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야, 쓱싹쓱싹 제대로 닦아라."
"네, 네."
"귀찮다고 설렁설렁 닦지 말고! 니 손에 우리 레스토랑 손님들의 위생이 걸려 있어!"
"네, 네. 알겠습니다."
깔끔한 척 하긴, 영 불만족스러우면 지가 닦든가! 꼴랑 자기가 하는 일은 나 부려 먹는 거밖에 없으면서. 손님이 다 나가고 제법 한산한 런치 타임 한 시간 뒤, 레스토랑 사장인 루한과 일개 알바생인 지현은 손님이 없는 레스토랑 홀 안에서 청소를 하느라 이리저리 돌아 다니고 있었다. 확실하게 말 하자면 지현만, 루한은 지현에게 여러가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켜 먹느라 지현을 졸졸 따라 다니는 것 뿐이였다. 뒤에서 조잘조잘 참 말도 많은 자기 사장에 욕이 목까지 차 올랐던 지현은 억지로 그 욕을 참아 내고 비지니스적인 미소를 지었다. 고작 이십 대 초반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비지니스가 온 몸에 베인 지현이였다, 물론 속으로는 루한을 잔뜩 씹고 있지만.
"알바야!"
아, 내가 지 욕 하는 거 알았나 봐. 이젠 관심법도 쓰나? 잠깐이나마 조용했던 자신의 뒤에서 또 다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지현은 어깨를 크게 떨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팔을 잠시 멈춘 채 어색하게 뒤를 돈 지현은 뭔가를 쳐다 본 채 사색이 된 루한을 보고 자신도 루한이 보고 있는 것을 쳐다 보았다. 루한이 보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커다란 벽시계, 벽시계는 어느새 두 시가 넘어 세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계가 뭐, 시간이라도 틀렸나? 의문섞인 표정으로 루한을 올려다 본 지현은 갑자기 차키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루한을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저래? 지현이 이 레스토랑에 알바생으로 취직하고 처음 보는 루한의 바쁜 모습이였다. 봄이, 봄이, 봄이 데릴러 가야 해!! 괴성을 지르더니 이내 자신의 자켓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든 루한은 급하게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더니 다시금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 와 지현에게 한 소리 건넸다.
"알바야! 넌 지금 나이가 몇인데 벌써부터 팔자 주름이 있냐? 케어 좀 해!"
"…느에."
바쁘게 나가더니 갑자기 다시 들어 와서 한단 말이 고작 저거다. 개새끼, 씨발새끼. 보톡스 맞을거야. 어느새 루한이 나가고 아무도 없는 레스토랑 출입문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지현이였다. 지금 상황만 봐서는 루한과 지현이 한 몇 년간은 사장과 알바로 지낸 줄 알겠지만, 지현이 루한의 레스토랑에 알바생으로 취직한 지는 이제 갓 일주일이였다. 일주일.
***
"봄아, 아빠가 좀 늦으시나 보다…."
"난 아빠가 그냥 안 왔으면 좋겠어요."
"으응? 왜?"
"그러면 선생님이랑 더 같이 있을 수 있잖아요."
맹랑한 아이의 말에 그만 소리내어 웃은 민석이였다. 자신을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 보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슥슥 쓰담은 민석은 오늘 갓 부임한 초등학교 교사였다. 어린이들에게 늘 올바른 선생이 되겠다는 포부로 부임 첫 날을 맞이한 민석은 첫 날부터 진이 다 빠져 버렸다. 갓 태어난 병아리같은 여덟 살 짜리 애들을 보살피다 보니, 아무리 혈기왕성한 이십 대인 자기라 해도 체력이 딸릴 정도로 힘들었다. 게다가 원래 선생님이 아닌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니, 몇몇 아이들은 남자 선생님이 무섭다며 울기도 했고, 한창 칼싸움을 좋아할 남자 아이들은 민석에게 칼싸움을 하자며 나름 칼 대용을 할 물건들을 민석의 몸에 이리저리 찔러 대었다. 아, 전에 선생님은 어떻게 여기서 버티신 걸까! 어제자로 정년 퇴임을 하셨다는 전 선생님을 떠 올린 민석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는 정년 퇴임을 할려면 몇 년을 더 있어야 하는 거지? 쉽게 말 해 난장판인 교실을 보면서 울상을 지은 민석이였다.
"저도 선생님 되고 싶어요, 선생님 될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음, 선생님이 될려면 말이야. 공부를 되-게 잘 해야 해."
"으엥, 공부 잘 해야 해요? 난 아직 빼기도 제대로 못 하는데에…."
여차저차 해서 수업이 모두 끝났다. 붙임성이 있는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민석에게 꾸벅 인사를 하기도 했고, 민석과 나름 재밌게 장난을 친 아이들은 민석에게 내일도 봐요 선생님! 이라며 즐거운 굿바이 인사를 건넸다. 수업을 해도 장난, 쉬는 시간에도 장난. 자신에게는 영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에 살짝 미운 맘도 들었던 민석은 아이들의 귀여운 인사에 그 미운 맘들이 사르르 다 녹아 내리는 듯 했다. 역시 선생님 되길 잘 했어! 뿌듯한 마음으로 학교가 끝나고 여러 문서를 작성하고 있던 민석은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교실에서 작게 앓는 소리가 나자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난 곳은 선생들이 앉는 자리에선 잘 안 보이는 1분단 끝자리였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는 작은 아이가 끙끙거리자 민석은 놀란 마음을 가라 앉히고 아이에게 걸어 갔다. 어디 아프니?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 보니 흠칫 놀란 아이는 고개를 팩하고 올렸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민석의 얼굴에 자세를 고쳐 앉은 아이는 민석에게 안 아프다며 또박또박 말을 했다. 와, 되게 예쁘다. 영롱하게 빛나는 커다란 눈을 가진 아이를 보고 잠깐 넋이 나갔던 민석은 정신을 차리고 왜 아직 집에 안 갔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아직 데리러 안 왔어요, 울상을 지으며 민석에게 조근조근 말 하던 아이는 자기를 봄이라 소개하고 자신과 대화를 하자며 자신의 앞자리 의자를 끌었다. 민석에게 앉으라는 듯.
"우리 아빠는 레스…, 레토…, 뭐였지?"
"레스토랑?"
"아! 맞아요, 레스토랑 사장님이예요. 요리 되게 잘 해요."
베시시 웃은 봄이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여덟 살 아이들이 앉는 작은 의자에 불편하게 앉은 민석은 꽤나 길게 봄이와 대화를 했다. 봄이는 잘 때에는 잠깐 앓는 소리를 내고, 반에서는 가을이라는 아이와 친하다고 했다. 가을, 봄. 둘 다 이름이 되게 귀엽네, 계절이기도 하고. 보통 여자 애들은 자신을 보고 남자라며 무서워하기 마련인데, 봄이만큼은 남자가 안 무서운 듯 민석에게 조근조근 말도 잘 했다. 봄이와 대화를 한 지 꽤 되었을까? 갑자기 교실 뒷문이 쾅 열리며 봄이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봄아!!!"
"아빠!!"
문이 열리자 민석과 봄이 동시에 뒷문을 향해 쳐다 보았다. 교실까지 뛰어 온 듯 숨을 고르고 있는 루한을 본 봄은 루한에게 쪼르르 달려 가 안겼다. 아버님이신가? 의자를 집어 넣고 루한에게 걸어 간 민석은 자신을 의심어린 눈빛으로 쳐다 보고 있는 루한에게 오늘 첫 부임한 새로 온 선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제서야 의심어린 눈빛을 푼 루한은 민석에게 귀찮게 해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아뇨, 뭘. 이게 직업인데요 뭐. 민석이 한참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을 때 봄이 루한의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내려달란 말을 하였다. 내려 달라고? 아무래도 딸바보인 듯 봄이의 말 곧이 곧대로 봄이를 내려 준 루한이였다. 루한의 품에서 내려 온 봄이는 민석의 손을 꼭 잡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선생님! 내일 또 봐여."
"응, 그래-."
안 돼, 저 웃음은 나만 봐야 한단 말야! 외간 남자에게 활짝 웃는 자신의 딸내미를 보고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한 루한은 급하게 다시 봄이를 안고는 교실까지 들어 와 봄이의 가방을 챙기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어서 이 곳을 빠져 나가야 해, 저 남자에게 더 이상 봄이가 웃는 걸 보여줄 순 없어! 뜻도 없는 사명감을 가지고 복도를 성큼성큼 걷고 있는 루한이였다.
"저기, 아버님!"
"…네?"
"봄이가 많이 피곤한가 봐요, 집에 가서 잘 쉬게 해 주세요."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던 루한은 뒤에서 들리는 민석의 목소리에 잠깐 뒤를 돌아 민석을 내려다 보았다. 키도 작고, 얼굴도 나보단 별로고, 나보다 잘난 건 없어 보이는데 왜 봄이는 이 남자, 아니 이 선생을 보고 웃는 거지?! 어느새 자신의 품에서 또 다시 선생님을 보고 웃고 있는 봄이를 본 루한은 한숨을 폭 쉬었다. 잘 쉬게 해 달라는 민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한은 다시 뒤를 돌아 학교를 나서려 걸어 갔다.
"아빠! 좀만 천천히 걸어! 선생님 얼굴 더 봐야 한단 말야!!"
나 참, 어이가 다 없는 딸내미의 말에 다시 한 번 한숨을 폭 쉰 루한이였다.
"아빠, 아무래도 나 첫사랑인가 봐…."
참나, 나참, 정말! 오늘 첫 부임한 선생에게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 딸 봄이를 빼앗긴 딸바보 루한이였다.
첫 글입니다! :)
여러분 모두 이런 똥글에다 아깝게 투자하신 30p 댓글 써서 다시 가져가세융ㅠㅠ
사랑합니다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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