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중한 외모는 물론이고 이왕이면 몸매도 착하면 좋겠어. 연기도 잘해서 나쁠건 없잖아? 가수가 노래만 부르라는 법이라도 있나? 드라마가 좀 안될 것 같다 싶으면 급하게 아이돌이라도 투입시켜서 시청률 덕좀 보고 영화 출연으로 관객수들 좀 매꿔 보는게 요즘 추세지 뭐. 그리고 얼굴은 가능한 손을 댄듯 안 댄듯 하게 자연스럽게 가자. 또 과거 사진 불러들여서 성형 의혹만 생겨나면 골치 아파진다. 노래 실력 기를 시간에 그냥 헬스장이나 다녀, 정 부르기 싫다 싶으면 대리녹음이라도 알아볼게 넌 목소리가 흔하니까 비슷한 목소리 가진 사람 구하는 건 별로 어렵지도 않아. 좋은 소속사 만나서 데뷔 못하면 어디 스폰서라도 한 번 알아봐. 요새들어서 티비에 주구장창 나오는 걸그룹 걔 알지? 걔도 스폰서 한 번 잘 두니까 요즘 광고며 드라마며 영화까지 다 꽂아주잖아. 요즘 누가 노래실력으로만 아이돌을 해? 그냥 겉모습으로만 화려한게 최고야. 대중들한테는 그게 관심을 받는거고 인기를 얻는거라니까!
연예인의 조건
주인공들의 과거시절 장면을 함께 촬영할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본리딩을 하는 날이 왔다. 항상 드라마 대본을 끼고다니며 연습을 했었는데 주변에서는 얼른 드라마 내용에 적응해야한다며 내 이름대신 '구름이' 라 부르고 다녔고..그것에 익숙해진 나는 어느샌가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에 극중 역할에 꽤나 몰입을 하고 있었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내가 맡은 역할의 내용을 쭉 살펴보니 현재 나의 이야기와도 비슷해서 금방금방 내용을 숙달하며 대사를 외워갔다. 사실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였지만 최대한 현실감 있게 해보려 연습도 많이 했다.
"안녕하세요 이번 드라마에서 한구름 과거 역할을 맡은 김여주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극중 한상준 과거 역할을 맡은 도경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집에서 꽤 많이 연습을 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배우들 틈에 껴서 대본을 읽어보려니 연습한 만큼의 실력이 나오지도 않았고 게다가 나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은 이미 수준급 실력의 연기를 하고있었다. 그만큼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부담이 커져가고 있었다.
"야, 한구름. 너 정말 내 눈앞에서 안보이면 안되겠냐?"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그러는거야?"
"네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못났다는 거, 그게 잘못됐어. 네 문제점이라고!"
..이게 대본이야 내 일기장이야?
게다가 저 상대역할도 연기를 너무 리얼하게 해서 연기인지 실제 나에게 하는 말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다. 그만큼 연기를 잘 한다는 거니까 칭찬해줘야 하는거겠지? 근데 나 왜이렇게 슬프냐.
"아무튼, 네 그 못난모습 보이지 말고 빨리 사라져져줘라. 좀 보기 거북해."
"야, 넌 진짜..! 나 이 학교 나오는 것도 오늘이 끝이고 앞으로 네 얼굴 안보는데 정말 마지막까지 이래야겠니? 그러고도 네가 내 친구야?"
"친구? 난 너같은 친구 둔 적 없어."
"한상준 너 공부 잘하고 인기 좀 많다고 건방지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계속 그렇게 나가다간 너 분명히 후회해. 알아?"
"몰라 그딴거. 그냥 꺼져."
암흑같았던 첫 대본리딩이 끝났다. 대본을 정리하고 하나둘씩 나갈 준비를 하는데 저 옆에서 감독님이 다가왔다.
"여주씨, 연기 정말 처음하는거 맞아요?"
"네? 네! 처음 맞습니다.어색했던 게 너무 많았죠? 좀 더 공부를 해왔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절대. 처음 치고는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굉장히 의욕이 넘치는 친구네. 저희 드라마 총 16부작 중에 과거 씬이 한 3부작 까지 나갈거에요. 생각보다 그렇게 적은 분량이 아니여서 2주정도 풀로 녹화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여주씨는 도경수씨랑 촬영하는 부분밖에 없거든요, 다른 배우분들과 찍는다고 해도 30분도 채 안될거고.."
"네네!"
"좀 일정이 빡셀것 같아서 당장 내일부터 배우들끼리 대본연습 하기로 했으니까 여주씨도 늦지말고 경수씨랑 틈틈히 연습해서 촬영당일에 완벽히 연기해야 해요, 알았죠? 보니까 경수씨가 연기를 꽤 잘하더만..연습하면서 연기에 대해 부족한 점이나 궁금한거 있으면 경수씨한테 조언 얻어가면서 하면 도움좀 될거에요."
"네네!"
"그럼 잘 부탁합니다 김여주씨!"
"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감독님이 연습실을 나가신 후에야 나도 나갈 준비를 했다. 어쩌다보니 제일 일찍 와서 제일 늦게 나가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안넣고 나간 의자까지 하나하나 넣어 정리까지 끝낸 후 연습실 불을 끄고 나왔다.
"지금 나와요?"
"어, 선배님! 아직 안가셨어요?"
"아까 정신이 없어서 개인적인 인사를 제대로 못해서요. 반가워요 여주씨,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경수 선배님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거였는데 나는 선배님 내민 손을 두 손으로 잡고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얼핏 누군가에게 들었다. 연예계 선배님들은 군기잡힌 후배를 좋아한다고..그래서 나도 힘껏 군기를 모아 외쳤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경수 선배님이 그닥 탐탁치 않은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맘에 안드시는 구나..
"그 선배 호칭..듣기 좀 민망한데"
"..예?"
"보니까 다른 멤버들한테는 오빠라고 부르면서 저는 왜 선배라고 불러요?"
"아, 그거야! 연기로 치면 선배님이니까! 그래서 선배님이라 불렀는데 불편..하셨나요?"
"음..생각해보니까 다른 애들이랑 좀 다르게 불리는게 나쁘진 않네요. 특별해진 기분도 들고."
"그렇죠..?"
"아무튼, 우리 잘해봅시다? 왠지 느낌이 좋은게 잘 될것 같네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에 첫 촬영 날짜가 잡혔다. 그 이유인 즉슨, 첫 씬부터 내가 비에 홀딱 젖은채 나와야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장면을 위해서 실제 비가 내리는 날을 촬영날로 잡기로 했고 드디어 오늘, 고대하던 나의 연기가 카메라에 담기는 날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비바람까지 불어오니 추위는 배가 되었고 나는 얇은 교복 하나만 걸친채로 촬영에 임해야했다.
S#1.
평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구름이. 비가 내리던 날, 구름이는 뒷골목에서 같은 반 아이들에게 폭력을 당한다.
그 때, 때마침 상준이 골목길을 지나가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구름이를 발견하고 둘은 눈이 마주쳤으나 상준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무시하며 지나간다.
라고 대본에 쓰여져 있는 내용이 바로 오늘 촬영할 장면이였다.
글로만 읽어도 벌써부터 추워진다. 비를 맞으며 폭력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
감독님은 짧은 씬이지만 그만큼 충격적인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며 '짧고 굵게!' 를 강조하셨고 나 또한 만발의 준비를 했다.
촬영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입고있었던 패딩을 벗고 카메라와 조명들이 세팅되어 있는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 모두 정숙해 주세요! 촬영들어갑니다! 레디..큐!"
"이래서 세상에 못생긴 것들은 사라져야 한다니까? 크크큭. 야, 한구르음~ 고개좀 들어봐! 어?"
순희는 쓰고있던 우산의 끄트머리로 구름이의 머리를 쿡쿡 찌르며 밀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하나둘씩 비웃고 있던 반 아이들.
"네 얼굴은 역겨울 정도로 못생겼는데 이름은 또 안어울리게 구름이가 뭐니?"
"킥킥"
구름이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아이들의 괴롭힘을 그대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진짜!!"
순희 옆에서 폭력을 동조하던 지혜는 구름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대로 구름이의 뺨을 때렸고 주변 아이들도 하나둘씩 구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골목길에는 비 내리는 소리와 누군가에게 발과 손으로 맞고있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던 구름이는 참지 못할 고통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라도 청해보고자 옆으로 고개를 돌렸고 자신의 앞에는 상준이 서있었다.
구름이는 간절했다. 상준이에게 제발 자신을 이 곳에서 구해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상준은 미동도 하지않은 채 계속 그 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제발,제발..!'
하지만 상준은 우산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채, 구름이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 후로도 구름이는 맞고 또 맞았다. 교복의 하얀 와이셔츠는 까맣고 더럽게 짓밟힌지 오래였고 치마는 아이들의 조롱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후, 구름이는 그 골목길에서 한참동안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바닥에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 자신의 몰골을 엄마에게 보여 줄 자신이 없던 구름이는 그만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반대로 옮겼다. 그때, 아까 자신을 무시한채 지나갔던 상준을 만났고 구름이는 그런 상준을 원망한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뭘 봐?"
예상대로 싸늘했던 상준, 그대로 너의 어깨를 치고서 지나간다.
"난 너같이 찌질한 애들은 딱 별로야. 그러니까 네가 그런 대우를 받는거겠지."
마음에 비수를 꽂는듯한 말을 흘리고간 상준. 그 말에 구름이는 더욱 더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그래! 내가 이렇게 생기고, 못난게 죄지? 그러면 너희가 원하는대로 내가 사라져주면 되는거니?"
구름이의 외침을 들은 상준은 뒤를돌아 구름이를 한참동안 쳐다본다. 그리고 상준이 방금 전과는 다르게 새하얀 이를 보이며 웃었다.
"그래."
"큐!!좋았어!"
감독님의 만족스러운 마무리 멘트까지 듣고나서야 오늘의 나의 분량의 촬영은 마무리 됐다.
그리고 끝이 나서야 느끼게 된건데...
춥다!!!!너무 춥다!!!!이건 인간이 느낄 수 없는 극한의 추위다!!!!!!!!!!!!!!!!!!!!!!!!!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몸의 긴장도 덩달아 풀려버렸는지 너무나도 추웠고 이까지 '달달달달' 부딪힐 정도로 떨었다.
머리와 온 몸은 비에 젖은 채 산발이 되어있었고 게다가 칼바람까지 불어오니 정말 미칠노릇이였다.
코디언니랑 매니저오빠가 급히 난로를 찾으러 간 사이 나는 간이의자에 앉아 추위에 떨며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툭-'
그때 누군가가 내 등 뒤로 커다란 담요 하나를 걸쳐주었다. 매니저오빠가 난로를 가져왔나보다! 하며 뒤를 돌아보니
"많이 춥죠? 어떡해 다 젖으셨네.."
매니저 오빠가 아니라 경수 선배님이었다.
순간 드라마와 현실을 분간하지 못했던 나는 좀전의 연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한상준 이 나쁜 놈! 감히 병주고 약주는거야?' 하며 화를 낼 뻔 했지만 이성적으로 돌이켜보니 이건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첫 촬영치고 너무 고생하셨어요. 여주씨 연기 정말 잘 하시던데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상준이라는 녀석 너무 나빴던 것 같아요. 그쵸?"
"네 맞아요! 현실에 있었으면 진짜 때리고싶었을 거에요.."
난 한상준이라는 녀석을 때리고싶다 했는데 오히려 경수 선배님이 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요?"
"..아, 장난! 하하하!"
"되게 재밌으시네..아, 맞다"
경수 선배는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뒤적 거리며 뭔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건네주었다.
다름아닌 핫팩 2개.
"여주씨 쓰라고 제가 데워놨어요. 매니저 올때까지 이걸로 손이라도 녹이고 있어요."
"와..잘쓸게요"
와 대박..심지어 따뜻하다 못해 엄청 뜨겁다. 아무래도 쉣킷쉣킷 계속 흔들어서 발열을 한게 분명하다.
감덩..
"..? 여주씨 그러다가 울겠어요..크큭 어떡해"
"아..진짜 너무 추워가지고..아 이거..정말..하하..굉장히 따뜻하네요..하하하.."
살다살다 핫팩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은건 처음이다. 진짜 너무 추웠는데 따뜻한 걸 손에 넣으니 추위가 싹 사라질 것 같았다.
"여주야!!"
저 멀리서 매니저 오빠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다. 난로를 껴안은 채로.
"매니저분 오셨네, 전 이만 가볼게요. 감기 안걸리게 조심해요 여주씨."
"네! 안녕히 가세요 선배님!"
경수 선배님이 자리를 뜨고 매니저 오빠가 우다다다 달려와 내 앞에 난로를 세워놓고 바쁘게 불을 켜기 시작했다.
"여주야 제발 감기는 걸리면 안된다..우리 앞으로 해야 할 촬영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그리고 또 어디서 구해온건지 오빠는 유자차에다가 핫초코까지 내 양손가득 컵을 쥐어줬다.
진짜 내가 감기라도 걸릴까 조마조마해 하는 매니저 오빠의 모습이 너무 웃겨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푸하하하하!"
"야 웃지마 감기걸려!"
"아 무슨 웃는데 감기가 걸려!!"
"소리지르지마 감기걸려!"
"..아나"
연예계 초짜 김여주와 그 옆에 초짜 매니저.
마치 라잌 환상의 조합이다.
연예인의 조건 10 完
(암호닉 신청해주셨는데 이 목록에 없으신 분들은 저에게 말해주세요~곧바로 수정해드립니다!!)
그리고 암호닉 신청해주실 때는 [암호닉] 이렇게 써주시면 제가 더 알아보기 쉽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