遊學日記유학일기
부제: 당신에게, 호그와트는
---------------------------
"오오오오, 김세나, 이번에도 역시 질렀단 말이지?"
"우리 물주! 역씌 김세나! 사랑하는 거 알지? 그러니까 너가 쓰던 파이어볼트 2014버전은 누규꺼다?"
"우리 쑤영이 마~음껏 쓰세요! 응? 써라 써. 기숙사 소유로 돌려 놓을테니깐 써라 써 그냥."
"워!후! 싸랑해 달링"
"떨어져라."
"시릉데."
리키 콜드런의 나무문을 뻥 차고 캐리어를 끌고 들어온 기범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눈 앞에 있는 세나때문에 미소가 피어나는 것도 잠시, 여름방학 내내 세나가 보검의 집에서 지냈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라 얼굴에 이상한 심술 같은 것이 베어나오기 시작했다. 방학내내 연락 한 번 없었고, 전화를 걸어도 잘 받지 않고, 중간에 잠시 일본으로 여행 차 기숙사 친구인 유타의 집으로 출국을 했음에도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간 세나를, 기범은 지금 어떻게 할까 생각중이었다. 우리 동생, 아주 몇 달 떨어져 지낸다고 막 나가시네. 점원에게 캐리어를 방으로 옮기라고 시킨 기범은 버터맥주를 한껏 들이부으며 친구들과 웃고 떠들어 정신이 없는 세나에게 뒤로 몰래 다가가 헤드락을 걸었다.
"이게 오빠한테 연락도 안하고 외에에에박? 추우우우울국? 너 진짜 죽을래?"
"헐, 김기범..."
"전화도 씹고, 문자도 씹어, 부엉이도 보내는 족족 다 그냥 돌려보내?"
"아!아! 아퍼! 기범아! 잘못했어!"
"이게 대체 몇 년째야 이 답없는 것아! 너 방학 내내 나 피 말려 죽일생각이야?!"
"어짜피 내가 뭐 하든 다 알잖아! 사람 붙인거 다 알거든! 아! 왜때려! 아퍼!"
"니가, 연락을, 제대로, 받았으면, 이런, 짓을, 안하지! 말 좀 들어라, 응?"
주변의 친구들은 이 상황이 익숙한지 그냥 외면 한 채로 세나와 기범만 제외한 채로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기범은 이젠 세나의 볼을 한껏 잡아 당기며 그동안 쌓였던 것들을 풀어냈다. 저렇게 집안과 방학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는 그녀는 이렇게 방학이 끝나갈 때마다 기범에게 응징을 당하곤 했었으니깐. 세나의 빗자루 쇼핑과 함께 연중행사가 되어버린 기범의 폭풍같은 잔소리와 체벌은 한국에서 이 곳 잉글랜드로 유학 온 호그와트의 한국 고학년들에겐 익숙했다. 엽기적이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고. 볼이 빨개지다 못해 살짝 부어오를 정도로 잡아 늘이다가 놓은 기범은 그녀의 옆자리에 있던 보검을 거칠게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았다. 볼이 한껏 화끈거리고 따끔거려 눈물을 찔끔 흘리던 세나는 그런 기범을 째려봤는데, 곧 그 눈초리에 기분이 나빠진 기범이 이마에 딱밤을 때려 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매년 똑같은 레파토리."
"아냐, 저번 해보다 더 아팠어. 멸치같은 게 힘만 더럽게 세서는."
"어쭈, 또 맞고싶지?"
"김기범 진짜 싫어."
"......나도 너 싫거든?"
어느새 바텐더에게서 얼음주머니를 얻어와 이마와 볼이 빨개진 세나의 얼굴에 찜찔을 해 주고 있던 민호는 유치하게 투닥투닥하는 둘의 모습에 그냥 웃어버렸다. 극과 극인 성향을 보이는 이란성 쌍둥이. 한때는 한 명은 입양아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했을 정도로 둘은 너무나 달랐다. 크고 동그란 눈과 하얀 피부, 새까맣고 긴 머리칼을 가진 세나와, 날카로운 눈매와 세나보다는 덜 하얀 피부, 상황에 따라 바뀌는 머리 색을 가진 기범은 이렇게 외모부터가 너무나 판이하게 달랐으니까.
"김기범, 그만 해라. 얘도 오죽하면 싸돌아 다니겠냐."
"......"
"김세나, 이번 겨울에는 우리집 숙박 콜? 너 우리 엄마표 수제 케이크 먹고 싶다고 졸랐잖아."
"오, 아줌마가 만들어 주신데?"
"우리 엄마야 항상 너 기다리지. 올거야?"
"콜! 이번 겨울은 김종대로 셀렉!"
"김세나, 진짜 너 자꾸 이럴거야? 집에 좀 들어와라! 어?!"
"됐거든요. 야, 김종대. 선물은 뭐 사들고 가면 되냐?"
"김세나! 좀!!!!!!"
-----------------------------
"반장들은 반장들 칸에 있고, 우리 옆칸에는 종대랑 보검이랑 토마스, 메튜 이렇게 있나?"
"엉. 초콜릿 개구리 한껏 사들여서 아주 난장판이더라. 아직 교복도 안 갈아 입었던데."
"호그스미드 역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잘 한다 잘 해."
"냅둬. 학교 도착하자마자 벌점 먹어봐야 정신 차리지. 짐 다 챙겼지?"
"응. 근데 밖에 되게 시끄럽지 않아? 뭔일이래."
"다툼났나 봐. 냅둬. 쟤네들도 벌점이겠네. 우리 기숙사만 아니어라......"
"싸움구경은 항상 재밌지."
급행열차의 같은 칸에 탄 민호와 태민, 수영과 함께 짐을 챙기던 세나는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 통로쪽의 문을 열어 재꼈다. 누가 싸우기라도 했나? 뭔 개학날부터 난리래. 싸움구경이나 좀 해볼까 했던 세나는 그 소란의 원인을 알아보고는 순식간에 달려가서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남자아이를 보호하듯이 막아 섰다.
"민윤기 이 새끼야, 너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주술을 써?!"
"우리 기숙사 내부 일이니까 비켜."
"니 놈은 정말 답이 없다. 너가 반장이냐? 김기범 호출하면 될 것을 왜 니가 체벌하고 지랄이야."
"지랄? 너 말 다했냐? 집안 애물단지 주제에 나한테 지랄? 너가 죽고 싶어서 아주 눈이 돌았구나."
"프로테고(Protego)!"
주문을 퍼붓기 전에 세나가 먼저 펼친 방어막에 의해 튕겨나간 윤기는, 이를 박박 갈며 다시 덤벼들려고 했다. 곧 윤기가 고유 능력으로 만들어낸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방어막은 거의 깨져버릴 수준이었지만, 세나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주문들을 더 쏟아냈다.
" 프로테고 토탈룸(Protego Totalum), 프로테고 호리빌러스(Protego Horiblius), 살비오 헥시아(Salvio Hexia)."
"각단(角端), 격파(擊破)"
방어막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그 순간이었다.
["아주 돌겠네. 너 내가 아즈카반까지 보내야 정신을 차리겠냐?"]
"이 자식이 미쳤나."
"세나야, 한솔이 데리고 이리 와. 진기 형이랑 종현이 형 왔으니까 안 막아서도 괜찮아."
떠들썩한 소란에 반장들이 나타났고, 슬리데린의 6학년 반장인 데인은 윤기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진기는 윤기의 주문에 맞아 다친 한솔의 상태를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종현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세나의 보호막을 거두고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세나야, 너 탈진 수준이다. 학교 도착하면 병동부터 들리자. 응?"
"됐어요. 조금 쉬면 되. 진기오빠, 쟤는 괜찮아요?"
"살짝 상처 있는 것만 빼고 괜찮은 것 같은데. 너는 괜찮아?"
"난 괜찮아. 보호막 안에 있었는데 뭐."
"윤기 저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왜 맨날 나섰다가 이렇게 변을 당해, 우리 부르면 어련히 해결 할 것을."
"몸이 먼저 나가는데 어떡해. 걔 상판떼기만 보면 욱 하는데......"
"도착했나 보다. 민호야, 세나 데리고 병동 갔다가 연회장 올 수 있지?"
"알았어, 형. 교수님께만 미리 잘 말해 줘."
---------------------------------
["기차에서 또 앙숙 둘이 한판 뜨셨단다."]
["또 한판 했다고? 근데 왜 김세나는 멀쩡해? 어느 한 군데 둘 다 아작 나야 정상 아니었어?"]
["세나가 방어마법 펼쳐서 막기만 했데. 호리빌러스까지 폈는데 상처 나면 이상한 거지."]
["민윤기 뺨 부은거는 데인이 때린거고, 이번에는 좀 스케일이 작았어."]
["크게 번지기 전에 막은게 다행이다. 자칫했으면 기차 폭발할 뻔 했잖아."]
연회장에서 수근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민호와 함께 연회장으로 뒤늦게 들어온 세나는 매우 뻘줌했다. 기차 안에서 있었던 소동 때문에 모두들 그녀와 윤기를 보고 수군대고 있었고, 몇몇은 이젠 질린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기도 했으니깐. 그리핀도르 테이블과 후플푸프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은 매우 '잘했다'는 분위기로 그녀를 띄워 주기 시작했는데, 기숙사 분위기 상 슬리데린은 '공공의 적'이라는 분위기가 아직도 강했고, 기분이 거슬릴 때 마다 학생들에게 심하게 시비를 터는 윤기를 엄청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야, 잘했어, 잘했어. 네 덕분에 우리 기숙사 점수 올라갔어. 잘했어 잘했어."]
["왜? 난 쟤랑 분명히 싸웠는데?"]
["우드 교수는 상황을 전해 듣고는 "역시 그리핀도르 다운 정의감이야" 라고 말하며 20점 추가, 멕고나걸은 너가 7학년들도 쓰기 힘든 주문들을 썼다는 것을 듣고선 "갓 5학년이 된 학생이 그런 주문을 쓰다니, 믿기지 않군요. 10점 추가." 그 다음 그리핀도르하고 후플푸프, 레번클로 반장들이 10점씩 너한테 점수를 쏟아 부었지."]
["말도 안돼, 그래서 슬리데린 저 녀석들이 날 저렇게 노려보는 거였어?"]
["쟤네들 점수 왕창 털렸거든. 아마 이변이 없는 이상 이번 한 해 기숙사 컵은 노리지 못할거다."]
["...뭔가 고소하네."]
["이번 해도 기숙사 컵은 우리거라고. 너 이번에 님부스 신형도 샀다면서? 퀴디치까지 쓸어버리면 점수가 역대 최고점이겠는데?"]
["이번에 타쿠야 녀석 기술자에게 빗자루 가져가서 파이어 볼트 개조했데. 아마 내 것 보다 빠를거야."]
["뭐야... 그거 불법 아니야?"]
["작년부터 규제 풀렸다더라."]
"Oh, holy shit."
["욕 좀 그만 써."]
욕을 읆조리는 토마스의 입에 감자튀김을 한껏 집어넣은 그녀는 옆자리에서 자신의 접시에 부지런히 음식을 채워넣고 있는 민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민호야, 그만 하고 너 먹어. 나 알아서 먹을게."
"아까 너 보호마법 펴느라고 아주 기력이 닳다못해 쓰러져도 안 이상한 상태였던거 기억 안 나? 폼프리 부인도 먹으라고 했잖아. 손에 지금 힘도 안들어가는 거 봐라."
"...... 힘 들어가는데......"
"...... 그냥 먹어라, 좀."
"......응."
민호가 덜어주는 메인디쉬를 잘 받아 먹다 몇 가지는 플레이트 가장자리로 밀어내버린 세나는 자신을 다시 빤히 쳐다보는 큰 눈망울에 그것들을 어거지로 입 안에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다시 웃음기를 되찾은 민호는 다시 신나게 음식을 서빙했고, 곧이어 배가 터져버릴 것 같은 세나는 종대에게 구원의 눈초리를 보냈으나 단호박을 열개는 먹은 듯 한 종대의 말 한마디에 연회장을 뛰쳐 나가고 싶었다.
"편식은 나쁜거야. 다 먹어."
"......"
"먹어야 돼. 안그럼 이번 연말에 케이크는 없어."
"......"
민호가 만족할 때까지 엄청난 양을 먹고 나서야 포크와 스푼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그녀였다.
---------------------------------------------------------------------------------------
역시... 전 갈등성애자였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