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사방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그를 옥죄였다. 귓가를 때리는 소리를 피해, 최대한 보지 못하게 멀리. 거친 숨소리가 심장을 울렸다. 더 이상은 못 뛰겠다. 한계가 임박했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털썩, 주저앉은 그의 인근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워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제발, 지나가라. 제발... 지나가라. 두근 두근, 요란한 심장 발작을 잠재우려 애썼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지나갔나. 조용해진 주위에, 근육통으로 살려달라 몸부림 치는 다리를 겨우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여, 술래잡기는 이제 끝인가?"
반짝, 하는 빛이 언뜻 보였던 것 같기도 했다.
중간계
w.레카
번쩍, 눈이 떠졌다. 재빠르게 주위를 살피고, 남준은 곧 그 장소가 제가 며칠 전 도망쳐 온 시골의 한 촌구석임을 깨달았다. 지독한 악몽, 꿈은 끊임없이 남준을 괴롭혔다. 항상 똑같은 자리에서, 경찰을 피해 미친듯이 도망치고, 달리고. 식은 땀으로 흠뻑 젖은 등은 그 악몽의 생생함을 증명했다.
"아....."
눈을 부비며, 제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눈을 몇번이나 감았다 떴다 하고 나니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또 뭐하지."
의미없는 중얼거림과 함께, 자그마한 방을 벗어나 욕실로 향했다. 며칠 간 악몽에 시달려서인지, 집 안에서만 살아서인지 거울에 비친 제 자신의 모습은 꽤나 심각했다. 퀭한 두 눈과 며칠새 더 내린 살이 남준의 분위기를 한층 더 날카롭고 예민하게 보이게 했다. 내가 원래 이랬었나, 어색한 자신의 볼을 매만졌다.
"일단 사람 꼴은 하고나서 그 다음에 뭐라도 해야겠네."
월요일, 쉬는 날. 윤기에게 월요일은 곧 쉬는 날이었다. 7일 중 6일을 성당에서 지내는 윤기에게는 오늘 하루가 쉴 수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그렇게 중요한 날이건만, 윤기는 잔뜩 어질러진 집 안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집 안 꼴이 말이 아니네. 아무리 귀찮아도 오늘은 좀 집을 치워야겠다 싶었다. 여기서 생활하다가는 어머니께 돼지우리라고 한 소리 들을만한 수준이기도 했고, 솔직히 자기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했다.
"아, 귀찮은데...."
얼마 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전정국이 떠올랐다. 걔가 좀 시끄럽기는 했어도 집 하나는 잘 치웠는데, 우렁각시 마냥. 있던 존재가 없어지니 새삼 느껴지는 빈 자리였다. 그건 그거고. 어차피 전정국은 없고, 집은 치워야 했다. 뭐부터 하지, 6일동안 방치해놓은 쓰레기부터 버려야 할까. 꽉꽉 눌러담은 쓰레기통이 자신을 처리해달라고 아우성 치는 듯 했다. 어차피 이 상태로는 집을 치워도 쓰레기통 안으로 쓰레기를 넣지 못할 터였다. 그래, 얘부터 처리해야지. 흘러넘치지 않게 쓰레기봉투를 꼼꼼히 묶고 집 밖을 나섰다. 끼익, 낡은 문이 열리고, 늦은 오후의 노을이 윤기의 백금발에 내려앉았다. 아 참, 나 낮잠 잤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고서야 시간을 인식했다.
"이래서 복도식 아파트가 싫다니까. 이사를 가야지, 원."
윤기는 투덜대며 발걸음을 옮겼다. 에라이, 복도 한번 존나 기네. 신부란 직업에 걸맞지 않게 험한 욕들이 흘러나왔다. 윤기는 잔뜩 짜증난 얼굴로 엘레베이터를 기다렸다. 띵동, 엘레베이터의 빨간 숫자가 5를 띄웠고,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레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윤기의 얼굴에는 짜증이 사라졌다. 그 안의 남자는 키가 아주 컸고, 온통 까맸다. 까만 모자에, 까만 티셔츠, 까만 바지까지. 마스크도 검정색이었다. 색채는 오직 연예인마냥 특이하게 염색한 분홍색 머리칼과 빨간색 컨버스하이뿐이었다. 뭐야, 우리 아파트에 저런 사람도 살았나? 저렇게 특이한 사람을 기억을 못했을 리가 없다. 어쩐지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는 있는 듯 없는 듯, 스르르 엘레베이터를 빠져나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옆집이다. 이사 온 건가. 이 촌구석에? 윤기는 물끄러미 남자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아, 씨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엘레베이터는 이미 2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놓쳤잖아. 짜증나게.
...그나저나, 어쩐지 눈에 밟히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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