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이 서서히
잿빛 구름으로 멍드는 걸 보니
그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했다.
하늘은 흐리다가도 개면 그만이건만
온통 너로 물든 내 하늘은
울적하단 말로 표현이 되려나.
- 서덕준, 멍
아, 또 그 꿈이다.
언제나 반복되는,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파란 하늘을 닮은 파란 대문. 녹슬어 버린 내 마음에는 과분한 파란색.
꿈속에서는 그리도 선명했던 파란색이, 눈을 뜨면 서서히 색을 잃어가는게 싫어 나는 어느때와 같이 눈을 감았다.
다시 그 대문이 눈에 띄었으면, 간절히 바라며.
-
느릿하게 눈을 뜨자 여느때와 같은 교성이 들려왔다. 아 ㅆ..작은 욕짓거리를 내뱉은 나는 곧바로 겉옷을 챙겨 뛰쳐나오듯 집을 나섰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라이터와 담배 몇 개피를 찾아낸 나는 후-한숨을 크게 내쉬고 옥상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일한 곳. 이 곳에 오면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어 종종 찾곤 했다.
여느때나 그랫듯이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담배연기만 푹푹내쉬던 나는 시선을 내려 수많은 집들을 바라봤다.
저녁때가 되어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집들.
그래, 집은 저런 것인데. 들어서는 순간 따스한 기운이 제일 먼저 반겨주는, 밥먹으라며 나를 이끄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있는.
언제부턴가 내게 집은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쓸쓸하고 외로운 공간이 되버렸다.
-
담뱃곽을 탈탈 털어봤지만 나오는 거라곤 담뱃재뿐이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챙긴 점퍼에 현금이 있을리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를 다 헤집어 털어봤지만 역시나. 가기싫어 주욱-늘어지는 발걸음을 끌어당기며 나는 집으로 느릿하게 향했다. 대문에 들어서자 추하게 번진 립스틱을 손으로 벅벅닦아내며 나를 반겨주는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가 보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2살이 되던 해 기저귀값을 마련하려 밤낮으로 일하던 공사장에서 떨어져 병원비만 축내다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그때의 빚을 갚기위해 내가 20살이 된 지금까지도 몸을 팔아 빚을 갚고있다. 갚아도 갚아도 늘어만 가는 이자에 어머니도 이젠 손을 놓으셨고 빚은 점점 불어만갔다. 아침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햇살이 따스히 비춰주던 우리집은 어느새 반지하로 내려왔고, 이젠 그마저도 월세를 내지못해 쫓겨날 지경이었다. 밤낮으로 대문을 두드려대던 사채업자들의 독촉도 이젠 익숙해진 내가 너무나 처량해 헛웃음이 나왔다.
이젠 아무것도 바라는게 없다. 바라는게 있다면 그저 이 빌어먹을 목숨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하루라도 빨리 거두어주는것, 그거 하나 뿐이다.
-
당장 먹을 쌀조차 떨어진 지금, 걱정도 되지 않는지 여느때와 같이 남자와 놀아나는 어머니를 한심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집을 나섰다. 막상 나오니 갈 곳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못한 나에게 연락할 친구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저 거리를 방황하던 나의 발걸음이 막다른곳에 다다르자 멈춰섰다. 고개를 들어 앞을 확인한 나는, 커다란 벽에 막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모습이 초라하고 서글퍼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눈물이 마르고 목이 잠겨 더이상은 눈물조차 나오지않음을 느낀 나는 우는 것 하나조차, 슬퍼하는 것 하나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없는 현실이. 한 번도 내편을 들어준 적이 없던 무심한 하늘이 너무나도 미웠다. 이렇게 살바엔 차라리 죽는게 더 편하지않을까..?
모든걸 포기하고 싶었던 나는 죽지못해 꾸역꾸역 살던 삶을 이제는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현실로 옮기려 하고있었다.
-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설때마다 왜이리 미련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현실에 미련이라고는 담뱃재만큼도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였는데 왜 자꾸만 어머니생각이 나는걸까. 내가 없어도 잘 견딜수 있으려나, 지금은 몸을 굴리는 그녀라해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랑하는 어머니임에는 예전과 다를바 없었다. 그래, 그녀는 아직도 나를 사랑했다. 아마 변한것은 '나'이려나.. 이런저런 생각끝에 도달한 결론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더이상 살고싶지않았고, 이 지긋지긋한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슬아슬한 난간끝에 선 나는 고개를 숙여 밑을 바라보았다. 내가 죽으려는 순간까지도 세상은 철저히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세상에 이제는 진저리가 났다.
생각을 마친 나는 아득한 밑으로 끝없이 추락해갔다.
그런데 왜 이 순간 나는 꿈속의 파란대문집이 생각나는걸까. 죽을 순간이 되면 주마등처럼 모든 기억이 스쳐간다던데 아마 이게 그건가 보다. 죽는 순간까지도 실없는 소리를 하던 나 자신이 어이없었던 나는 실소를 지으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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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