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은 어제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곧 군대를 간다는 ―친하지도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이, 입대 전에 죽어도 자기를 봐야겠다며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는지 개인 비서를 피해 저에게 바로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뭔가 탐탁치는 않았지만 따로 조사를 해 보니 확실히 다음 주에 입대를 하는 같은 학교의 졸업생이었고 성적도 우수한 편에 생김새도 사기를 칠 것 같지는 않은 생김새였기에 알겠다며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다 되도록 친구라는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찬열은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짜증이 점점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약속시간 정각이 되면 이 휴대폰을 집어 던지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약속시간 정각, 찬열은 미련없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꽉 쥐었다가 집어 던지려는 듯 손을 들었다. 그 때, 마침 손에 들린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네, 박찬열입니다. 찬열아 미안.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사정을 설명하며 곧 도착한다는 동창의 말에 찬열은 화를 삭이며 가로등에 기대어 서서 기다렸다. 잠시 후, 멀리서 다가오는 인영이 보였다. 그런데 언뜻 봐도 둘이었다. 미리 조사했던 동창 녀석과, 처음 보는 녀석.
“미안해 찬열아. 많이 기다렸지?”
“어. 아니. 별로.”
“정말 미안해. 근데 나 기억하나? 고 3때 너랑 같은 반이었고 반장이었는데...”
뭐라고 중얼중얼 고등학교 때의 일을 이야기 하는 그가 사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찬열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이 사람은 누구냐는 듯 한 눈빛으로 동창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동창은 그제야 아, 하며 멋쩍은 듯 웃으면서 옆의 남자를 소개했다.
“얘는 변백현이라고, 내 이복동생인데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님이 얼마 전에 사고로 돌아가셔서. 이러쿵저러쿵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듣기 싫어 백현이라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한 손을 들어 말을 자르니 눈을 마주한 백현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찬열을 쳐다본다. 용건만 얘기해. 어 그러니까 그게... 동창이라는 그는 잠시 찬열과 백현을 불안한 듯 번갈아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소문을 들어보니까 너가 카페를 하나 운영한다고 하길래... 청소를 시켜도 좋으니까 우리 백현이 일 좀 시켜줄 수 없나 해서...”
“뭐?”
뜬금없는 발언에 짜증이 뒤섞인 얼굴로 동창을 향해 돌아보자 그는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눈까지 꼭 감고 두 손을 모으고서 고개를 숙였다. 제발 부탁할게. 제발. 나 없으면 얘 혼자 못 살아. 결국은 반장이라던 이 놈도 지 필요할 때만 사람 찾는 새끼구나, 하며 무시하고 뒤돌아 가려는 순간, 백현이 찬열의 손을 붙잡았다.
“저기...”
생각보다 고운 음성에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 본 찬열은 자신보다 한 뼘은 키가 작아보이는 백현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왜.
“저어... 저도 조금 알아보니까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신다고.”
“그런데?”
“너 그런 것도 알아봤어?”
“...응. 무작정 받아달라고 하는건 조금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아무튼-”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제가 노래를 조금 해서요. 작게 헛기침을 하며 눈치 보듯 저를 올려다보는 백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뒤돌아 자리를 뜨려는 찬열을, 백현이 다시 한 번 붙잡았다. 일주일만! 일주일만 기회를 주세요.
“일주일?”
“일주일동안 노래든 청소든 설거지든, 뭘 시키든지 열심히 할 테니까 제발요.”
찬열은 이미 자신의 동창이라는 녀석이 안중에 없었다. 그저 제 앞에서 저의 눈치를 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백현만이 눈에 들어왔을 뿐. 찬열은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백현의 턱을 잡아 올려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얼굴도 반반한데 저기 나가서 삐끼짓이나 하지, 뭔 노래야 노래는. 꺼져. 찬열의 말에 백현은 눈을 내리깔며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손을 내치고 뒤돌아 동창 녀석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가자, 형. 어어... 백현에게 끌려가면서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는 동창 녀석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찬열 또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대체 왜 자꾸 생각이 나는거냐고.”
찬열은 어제의 일을 회상하며 ―정확히는 백현의 얼굴을 떠올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전 날,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일을 하려고 해도 일이 잡히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머릿속에서, 자신의 눈치를 보며 저를 올려다보는 백현의 얼굴만이 둥둥 떠다녔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서류를 읽으려 해도 귓가에서 저기, 하며 자신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뭐지 이건. 사람이 아니라 여우새끼 아니야?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하루의 반나절을 허무하게 보낸 찬열이 비서를 불렀다.
“어제 내가 만나고 온 동창. 걔 이복동생 조사 좀 해 줘.”
“이복동생이요?”
“이름이 변.. 무슨 현이래. 한 시간내로 알아와.”
“네. 알겠습니다.”
비서에게 백현의 뒷조사를 시킨 찬열은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다시 한 번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침대로 다이빙했다. 한 숨 자면 조금 나아지겠지. 그 때가서 다시 생각해보자. 그렇게 찬열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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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덮으려고 연예인들 무더기로 기사가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