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남사친 김종대 썰 2 (부제 : 아프면 말하라고)
오늘따라 유난히 일찍 눈이 떠졌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아, 어제까지는 분명 괜찮았는데 오늘 갑자기 왜이러지… 김종대랑 약속도 있는데… 아파서 못 간다고 하면 김종대 이 새끼는 또 네가 많이 먹어서 몸이 무거운 걸 아픈 거라고 자기 합리화 하지 말라며 약올리겠지… 대충 톡으로 못 간다고 해야겠다. 근데 얘는 또 무슨 톡을 보낸거야…
「 야 」
「 야 아직도 자냐 」
「 너 또 어제 라면 먹고 잤지? 」
「 준비하면 톡해 데리러 갈게 」
「 팅팅 부은 얼굴 볼 만 하겠네 」
진짜 김종대 이 새끼가… 누구는 지금 아파 죽겠는데. 일어나지도 못하겠네. 밖에서 한 세 시간은 혼자 기다려봐야 정신차리지? 김종대 너 내가 몸만 다 나으면 죽을 줄 알아… 김종대한테 그냥 '나 오늘 못 만나' 라고 톡을 보냈더니, 「 아 왜 」「 미안해 」 「 진짜 잘못했어 」이러는데 뭔지는 알고 이러는 건지 참… 너 때문에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겠어, 김종대. 아, 머리 깨질 것 같다. 잠이나 더 잘까…
그리고 깨어난 건 네 시나 넘어서였다. 몸은 좀 가벼워 진 것 같은데, 나 왜이렇게 오래 잔 거야…? 원래 낮잠을 안 자는 나라서 열 시간 가까이 잤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김종대 이거 설마 계속 기다리고 있진 않겠지 하고 톡을 확인 해 봤더니, 「 야 왜 톡도 없고 전화도 없어 」 「 집 앞이야 」 「 안나오냐 」「 너 어디 아파? 」「 아픈 거 맞네 」 하는 톡들 뿐 이었다. 톡 온 시간을 보니까 한 시간은 넘게 기다린 것 같은데 미안하네… 일단 병원이나 좀 갔다올까.
진찰을 받고 진료실을 나왔다. 감기몸살… 으, 진짜 싫어. 처방전이 나오기를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김종대한테서 톡이 또 왔다. 「 야 돼G 」「 왜 확인 하고 답 안함? 」 「 빨리 답 안하면 진짜 구워먹어 버린다 」 이게 사람만 자꾸 약올리는구나… 망할 감기몸살만 아니었어도 내가 널 구워먹어 버렸을텐데. 망할 김종대 같으니라고… 처방전을 받고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약국으로 가는데, 쌩쌩 부는 칼바람에 괜히 열이 더 나는 것 같았다. 약국에 들어가서 처방전을 내고 의자에 앉아서 다시 기다리는데, 이번엔 지이잉- 하고 톡이 아닌 전화가 왔다. 역시 김종대한테서.
“…여보세요…?”
사실 이 전화도 받을까 말까 살짝 고민했지만 혹시라도 김종대가 걱정 할 지도 모르니 코맹맹이 소리임에도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는데, 왠일로 김종대가 말이 없다. 뭐야, 내 휴대폰이 벌써 고장난 건가? 왜 소리가 안 들리지… 하고 있는데 약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전화를 끊어버렸고, 약봉지를 들고 약국을 나와서 집에 가려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횡단보도 너머로 보이는 죽 가게가 눈에 띄었다.
“…아프니까 죽 먹고 싶다.”
아프니까 왠지 죽을 먹어야 될 것 같은 느낌에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마자 바로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뛰어가서 죽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런데 저 어디서 본 것 같은 뒷통수는… 저 남자가 설마 김종대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무슨 죽으로 사 갈까 고르는데, 죽 가게 사장님이 '전복죽 여기있습니다' 하면서 전복죽을 남자에게 건네주고 남자가 돈을 계산대에 내려놓는 그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뒷통수더라니. 김종대가 계산을 마치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야, OOO”
“…어, 어…?”
분명 너랑 나는 친구임에도 너한테 혼날 것 같은 느낌에 주눅이 들어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앉아있던 테이블의 의자를 꺼내 나와 마주 앉은 김종대가 천천히 내 얼굴을 살펴본다. 그리고 많이 아프냐면서 내 머리를 쓰담쓰담했다는 건 전설 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고… 김종대가 내 이름을 부른 후 제일 먼저 한 말은,
“전화는 왜 또 끊어.”
전화 왜 끊었냐고 나 혼내기. 약국에서 약 받느라 잠깐 끊은 거라는 분명한 핑계아닌 이유가 있었지만 그게 왠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눈알만 요리조리 굴리는데, 그러다가 김종대 양 손에 바리바리 들려있는 봉지 안의 약들을 보게 되었다. 김종대 너 약국을 털은거냐. 그러다 한 마디 더 하려던 듯 하다가 내 손에 들려있는 약 봉지에 눈이 간다.
“약 타다 왔네?”
“어, 방금…”
“잘 했어.”
내가 지금 열 여덟 살이나 먹어서 친구한테 혼나기나 하고… 이게 뭐하는 짓이래. 이내 김종대가 '전복죽 샀어, 얼른 집가서 먹어야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김종대를 따라서 나도 일어나고 딸랑- 하는 방울소리와 함께 죽 가게에서 나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집 방향이 이 쪽이 아닌 김종대가 자꾸 우리 집 쪽으로 같이 걸어준다. 우리 집 쪽으로 가면 돌아서 가야 될 텐데도. 그래서 말을 걸었다.
“집, 안가…?”
“갈 꺼야, 근데 너 데려다 주려고 이러는 거잖아.”
하루종일 걱정만 시켰을 나인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날 챙겨주는 너에게 고마웠다. 드디어 우리 집 쪽 골목에 다다랐고, 김종대도 나한테 말을 걸었다. 왜 자기한테 아픈 거 말하지 않았냐는 거였는데, 그 말을 듣자 마자 갑자기 입이 확 트이면서 말이 줄줄 나와버렸다.
“나 아프다고 그러면 뭐, 내가 많이 먹어서 몸이 무거운 걸 아픈 거라고 하지 말라면서 뭐라 그럴거 아니야”
“……”
“그래서 너한테 일부러 말 안했다, 왜?”
그러고 나서 죽을 뺏어들고 너보다 세 발자국 앞서 가 우리 빌라 계단을 올라갔다. 발자국 소리가 빌라에 울렸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쇠로 따고 확 열려는 찰나, 빌라에 가득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문고리를 돌리던 손이 멈췄다.
“장난도 구별 못하냐, 바보야.”
“……”
“앞으로는 아프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 해.”
왠지 너의 말에 마음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를 걱정해 주는 너에게 괜히 투정을 부렸던 내가 바보 같기만 했다. 이렇게 고마운 너에게, 고맙다고 말 할 수 없는 내가 바보 같기만 했다.
“죽 꼭 먹고 약도 잘 챙겨먹고, 빨리 나아라.”
문고리 돌리는 소리에 살짝 놀라서 뱉은 '어' 하는 너의 목소리도 들었다. 집에 들어간 후 겉옷을 벗고 창문으로 내려다 본 어둡고 텅 빈 골목은, 너 하나 만으로 환해졌다. 그리고 이유 모를 너의 가벼운 걸음을 보며, 기분 좋게 하루를 끝내게 해준 너를 보며. 오늘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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