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 F
우린 항상 꿈을 꿔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그 날을.
- 코로나 보리얼리스 군병원, 옥상
"응, 상황이 꽤 재밌게 돌아가던데. V?"
"...설마."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거."
"...."
버논이 제 손에 박혀있던 링거줄을 거칠게 빼냈다. 바늘자국에 조용히 피가 새어나왔지만 제 팔에 붙여져있던 테이프로 투박하게 막아놓았다. 버논이 입술을 꾹 깨물고 한참 울음을 삼켰다. 나, 난 진짜 그 사람일줄은 몰랐어요.
"몰랐겠지, 나도 당황했잖아."
"..."
"그 사람 얼굴은 나도 잘 몰라. 어찌됐건-"
"J에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V, 팀을 배신할 생각이야?"
"..."
"그렇다면, J에게 말하지 않는건 힘들것같은데."
"...배신하지 않을겁니다."
"..알겠어. 생각이 많을텐데, 일단 가서 쉬어."
"...네."
버논은 곧장 병실로 가는듯 보였으나, 제 발은 어느새 군병원 밖을 넘어서고 있었다. 자신이 왜 그 곳으로 가는지는 모른다. 제 이성에 흔들린 감정을 타고 멋대로, 제 멋대로 발걸음을 따라가는것이다.
- 제 3세계 슬럼가, 입구
"코드네임 K, 3세계 슬럼가 약 10M 내에 도착합니다."
K는 현재 단독임무 수행 중. 제 3세계 슬럼가 일부 소탕을 위해 슬럼가에 잠입 중이다. 어쩌면 악질들의 눈에 띄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모두가 머뭇거렸으나 CA 또라이인 Z와 그나마 또라이는 아닌 K가 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Z는 허리 재활치료 때문에 광속 탈락, 결국 K가 현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해커 H와 함께 통신하며 슬럼가에 도착했다. K, 조심해. 뒤에 사람 와!
H의 다급한 외침에 K가 얼른 어두운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지나쳐가는 오토바이 한 대. 만약 K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발각돼 제 정체를 들켰을것이다. 겨우 한숨을 돌린 K가 얼른 제 등에 걸쳐져있던 총을 들었다. 총구가 벽에 쓸려 기괴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와 함께 무심코 응시한 벽, 그리고 눈에 띄는 낙서 하나.
' 조슈아, 넌 어디로 갔을까? '
' 왜 날 버렸어 '
' 왜 ? '
"조슈아?"
K가 자신도 모르게 의아함을 띄우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혼잣말을 들은 지훈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H, 낙서 하나가 있는데요.
"무슨 낙서 타령이야. 낙서 구경하다가 죽을래?"
"저도 구경하는건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조슈아라는 이름, CB 보스의 이름 아닙니까?"
"...조슈아라고 쓰여있어?"
"네. 그렇습니다만."
"...헤에. 잠시만."
지훈이 빠르게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민규의 귀에 들려왔다. 민규가 벽에 기대 앉아 한참 낙서를 바라본다.
사실, 민규는 아무 생각이 없다. 빨리 임무나 끝내고 숙소에 가서 드러누워 자고 싶은 심정.
"글쎄, 뜨는건 없는데."
"그럼 동명이인인가보죠."
"그러게, 그런가봐. 혹시 모르니까 사진은 찍어 놔."
"귀찮습니다."
"찍어라."
"네."
"대충 인원은 몇 명정도죠?"
"어림잡아 최소 50."
"힉, 그렇게나 많다고?"
지훈과 교대한 승관이 통신기를 잡았다. 그와 함께 짧아진 민규의 말은 덤. CA 내 제일 궁합 안 맞는 둘이 뭉치니 통신기가 시끌시끌하다.
"그럼, 1명이겠냐?"
"이 새끼가."
"뭐? 이 새끼?"
'"그래요 새끼야, 일단 보고 할테니까 조금만 더 둘러보고 오세요, 새끼님."
"이게 진짜-"
"아 물론, 새끼 손가락."
승관이 한껏 놀리는 말투로 민규에게 말을 하곤 통신을 뚝 끊어버렸다. 슬럼가에 잠입 중이라 큰소리를 낼 수도 없는 판에 민규는 혼자 분을 삭힌다. 이 개새끼, 본부 가기만 해봐. 민규가 골목에서 빠져나와 슬럼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옛날, 자신이 2세계에 있던 시절과 비슷한 환경. 주변에서 굶주림과 병으로 픽픽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보며 민규는 눈을 질끈 감는다. 안 본거다, 못 본거다.
제 주머니에 있는 총을 잡은 손이 자신도 모르게 떨려오자 민규는 호흡을 짧게 내쉰다. 이런 환경은 적응할래야 적응 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무작정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낌새를 눈치 챈 사람들이 K를 따라오는게 제 눈에도 보이자 걸음을 좀더 빨리하며 통신을 찾았다. 아, 이 새낀 왜 또 통신을 안받아-.
"B, 빨리."
"..."
"아, 진짜. 야, 부승관."
"..."
통신 흐름이 끊긴다. 최대한 빨리 다른 통신을 찾아본다. Z 통신도 연락두절, H는 B와 교대 후 감감 무소식. 그럼 남은건 아무도 없다. 하다못해 S에게까지 통신을 걸어볼까 하지만 빠르게 포기한다. 점점 자신을 따라오는 무리들이 많아진다. 그것도 맞으면 아주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질 무시무시한 무기까지 들고. 민규는 연락 두절인 부승관을 끔찍하게 저주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여기서 죽으면 제일 먼저 부승관을 데려가겠다고.
"하- 진짜."
결국 걸음을 멈춘 K가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한 눈에 봐도 많은 슬럼가 무리. 제가 이 무리를 다 처리하기엔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 제가 선택 할 수 있는건 싸움 뿐인걸.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
"그리고 부승관, 넌 이거 들으면 당장 슬럼가로 튀어와라, 개새끼야."
민규가 통신을 남기곤 제 귀에 꽂혀있던 통신기를 거칠게 빼내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리곤 제 총을 꺼내들다 그냥 다시 집어넣는다. 이 사람들이랑 총격전을 해봐야 무엇하겠는가, 그냥 맨주먹으로 싸워야 윈윈이지.
- 코로나 아스트레일스
승관이 민규의 통신을 받지 못한것에 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예상하지도 못한 인물이 본부 앞에 떡하니 찾아왔기 때문.
"...뭐요?"
"...보스, 만나게 해주세요."
"...예?"
"보스를 만나러 왔습니다. 부탁합니다."
"..어디서 오셨는데요?"
"..."
"미리 선약 안 잡혀있으시면 못 들어갑니다- 나중에 오세…"
"동생입니다."
"...네?"
"동생입니다, 제가."
- 코로나 아스트레일스, 정문
"..........."
승관은 제가 잘못 들었겠거니 하며 철문을 닫아버린다. 어디서 저런 거지같은 그지깽깽이가 들어와서는-! 님이 보스 동생이면, 나는 CB 스파이다. 이 사람아. 승관이 한껏 성질을 낸 후 매몰차게 뒤돌아서 가려고 하니 뒤에서 털썩 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난다.
"......"
잊지 말자, 부승관은 의사다.
"..뭐어?"
"...."
"아니, 그렇다고 외부인을 본부에 들여?"
"...."
"냅둬, 쟤 의사래."
"...."
본부 동쪽에 위치한 병실에 외부인을 눕힌 승관이 30분 째 주변에서 잔소리를 듣고 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이라도 한건지 새하얀 환자복을 입고선 조용히 누워있는 남자. 링거를 맞추려 환자복 소매를 걷어내니 투박하게 붙여져있는 핏자국가득한 바늘자국에 승관은 경악을 했다. 묵묵히 외부인의 상태를 체크하는 B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다. 이 사람, 좀 이상한데요.
"아 당연히 이상할만 한거 아니냐."
"..왜요?"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자기가 S 동생이라고 한거 부터가 이상했어."
"...아니, 그런 쪽 말고."
"?"
"이 사람, 부상이 심각해요."
"....에에?"
Z가 B에게 다가와 차트를 살핀다. 잊지 말자, Z는 스나이퍼다.
"..봐도 무슨 소린지 모르잖아요."
"...응."
"..."
아, 몰라! Z가 승관이 휘갈겨 쓴 차트를 유심히 살펴보다 치, 하며 병실을 나갔다. 승관의 예상대로면 이 사람은-.
"......"
"..!"
승관이 외부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란 승관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외부인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주변을 살핀다. 정신이 어느정도 들었는지 몸을 일으키는 남자. 승관이 잔뜩 경계심을 가지고 뒤로 물러난다. 어, 어. 일어나지 마십쇼. 그 쪽 상태 심각해요.
"..여긴."
"CA 본부입니다."
"...CA? 내가 지금 CA에 왔단말입니까?"
"예."
"...!"
남자가 벌떡 일어나 병실 문으로 향했다. 깜짝 놀란 승관이 남자 - 사실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앳된 얼굴의 소년이었다. - 의 흰 팔목을 낚아챘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나, 여기서 나가야합니다. 당장."
"아니, 왜요."
"나 CB란 말입니다! 여기 있으면 다 죽을겁니다."
"......뭐?"
소년이 다급하게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보이는 Z의 얼굴. 소년의 말이 제 귀에까지 들렸는지 들고 왔던 물잔을 놓쳐버린다. 물잔이 바닥에 부딪혀 큰 소리를 내며 깨진다. 당황한건 순영뿐만 아니라 승관도 그랬다. 지금 자신이 들은게 CB가 확실한가?
승관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순영이 벽으로 소년을 거칠게 밀쳤다. 멱살을 세게 쥐어잡은채 금방이라도 죽일듯 소년을 노려본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잠,잠시만."
"...."
"한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