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내가 스타킹 까만색신고 나오라했지. 빨리 다시 들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왜, 하루만 봐주라! 졸업식이잖아 석민아 응? 한번만! 안될까? 한번마안-'
내 팔을감고 어리광을 피우듯 붙는 너에 작게 한숨을 쉬고 알겠다했다. 나는 살색스타킹 싫은데, 그래도 내가 너를 어떻게 이겨. 어짜피 교복도 오늘뿐인데, 너도 오늘뿐이고. 내가 알겠다하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총총거리는 너를 오늘도 다정하지못하게 대했다.
"넘어진다고. 앞 잘보고 걸어 좀. 차도라서 위험하잖아, 안쪽으로 걸어."
신날때마다 어쩜 저렇게 통통거리며 튀는지, 중학교때랑 다른게 없다. 여전히 귀여운거같기도,
졸업생들이 모두 모여있는 강당에 들어서자마자 너는 친구들을 부둥켜안고 재잘재잘거렸다. 오늘이 끝이냐며, 이제 못보는거냐고, 모른척 하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있다. 야, 나도 오늘 끝인데 좀 안아줘라.
'야, 석민아! 나 우리반자리로 간다! 톡 해!'
톡을 하라고 먼저 너네 반 인파속으로 사라진 너는, 졸업식 내내 앞에서 전교회장이 연설을하든, 교장선생님이 훈화말씀을 하든 관심이 없어보였다. 친구들이랑 장난치고, 셀카찍고. 남자애들이랑도 장난치고? 이게 진짜.
[야] AM11:28
[야] AM11:28
[걔네랑 얘기하지마] AM11:29
[장난도 치지마] AM11:28
[니 여자친구들이랑 셀카나 찍고놀아] AM11:28
[그리고 앞에서 졸업식 하는것도 좀 보고] AM11:29
[나 이제 상받으러 나간다] AM11:30
공부를 못하지는 않는 성적이라, 앞에 나가서 상을 받는데 그 와중에도 널 찾아 시선을 그리로 두니 입모양으로 '석민아 완전 멋져! 우리 석민이 최고! ' 하며 엄지를 마구 치켜들고 있는게 보인다. 친구들도 툭툭치며 자랑을 해대는데, 누가보면 네가 상 받은 줄 알겠다.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실컷 사진을 찍고 오더니, 왕방울만한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온다. 내가 울 줄 알았다, 진짜.
"울어?"
"나 봐봐, 고개 들어봐. 얼굴 좀 보자"
운다, 네가. 오늘이 널 볼 수 있는 마지막날이 될지도 모르는 졸업식. 너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한참을 그렇게 울어댔다. 오늘 다 울고 내일은 울지마라 봉아, 응? 달래줄수도 없는데,
너를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조잘조잘 얼마나 잘도 떠드는지, 오물조물하는 입, 가끔 핸드폰을 두드리는 얇고 긴 손가락, 단정하게 맞춰입은교복, 춥다고 벌벌떠는 모습까지도. 이 모든걸 내일이면 못본다는 생각에 울컥했지만, 남자가 가오죽게. 울면쓰나.
오늘따라 짧게 느껴지는 하굣길에 벌써 네 집에 다다랐음에, 오늘은 꼭 해야만한다고 다짐했던 말들을 점점 촉박해져오는 시간에, 맥락없이 쏟아냈다.
"좋아해"
"대답은 나중에 들을래."
"그대신. 생각하는동안 밥 잘챙겨먹고, 잘 지낼 수 있지?"
"나중에 대답 들으러 꼭 올거야,"
"나 간다, 잘 지내고 있어. 첫사랑."
그렇게 너를 바래다주고 하고싶었던 말을 다 하고 너의 반응은 살필 생각도 하지않은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또 우는건아닌지, 그래도 잘 다녀올게. 이기적이지만 네가 날 잊지않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득했다.
.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다른누구도 아닌 널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길었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2년전 내가 급히 꺼냈었던 말들에 누구보다 당황했을 너를 알았고, 네가 내치면 내쳐지더라도, 받아줄때까지 들이댈 생각이었다.
네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네가 마치는 시간에 맞춰 네 강의실 앞으로 갔다. 시간을 맞춰온 보람이 있는지 짐을 부랴부랴 챙겨나오는 네가 보여 문 앞에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바쁜지 나를 못알아보고 그냥 지나쳐가는 너를 돌려세워 눈을 맞췄다. 2년이나 지났는데 변한게 하나도 없네. 놀라는것도 똑같아.
"오빠왔다, 칠봉아."
"나 안보고싶었어?"
"못알아보는건 너무했다, 변했어"
"그래서 대답은? 완전 기대하고 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