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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아이들 03
w. 태봄
도착한 곳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호화로워 보이는 건물이었다. 낮지 않은 높이에 부자들의 부의 상징이 될 것 같은 그런 건물이었다. 얼핏 보면 회사로 착각할 정도로 말끔한 모양새에 옅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건물로 들어서자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닥이 신발 밑창에 닿아왔다. 남준의 얼굴을 본 지나가는 사람들은 익숙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남준은 손바닥을 들어 올리는 행동으로 인사에 답했다. 사람들은 남준의 옆에 서 있는 나를 보며 궁금하단 표정을 지었지만 남준은 형식적인 웃음을 짓고 자리를 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16층은 누가 봐도 대단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포도주색의 카펫이 깔린 복도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며 한 걸음 두 걸음 남준을 따라갔다.
복도 끝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만한 모양새가 꼭 이 건물의 주인 같았다. 그가 내뿜는 위압감에 어깨가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너희 아빠 어디 갔냐고 빨리 말하라니까?”
“저도…… 몰라요….”
“우리 기분 좋게 가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석진은 몇 번이고 아이에게 부모님의 행방을 추궁했다. 들려오는 대답은 항상 똑같았기에 석진의 목소리가 살짝 격앙되었다. 화를 내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푸는 손길이 약간 거칠었다. 후- 한숨을 내쉰 석진은 남준에게 데리고 나가라며 손짓했다.
남준에게 거의 반강제로 끌려 나왔다. 등 뒤로 문 닫는 소리가 들릴 때 온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혼이 빠져나올 것 같았다. 뒤에서 나를 잡아오는 손길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카펫에 드러눕지 않았을까.
남준은 이 건물에 마련되어있는 방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다섯 숫자의 비밀번호를 누른 남준은 나의 가방과 함께 나를 방 안으로 넣어버렸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옷을 꺼내 갈아입고방을 둘러 보았다. 방 하나에 욕실과 주방이 딸려있는 방이지만 넓지도 크지도 않았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이 방에는 침대 하나, 텔레비전 하나, 테이블 하나, 옷장 하나. 과하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가구들이었다. 이곳은 혼자 지내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적당히 어두운 톤의 가구들이 시야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알맞게 따뜻한 이 방에서 왠지 모르게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 꼭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남준이 석진 몰래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이 방을 정리해놓은 사실은 시간이 가도 영원히 모를 테다.
한쪽 벽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서울의 야경이 눈에 가득 들어찼다.
혹시 하는 마음에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역시나 별은 떠 있지 않았다. 할머니 집을 내려갈 때마다 해가 지면 마당의 평상에 정국이와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국이와 별들의 이름도 지어주고 달에게 소원도 빌고. 사소한 추억들을 기억하고 싶었지만 왜 하늘엔 별들이 없는 걸까.
욕심 많은 사람이 다 가져간 것이라면 하나라도 나에게 내어 달라고 구걸하고 싶었다. 내어 주지 못한다면 바라볼 수라도 있게 해달라 애원하고 싶었다.
정국아 너와 나의 예쁜 추억을 증명해줄 반짝거리는 별들이 보이지 않아. 내 그리움으로 하늘에 별을 놓는다면 그 하늘엔 은하가 흐를 거야. 하나도 아니고 백 개도 아니고 천 개도 아닌 수만 개가 넘을 테지.
자꾸만 허해지는 마음에 텔레비전을 켰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어떤 이야기를 패러디하고 있었다. 원래 이야기는 이건데. 들어볼래?
한 사나이가 물에 빠졌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황소가 그에게 물었다.
“구해줄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신이 저를 구해주실 겁니다.”
남자는 허우적거리며 신을 기다렸다. 곧 조금 있다 다시 황소 한 마리가 지나가며 물었다.
“구해줄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곧 신이 저를 구하러 오실 거에요.”
그리고 그 남자는 물에 빠져 죽어 천국으로 갔다. 남자는 천국에서 만난 신에게 질책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저를 구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신은 남자를 어리석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가 너에게 황소 두 마리를 보내지 않았느냐.”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하긴 할까? 신이 과연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개입하여 우리를 위험 상황으로부터 구해줄까? 신은 과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나의 상황도 지켜보고 있을 테지. 신이시여.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정말 이대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아요. 평범하던 삶이 너무 그리워요.
어쩌면 신은 한 명뿐이라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도와주고 싶지만 못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방관하고 있는 자의 마음도 찢어질 것이다.
나를 도와주지 않는 신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어떠면 지금도 나를 도와주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하나를 주면 열 개를 원한다. 더는 원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따뜻한 방의 온기에 감사하며 이불을 덮고 누웠다.
꿈속에서라도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예쁜 꿈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누나……누나!”
“일어나봐 빨리. 우리 시간 별로 안 남았잖아.”
“나 저기 가보고 싶단 말이야.”
정국이가 내 손을 잡고 끌었다. 맑은 하늘에 두둥실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니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한쪽은 숲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쪽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는 그런 곳이었다. 허전한 손에 끼워진 반지가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내가 언제 이런 걸 낀 적이 있었나? 반지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숲으로 들어가는 정국이를 쫓아 들어갔다. 마녀의 숲 같은 그 곳으로 정국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들어갔다. 나뭇잎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햇빛이 오묘한 색깔을 띠며 내 위로 쏟아졌다. 주위를 둘러봐도 정국이가 보이지 않아 계속, 계속 숲으로 들어갔다. 어디 있니 정국아. 보고 싶어.
깊은 숲 속 많은 아이를 만났다.
구슬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도,
이마를 나무에 붙이고 눈을 감은 아이도,
연못의 한가운데 돌 위에 앉아 그 밑을 바라보는 아이도,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아이도,
비눗방울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도,
그네를 타고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는 아이도,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떨어져 있었어도 서로서로 위로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 나를 보고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하나같이 입을 닫아 버리더라.
아. 아이의 모습이 맞나? 정확히 말하자면 소년과 성인의 경계선에 있었던 아이들 같다.
궁금한 마음을 애써 접으며 내가 서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너무 예쁘다. 나에게 다가오는 나비의 미묘한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려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흐릿하게 들려오는 정국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나, 누나가 여기까지 왜 왔어.”
……정국아? 우리 정국이 맞아?
“데려다줄게. 가자.”
시선의 끝에 맺힌 정국이의 모습을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무릎을 굽혀야 눈을 마주칠 수 있던 정국이는 어느새 고개를 올려다봐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내 손에 꼭 들어오던 손은 반대로 내 손을 덮을 정도로 커버렸고, 아기 같던 목소리는 이제 찾을 수도 없었다.
정국이의 손에 들린 나비 모양의 연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펄럭였다. 정국이는 연을 바라보다 내 손을 꽉 잡아왔다. 손이 아릴 정도로 꽉 잡았다. 진지한 목소리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누나.”
여기선 내가 누나보다 나이 많은데. 그래도 누나는 내 영원한 누나야.
“누나. 정신 차리고 내 얼굴 쳐다봐.”
누나. 우리가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확실히 말 못 하겠어.
“내 얼굴 기억할 수 있지? 내 얼굴 기억해.”
누나가 마지막으로 볼 정국이야. 나는 이제 누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 그냥 누나 주위를 맴돌게. 아무도 모르게.
정국이가 마지막으로 내뱉을 말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 정국이 잘 컸네. 누나가 뿌듯해. 나보다 훨씬 큰 키가 적응되지 않았지만 내 눈에 모든 감정을 담고 정국이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흘러 눈동자는 흐릿해졌지만 내 모든 감정들이 전해졌을 거라고 믿는다. 내 동생 정국이니까 다 알아줄 것이다.
사랑, 애정, 원망, 그리움, 불안감, 두려움, 기쁨.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닫혀 있던 입술이 동시에 떼 졌다.
“이제 나 없어도 울면 안 돼.”
‘이제 누나 없이도 혼자 잘 수 있지? 누나 없어도 울면 안 돼.’
나는 정국이와 같은 곳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국이는 마지막으로 나를 꼭 안아주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연의 방향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따라갈 수 없었다. 정국아. 건강해야 해.
내 주위를 날던 나비가 코앞으로 날아왔다. 파란색의 날개를 가진 나비는 묘하게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 순간 손을 옥죄어오던 반지가 느슨해지고 눈앞에 있던 나비가 희미해지면서 눈을 떴다.
어느 순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당연히 이 모든 것은 꿈이었다.
정국아. 나는 너를 다시 마주할 때 그렇게 마주하고 싶지 않았어. 마지막 순간 너의 해맑은 모습을 기대하고 너를 보냈는데 왜 너는 이런 모습으로 내 꿈에 나타났어? 차라리 장난감을 들고 나를 찾아와 놀아달라 떼를 쓰지. 그렇다고 너를 원망하는 건 아니야. 그저 너에게 아무것도 못 해주는 내 모습에 내가 화가 난 거야.
팔로 무릎을 감싼 그녀의 체구는 어린아이같이 작고 약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입을 틀어막고 우는 그녀의 모습이 가냘프다. 크게 들썩이는 어깨를 두드려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정국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옆에서 같이 울어주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얘기를 해보았지만 아무도 듣지 못해 더 슬픈 대화였다.
별도, 달도 다 들었지만, 그 애처로운 목소리를 모른 체했다. 각각 자신들의 방법으로 이 애달픈 남매를 위로했다. 오늘따라 밤하늘이 유난히 밝았다.
누나를 슬프게 하려고 꿈에 나온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누나를 우리 세계로 초대해 버렸어. 미안해.
있잖아.
아까 누나한테 막 화내던 형이 우리 엄마, 아빠를 죽였어.
우리 할머니 집에 가려고 했는데 까만 옷 입은 형들이 엄마, 아빠 막 때렸어.
그 형한테 아빠가 미안하다고 울면서 얘기했는데 그 형이 웃으면서 탕-. 탕-.
누나 나는 아무것도 못 했어.
그 소리가 무서워서 눈을 꼭 감았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누나는 행복해야 해. 나 말고 누나가 건강해야지.
자주 찾아올게. 잘자 누나.
해가 뜨기 전 정국은 달을 찾아 떠나 버렸다. 그가 떠난 곳엔 그의 눈물방울들이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떠오르는 해는 이 사실을 알까.
예전에 정국이의 동화책을 읽다 알아버린 사실이 얄미웠다.
네버랜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잠시 머무르다 가는 곳이다. 놀지도 못하고 꿈도 꿔 보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즐기다 가라고 마련한 그런 꿈의 놀이터이며 어른들도 없다. 오로지 아이들끼리 웃고 즐기며 행복해한다. 그렇게 즐기던 아이들은 한순간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간다.
창밖으로 햇볕이 들어올 때까지 엉엉 울었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는 가슴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퉁퉁 부어버린 눈보다 알 수 없는 엄마, 아빠와 정국이의 행방이 더 걱정되었다.
다음 날, 뉴스에 흘러나오던 소식에 정말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리고 싶었다.
‘아빠, 엄마, 아들. 가족 여행 가는 도중 차에 불이나…… 원인은 불분명.'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도 모자라 나를 밑바닥보다 더 낮은 그 밑바닥의 나락까지 끌어내렸다. 가슴이 아려왔다. 이 고통을 어찌 다뤄야 할까. 막막했다. 모든 것이.
타버린 자동차에서 익숙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도피하고 싶었다. 며칠 내로 일어난 일들이 모두 다 꿈 같았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숨을 쉬고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슬픈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내가 미웠다.
가족들은 이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텐데.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차라리 그때 같이 간다고 얘기할걸.
꺼져버린 텔레비전은 듣지 못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같은 차에 있던 아이는 현재 시신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아이는 과연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현재 검찰 측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니 곧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애는 어쩔 거야? 맥박은 뛰는데 죽일까? 버릴까?”
석진은 남준의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다. 남준은 어떤 대답을 듣던 저 아이의 삶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남준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건 사고 현장에 불을 붙이려는 조직원들의 행동을 조금 늦추는 것이었다.
석진의 입에서 나온 대답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들이 나왔지만, 그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때의 상황과 분위기는 아무도 표현하지 못하리.
남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데리고 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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