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은 일이 이렇게 된 거 아예 학교를 한 달 정도 쉬기로 했다. 언제 또 발작이 올 지 모르는 일이고 이번에 새로 받았던 검진에서 결과가 또 좋지 않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좋겠다, 학교도 안 가고. 내 너스레에 김태형은 애써 웃어보였다.
본격적인 기말고사 기간으로 돌입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기말고사냐며 투덜거리기도 잠시, 아이들은 금방 공부에 몰입했다. 김태형은 저도 기말고사를 보겠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결국 내가 뜯어말려 무산되었다. 그 몸 상태로 학교에서 4시간씩 앉아있는 건 무리였다. 김태형도 분명 알고 있었겠지만 괜히 고집을 부린 것이 분명했다.
김태형이 입원한 후로 내 하교 루트는 조금 더 단순해졌다. 그 전에는 학교에서 병원에 갔다가 집에 가거나 집에 들렀다 다시 병원에 가거나 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무조건 하교 후에는 병원으로 직행했다. 딱히 김태형이 보고싶다거나 그런 감정에서 우러나온 건 아니었다. 자발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이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꼬박꼬박 병원에 들렀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향하는 이유는,
[공주야 학교야?]
[1교시 시작했지]
[점심시간이겠다 점심 맛있게 먹어]
[날도 더운데 졸지 마]
[나 없다고 다른 남자랑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니지]
[박지민만 빼고 말 걸지 마]
[남자란 남자한테는 전부 철벽 쳐]
문자메시지를 하루에 열 두 번도 더 보내는 노력이 가상해서, 정도가 되겠다. 내가 보고싶을 때 마다 문자를 보내놓겠다는 말을 익히 들어놓은 터라 수업 하나가 끝나고 핸드폰을 확인하면 열 몇 개씩 들어와있는 문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나를 박지민은 눈꼴 시다는 듯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곤 했다.
김태형의 어머니는 내가 김태형의 병실로 올 때 까지 김태형 곁을 지키고 있다 내가 오면 집으로 돌아가 밀린 집안일과 잠을 보충하시곤 했다. 어머니를 봐서라도 나는 꼬박꼬박 병실로 출석도장을 찍어야 했다. 고마워. 태형이가 널 보면 그렇게 웃더라. 내 두 손을 꼭 부여잡고서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시는 어머니에 나는 그저 아니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도 태형이 보면 좋은데요, 뭘. 내 말에 어머니는 내가 봐 왔던 모든 모습들 중 가장 해사하게 웃으셨다.
오늘도 어김없이 9시에 야자를 끝내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병원으로 하교하기 시작한 뒤로 박지민은 꼬박꼬박 나를 병원 정문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곤 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내 말에도 박지민은 고집스럽게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김태형이 안 그러면 퇴원 후에 저를 죽인다고 했다는 말과 함께. 병원 입구에 도착해서 박지민을 보낸 후 병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쩍 벌리는 엘리베이터에 밖으로 발을 디뎠다. 매일 지나다니던 복도였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어두침침한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걸음을 일부러 빨리 놀려 급히 병실로 향했다. 오늘은 봐야할 문제집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었다.
"김태형. 누나 왔,"
"……."
"…뭐야, 어딨어."
문을 벌컥 열어젖힌 병실은 적막하기 그지 없었다. 불은 환하게 켜져 있으면서 정작 있어야 할 사람은 없는 병실에 나는 김태형의 빈 침대로 향했다. 이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김태형은 이런 걸 이렇게 곱개 개어놓을 위인이 못 되는데. 어머니도 집에 가신 듯 했다. 사각지대가 거의 없는 병실을 한참이나 구석구석 뒤졌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김태형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화장실 갔다가 넘어지기라도 했나, 아니면 산책이라도 갔다 아무도 없는 데서 쓰러지기라도 했나. 매고 있던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병실을 뛰쳐나가 데스크로 향했다. 당직을 서던 간호사 언니가 토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언니, 김태형 못 봤어요?"
"태형이? 병실에 없어?"
"없어요. 맨날 이 시간에 오면 있었는데…."
간호사 언니도 그새 심각한 얼굴을 하고 기억을 되짚는 듯 했다. 태형이. 태형이가, 아까 본 것 같은데…. 한참을 생각하던 간호사 언니가 아, 하며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아까 산책 한다고 나갔어."
"이 시간에요?"
"응. 그냥 좀 답답하다면서. 어머니 가시자마자 엘리베이터 타던데?"
"…아."
"얼마 안 됐어. 아마 옥상 올라갔을 거야. 1층 내려갔으면 너 오는 길에 마주쳤을 거니까."
고맙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풀리려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은 채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사람 가슴 내려앉게 하는 데는 뭐 있다, 김태형. 끝 층을 누르고 숫자가 바뀌는 계기판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병원 옥상은 하늘정원처럼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주로 소아암 병동 환자들이 이용하곤 하는 그런 곳인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이러는 걸까. 오늘따라 올라가는 속도가 더뎠다.
어릴 적 몇 번 와 보고는 아예 발길을 끊었던 이 곳은 나름대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곳곳에 벤치도 있고 완연한 여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름 꽃이 만개한 채 밤바람에 흔들리는게 낮에 오면 더 예뻐보일 듯 했다. 그닥 넓지 않은 이 곳에서 김태형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옥상 끄트머리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야경을 내다보는 김태형의 환자복이 옅은 바람에 작게 나부꼈다. 어째 더 말랐냐. 마른 등을 가만 바라보다 느리게 김태형의 뒤로 걸음을 옮겼다. 야, 김태형. 동글동글한 정수리에 손을 얹으며 김태형의 이름을 불렀다.
"엄마야!"
"…야."
"……."
"너 입에 뭐냐, 그거."
내 인기척에 화들짝 놀란 김태형이 뭉개지는 발음으로 엄마를 찾으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어눌한 발음에 뭔가 싶어 바라본 김태형의 입가에는 다름아닌,
"너 미쳤지."
"아니, 공주야. 그게,"
"미친, 새끼가, 죽어 가는거, 살려놨더니!"
"아니야, 잠깐만,"
"담배? 너 진짜 죽고싶어서 환장했냐?"
담배 한 개비가 물려있었다. 앞서 말 했듯이 김태형에게는 격한 운동, 음주, 흡연은 절대금기시 되어있었다. 마구잡이로 저를 강타하는 내 손길에 김태형은 인상을 있는대로 찌푸리다 이내 벌떡 일어나 내 두 손목을 한 손으로 덥썩 잡았다. 공주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물고 있는 담배를 훅 뱉으며 다시 인상을 펴낸 김태형이 배싯 웃었다.
"공주야, 이렇게 사람 놀래키는 게 어디 있어."
"빨리 저거 설명 해. 너 진짜 살고싶지 않은가보지?"
"너 그거 알지."
뭐, 뭘 알아. 아직까지 내 손을 결박하고 있는 김태형은 영 놓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바닥으로 떨어진 담배를 쳐다보았다. 불 붙힌 흔적이 어디에도 없는 긴 장초였다.
"불을 붙이지 않으면 담배는 사람을 죽이지 못해."
"……."
"그리고 난 한 번도 불을 붙인 적이 없어. 이건 그냥 상징이라고. 잇새에 죽음의 물건을 물고 있으면서도 그 죽음을 행할 수 있는 힘은 주지 않는 거지."
"…무슨 헛소리야."
내가 인상을 팍 찌푸리자 김태형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김태형이 내게 무어라 이야기 한 문장들을 곰곰히 곱씹다 고개를 번쩍 들어 김태형과 눈을 맞추었다. 야, 너.
"그거 어디서 본 말이야."
"뭘."
"어디서 그럴듯한 말을 주워듣고 와서 네 행동을 정당화 시키냐고. 평소에 일상적인 대화도 제대로 안 되는 주제에."
"…책에서."
김태형이 히 하고 웃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김태형의 손에 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어내며 김태형이 방심한 틈을 타 손을 올려 김태형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으이구, 인간아. 내게 맞고도 김태형은 허허 웃었다.
"아, 너 그럼 설마."
"뭐?"
"너 체육대회때 계주 뛰겠다고 떼 써서 내 속 뒤집어 놨던 날."
너 그 날 쓰레기장에서 손에 들고 있던 것도 담배야? 불현듯 그 날이 생각 났다. 나를 보자마자 주머니에 집어넣어 급히 숨기던 그 것. 그 때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 그런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횡설수설 했던 김태형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김태형이 내 눈치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겉멋만 들어가지고."
"……."
"담배 누가 사다줬어."
몸 상태가 괜찮을 때 만들겠다며 아직 민증도 안 만든 주제에 간도 크다. 환자복 주머니에 담배곽을 넣어 놓았는지 네모낳게 도드라진 주머니를 가만히 응시하다 옥상 난간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담뱃불만 안 붙였다면 나쁠 건 없었다. 그제서야 오죽했으면,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물쭈물 대답을 미루던 김태형이 나를 힐끗 바라보다 또 작게 입을 열었다.
"박지민이."
"박지민?"
"…응."
"…아이고, 머리야."
지금 심장때문에 다 죽어가는 친구한테 담배를 사다 바쳤다고? 이마를 짚으며 담배를 내 놓으라는 내 말에 김태형은 반박 한 마디 못 하고 그대로 내 손에 제 담배곽을 올려두었다. 그래도 지민이 너무 뭐라 하지 마. 내가 사다 달라고 엄청 닦달했어. 그 와중에도 제 친구는 챙기는 김태형의 행동에 픽 웃음이 터졌다. 말보로 레드. 익히 들어 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성분표시를 한참동안 들여다보다 곽을 열고 담배 한 개피를 꺼내들었다. 내 행동을 가만히 주시하던 김태형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야, 뭐 해."
"너도 했는데 내가 못 할 건 또 뭐야."
"……."
"우리 이러고 있는 거 아빠한테 걸리면 우리 진짜 다 죽는 거 알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주위에 담배 피는 사람이 일절 없던 터라 물고 있는 폼이 꽤 어색했을 터였다. 나를 연신 빤히 바라보는 김태형에게도 한 개비 꺼내 건넸다. 그걸 받아서 무는 김태형의 폼은 꽤 익숙했다. 나 몰래 이 짓 많이 했나보네. 한 명은 환자복 차림에 한 명은 교복, 것도 무거운 책가방까지 매고 담배 하나씩 물고 있는 꼴이라니. 누가 봐도 혀를 차고 지나갈 법한 우리의 모습에 김태형과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너 용케 안 걸렸다."
"내가 이거 숨기느라 애썼지."
"어떻게 박지민이랑 짜고 치고 나를 속일 생각을 했어. 대담하다."
물고 있던 담배를 도로 손에 쥐고 굴리던 김태형이 푸스스 웃었다. 만물이 생동하는 여름임에도 김태형은 문득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같았다.
"가끔 죽고싶었던 적이 있었어."
"……."
"태어날 때부터 심장은 말썽이지, 끝도 없는 치료는 힘들지, 엄마는 나만 보면 울지."
"……."
"근데 너도 알잖아. 나 겁 많은 거."
"……."
"이 것도 반항이야. 내가 나한테 하는 반항."
"……."
"불을 붙이면 당장 내일이라도 죽지만 붙이지 않으면 나는 기약 없이 살 수 있잖아."
"……."
"…나 살고싶어."
저 말을 하나하나 뱉어내는 김태형의 가슴은 짓눌리다 못해 문드러졌을 것이다. 자리에서 물고 있던 담배를 난간 너머로 던져버리고 네 자그마한 머리를 끌어안았다. 누가 너 죽는대. 응? 누가 그래, 누가. 나 조차도 뭐라고 하는지 모를 말들을 계속해서 쏟아내었다. 김태형의 가슴이 문드러진 만큼 내 속도 쓰라렸다. 안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김태형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마당에 내가 울어버리면 김태형의 가슴은 더 썩어들어갈게 분명했다. 김태형이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공주야.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응.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도 김태형은 짐짓 모른 척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야경 예쁘더라."
"……."
"오래 보고싶어, 이 거."
"……."
"너랑."
그 날 처음으로 입을 맞추었다. 입술만 맞대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애절하고 또 애틋했다. 이 날 이후 김태형은 잠을 자는 시간이 더욱 늘어났다. 아빠 말로는 몸이 버텨주지를 못 하는 거라고 했다. 문자메시지가 뜸해지고 병실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 날 김태형에게서 빼앗은 담배는 책상서랍에 고이 놓아두었다. 김태형의 살고자 하는 의지를 차마 멋대로 버릴 수 없었다.
기말고사는 금방 끝났다. 생각보다 점수를 잘 받았지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줄 김태형이 도통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태형에게 들렸다 가자는 박지민을 살살 달래 먼저 보내놓고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문자메시지는 사흘 전에 멈춰 있었다.
[야 나 시험 끝났어]
[너랑 놀아주느라고 공부도 못 했는데 성적 잘 나옴]
[그러니까 제발 좀 일어나라]
[야경 보자며]
[꼭 내가 사랑한다고 해야겠냐]
[일어나면 사랑한다는 말 백 번도 더 해줄테니까 일어나 태형아]
[사랑해 보고싶어]
*
안녕하세요, 썸머비 입니다.
뭐지 뭔가 이번에도 굉장히 짧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별 내용도 없는 것 같은데...아아;ㅅ;
그리고 제가 치환기능을 테스트 해봤는데 뭐가 제대로 되지를 않더라구요
설정 안 해놓은 글자가 막 뜨고 그래서...
치환기능은 어렵지만 그래도 여주가 독자님들이라고 생각하고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따로 떼어놓고 보지 마시고! 태형이에게 사랑받는 여주가 여러분이라 생각하시고! 읽어주세요!^0^
댓글 남겨주시고 또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분들 제가 많이 사랑합니다♥
특히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은 제가 시간 날 때마다 들어와서 한자 한자 정독해요ㅠㅠ 넘나 감사드리는 것...
저는 밤을 샜지만 다들 일어나실 시간이네요... 허허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
아 그리고 태형이가 책에서 봤다는 저 대사는
존 그린 작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라는 책입니다!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이기도 하죠.
저 대사를 쓰고싶어서 오늘 편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것 참... 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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