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이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가고, 따스한 햇살이 내 얼굴위로 닿았다.
노란색으로 물든 유채꽃밭 너머로 보이는 파란 바다.
이제 막 피었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아직 활짝 피지 못한 유채꽃들이 틈새 사이사이로 비쳤다.
유채꽃밭 사이로 들어가자 내 다리를 스쳐 지나가는 유채들이 간지러웠다.
유채꽃밭 한 가운데에 서서 보는 제주도의 풍경이란.. 이만큼 예쁜 것이 어디에 있을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유채꽃 한 송이를 꺾었다.
"너 거기서 뭐하는거야?"
뭐하냐니? 보면 모르나? 난 유채꽃밭에 서있었고, 유채꽃을 방금 하나 꺾었다.
그리고 꺾은 유채를 보며 지금 웃었다. 저 아이는 이상한 아이구나.
내가 있는 게 보이면서도 뭐하냐고 물어보다니.
"너 뭐하냐고 물었어."
"나 유채꽃밭에 서있는데?"
"너 지금 내 꽃밭에 서있어."
"그게 어때서?"
"내 꽃밭이야. 내가 직접 심고 길러온 꽃밭이라고. 너가 맘대로 들어가다가 유채가 망가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짓을 한 거야?"
누가 자기가 직접 길러온 꽃밭인 줄 알았나. 그냥 예쁘길래 들어왔지..
저 아이는 내가 들어와서 기분이 많이 나빠진 것 같았다. 미안해졌다.
근데 평소에도 자존심이 많이 세서 굽히지 않는 나라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망가진 유채도 없었고..
"안 망가졌잖아."
"이미 망가졌네."
"내가 들어온 길은 저 길이야, 망가진 게 어디있다고 그래? 너 초면에 말이 심한 것 같다고 생각 안 해?"
"망가졌잖아."
"내 눈이 이상한건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걸어온 길에 망가진 유채가 있어? 없어! 나는 진짜 안 망가뜨렸어!"
자꾸 유채를 망가뜨렸다고 하는 저 아이. 도대체 정체가 뭐지? 눈이 많이 안 좋은가?
아님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가? 자꾸 우기는 저 아이에게 결국 짜증을 냈다.
내가 언제 유채를 망가뜨렸다고.
"너 손."
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내 손에는 꺾여진 유채꽃 한 송이가 쥐어져 있었다.
그 아이가 말한대로, 나는 유채를 망가뜨렸다.
무슨 자존심에 계속 밀고 나갔을까, 그냥 사과나 할 걸... 엄청난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너 이제 어떡할거야."
"내가 뭘..?"
"유채 말이야. 너가 망가뜨렸잖아. 피해 보상을 해야지."
"왜 말이 없어, 피해 보상 안 하겠다고?"
"아니.. 크게 피해본 것도 아니고! 유채 한 송이인 것 뿐인데! 솔직히 사진 찍으려고 하다보면 꺾을 수도 있지!"
"야. 너 상식이란 게 있긴 있냐?"
"ㅁ.. 뭐?"
"상식이 있으면 꽃을 꺾지말라는 기본은 알고있을텐데, 꺾을 수도 있다니.. 너 대단하다."
그 말을 뒤로한 채 아이는 가버렸다. 아니, 진짜 아무 것도 안 하고 유채 한 송이만 꺾었을 뿐인데!
눈을 동그랗게 생겨서 순하게 생겨가지고는... 성격 하나 안 좋네.
계속 이렇게 꽃 밭 한 가운데에서 있을 수도 없고, 나가서 맛있는 거나 먹어야 겠다.
"아 진짜 이게 뭐야!"
이게 뭐람. 괜히 원피스를 입었나. 다리와 원피스에 노란 유채꽃가루가 잔뜩 묻었다.
어쩌면 오히려 원피스를 입은 게 더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바지 입었으면 바지 전체가 유채꽃가루 투성이였겠네.
이 상태로 버스를 탈 수도 없고. 도대체 어떤 용기로 제주도로 혼자 여행을 올 생각을 했을까.
면허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저 멀리 보이는 바닷가로 가서 씻을까하다가 관뒀다.
"아까 버스 타고 올 때 이 방향으로 왔으니까... 반대방향으로 가면 되겠다!"
무작정 내가 온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길을 걸었다. 근데 체력이 정말 안 좋은 나는 얼마 못가 주저앉았다.
엄마가 예전부터 여자는 아무데나 막 앉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치마 입고서는 더더욱,
근데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기서부터 호텔까지 어떻게 가.. 이렇게 힘든데..
엎친 데 덮친 격이랴, 유채꽃밭에서 이상한 아이를 만난 상황에, 유채꽃가루가 묻은 마당에,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나 진짜 어떡해.. 누가 나 좀 살려줬으면 좋겠다.
"뭐하냐?"
어, 아까 그 아이다. 고개를 올려 쳐다보니 아이가 아니였다. 소년. 그 말 그 자체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아이같았는데. 이렇게 보니 제주도에 사는 순수한 소년이라고 해야하나..
순수하고 순박한 소년 같았다.
아! 시골 소년.
"길 안비키고 뭐하냐고."
아 진짜 저 싸가지. 싸가지도 저런 싸가지가 없을 거다.
저런 싸가지 덕분에 정말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제주도 여행은 싸가지가 다 했다.
"야, 길 비켜."
"길 좁은 것도 아닌데 그냥 피해서 가."
"난 이 길로 가야겠단 말야."
"너 솔직히 억지 진짜 심해"
"아 그냥 일어나라고."
"아니 내가 왜!"
"너 유채꽃가루 다 묻었잖아. 해는 저물었는데, 여기이렇게 주저앉아보면 딱 답 나오는거 아냐?"
"너 오늘 집 못 가잖아."
"그래서 너 일어나라고."
"저녁도 먹고 잠은 자야할 거 아냐."
싸가지가 달라보이는 순간이였다.
♥ 사랑하는 나의 님 ♥ |
원우야 밥먹자 |
헤헤 여러분 연애의 철학이에요! 사실 저는 주특기(?)가 아련한 글인데 이렇게 좀.. 밝은 글도 써보고 싶었어요
사실 주특기도 못하고 다 못합니다.. 그냥 안 써두면 제 머리에서 사라질 것 같아서 쪄두는거에요
여기서 여주가 생각한 승관이 이미지는 제가 승관이를 보면 떠오르는 망상 중 하나에요
엄청나게 순수한 유채꽃밭을 기르는 소년..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랍니다 ㅋㅋㅋ
오늘은 여주의 이름이 나오지 않아요.. 다음 편부터 나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