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청춘들이 흔히 착각하는 대표적인 환상이 하나 있다. 그 이름도 찬란한 아들 부잣집 홍일점 딸의 생활! 첫째, 아들 부잣집 딸은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라 참할 것이다. 둘째, 우애가 존나게 좋아서 연애는 고사하고 저들끼리 하하 호호 즐겁게 살 것이다?
그 어떠한 가식도, 조미료도 없이 순수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여러분, 좆까세요!
도대체 어떤 아들 부잣집 무식자가 그런 환상을 심어줬는지, 심지어 리얼리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는 텔레비전의 그들마저도 홍일점의 이미지를 내 24년 인생과 정반대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말이다. 언니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 잘 들으렴, 아가들아. 하늘을 우러러 BL수집과 덕질 이외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산 나 김아미가 오늘부터 그 환상을 제대로 부숴주노라!
부제 : 우리 집에 게이가 살아요!
금슬이 좋다 못해 흘러넘치는 우리 아버지와 엄마의 밑으로는 슬하 네 명의 자식이 있다. 나는 아들 부잣집 홍일점은 맞지만 안타깝게도 막내딸은 아니다. 그래서 화려했던 사춘기 때는 잠시나마 내 인생이 더럽게 흥미로웠나 싶은 생각도 여러 번 했었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 집 아들새끼들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사실 겉으로만 봤을 땐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 빠지는 인물들은 없다. 그것마저도 재수 없는 게 밖에 나가면 사람들은 왜, 그래도 잘생겼잖아! 라는 이유만으로 내 숱한 고민들을 안타가 아닌 홈런으로 그것도 심지어 구장 밖으로 던져버린다. 그래도 데리고 다니기엔 창피하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인건지, 아니 사실 이제는 이게 좋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앞서 멀쩡한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욕설이 느껴지는 기분은 다들 자연스럽게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내 인생이 당당히 ‘더럽게 흥미롭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
아무래도 우리 집에 게이가 사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문장을 조금 더 감각적으로 풀어 이야기 하자면 성격 빼곤 허우대 멀쩡한 김家네 세 고추들이 같은 게 달린 놈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말이다!
아직 그들은 내가 의심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내가 누구냐, 감히 자랑 한 번 해보자면 최신 BL 동영상부터 만화책, 소설까지 누구보다 빠르게 수집하고 사들여 이 부분에선 소문난 덕후라 이 말씀이다. 장장 아이돌 팬질 인생만 10년, 그동안 읽은 팬픽 수만 해도 만화책으로 건물을 세웠을 내 주변에 그것도 가족 중에 게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실로 영예의 전당에 오를만한 일이다.
뭐 이런 식의 투정 아니, 내 흥미로운 불행들은 앞으로도 주구장창 지겹도록 나올 예정이니 본격적으로 우리 집 아들새끼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김상중 아저씨의 말처럼 그런데 말입니다, 고추밭에 대해 말하자니 이야기 거리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일단 첫째, 김석진. 나이는 스물여섯 의대생 막 학년이자 예민함이 극에 달한 우리 집 상전이다. 김석진은 내가 태어난 해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며 늘 내 탓을 하지만 난 장담할 수 있다. 그건 본인 팔자라는 새끼가 엿 같을 뿐 이라고.
연년생이라 오빠고 뭐고 없다. 그저 내 치킨을 뺏어 먹기 바쁜 라이벌 새끼밖에 안 된다. 사진으로도 알 수 있겠지만 인중이 빛나는 미남이다. 내 핸드폰엔 인중남이라고 저장되어있다. 우리 집 장님, 아 실수다. 정말 실수다. 아무튼 다시, 우리 집 장남이 저렇게 멀쩡한 얼굴을 가지곤 매년 무슨 데이 때마다 집에 들고 오는 음식이니 선물들이 한 트럭인데도 여자 한 번 제대로 사귀어 본 적 없는 모태솔로이다.
그런데 그런 모태솔로남이 요즘 수상쩍은 행동을 시작했다. 마치 짝사랑하는 여자가 생긴 것 마냥 말이다. 처음엔 드디어 여자를 만나는구나 싶었는데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여자의 촉감, 그 중에서도 덕후들의 촉감은 무서운 수준을 떠나 소름끼칠 정도라고. 내 덕촉이 아주 곤두서기 시작했다.
의대 막 학년이라 실습 때문에 집에 들어오는 것은 고사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김석진이 근 한 달 만에 집에 들어와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14시간 째 내리 취침 중이던 어느 날 이었다. 좀비처럼 늘어져선 생사까지 궁금하게 만들었던 그가 정성스럽게 목욕재계를 하곤 헐레벌떡 준비를 하더란다. 그러더니 한참을 옷장 앞에서 서성였다.
“뭐함?”
“야 아미야 패딩이랑 코트 중에 하나 골라봐”
“얼어 뒤질 일 있어? 패딩 입어”
그 때가 아마 엘사 년이 말도 없이 내한하는 바람에 집에서도 꽁꽁 싸매고 있을 때여서 친절하게 패딩을 추천해줬더니 망설임 없이 코트를 입더라. 미친 새끼 그럴 거면 왜 물어봤대?
“네가 추천해주는 거 입는 순간,”
“……?”
“내 인생 광탈이다 동생 년아”
아, 우리 집 애완견보다 못한 새끼. 재수 없는 대사 하나 틱, 날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약 리스트 같은걸 챙겨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차키 챙겨서 나가 길래 무의식중에 또 되물었다.
“쉬는 날 밥도 안 쳐 먹으면서 어딜 나가?”
“박지민 아프대. 나갔다 온다.”
현게 후보 1위, 김석진
둘째는 난데 일단 넘기고 셋째 김남준부터 이야기 해보자. 역시 연년생으로 작년 겨울에 전역했으며 스물셋의 건장한, 3월에 칼 복학할 예정의 대학생이다.
우리 4형ㅈ, 아니 4남매 중에 그마나 서로 사이가 가장 좋은 편인데 요즘 빨리 머리를 길러야 한다며 자꾸 야동 사이트를 뚫어달라고 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물론 조금 튕기다가 군말 없이 뚫어주는 이유는 나도 야동을 꽤나 즐기기 때문이다.
김석진은 그래도 이성에 대해서 관심은 있었지만 얜 도무지 여자엔 통 관심 없던 놈이었는데, 입대하더니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되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김남준은 언더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랩퍼라서 컴퓨터를 엄청나게 좋은걸 쓴다. 고로 김남준의 입대는 자연스럽게 그의 컴퓨터가 내 것이 된다는 소리였는데, 호기심에 아무리 뒤져도 야동하나 나오지 않던 지루한 하드디스크의 깊숙한 곳에서 어느 순간부터 김남준이 휴가만 나왔다 하면 스멀스멀 음지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삭제된 파일을 복구할 방법은 몰라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제목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었다.
아무튼, 사실 난 김남준이 야동을 하도 열심히 보는데다가 요즘 틈만 나면 군대 동기인 정호석이라는 애랑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다니면서 술을 마시 길래 게이더망이니 뭐니 해서 전혀 내 의심 리스트에 오른 대상이 아니었다.
“또 나가?”
“엉 누나, 나 호석이랑 술. 늦으니까 엄마랑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말 좀 해줘.”
“야 너는 그렇게 정호석이랑 술 마시러 다니면서 어째 여자 하나 못 건지냐”
“뭔 쓸데없는 소리야.”
“아님 둘이 사귀냐?”
나갈 채비를 하는 김남준의 어정쩡한 머리카락들이 자리한 뒤통수에 대고 아무생각 없이 말했더니 글쎄, 신발 끈을 묶던 손이 멈칫하면서 그의 귀부터 뒷목까지 엄청 빨개진 것이 아닌가.
“아, 누나는, 어? 뭐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막, 어? 그렇게…!”
“장난인데”
“아씨 아니라고!!! 나 나간다!!!”
현게 후보 2위, 김남준
마지막으로 우리 집 막둥이 스물둘 김태형. 애교랑 텐션이 너무 과해서 귀찮은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밉상 짓을 안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취미는 가난한 내 지갑 털기요 특기는 부모님께 형제들 잘 못 이르기다.
부모님이야 하나 밖에 없는 딸보다 더 살가워서 낫다며 그저 예뻐하시지만 내 눈엔 그저 철이 덜 든 한 마리의 비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애완견인 상돌이 친구정도?
지나간 김석진 얘기는 자꾸 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 김석진과 막둥이 동생인 지민이와의 게이망측하고도 아리송한 관계는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고, 그 증거들이 수두룩해서 거의 확실시 할 수 있었지만 김남준과 김태형은 영 아니었다. 때문에 최근 들어 의심을 시작한 것이다.
더군다나 막둥이 이 녀석은 저의 형들과는 다르게 여자를 꽤나 사귀어본 편이다. 반반한 얼굴만 믿고 자신의 인기를 과시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를 갈아치워 대는데, 애석하게도 그 기간이 최대 한 달이다. 내가 만약에 얘 누나가 아니었으면 아마 욕은 고사하고 벽돌로 당장 대가리를 내려쳤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김남준에 이어 김태형이 게이더망에 잡힌 이유는 정말이지 순간이었다. 그 날은 마침 금요일이었고 금공강인 나는 집에서 여유롭게 퀴어 물을 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처럼 금공강인 김태형이 밥도 안 먹고 방에서 롤만 하다가 갑자기 노크도 없이 내방에 들어왔다.
“아미 누나야 뭐 봐?”
“영화”
“같이 보자!”
“가서 베게 갖고 와”
김태형의 트레이드마크인 건치웃음을 보이며 꾸물꾸물 내 침대로 들어온 그는 한참을 내 옆에서 말없이 초집중해선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감상을 했다. 영화가 절정으로 치달았고, 영화 속 남남 커플은 빗속에서 섹시한 케미를 선보이며 진한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쯤이었다. 보통이면 오 누나, 쩐다! 라면서 방정맞게 떠들어댔을 텐데 너무 조용한 김태형이 이상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니 마치 얼마 전 홍당무가 된 김남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곧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굳어있는 막둥이였다.
“야 키스신 한두 번 봐? 왜 이래 얘가”
“…누, 누나 쟤네 둘 남자잖아!”
“근데?”
“어떻게, 우와 그러니까, 대박, 아니 남자끼리 키스, 와 게이야? 이거 게이 영화야?”
“여태 잘 봐놓곤 지금 알았냐.”
마치 내가 염색의 o자도 모른 채 짧은 단발을 찰랑이며 이 한 몸 받쳐 사랑했던 슉아오빠를 처음 봤던 것 마냥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여전히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뽐내던 김태형은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내 방을 나갔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지만 말이다.
현게 후보 3위,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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