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네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를 사랑했다.
톡, 톡. 검지로 책상을 두어번 쳤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새벽 2시나 되었다. 요즘 글이 안 써진단 말이지, 글이. 성규는 양 손으로 제 머리를 흐트러 놓았다가, 노트북 위로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냉수나 마실까 하고 냉장고 앞으로 가 찬물을 꺼냈다. 차갑다. 이미 소화가 다 되버린 빈 속에 차가운 것이 들어가니 몸이 으스스 하고 떨렸다. 언제까지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성규는 슬럼프였다. 꽤나 이름을 날린 소설가라고 해도 슬럼프는 극복해 나가야 할 하나의 과제였다. 가장 성공한 소설은 파라다이스. 지난 8월에 영화화 되어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한 소설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과연 이 명성이 언제까지 갈까. 별은 한 순간만 반짝인다. 마치 별똥별이 반짝하고 곧바로 추락하는 것처럼.
“성규형.”
“어?”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요?”
“글이 잘 안 써져서.”
먼저 명수를 불러낸 것은 성규였다. 간 밤에 잠을 설치고서 느지막히 일어나 여전히 부글거리는 배를 쓰다듬으며 오늘은 술 말고 커피나 한 잔 할까 하는 생각에. 명수는 고등학교 후배였다. 글을 쓰는 내게 뜬금없이 찾아와 제자로 받아달라고, 정말 팬이라고. 웬 잘생긴 녀석 한 명이 무릎까지 꿇고서 말하는 모습에 성규는 바람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고 그 후 부터 명수는 성규를 졸졸 쫓아다녔다. 전형적인 이과 체질이었던 명수는 간단한 시 조차 쓰기 어려워했었는데. 그랬던 놈이 지금은 떠오르는 신예 소설가가 되어있다. 그게 내가 진짜 명수를 도운 건지 모르겠지만.
“나 조금 쉬려고.”
“쉰다뇨?”
“다음 작품은 천천히 생각해보고, 지금은 좀 휴식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
“그럼 저도 같이가요.”
“어딘 줄 알고 같이 간데.”
“어딘데요?”
산 속. 꽤나 무게를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장난치지 말라는 명수의 말에 웃음기 싹 뺀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갈 거야, 도시와는 가까운 곳에 있는 숲 속에서 좋은 공기도 마시고 소재도 얻고 건강도 챙기고. 이것 저것.
“그럼, 대신에 제가 자주 찾아갈게요. 아니 매일매일.”
“매일은 무리다 인마. 말이라도 고마워.”
“진짠데 안 믿네요?”
빨대를 뒤적거리며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들였다. 쓰다. 한 달 정도, 길어지면 세 달. 정말로 쉬어야 할 것 같다. 나를 위해서도 내 소설을 위해서도.
“여기예요?”
“응. 조용하고 좋지? 집도 꽤 넓은 것 같고.”
집 주변에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했다. 이따금 참새들도 날아들고 커다란 창문으로 실크같은 햇살이 들어와 반짝거렸다. 혼자 있기엔 딱이였다. 명수 녀석은 굳이 집들이를 하겠다며 이것 저것 많이도 사왔다. 간단히 몇 달만 지내려고 짐들은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오늘만큼은 따라와 준 명수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 여기 지하실도 있네요?”
“지하실?”
“지하라고 하기엔 뭐하고, 아랫층이랄까 뭐 여기서 살던 분도 작가셨나봐요?”
정말, 부엌 옆에는 아래로 난 조그마한 계단이 있었고 그 공간은 아늑했다. 서재같은 공간이었다. 글을 써도 될 것 같은 작은 책상도 있었고. 어쩐지 여기 살던 분이 옛날에 글을 쓰던 분이라는 소리가 사실이었나보네. 성규는 흡족스레 웃고는 커다란 창문 앞 쇼파에 누웠다. 노곤한 느낌에 금방 잠이 왔다. 명수 녀석이 크게 소리쳤다.
“저 뭐 먹을 것 좀 사올게요. 저녁이라도 해주고 가려구요.”
“니가 내 마누라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주면 고맙지.”
명수가 집을 나서자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낮 12시밖에 안 되었는데. 그 생각을 끝으로 성규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 . .
“으, 내가 얼마나 잤지.”
아까보다 밝은 햇빛에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눈을 떴다. 그렇게 많이 잔 건 아닌가보다. 아직 낮인걸 보면.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자 시침은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명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작은 탁상 위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형 죄송해요
급히 가봐야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네요
내일은 꼭 저녁 해드릴 거예요.
탁상 밑에는 잔뜩 찬거리가 담긴 마트 봉지가 있었다. 성규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허리를 몇 번 돌리곤 커다란 창문 밖을 바라봤다. 응? 저런 게 있었나? 들어올 땐 미처 보지 못했던 커다란 흔들의자가 있었다. 근데, 누가 있다? 내리쬐는 햇볕에 금색 빛으로 물들어 보석 처럼 반짝이는 검정색 머리칼이 의자에 가려 숨박꼭질을 하는 양 애태우며 흔들리고 있었다.
“거기… 누구 있어요?”
미완성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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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응팔 정팔이 전교1등인데 공군사관학교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