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애정
아침에는 평소 보지도 않던 뉴스를 보게 되었다. 뉴스에서는 어젯밤 일어났던 교통사고를 세세하게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10중 추돌사고로 꽤 인명피해가 많이 일어난 모양이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분명 욕하겠지, 눈물도 피도 없는 새끼. 교통사고 뉴스는 계속 흘러 나왔고 나는 그걸 보며 시리얼을 먹었다. 오늘은 너와 약속을 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샤워하고, 네가 어울리다고 사줬던 노란 원피스도 입었다. 밖은 겨울바람으로 추웠지만 너에게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어 추위를 감수하기로 했다. 윈피스 위에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누나, 어디가요?" 후드티에 편한 옷차림을 입은 민규가 물어왔다. 이어폰을 끼고 운동화를 신은 걸 봐서 운동을 하러 가거나,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나는 민규를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순영이 보러 가." 그 말에 민규는 작게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깨에 멘 가방을 고쳐 멨다. "저도 며칠 전 형이랑 만났거든요." "아, 그래?" "네, 잘 다녀오세요." 민규에게 손을 흔들고 코트 주머니에서 차키를 손에 쥐었다 놓았다. 아, 오늘은 버스를 타고 갈까. 낮은 구두를 또각거리며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지갑에서 교통카드를 꺼내고 버스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추억 좀 되살릴 겸 버스를 타자. "안녕하세요." 버스기사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교통카드를 기계에 댔다. 삑 - 나는 교통카드를 가방 안으로 넣고 맨 뒷자리에서 왼쪽 구석에 앉았다. 18살, 나는 아직도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아니, 머무르고 싶다. 현실을 깨달은 난 혼자 18살에서 지금 24살까지, 계속 시간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넌 18살에 멈춰있겠지. 혼자 18살에 머문다는 건 어떤 느낌이니? 너를 만나기전 정류장 하나를 일찍 내려서 꽃집에 들렀다. 꽃집 아가씨는 오늘도 예뻤다. 너라면 내 질투심을 유발한답시고 작업을 거는 척 했겠지. "어떤 꽃 찾으세요?" "저, 저기에 있는 꽃이요. 작은 사이즈로 부탁드려요." 아가씨는 내 손 끝을 바라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꽃다발을 포장했다. 아가씨는 제 손만큼 작은 꽃다발을 내게 건넸다. "요즘은 뻔한 꽃보다 이 꽃을 많아 찾으세요." 뻔하지 않을뿐더러 이 꽃의 꽃말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나는 값을 지불하고 꽃다발을 손에 안긴채 약속장소로 걸어갔다. 예전에 넌 내게 꽃 한송이씩 만날때마다 건네주곤 했다. 그때 내가 얼마나 기쁘면서 당황스럽고 네가 사랑스러웠는지 넌 잘 모르겠지. 그건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지. 약속장소에 다 왔다.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가끔은 내가 햄스터같다며 놀리기도 했지만 나도 따라 웃게 만드는 건 사실이었다. "순영아, 나 왔어." 나는 네게 꽃다발을 안겼다. 너는 여전히 해맑게 웃기만 하고 있었다. 아, 그걸 잊고 있었네. 나는 가방에서 조그만한 스티커사진을 꺼내 네게 건넸다. "나 없을 때, 보고 있으라고 주는거야." 우리 전에는 스티커사진 맨날 찍으러 다녔잖아. 나혼자 5000원을 다 돈 주고 혼자 찍느라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기나 해? 그러니까 잘 간직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며칠 전에는..." 나는 봇물터진듯 너와 함께하지 못했던 날들의 이야기를 했다. 친구와 여행을 갔는데 너도 갔으면 좋았겠다, 내가 며칠 전에는 남자한테 번호도 따였다, 민규랑 같이 회 먹으러 갔었는데 네 생각 많이 나더라. "정말 네 생각 많이 나더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너도 그동안 잘 지냈지? 그런데, 나는 어떤 짓을 해봐도 널 잊을 수가 없어. 왜 그 날 나를 그렇게 떠나버린거야. 왜 하필 내 생일을 최악으로 만들어줬냐고. "저, 여기 손수건." "감사합니다." 옆에 서있던 한 남자가 네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다시 손수건을 건넸다. 나는 이제 너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걸까. "순영아," 난 해맑게 웃는 네 모습이 담긴 액자를 한번 손으로 쓰담았고 납골당을 빠져나왔다. 다음에 또 올게, 권순영. 흰색 카네이션, 나의 애정은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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