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처진 눈꼬리, 순해보이는 인상에 성격도 좋아, 얼굴도 좋아. 변백현이 어디에만 떴다 하면 주위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치 한 낮, 사거리에 변백현이 홀로 서있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변백현을 칭송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그를 꺼려했다.
모름지기 사람의 첫인상은 중요한 것이었으니.
치즈 인더 트랩 1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였다. 사실은 신입생 환영회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재수생 환영회였지만. 군대를 갔다 오느라 2년. 군대 후유증을 가장한 시력교정에 1년을 합세하여 대학교를 쉬었더니 모르는 얼굴들이 이곳저곳에 빼곡이 들어서있었다. 아는 얼굴이 없는 테이블에 혼자 쭈그리처럼 쳐박혀 앉아 이 술, 저 술을 다 먹었더니 금방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취한 기운을 애써 달래며 히히덕 웃고 있었는데, 어떤 한 남자가 가게 문을 열고 오더니, 우리쪽 무리를 향해 인사했다. 처음만 해도 굉장히 근사한 인상에 나도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있었다.
‘백현 선배! 이제 오시는거예요?’
‘응. 차가 좀 밀리네.’
윤지였던가. 윤지가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변백현에게 묻자, 변백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연스럽게 나와는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윤지가 변백현의 팔에 팔짱을 꼈는데,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는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가령 그게 윤지가 변백현에게 팔짱을 낀 순간, 벌레가 팔뚝에 붙은 것 마냥 윤지를 쳐다보던 변백현일지라도. 난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첫인상이 80%임을 난 확신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변백현은 나에게 있어서 쌈싸먹을 놈이었으니까.
한번의 인상은 꽤나 여러 가지의 흠들을 비춰줬다. 웃는 얼굴 뒤의 숨겨진 내면이라던지, 부드러운 말투로 애써 포장했지만 어김없이 비춰지는 가시 돋힌 말이라던지. 하지만 바보같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칭송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어떤 한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무참히 씹혔다.
‘변백현, 좀 이상하지 않아요?’
‘어우, 뭐가. 너도 변백현 싫어해?’
‘그, 그건 아닌데요.’
‘그럼 이런말 하지 말어. 괜히 일만 커진다.’
뭐, 그럴만 하지. 아직 그들은 변백현의 진실된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 나는 그 날 이후로 변백현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아꼈다. 말도 아꼈고, 함께 해야만 하는 시간들도 최대한 아꼈다. 주위 사람들은 습관처럼 변백현을 멀리하는 나를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지만, 무조건 같이 어울리자, 왜 무리에서 이탈하려 하느냐 등의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변백현의 주위에서 한명이 나가 떨어졌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를 봐주겠지? 라는 이상한 소리를 해대면서.
변백현을 안 뒤로 몇 주가 흐르다보니, 나는 지나치게 변백현을 의식하고 있었다. 저 웃는 가면 뒤에 숨겨진 무표정. 부드러운 고무같은 말투로 애써 덮은 날카로운 가시돋힌 말들. 언젠가 나를 향해 날아올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같은 것도 계속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변백현은 나를 쳐다보는 빈도수가 늘기 시작했다. 그와 비례하게 내 불안감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어울리고 싶지 않은데. 오늘도 어김없이 변백현과 함께 받는 힘든 강의가 끝마치자마자 가방을 챙겨 달아나다시피 나갈려고 하는데, 나를 불러세우는 이가 있었다.
“도경수?”
“…….”
“오늘 점심, 같이 먹…….”
“미안, 나 선약이 있어서.”
변백현이었다. 쟤가 왜 날 불러 세우지? 나는 급한 마음에 선약이 있어서 미안하다는 말만 툭 던진채로 도망치듯이 강의실을 벗어났다. 벙찐 것 같은 변백현의 표정은 내가 신경쓸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이제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자리를 뜨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가끔씩은 나도 내가 웃기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렇게 하라고 뇌가 명령하고, 멍청한 나의 몸뚱아리는 착실히 그 명령을 받잡는 것이었으니까. 조급한 발걸음으로 대학교를 배회하고 있을 시점이었다. 갑자기 검은 물체가 내 앞에 턱, 하고 나타나더니 농구를 하고 왔는지 옆구리에는 농구공을 끼고 나를 바라보며 씩 웃고 있었다. 내가 하는 친한 후배인 김종인이었다.
“뭐야?”
“형, 점심 먹었어?”
“아직. 근데 넌 운동 중?”
“제가 다 바르고 있었죠.”
종인이 농구공을 바닥에 튕기면서 웃었다. 이제 가을로 넘어선 날씨가 두렵지도 않은지 민소매와 헐렁한 체육복을 입은 김종인이 난 적히 걱정스러웠다. 야, 안추워? 내 물음에 김종인은 어깨를 으쓱일 뿐, 춥다고는 하지 않았다. 농구를 미친 듯이 한 것 같았다. 이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니. 김종인의 말을 마지막으로 자연스레 인사를 건네고 가려했던 나는 이내 김종인이 아닌 다른 두 남자에 의해 내 계획이 산산조각이 나는 꼴을 목격하게 됬다.
“거짓말 하지마! 나랑 15점 차이로 지는게.”
“요, 도갱수! 나 배고파, 밥해줘.”
아니 이 새끼가, 내가 무슨 식모인줄 아나. 김종인의 농구공을 자연스럽게 뺏고는 김종인의 몸뚱아리를 농구공으로 거침없이 사격하는 것은 김종인의 동기자 내 친한 후배인 오세훈이오, 밥타령을 하며 나한테 헤드락을 거침없이 걸어온 이 놈은 박찬열이리라. 박찬열의 묵직한 체중에 급하게 몸이 앞으로 쏠린 나는 그때부터 가차없이 박찬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거 놔, 못 놔? 이미 예상은 했다만 박찬열은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등신이었다. 상등신 of 상등신. 내가 생각해도 가소로운 내 협박을 가뿐히 무시한 박찬열이 내 머리를 헝크러뜨렸다. 삐뽀삐뽀. 내 머릿속에서 적색 위험령이 내려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캠퍼스를 헤드락 당한채로 걸어다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 순간 이후로 최대한 몸을 써가며 박찬열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그래도 박찬열은 내가 인정한 상등신이었기에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박찬열의 배에 주먹을 내리 꽂아도 껄껄껄. 정강이를 힘껏 까도 껄껄껄. 그러면서 어디론가 가려는 듯 발을 뗀 순간, 나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안돼! 이대로는 갈 수 없어. 초조하게 머리를 굴리던 나는 오세훈이 가지고 있던 농구공을 뺏은 뒤, 그대로 박찬열의 가슴팍에 농구공을 있는 힘껏 던졌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박찬열의 팔이 내 목에서 떨어져 나가자, 이유없는 뿌듯함에 웃고 있는데, 저쪽 상황은 조금 심각해 보였다. 숨 쉬기 곤란한 듯 헉헉거리는 박찬열의 상태에 김종인이 급하게 달려갔다.
“무, 무슨일이야?”
“찬열이 형 명치에 맞았어여. 형 크리티컬 개쩔어여.”
“하?”
“농구공으로 명치 맞았다니깐여?”
헐 대박. 나도 나의 명중률에 감탄하고 있는데, 정신을 차린 듯 박찬열이 저의 등을 토닥거리며 숨쉬기를 유도하던 김종인을 밀치고는 나를 강렬하게 노려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기껏 도와줬더니 이러기야? 아우, 아파라.”
그대로 밀려난 김종인이 자신의 팔꿈치를 쓱쓱거리며 후후 불더니, 그대로 나한테 걸어오는 박찬열의 오금을 발로 멋지게 찼다. 방심하고 있던 박찬열은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면서 내 크로스백 끈을 잡아당겼고, 박찬열의 꼴에 꼴좋다며 낄낄거리던 나도 방심해서인지 그대로 박찬열이 넘어지는 방향으로 같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이구, 풍경 좋네여. 세훈의 빈정거림에 중지를 들어 대답을 대신하자, 세훈이 방긋 웃으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필시 저 손을 잡고 일어나라는 뜻이리라. 넌 역시 멋진 놈이었어. 내가 똑같이 방긋 웃으면서 오세훈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큰 손이 나보다 먼저 오세훈의 손에 턱하고 포개졌다. 이런 박찬열 씹빠빠 같은놈. 박찬열이 오세훈의 손을 잡자마자 오세훈이 박찬열을 일으켜 세웠다. 그럼 나 혼자 일어나야 하는건가. 박찬열이 잡아당긴 후유증으로 나의 어깨에서 벗어난 크로스백을 다시 어깨에 걸치고는 엉덩이를 툭툭차면서 일어서려고 했는데, 내 옆에서 불쑥 나타나는 손에 그 손주인을 찾기 위해 손에서부터 얼굴까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변백현?’
변백현이 나를 내려다보며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가증스러웠다.
*
“뭐야, 내 손은 무안하도록 그냥 납둘꺼야?”
“으, 응? 아, 아니.”
내가 어색하게 변백현의 손을 잡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에서 아니. 라고 말하게 되버리면 민망한건 변백현 뿐만이 아닌 나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될것이라는 것을 지레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를 바라보는 여러쌍의 눈동자들에 급하게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어색하게 웃는 나를 눈치챈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어깨 위로 박찬열의 팔이 보란듯이 둘러졌다. 이 새끼가 오늘 약빨았나, 왜 이래? 내 눈빛에 박찬열은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뭘 알고 있으면 그러는건지. 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그걸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인 우리 박찬열이 자랑스럽다는 듯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 경수, 지금 우리랑 밥먹으러 가는데,”
“……알고 있는데?”
“눈치있게 비켜달라고.”
찬열아, 그거 아니? 난 네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그런 독설을 내뱉으면 무서워서 지려버릴것만 같아..는 무슨. 내 눈엔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전공이 달라 거의 말을 처음 섞어보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위협적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키만 멀대같이 큰게 지하동굴을 뚫어버릴 것만 같은 목소리로 저런다면 무서울테니깐. 내 추리가 맞았는지 변백현은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더니 그 우글거리는 무리를 데리고 저 멀리로 휘적휘적 걸으면서 사라졌다.
“너 변백현이랑 뭐 있냐?”
“뭐가?”
“아니, 왜 이렇게 어색해해. 너답지 않게.”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인상이 아니라.”
내 말에 박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봐왔으니 말하지 않아도 눈치챘을 것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얼마나 진저리를 치는지. 그리고 앞으로 박찬열은 나랑 변백현을 최대한 떼어놓으려고 할것이었다. 박찬열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최대한 나를 배려하려고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치즈 인더 트랩 2
최근 들어 변백현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뭐랄까, 좀더 나를 신경쓰는 듯한 느낌? 박찬열의 꼼수는 이제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초반엔 전공이 끝날 때마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찾아와서는 나를 데리고 가더니 계속 이 패턴만 반복하다 보니 이젠 변백현은 박찬열과 내가 유일하게 떨어져있는 시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다른 전공이라 잠시 가는 시간을 계산해서 떨어져있는 시간을 공략해서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난 당황스럽다. 뭐가? 지금 이 상황이. 왜 맨날 중간자리에서 자신의 무리들을 거닐며 얘기하던 변백현이 맨 뒷자리까지 친히 행차하고 하필이면 내 옆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책과 필기구를 꺼내는지. 늘 조용하던 뒷자리는 변백현에 의해서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백현아 나 이것 좀 빌려줘! 응. 이것 좀 빌릴게! 응, 빌려가. 아니 무슨 빌릴게 이렇게 많아?! 원체 조용한 것을 좋아하던 나는 자리를 뜨기 위해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왜, 절이 싫으면 중생이 떠나라. 라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난 그 말을 착실히 이행하려고 하였다.
“……내가 불편해?”
얘만 아니었더라면.
“…….”
“내가 불편해? 왜 자꾸 피해?”
“어……, 조금 소란스러워서……. 내가 조용한 스타일이라.”
그럼 됐지? 가방도 다 챙겼겠다, 일어서려는 내 손목을 낚아채서 다시 앉힌 변백현이 주위사람들을 내좇기 시작했다. 뭐지? 앉힌채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이게 지금 무슨상황인가에 대하여 파악하려고 하는 순간, 변백현이 샐쭉 웃으면서 하는 말에 나는 직감했다. 이 새끼, 박찬열과 버금가는 또라이다.
“됐지? 이제 조용해졌지?”
퍽이나.
속으로 중얼거린 내가 결국엔 다시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 더 이상 뭐라 흠을 자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대뜸 난 네가 싫어!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내가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자, 변백현은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면서 책을 펼쳤다. 이번 강의는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하시는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졌다.
“그럼 여기까지 하죠. 과제 꼭 해오세요.”
끝났다! 교수님의 당부말을 마지막으로 강의실 안에 있던 학생들 일동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변백현이 옆에만 앉지 않았더라면 강의실에 가방을 납둔채로 책 한권만 달랑달랑 들고서는 강의 시간 중 이해가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따로 질문할테지만, 오늘은 워낙 정신을 딴 곳에 둔채로 들은 수업이었기에 재빨리 짐을 싸서 변백현이 앉은 쪽의 반대편으로 나갈려는 찰나였다.
“도경수.”
변백현의 목소리였다.
“오늘 점심 같이 먹자.”
나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직도 내 몸은 바깥으로 향하기 위해 변백현에게 등을 보인 상태였다. 싫은데. 라는 말이 쉽게 떨어져 바깥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박찬열이었다. 바로 저 멀리서부터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오는. 금방 우리 강의실에 도착한 박찬열은 어색하게 몸을 굳힌 나를 한번, 내 옆에 앉아 얌전히 짐을 싸고있는 변백현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바로 내 손목을 낚아챘다.
“경수, 오늘 나랑 같이 밥먹을건데?”
변백현의 말에 박찬열이 가소롭다는 듯 허, 하고 웃더니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나를 그대로 강의실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백현이 빠르게 내 손목만 잡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대로 이 공간을 박찬열과 함께 빠져나갔으리라. 내가 움직이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박찬열은 있는 힘껏 나를 끌어당겼고, 변백현도 지지 않겠다는 듯 내 손목에 멍이 들 것만 같은 힘으로 꽉 쥐었다.
“아파! 아프다고, 이것 좀, 놔!”
내가 힘껏 양쪽에서 가해지는 힘을 뿌리치자, 변백현이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렴 조용히 짜져있던 애가 갑자기 악을 쓰는건 처음 볼테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한 내가 다시 내 어깨에 걸어오는 팔을 뿌리치며 그대로 강의실 밖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런 내 움직임 뒤로 변백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나를 부르는 박찬열의 목소리도 겹쳐졌다. 도경수! 그들이 내뱉은 단어는 한치의 틀림도 없이 내 이름 석자였다.
“형. 제가 평점 좋은 고깃집을 찾았어여.”
“설마 수만 고깃집?”
“헐! 어떻게 아셨어여?”
“아, 이 쪼렙 새끼. 엉아는 이미 거기 다녀왔다.”
나를 쫓아오려던 진드기 둘(이라 쓰고 변백현과 박찬열이라고 읽는다.)을 떼어놓고 홀로 컴퍼스를 걸어다니는 나를 불러세운건 오세훈이었다. 맛집을 찾았다는 말에 내가 가소롭다는 듯 웃자, 이를 빠득, 갈며 분통해하던 오세훈이 뭔가가 생각난 듯 손뼉을 짝, 치더니 헤실헤실 웃었다. 왜 그래? 내 말에 오세훈이 기쁘다는 듯 제자리에서 한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뭐지, 이 꽃가루들은.
“루한형이랑 먹으러 가면 되겠네여!”
“루한형이랑? 형이 나랑 같이 간건데?”
내 말에 꽃가루들이 바로 시들었다. 힘 없이 축 늘어져있던 오세훈의 기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또 나를 희생해야 하는 것인가. 한숨을 푹 내쉰 내가 축 처져있는 오세훈의 등짝을 짝소리 나게 때리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꽤나 아팠던 모양인지 눈 끝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오세훈이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아, 왜 때려여!! 여간 아팠던건지 큰소리 안내던 애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니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루한형이랑 수만 고깃집 가려고했는데 니 놈 때문에 안감. 뻑큐!”
“루한형이랑여?”
“우리 학교에 루한이라는 이름 가진 남자가 여럿이었더냐?”
“형 사랑해여!!”
하트 뿅뿅!! 큰 키로 애써 귀여운 행동을 하는게 안쓰러워서 그만하라고 한 뒤, 휴대폰을 꺼내들어서 루한형의 번호를 찾아 헤메기 시작했다. 워낙 귀찮아서 전화번호부 정리를 안했더니, ‘ㄹ’에 있는 사람들 또한 지지리도 많았다. 한 3년동안을 쌓아왔으니까. 루한형의 이름을 찾아 낑낑거리는 내가 답답했던지, 오세훈이 대뜸 나한테 자신의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이걸로 뭐 어쩌라고? 내 얼굴에 씌인 문구를 용케도 읽은 오세훈이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당당히 말했다.
“제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이 루한형이예여.”
“와. 루한형은 네가 이렇게 루덕인거 아냐?”
“루덕이여?”
“루한 덕후.”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오세훈은 고개를 저었다. 모를껄여? 루한형 앞에선 제가 얼마나 순한양인데여. 그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그대로 오세훈의 등짝을 다시 한번 더 때렸다. 그래서 나한테는 이렇게 지랄 맞구나, 네가?
*
“오! 백현형이 여긴 왠일이예여?”
“여기에 누가 고기 쏜다며-, 얻어먹으려고 왔지.”
나는 따끔거리는 두 눈을 재빨리 감았다 떴다. 원래 세 명이서 소박하게 먹으려던 고깃집에 갑자기 사람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기존 멤버는 나랑, 오세훈이랑, 루한형이었는데. 루한형이랑 같이 있던 김종대가 불쑥 끼고, 루한형과 통화내용을 듣고있던 김종인도 끼고, 김종인이 박찬열에게 연락을 하고, 혼자 오려던 박찬열의 뒤를 밟아 변백현까지 오고. 변백현을 따라온 기집애 몇몇도 지금 힐끔거리면서 이쪽 테이블을 보고있었다. 부담스러워, 부담스러워! 고기 뒤집기를 담당하고 있는 내가 집개만 들고 멍하니 있자, 옆에 있던 박찬열이 내 눈 앞에서 손을 한번 흔들거렸다.
“어, 어?”
“고기 탄다?”
“어! 탔어!! 어떻게 해!”
박찬열의 말에 흠칫 놀라 급하게 고기를 뒤집자마자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탔다, 탔어어-. 겉면이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것을 본 내가 테이블 위에 엎드려 고개를 마구잡이로 붕붕 돌렸다. 그런 내 행동에 오세훈, 김종인, 박찬열은 신나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루한형, 김종대, 그리고 변백현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멀뚱멀뚱히 바라보던 셋에게 오세훈이 친절하게 입을 열어 설명했다.
“고기 뒤집기 담당이 고기 태우면 태운거 다 경수형이 먹어야 하거든여.”
“와, 그럼 이거 지금 경수가 다 먹는거야?”
“그렇져.”
좀 있다가 한면이 새까맣게 타버린 고기들은 모두 다 내 접시로 넘어왔다. 다행히 몇몇개는 먹을만 하다며 다른 사람의 접시로 넘어가버린 덕분에 내 접시에 남은 고기의 개수는..젠장할, 그래도 많아! 접시의 밑면을 빈틈없이 채운 고기들을 보고 울상을 짓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접시를 쑥 가져가더니 반 이상을 가져갔다. 박찬열인가? 다시 내 접시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얼굴을 확인한 순간, 다는 다시 내 앞에 돌아온 접시에 고개를 파묻을 수 밖에 없었다.
“헐! 형이 왜 탄거 먹어요!”
“응? 아, 나 탄거 좋아해.”
“그래도 이건 벌칙이라구여!”
변백현이 왜 내껄 덜어가는거야! 나를 골탕먹이는 것을 실패해서 아쉽다고 중얼거리는 오세훈과 김종인의 목소리 위에 변백현의 웃음소리가 부드럽게 깔렸다. 그래, 고기나 먹자. 체념한 마음으로 젓가락을 집어드는데, 내 젓가락들 보다 먼저 내 접시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젓가락에 혹여 또 변백현일세라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었는데, 한 면이 가득 탄 고기를 뒤집어 안보이게 하고는 상추 위에 올리는 박찬열의 행동에 내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박찬열의 엉덩이를 툭툭 때렸다.
“우리 찬열이! 이 엉아가 진짜 아끼는거 알지?”
“아, 도경수 떨어져! 마늘 엄청 넣어서 먹이기전에!”
우리 이쁜 새끼, 내 새끼, 더 많이 먹어? 장난스레 웃으며 박찬열의 접시 위에 탄 고기들을 우르르 버리고서는 재빨리 고기를 뒤집자 타지 않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들에 내가 히죽 웃었다. 그래, 변백현이 여기 있어서 내가 왜 불편해야 하는가? 내가 걜 무시하면 될꺼를. 고기가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김종인의 행동에 활짝 웃으면서 잘 구워진 고기를 접시 위에 올려주고 나니, 텅 빈 변백현의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 많은 양의 고기를 다 먹은건가? 이 짧은 시간에? 그건 고기 덕후인 준면선배도 못하던 행동인데.
알게 뭐람. 대충 변백현의 접시에도 고기를 몇 개 덜어준 내가 바닥으로 떨어진 젓가락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혀 땅바닥을 최대한 직시하려고 바라보며 팔을 뻗었다. 그리고 그 즉시 행동을 멈췄다. 한 자리에 유난히 많이 떨어진 고기. 그것도 죄다 타버린-. 젓가락이 손가락 끝에 맞닿았다. 다시 허리를 펴서 그 자리를 다시 바라본 나는 혼란에 빠졌다. 탄 고기가 유난히 많이 버려져있던 곳의 자리 주인은 변백현이었다. 그리고 불현듯이, 첫 만남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어? 선배, 그 아까운 고기를 왜 버리려고해요!’
‘아, 나 탄거는 원래 안 먹어.’
‘우우. 선배 입맛이 너무 까탈스러운거 아녜요?’
..그럼 도대체 내 접시에 있던 탄 고기는 왜 가져간거지?
과거에 쓴 부끄러운 글 p^0^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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