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pid Love 01
내게 비춰지는 아버지는 늘 근엄한 모습이었다. 세월에 그늘진 주름과 선한 인상 뒤에는 아버지가 책임져야 할 몇천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 기업의 총수는 부드러우면서도 냉철한 카리스마로 사방을 전두 지휘했다. 평생 콧대 높이 사실거라 여겼던 아버지는 그렇게 무릎을 꿇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무슨 착오가 있을겁니다! 부도라니요!”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저 실수라고 생각했다. 높게 쌓아올린 수십개의 젠가 중 하나가 어긋났을 뿐이라고. 다시 원래 제 자리에 꽂아놓으면 괜찮아질 그런 것. 운수가 없었다고 봐도 좋을것이다. 하필 뽑아든 것은 당장에 하나가 없어져도 중심을 잃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누구보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진영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전화가 빗발쳐 들어왔고 본사는 이미 포진해 있는 기자들에게 매수당했다. 티비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속보라며 한국의 큰 손 하나가 처참히 사라져감을 애도했다. 이는 한국의 경제에 어떤 치명상을 입힐 것인가 라는 토크쇼가 펼쳐지기도 했다. 참 지랄같은 내용이었다. 지랄같은 오늘이었고 지랄같은 내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비켜주시겠습니까.”
나는 군말없이 비켜섰다. 아닌 밤 중에 떼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국가의 떼들이었다. 손에는 아주 익숙한 것을 들고서. 나는 허탈감에 웃어버렸다. 저걸 직접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무표정의 그들은 거침없이 걸어와 차압 딱지를 마구잡이로 붙이기 시작했다. 티비도, 소파도, 냉장고에도 빨간 종이가 차압이라는 희미한 도장아래 놓여있었다. 열개가 넘는 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빠진 곳이 없나 꼼꼼히 살피기까지 했다. 이제는 앉지도 못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셋 다 말이 없었다.
“아마 여기도 곧 차압령이 내려질 겁니다.”
저녁은 드셨습니까? 하는 대수롭잖은 말투에 멍하게 있던 어머니가 그게 무슨 말이냐며 그들을 올려다 보았다. 이 건물을 팔아도 감당이 안 될 크기라서요. 그렇게 말하며 그들은 돌아섰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는 차압이라는 경고도 잊은 채 소파에 앉아 머리를 짚고 계셨다. 백현이 너는 들어가. 어머니는 자식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게 마음에 걸려 평소보다 더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나도 먹히지 않을 약빨이었지만 나는 이번에도 군말없이 돌아섰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였다. 여전히 사회는 시끌시끌했다. 진영이 한국에 퍼뜨린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으니, 그 잔해를 하나하나 치워버리기까진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조차 불가능이었다. 첫 타겟은 은행이었다. 기업의 돈줄.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 다음은 IT계열. 핵심 산업이 무너지자 균열은 깨져버렸다. 줄줄이 부도가 났다는 소식이 파했다. 몇천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피해 보상을 해 달라는 공문서가 쇄도해왔고 모든게 엉망이었다.
내가 사는곳은 강남의 8학군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으며 맹모삼천지교를 직접 실행하는 분이었다. 이미 그 쪽 근방에서 우리 집은 하나의 이슈였다. 나는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이제 곧 여길 떠나게 될 것이었다. 나에게로 쏠릴 지대한 관심이 눈에 뻔히 보여서 차마 학교로 발을 옮길 수 없었다는 게 나의 구차한 변명이라면 변명이었다. 전학 수속을 밟았고, 모든 사교육 기관과의 연을 끊었다. 차압딱지가 들어찼던 날, 그 날 처럼 깜깜한 밤에 우리는 도망을 쳤다. 사람들은 이것을 야반도주라 명명했지만 우리는 절대 도망간 게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날라간것도 아니었고, 남쪽 어디에 있을 인적없는 섬으로 간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울안에 있었다.
나는 자존심이 셌다. 내가 이토록 알량한 자존심이 깃들어 있는 것은 주변환경의 영향도 컸고,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주변에선 내가 아버지와 많이 닮아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무릎을 꿇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았다. 전초에 얘기한 묘사따위가 아니었다. 정말로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계셨다. 아버지의 몸이 내려앉았다. 보이지 않는 자존심도 같이 내려 간 듯 했다. 아버지는 자존심보단 돈이 중요했고, 당장의 살 길이 중요했고, 가족이 중요했다. 앞으로의 생계가 시급한 와중에 자존심을 챙길 여유가 아님을 아버지는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지 말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어서 일어나!”
아버지의 친구분이 서둘러 아버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몇시간이고 그러고 앉아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모기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제 가족을 살려달라고 했다.
지금 와 생각한다면 차마 눈 뜨고 못 볼 꼴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아저씨는 어서 들어오라며 먼 길을 달려왔을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어색해 하며 자리로 갔다. 아버지는 예전에 같이 사업도 했었다는 친구 분 이라며 우리에게 소개를 했다. 나도 몇번 들어봤던 이름이었다. GM그룹. 예전의 진영보다는 한참 못 나가지만 어쨌거나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회사였다. 집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나는 의미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잘 보이지는 않았는데, 사람임은 확신했다. 내가 저를 발견했다고 느꼈는지 황급히 머리를 숨긴다. 이미 다 봤는데 병신.나는 그 곳에 시선을 놓지 않으며 한 발자국을 떼었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짝 열려있는 방문사이로 손이 보였다. 꾹 쥐어져 있는 조그만 손. 나는 좁은 방문사이로 손을 뻗어 그 녀석의 손목을 잡았다.
“너 뭐야?”
“…으으!”
“병신.”
이번엔 구태여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아닌지 붙잡힌 손목에 안절부절 못하며 쳐다보는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울 듯하다. 작은 소란에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경수야!”
병신의 이름은 도경수였다. 도경수.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애의 이름 따위가 아니었다.
“어머, 경수야. 거… 거기서 뭐하니?”
“누군가?”
“응? 어, 우리 아들. 경수야, 뭐해. 인사해야지.”
인사를 하는건지 마는건지 그 애는 시종일관 불안한 표정이었다. 조금은 정신사나운 모습에 아저씨와 아줌마는 경수가 조금 아파, 하며 말을 얼버무리고는 가정부에게 부탁해 그애의 간식을 챙겨주라고 명한 뒤 다른곳으로 화제를 돌린다.
“…….”
고개를 돌렸을 땐, 아무도 없었다. 쟨, 뭘까. 묘한 궁금증은 그러나 곧 수그라들었다.
ㅡ 백현아!
“…잘 있냐?”
ㅡ 너 어디간거야? 응? 살아있어?
“안 살아있으면 내가 전화를 받고 있겠냐.”
ㅡ 나한테 끕 또박또박 따지고 끕 하는거 보면 잘 있나 보다 야… 끕.
“뭘 또 울어. 감수성 예민한 놈.”
ㅡ 으허엉, 소식 들었어 야!!! 그렇다구 나한테 연락도 없이 가면, 내가 얼마나 당황한 줄 알아?
“뉴스는 순 다 허풍이니깐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보류상태일뿐이니까. 학교는 어때? 샘은.”
ㅡ 완전 뒤집어졌지 뭘. 너에 대해서 얼마나 가지각색 소문들이 나돌고 있는 줄 알아? 진짜 말도 안 되는 루머때문에 나 오늘 하루 죙일 필터한다고 힘이 쭉 빠졌어.
“나 서울이야. 괜찮아지면 먼저 주소 보내줄테니깐, 나 없다고 또 징징대지 말고.”
ㅡ 너 안 와? 여기?
“……몰라.”
ㅡ 자주 연락할게. 번호 바꾸지 마.
“어.”
액정 화면 속의 김종대 라는 글씨가 깜빡이다 사라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침대가 있어 그나마 잠은 설치지 않겠지만 이건 무슨 방이 우리집 화장실만 하다. 새삼 드럽게 넓은 곳에서 살았구나 싶었다. 방을 나가면 또 다른 방이 하나. 그리고 화장실. 예전까지 일을 봐 주던 아줌마와 친분이 깊어 대신 마련해 준 집이라 그리 넓지는 않아 미안하다던 아줌마의 말에 뭐가 작냐며 고맙다는 말을 두번 세번이나 반복하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하나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드는 처연함과 앞으로의 막막함에 입맛도 삭 사그라들었다.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땐 이른 아침이었다. 물 좀. 바싹 말라오는 입을 혀로 쓸며 인상을 한데 찌푸리고는 다시 한번 외쳤다. 이비씨, 물 좀! 그러나 아무리 외쳐대도 밖은 아무 대답도, 바삐 걸어오는 발소리도 없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부를때마다 네. 하며 재빠르게 다가와 물을 내밀던 하녀 이비는 여기에 없었다. 정신이 번쩍 든다. 비척비척 걸어가 문을 열었다. 손잡이도 없고, 밀어야 하는 문. 잠시 어쩌라는 건가 하다가 겨우내 문을 밀자 조용하기 짝이 없는 밖이 시야에 들어찼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바로 보이는 현관 문. 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 기업 진영의 아들이었던 내가 여기서 몇 평일지도 모를 공간에서 손잡이도 없는 문에 눈 앞에 있는 현관을 보고 있는 꼴이라니.
“씨발.”
내 기분은 이렇게나 우울한데 밖은 죽이게 경치가 좋다. 같은 서울인데도 공기부터가 달랐다. 여기가 어디라고 했더라?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더럽게 조그만 창문에 걸터앉아 날씨 한탄이나 하는데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인 건 어제의 그 애, 도경수인가 하는 놈. 등에 가방을 메고 있는 걸 보면 학교를 가는 모양이었다. 허공을 쳐다보다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썩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자폐야 뭐야…….”
감흥 없다는 듯이 창문을 닫자 놀랍게도 주위가 어둑해졌다.
다시올립니다. 오늘, 구독료 무료라구요...? (신남) 암호닉 받아요! 일편은 심각해보이지만 제법 산뜻발랄한 픽이 될 거라면서요?(수근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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