 유행섞인 말을 하곤 백현에게 달렸다. 이런건 또 어디서 배웠데? 백범이 형이 가르쳐 주던?
"그건아니고, 그냥 어쩌다보니 배웠어"
무릎에 뉘인 변백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자 백현의 허리가 접어올려지더니 촉, 하고 입술이 지나갔다.
"오늘따라 왜 이럴까 백현이가"
"그러게-왜 이럴까 내가"
"예쁜짓만 골라하네"
"원래 이뻤어"
"원래 원래 이쁜사람이 이쁜짓하면 더 이뻐보여"
결국 대화는 변백현은 이쁘다, 안이쁘다로 흩어졌다. 검푸른 하늘 밑 나와 변백현은 푸르렀다. 가을바람이 푸스스 흩어짐과 동시에 추위에 백현이의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팔을 가볍게 살살 쓸어주자 예의 미소를 파르륵 터뜨리며 백현이 상체를 뒤집어 까르륵웃었다.
간지러워 하지마아!! 고함소리가 들리고 동네에 파란 소리가 크게 울리었다. 고함지르지 마. 동네 사람들 다 깬다 백현아- 내 말에 결국 자세를 바로잡은 백현이 다시 곧게 무릎에 누워 나를 마주보았다.
촉.
"근데 찬열아"
촉.
"우리 너무 뽀뽀 자주 하는 것 같아"
촉.
"그런가?"
"응 그런 것 같아"
뽀뽀를 너무 자주 한다며 입술을 삐죽거리는 백현에게 수긍하는 척을 해주고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그럼 뽀뽀 말고, 딴 거 할까"
백현의 아랫입술을 길게 잡아물었다. 동시에 눈으로 웃음을 터뜨린 우리는 눈을 감고, 더 깊게 입을 맞추었다. 아, 달다. 백현아.
fin.
으 이런 똥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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