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승호랑 하루를 보내면서 느낀 점은, 음…… 말수가 좀 줄어든 것 같지만 원래 말이 많지도 않았잖아. 큰엄마 말처럼 곤두섰다거나 반항하는 느낌은 없었는데. 좀 어두워진 면은 있지만 그건 제니도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각자의 그늘이 있지. 나는 그 그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때로는 그늘이 그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어른들은 눈치 못 챘겠지만 나도 종종 그렇다. 욕하고 싶고 울고 싶고 죽고 싶고 내가 너무 초라하고 막막하고 불행한데 이상한 것에 웃음을 멈출 수 없고 아무나 보고 두근거린다. 아니, 아무나는 아니다.
가끔은 이번 인생을 한번 살아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어떤 구슬에 갇혀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어른인 내가 있어서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을 때도 있다. 그 기분은 진짜다.
때로는 지금의 내가 어른이 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어른인 나는 어딘가 젊은 이모 같은 느낌이다. 어른인 나는 지금보다는 세련됐지만 여전히 평범하다. 어려운 음악을 들을 줄 알고 제목도 잘 외운다. 어른인 나는 늘 혼자 걷는다. 어른인 나는 이상하게도 늘 가을에 있다. 가을 배경에 가을 옷을 입고 있다. 살짝 추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