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아, 우리 이러면 안돼.’
‘나도 알아. 아는데, 자꾸 너가 미친듯이 생각나. 보고싶고, 안고싶어.’
‘찬열아….’
‘사랑해 백현아.’
‘…….’
‘행복하게 해 줄게. 나 믿어줘.’
Rainbow
w. 아모레
몇 년 만에 꿈을 꿨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길을 택해 불안했지만 같이 있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던 시절의 어린 찬열이와 어린 제가 나오는 꿈. 왜, 이런 꿈을 꿨을까. 하필, 오늘 같은 날. 머리를 긁적이며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1시. 커튼으로 가려진 백현의 방은 빛 한 점도 들어오지 않아 시계를 확인하지 않으면 항상 밤인 듯 해 자주 시간을 잊고 살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늦으면 안 되니까.
“뭐야….”
씻으러 거실로 나가자 음식냄새가 났다. 부엌에 들어가 보니 식탁위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옆에, 커다란 상자와 함께. 분명, 찬열의 짓일것이다. 상자를 열자 검은 양복과 구두, 그리고, ‘밥 차려 놓은 거 다 먹고 배 두둑하게 해서 오늘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입고 와.’ 라는 앙증맞은 메모가 보였다. 웃기네. 입은 툴툴댔지만 자꾸 웃음이 났다. 이런 날마저 저를 챙기다니. 찬열이 바보 같았다. 백현은 메모를 들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벽에 붙였다. 벌써, 한쪽 벽 가득 찬열의 메모로 도배되어있었다. 자신의 키가 닿지 않는 곳에도 찬열을 시켜 붙였던 천장 쪽의 색 바랜 종이부터 최근의 메모들까지 이제는 거의 바닥까지 닿았다.
“아, 미친 나 지금 뭐해.”
추억에 잠깐 잠겨있던 저 자신을 탓했다. 늦기 싫었는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
젠장, 이럴 줄 알았어.
도착하자 이미 끝난 듯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 어떡하지…. 차라리, 대충 입고 올걸. 찬열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좀 더 신경 쓴 게 화근이었다.
“백현씨!”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낯이 익은 사람이 보였다. 친구던데. 아, 이름이 뭐였지.
“다행이다. 안 오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늦어서 죄송해요.”
“빨리 들어가요! 아까부터 사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여자에게 이끌려 들어간 곳에 찬열이 있었다. 찬열은 상상했던 것 보다 멋있었다. 여자들이 남자가 수트입은 모습에 뻑이 간다고들 하던데. 찬열을 보고 하는 말 같았다.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재촉하는 그 여자의 손에 밀려 인사 나눌 틈도 없이 찬열의 옆에 섰다.
“자, 신부님이 좀 더 친구 분 쪽으로 오시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찬열과 가영의 사이였다.
순간, 머리가 아파왔다. 참아야 한다. 조금만 참자. 인상 찌푸리면 안돼. 웃자. 웃자. 이를 꽉 깨물었다.
“친구 분 긴장 푸시고 웃으세요!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웃고 싶었는데.
신부보다 예뻐보이고 싶었는데.
더 있고 싶었다. 아니, 찬열의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 마음은 그랬는데. 제 몸이 받쳐주질 않았다. 당장이라도 떠나라고 속에서 아우성을 쳤다. 괜찮아? 찬열이 인사를 나누다 벽에 기대있는 저를 보고 달려왔다. 응, 다시 가봐. 애써 웃었지만 찬열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병원가자. 갑자기 제 손목을 잡고 움직이는 통에 구토까지 밀려올 것 같았지만 식장을 나가려고 하는 찬열을 말려야 했다.
“놔. 소리 지르기 전에 놔.”
“소리 질러.”
“미친놈아, 너 제정신이야?”
“그럼 어떡해! 니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소리 낮춰.”
“…병원가자, 백현아. 응?”
“그냥 감기몸살이야. 집에 가서 약 먹으면 돼.”
“거짓말.”
“진짜 감기야. 찬열아 나 진짜 괜찮아.”
“…아프면 오지 말았어야지. 바보냐.”
그래, 오지 말걸 그랬다. 백현이 웃었다. 너 또…. 찬열만 아는 이 웃음. 괜찮아 보이려고 억지로 웃는 웃음. 조금만 눈을 휘게 만들면 남들에게는 활짝 웃는것처럼 보여서 자주 이용해먹었다. 좋은일이던 나쁜일이던 상황모면을 위해서. 근데, 박찬열은 속지 않는다. 아니, 박찬열만 속지 않는다. 너만 속아주면 되는데. 오히려, 너만 알아차리니까 이제 못 써먹겠어.
“찬열아, 나 그만 집에 갈게.”
*
집에 돌아오자마자 미친듯이 서랍을 뒤졌다. 약, 약이 어딨지. 하읏…. 머리가 점점 아파와 눈 앞까지 흐려졌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괜찮은 줄 알았는데. 손이 벌벌 떨렸다. 침대 밑 상자에서 약을 찾았다. 정신없이 주사기를 들어 아무렇게나 팔에 꽂았다. 그제서야 정신이 서서히 드는 것 같았다. 살이 찢어져 피가 흘러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으니까.
늦은 밤.
새벽이 되어서야 찬열이 백현의 집을 찾았다. 잠들어 있는 백현을 보니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피곤이 싹 가시는 듯한, 항상 찬열에게 백현은 그런 존재다.
“미안, 나 때문에 깼지.”
“아니야.”
인기척에 눈을 떴는데, 찬열이 보였다. 새삼스러웠다. 눈을 뜨면 찬열이 보이는게 원래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찬열을 이불속으로 당겼다. 언제 갈거야? 회사로 바로 가야지, 넌 더 자. 싫어. 왜? 눈 떴을 때 너 없잖아, 그런거 싫어. 찬열은 그런 백현을 어느 때 보다도 애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했다.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자, 좋아하는 향이났다. 가장 향기로운 변백현 향이.
“오늘, 잤어?”
“응, 조금.”
“아니, 그거말고….”
“그럼?”
“가영씨랑 잤냐고.”
“어? 아, 아….”
“잤어?”
“……응.”
백현이 찬열을 좀 더 꽉 끌어안았다.
“내꺼였는데.”
“아직도 니꺼야.”
“나만의 박찬열이었는데.”
“…백현아, 할래?”
끄덕이고 싶었지만 아니, 하고 고개를 저었다. 왜?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아…. 박찬열, 근데 너 이미 하고 왔잖아. 근데 또 하고싶어? 정력 자랑하냐. 뭐? 내일 일해야지, 참으세요. 다시 약에 손댔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한 거짓말이다. 찬열은 모를것이다. 자신이 더 원한다는 것을.
“쪽.”
“간지러워.”
쓰읍, 찬열이 눈을 크게 뜨며 혼난다는 시늉을 하곤 계속해서 백현의 얼굴 곳곳에 뽀뽀를 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나 죽어. 으응…. 찬열은 의도적으로 백현의 성감대인 귀를 자극했다. 그러는 통에 백현은 죽을맛이었다. 찬열은 계속해서 귀를 핥았다. 으흥, 찬열아. 아앙…, 그만해. 백현아, 그냥 하자, 응? 안돼! 왜! 아…, 아. 아니, 아 그게. 아무튼, 안돼. 나 진짜 아파. 찬열이 그 말에 결혼식장에서 백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약 먹었어? 응. 왜 아프고 그래. …미안.
“아프지마 나 없을때.”
찬열은 백현의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ㅅ♥ 이런 걸, 자, 작가의 말이라고 하나요? 글 세개에 드디어 주저리를써요. 안녕하세요! 항상 봐 주시는 분들, 댓글 달아주신 독자분들께 정말 감사하고있어요 댓글의 댓글, 달고 싶은데 막상 쓰려니 쑥스럽고 뭐라 해야될지 모르겠고 막 막 그렇슴다. 여러분들, 사랑합니당. 우선, 이 글은 Rainbow 라는 노래를 듣고나서 적은 글이에요. 처음에 핫초코랑, 차라리 때려요는 정말 쓱쓱 써졌는데 이건, 그게 안되더라구요. 분위기 때문인지 쓰는 저도 답답했어요. 원래 신경 쓰면 망하는데 이게 바로 그거. 근데, 아까워서 그냥 들고 온 무책임한 저란 녀자. 아무튼, 이건 다음편이 끝이구요. 부족한 글 올리는게 무서워서 지워야 할 것 같은. 헤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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