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Jordan-Everything happens to Me
물에 젖은 솜 마냥 축 처져 있던 한 형태가 느지막이 일어났다.
온몸은 상앗빛으로 창백해 보이는 반면 머리만 까만, 마치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남자.
무기력해 보이는 모습 뒤로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그의 손가락은 솜털같이 가볍게 건반을 터치하였고 악기의 울림은 공중에서 하얗게 부서져 흩날렸다.
요즘 들어 그는 재즈 바에서 연주를 하곤 했다. 사실 음악을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누가 들을지는 모르지만 나만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 거기에 조금의 돈도 벌 수 있다는 것.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나갈 채비를 마쳤다.
'"어, 왔어?"
"웬일로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사람들도 아는 걸 너만 모르구나. 오늘 박지민 오잖아."
"걔가 누군데요."
"오늘은 너 혼자 무대 주인 아니야 민윤기, 어색해도 좀 참아."
석진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표정을 짓는 윤기에게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윤기는 홀 중앙에 있는 피아노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가 있을 자리.
무겁게 닫힌 뚜껑을 열었다. 늘 있던 곳에 의자를 끌어 놓았다. 차가운 건반 위에 흰 손가락을 얹었다. 가볍게 툭 건드렸다.
손가락과 건반이 부딪쳐나는 재잘거림이 좋았다.
살짝 굳은 손가락을 풀기 위해 가벼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건반이 삐걱거린다.
어색하게 눌러지는 건반이 온전히 스며들기 위해 윤기는 피아노를 계속해서 매만졌다.
십분쯤 지났을까,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윤기는 일부러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돌리기 귀찮았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겪게 될 어색함도 싫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박지민입니다."
생각한 것과는 달리 낮은 목소리에 윤기는 연주하던 곡을 멈췄다. 남자 재즈보컬은 흔하지 않을뿐더러 박지민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중성적 느낌으로 인해
이미 여자로 판명을 내렸었기 때문이었다.
"아 네, 민윤깁니다."
남자가 내민 손을 잡았다. 손은 작았고 자신의 손보다 온도가 높았다. 건반 위에 얼어있던 손이 녹아드는 듯 느껴졌다.
"음..저희가 처음 연주를 같이 하니까..따로 맞춰본 적도 없고..무슨 곡이 좋을까요"
"잘 아는 걸로 해요. 하고 싶은 곡 있어요?"
"생각해 놓은 게 있긴 한데 악보를 준비 못했어요..."
"상관 없어요. 어차피 코드만 알면 되는 걸"
"Everything happens to me 어떠세요?"
"그걸로 합시다."
"시작해요"
지민이 신호를 보냈다.
이상했다. 전혀 어울릴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윤기는 그의 목소리가 재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미성숙한 듯 떨리는 소리와 어딘가 막힌 것 같은 발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윤기는 그의 목소리가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쓰다듬는다고 생각했다.
윤기는 그의 목소리의 어딘지 미숙한 부분이 귓가를 잘게 떨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윤기는 박지민의 목소리가 목뒤에 축축한 숨결을 부는 것 같다고 느꼈다.
....
윤기는 지민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윤기는 결국 살풋 웃으며 무대를 떠나는 지민에게 인사하나 건네지 못 했다.
아직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붙들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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