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명품만 사용하는 세훈의 집 바닥에 깔린 러그에 얼굴을 부벼대는 종인을 응시하던 세훈이 아, 하는 박 터지는 소리를 냈다. 쟤 강간 당했었지. 종인이 온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세훈은 잠시 볼을 긁적이며 고민했다. 강간을 당한 사람들의 후유증은 크다. 육체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정신적인 부분이 더 컸다. 강간 피해자들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심하면 자살까지 한다. 세훈은 다정한 편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의 아픈 곳까지 건들이는 생각 없는 남자도 아니였다. 괜히 상처를 헤집는 꼴이 될까봐 묻는 게 조심스럽다. 몸 상태가 안좋을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그렇게 당해놓고 서로 좋자고 느끼는 곳을 만져주며 한 섹스는 아닐테니까. 그런데, 강간당한 놈 치곤 너무 태연하긴했다. 아무리 경종이라도, 전에 경험이 있더라도 피를 보면서까지 당해놓고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나? 이 쯤 되면 세이프존에서 건너온 것인지 아닌지까지 의심되었다. “흑표범.” 종인은 대답하지 않고 빙글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아있는 세훈을 올려다보았다. 미묘하게 올라간듯 쳐진 눈꼬리가 몇 번 꿈틀거린다. 세훈은 반 쯤 남은 커피잔을 소파 앞 낮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너 내가 주워온 날.” “주워온 게 뭐야. 어감 별로게.” “강간 당했어?” 음, 글쎄. 종인의 고개가 갸우뚱한다. 종인은 마치 남의 얘기를 듣는 것 마냥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평범한 듯 무심한 놈이었고 톡톡 쏘아붙여 할 말 다해 솔직한 듯 감춰진 게 있는 놈이다. 팔아넘긴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자 내일부터는 일 좀 배워보겠다고 말하던 종인은 적당한 놈이었다. 한껏 대들다가도 치고 빠져야 할 타이밍에 굽히고 들어가는. 세훈은 눈썹을 살짝 꿈틀였다. “제대로 대답 안 해?” “…….”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건데.” 으음. 조금 더 길게 앓는 소리를 냈다. “모르나 보네.” 마주친 눈이 데굴 굴러갔다 다시 세훈에게 고정된다. “그럼 나도 몰라요.” 종인은 러그 털을 움켜쥐고 부들부들한 표면에 양껏 문대었다. 햇빛도 들어와 따스하니 노곤노곤 잠이 온다. 감기는 눈을 스르륵 접은 종인이 햇볕이 더 잘드는 쪽으로 꾸물꾸물 움직였다. “그럼 너 어디서 왔어.” “…….” “세이프존에서 넘어온 건 맞아?” 종인은 돌아보지 않은 채 팔에 머리를 벴다. 꾸벅꾸벅 흔들리는 머리통이 둥글었다. 완전한 흑발도 그렇다고 갈색도 아닌 어중간한 어두운 머리카락이 눈 위로 내려앉았다. 세훈은 제 성격 답지 않게 한참이나 조는 듯 말이 없는 종인을 기다렸다. 윽박 지르거나 성질 부리지도 않았다. “세이프존에서 왔다고 말 한 적 없는데.” 허. 크리스는 어이 없다는 듯 숨을 내뱉었다. 익숙한 방, 익숙한 침대, 익숙한 냄새. 분명 제 집이 맞았다. 크리스는 벗은 상체에 아래만 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난 밤 왁스로 잔뜩 세워놓았던 축 쳐진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제 옆에 반쯤 누워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꺄르륵 웃어제끼며 주사기를 팔뚝에 꽂아넣었다. 멍든 팔뚝이 이 행위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었다. 제 정신이 아닌듯한 축축 늘어지는 몸짓, 휘청거리는 몸, 바닥에 지퍼가 활짝 열린 마약이 가득 든 가방. “…이 미친 새끼가!” 크리스는 남자의 손에서 냉큼 주사를 빼앗았다. 잠든 사이 쉴 새 없이 투입한 모양인지 침대 아래에 빈 주사기가 두개 더 떨어져있었다. 악! 크리스는 악을 지르며 빈 주사기를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웃는 남자의 턱을 꽉 붙잡았다. “너 뭐야.” 남자는 이 상황이 코미디라도 된다는듯 소리까지 내가며 웃기만 했다. 어린 아이가 넘어가는 듯한 소리에 크리스의 손에 힘이 턱 풀렸다. 내가 약 빤 년 가지고 뭐하는 거야. 한숨을 쉬며 숙인 상체를 피는 순간 남자의 팔이 크리스의 목을 휘감아 뒤로 엎어졌다. 크리스의 가슴팍으로 남자의 맨살이 맞닿았다. “왜애, 기억 안나아? 크리스으….” 남자를 밀쳐내고 일어서려던 크리스의 몸이 멈칫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이상했다. 아니, 이상한 건 저는 이름도 모르는 남자와 같은 침대에서, 그것도 제 집에서 자고 있다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미친 년은 배달해야할 약을 지가 빨고 있다. 빽빽히 차있는 주사기 사이 빈 공간이 생각나 크리스는 이를 으득 물었다. 저걸 다시 내가 메꿔야한다. “너 뭐냐고, 썅년아.” “니가아… 니네 집으로오 가자며….” 약기운이 안풀리는지 발음이 뭉개져 말꼬리마저 여자가 애교 부리는 것 마냥 끌린다. 크리스가 남자의 팔을 떼어내려하자 남자는 더 끌어안아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어깨에 느껴지는 묵직함을 동반한 온기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다. 이 향기는…. “하이에나.” 그것도 경종. 그래, 약 냄새와 함께 풍겨오는 이 냄새는 정액 냄새가 맞았다. 크리스는 그제서야 전날 밤 상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직 상위층 간부들이란 간부들은 다 모이는 자리라 크리스는 평소처럼 빼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왔다. 장소는 얼마 전 차지하게 된 클럽 룸이었다. 접대하러 들어와 은근슬쩍 페로몬을 풍겨대는 경종들을 무시하고 술만 홀짝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타 몰래 빠져나왔다. 그리고 클럽에 다시 들어갔다. 한 남자와 눈 맞았다. 키스했다. 택시를 탔다. 집에 데려왔다. 잤다. 크리스는 잇새로 욕을 짓이겼다. 눈 맞아도 이런 미친 년이랑 눈 맞아서. 얼굴이 벌게져 자꾸만 미끄러지는 팔로 애써 목을 감고있으려고 애를 쓰는게 안쓰러워 그냥 뒀다. “이런 미친 년이 어디서 굴러왔을까.” “미친 녀언, 아니야아….” “미친 년이 아니면 남이 장사 해야 할 약은 왜 네가 쳐먹어. 섹스했으면 곱게 꺼지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아예 헤헤거리며 웃는다. 사나운 얼굴과 달리 꽤나 귀여운 웃음소리에 더 어이 없다. 꺄르륵, 꺄르륵 거릴 때 부터 알아봤어. 크리스는 남자의 팔을 떼어내고 일어섰다. “약 값 물어내라고 하기 전에 꺼져.” 옷장 문을 열어 대충 수트를 고른다. 검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옷걸이에서 빼 청바지를 벗고 꿰입었다. 방 안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도 하고 양치질도 했다. 벗은 몸 위에 허리까지 이불을 올려 가만히 서있는 의자, 그림 속 꽃밭, 테이블 위에 얹혀진 졸업사진 등 사소한 것들을 보고 웃어대는 남자에게는 바닥에 널부러진 스키니와 니트도 건넸다. 가방 지퍼를 닫아 손에 쥐었다. “너랑 나랑 원나잇 맞지?” 근사하게 웃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내가 집에 올 때 까지 안나갔으면 죽는다.” 이래뵈도 총 쏘는 데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 늑대? 어찌됬거나 이 곳은 갱스터존 아닌가. 아랫것 하나 잡아서 반병신 만들기 전에 채워오라고 가방을 던져주면 간단할 것이다. 저 미친 년이 돌아올 때도 제 집 침대를 지키고 있으면 죽여버리면 끝인거고, 갱스터! * 김종인 고양이과 경종 혼현 흑표범 타오 하이에나과 경종 혼현 줄무늬 하이에나 크리스 견신 중종 혼현 시베리아 회색 늑대 오세훈 ??? 중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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