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스러운 기억으로 가득찬, 그 안에 아주 조그맣게 빛나던 민석의 말이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루한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루한, 난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고 싶어' 민석이 말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란, 말 안해도 알기에 루한은 재활이 어렵다던 손가락을 부여잡고 죽어도 다신 가지 않을 거라던 재활센터를 찾았다.
“조금 더 일찍 왔어야지, 루한.”
하얀 가운을 입고 루한의 손가락을 만지며 이것저것 묻던 크리스는 루한의 조그마한 희망을 사라져버리게하는 말을 끝내 뱉었다. 사실, 조금 일찍 왔어도 그닥 희망은 없었어. 제발, 저 소리만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길 바랐는데. 불안하게 떨리던 그의 동공은 안쓰럽게 바닥으로 떨궈지고 그의 모습을 본 크리스는 그를 향해 말한다.
“피아노, 안 쳐도 되잖아.”
“…….”
“김민석이 모르는 건 아닐테고.”
“……몰라.”
날이 선 시선이 루한에게 닿았다. 그런 루한은 마른 세수를 하며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몰라, 아마 평생 모를 거야. 내가 모르게 할 거니까.
“…미련한 놈.”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민석한테도 너한테도. 언제까지 숨길 순 없잖아. 네 손, 치료 못해.'
오른손으로는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하던 기대도 이제 사라졌다. 왼손은 예전에 감각을 잃어서 민석의 통통한 볼을 만질 때도 그 감촉이 잘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혹시나하고 기대했던 오른손은, 조금 더 무리를 할 경우 왼손처럼 될 수도 있다는 크리스의 적잖은 충고에 포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민석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면 포기해야했다. 사고가 난 후, 처음으로 왼손으로 민석을 만졌을 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던 그 절망스러운 사실에 난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루한,왔어?”
“기다렸어? 밥 먹자.”
“응”
민석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식탁을 채웠다. 쇼파에 앉아있는 민석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루한, 나 손 안잡아줘도 갈 수 있어. 그의 말에 루한은 고개를 저으며. 손 잡고 싶어서 그래. 민석, 싫어? 루한의 나긋한 목소리에 민석은 예쁘게 웃었다. 계속 잡을 수 있잖아 손. 민석의 말에 루한은 괜히 가슴 한 쪽이 저릿했다. 오른쪽 손마저도 너를 느낄 수 없으면 어쩌지, 민석아. 루한은 병원을 괜히 찾았다고 생각했다. 오른손 만이라도 희망을 쥐고 있을 걸, 괜히 알아버렸다.
“루한, 아까 이씽한테 전화 왔었어.”
“무슨 일로?”
“피아노 가져가래, 피아노 안 가져왔었구나.”
“…아.”
“요즘 루한이 연주를 안하길래 무슨 일 있나 싶었는데….”
“…무슨일은 무슨.”
“피아노 가져오면 연주해 줘, 내가 좋아하는 곡.”
난 당신에게 그 곡을 연주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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