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현실적인 내가 낭만적인 너에게 고함.
written by. jjj
bgm. 햇살이 아파
시작하기전에 :)
제목에 진지병자 주의 되어있을만큼,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재미없을거에요ㅎㅎ 거의 진지한 대화형식이라…
주제도 그렇고 글 내용도 무거운데 거기다가 망글 똥글이라 올릴까말까 고민하다 그냥 한 번 올려보고 싶어서 올립니당!
현실적인 사람은 숲을 보고, 낭만적인 사람은 그가 사랑하는 한 나무만을 본다.
숲을 보는 사람은 숲에 거스르지 않고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지만, 숲에 맞추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자신의 진실 된 마음을 숨기거나 잃고 살아가기 바쁘다.
하지만 한 나무만을 보는 사람은 그 나무 하나로 만족하는 법을 안다. 많은 열매 부럽지 않은 ´내가 진짜 원하는 열매´를 쥐어주는 한 나무의 매력을 안다.
두 손 가득 넘치는 열매들과 내가 진실로 원하는 열매 하나. 무엇이 더 현명할까?
[기구]현실적인 내가 낭만적인 너에게 고함.
written by. jjj
1. 무슨 생각인거야?
˝기성용…기성용…기성용…!˝
근 두시간동안 핸드폰을 쥔 손을 부산스럽게 떨어대며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는 구자철의 눈에 근심이 한 가득이다.
그도 그럴것이, 대체 그런 말도 안되는 카톡이라니…!
구자철은 몇번이나 한숨을 내뱉으며 아까 기성용과 근 반년만에 나눈 카톡내용을 수십번 확인했다.
[기성용 : 곧 너네 아들도 학교 갔다 와서 대박 하나 터뜨릴텐데. 7:12]
ㅡ오랫만에 카톡해서는 다짜고짜 알 수 없는 말이네. 우리 자람이가 뭐. 7:13
[기성용 : 야 근데 진짜ㅋ 부전자전 피는 못 속이나봐. 존나 웃기네. 7:13]
ㅡ글쎄 뭔 소리냐니까. 7:13
[기성용 : 뭐, 난 되게 덤덤했어 우리 아들 커밍아웃에. 너 좋을대로 해라~하고 말았지. 7:14]
ㅡ너네 아들이라면…본성이? 본성이가 커밍아웃을 했다고? 7:14
[기성용 : 어 7:15]
ㅡ안 됐네. 자식새끼 열심히 키워놨더니 게이라니. 7:15
[기성용 : 그럼 너도 안 된거냐? 7:15]
ㅡ내가 왜. 7:16
[기성용 : 애인은 있다길래 누구냐니까 자람이라는데? 나-참 무슨 기구한 인연이냐 이건. 7:18]
![[기구] 현실적인 내가 낭만적인 너에게 고함 (동성/진지병자/스압/똥글 주의)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0/2/a/02a83eda84404f00855f277b859c8541.jpg)
![[기구] 현실적인 내가 낭만적인 너에게 고함 (동성/진지병자/스압/똥글 주의)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6/e/f/6ef8414fba045ab0ad4236814021eef6.jpg)
![[기구] 현실적인 내가 낭만적인 너에게 고함 (동성/진지병자/스압/똥글 주의)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c/3/a/c3ac129648bfa2c71cd3ad0724a61d0c.jpg)
˝아버지, 저, 드릴 말이 있...˝
˝안 해도 된다.˝
구자철은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교복도 벗지 않은 채 무작정 제 방문을 열어 젖힌 아들 자람을 애써 외면했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아들녀석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말하기로 결심했을 그 고백을 듣기엔,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
구자철은 손에 들린 애꿎은 핸드폰만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자철은 제 등 위를 차게 흐르는 식은땀을 모른척하며 기성용과의 마지막 카톡내용을 곱씹었다.
「[기성용 : 난 허락했는데, 너는 안 할건가봐? 역시 구자철. 실망이다. 7:21]」
ㅡ「…자식들 만큼은 우리가 걸었던 길 걷게 하지 말자. 힘들었잖아. 7:22」
「[기성용 : 아, 그 길? 자람이도, 우리 본성이도 걷지 않겠지.…너만 허락 한다면. 7:22]」
ㅡ「…기성용. 7:23」
「 [기성용 : 아 몰라, 몰라. 배 째. 나 서류정리해야되서 바쁘다. 씹음. 7:23]」
망할 기성용…. 이 다음부터 보낸 카톡에 전부 1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구자철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애써 삼키며 아직도 문 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자람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역시 저를 닮아서 단단한 눈매에 모든 감정이 드러나는 녀석이다. 지금, 자람의 짙은 눈썹은 굳은 빛을 내고 있고, 그 안의 선명한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
그 눈을 보고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람이는, 10년 전에 마누라 사고로 죽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란 말이다.
비록 사랑하진 않았지만, 아내는 착하고 좋은 여자였다.
자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오롯이 자철에 대한 제 사랑만으로 마지막까지 버틴 그런 여자.
자철은 그런 아내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 지금 꼭 드려야 하는 말인데….˝
˝자람아.˝
˝…예.˝
˝아버지 잠깐 통화 할 일이 있으니, 일단 네 방에 가 있어라.˝
˝…성용 아저씨께 하는 거죠?˝
˝…구자람.˝
˝…아니에요. 방에 가 있을게요.˝
탁, 자람이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힘없이 방문을 닫고 나간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구자철이 말없이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지금 자철의 머릿속에는 기성용, 또 기성용, 그리고 또 기성용, 온통 성용에 대한 생각 뿐이였다.
…아악, 자철은 소리없는 고함을 내지르며 바닥에 뻗어버렸다.
그렇게 뻗어버리고 조금 오랫동안, 자철은 밀어서 잠금해제 바(bar)만 몇 십번을 밀어댄건지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차마 이런 일로 전화를 하고싶지 않아서 잠금을 해제하고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간이 지나 화면이 꺼지면 얼른 다시 잠금을 해제하고…를 계속 반복해대는 통에 아주 죽을 맛이였다.
…이거 전화를 해, 말어. 아주 미칠 노릇이네. 젠장…기성용 이 개새끼, 뭐? 부전자전? 피는 못속여? 능글능글 거리는건 어째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지.
무엇보다 대체…대체 무슨 생각으로 본성이의 커밍아웃을 지지해준건지….
정말로 현실적이지 못한 놈이다.
「이상해.」
「뭐가?」
「니 입술 뭐냐? 존나 미치겠다.」
「아 미친…변태냐? 왜 이렇게 능글맞냐.」
「…이상해 진짜. 너 입술에 뭐 바르고 다니냐?」
「가끔 틀 때만 보호제 살짝? 오늘 발랐는데.」
「절대 밖에서는 바르지마라. 와, 나 진짜 못 참겠다. 진심이야, 이거.」
그런데 하필 지금, 열아홉 그 때 생각은 왜 나는건지.
2. 현실적인 나, 낭만적인 너
자람을 돌려보내고 꽤 시간이 지났다.
그간 잠금해제 후 카톡 창에 들어가는 것까지 성공한 구자철이였다. 의미없이 카톡 친구목록만 휘적거리던 자철의 엄지손가락이 이내 결심한 듯 채팅창을 눌렀다.
마침 기성용에게서 긴 카톡이 하나 와있다.
[기성용 : 우리 솔직히 사랑 안해서 끝난 거 아니잖아.
부모님께 걸리지만 않았어도, 우리 안 끝났을거야.
그때 난 목숨걸고 부모님 설득할 수 있었을만큼 널 사랑했었는데,
너는 그러지 못해서 우리 끝난거잖아. 이건 인정해라.
그렇게 헤어졌을 때 내 심정이 어땠었는지 아냐.
죽고싶은 건 당연지사고, 침대 위에 누워서 몇날 몇일을
숨만 쉬었어. 너없이 내가 밥을 먹고, 학교에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TV를 보고, 몸을 씻고 하는 그 모든것들이
아무 의미없다고 생각했거든.
난 내 아들한테까지 이런 상황 겪게 하고 싶지 않다. 미안. 8:13]
미친새끼. 오랫만의 돌직구네.
마지막 마침표 하나까지 꼼꼼히 읽은 자철이 살짝 주름 진 제 이마에 핸드폰 끝을 꽁꽁 찧으며 깊은 고뇌에 빠졌다.
물론 성용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였다. 그렇지만 낳아 준 부모마저 등 돌리는 사랑인데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할까 생각하면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기성용이야 아직 철이 없어서 동성간의 사랑도 서로 좋아하기만 한다면 OK 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이미 나랑 같이 겪어봤잖은가.
˝지도 끝내는 결혼했으면서….˝
자철에게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충격적이였던 것이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고등학생 때 유명 야동사이트에 아버지 주민으로 가입하려는데 ´이미 등록된 주민번호입니다.´ 라는 안내창을 보았을 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성용의 결혼소식이였다.
그 자식, 고3때 그렇게 헤어지고나서 내가 25살에 결혼을 하고, 26살에 자람이를 갖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29살에 덜컥 결혼을 하더니만 뜬금없이 자람이와 나이가 같은 본성이를 입양했다.
도대체가 무슨 꿍꿍이 속인지….
아직까지 제 아내와 관계를 갖지는 않은 걸로 안다. 물론, 기성용의 아내도 기성용 취향이 게이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별 말 안 하는 듯 했다. 그저 기성용이란 그 사람만으로 좋아서….
바보같은 내 아내와 꼭 닮았다, 하고 자철은 생각했다.
˝병신같은게 나이 쳐먹고 아직도 사랑, 사랑….˝
현실이 어떤지 잘 아는 새끼가 모른척은…. 이제 그놈의 사랑, 낭만 다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빛도 없이 어둠속에서 촛불 하나 켜놓고 하는 그거, 이젠 좀 내려놓을 때도 됬잖아.
망설임 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정면충돌이 두렵지만, 후회는 없다.
몇번의 신호음 끝에 저쪽에서 성용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여보는 아니고, 우리 좀 만나지.˝
[˝왠일이야? 네가 먼저 다 보자고하고. 근데 어쩌냐, 요즘 우리 회사 잘 나가서 나 좀 바쁜데.˝]
˝만나서 놀자고 하는 거 아니야. 자람이 아버지로써 전화한거다. …이 상황에 우리 한 번 쯤 만나야 한다는 것 쯤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본성이 아버지로써…일 좀 미뤄봐.˝
[˝…참나,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냐? 하긴, 세상에 밉보이지 않으려고 마음까지 묻어버린 새끼가…. 어디서 볼래?˝]
˝…이 지구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사랑이고 낭만이고 어떻든 간에 세상이 내어주는 빛을 쫓아 쬐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11시에 네 회사 밑 카페로 와라.˝
[˝…답답한 새끼. 알았다.˝]
자철은 전화를 끊고 일어나 장롱을 열고 옷을 챙겨 입었다.
왜 제일 아끼는 정장을 꺼내 입는 건지는 자철 자신도 몰랐다.
기분탓일거야…그냥 이 정장이 입고 싶었어 오늘, 하고 자철은 생각했다.
3. 현실적인 내가 낭만적인 너에게 고함
˝오랫만이다. 많이 기다렸냐.˝
˝…어…뭐, 쫌. …잘 나간다더니 반년 새에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네.˝
˝어, 5kg 빠졌다.˝
˝…일 열심히 하는 만큼 본성이도 좀… 잘 키우지 그랬냐.˝
˝아주 잘-키웠다. 자람이는 제 아버지랑 다르게 잘 큰 것 같아 다행이네.˝
구자철은 만나기로 한 카페에 20분 먼저 나가 기성용을 기다리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자철은 성용이 제 앞자리에 의자를 빼고 앉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멍-한 정신속에서 뱉은 본성이 잘 키우지 그랬냐, 라는 말은 정말 진심이였다.
빛없는 낭만을 가르쳐주지말았어야지. 그 따위 것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낭만을 보던 눈을 돌려보니 바로 옆에서 어머니가 자살기도 하고 계시더라. …그게 현실이더라.
…세상이라고 뭐 다를게 있겠어? 더하면 더했지 다를거 없어. 세상은 과거의 나 같은,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너 같은 사람들을 자살기도 하게 하지.
자철이 꽉,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걸 보는 성용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 이 자식아, 뭐하는거야.˝
작게 인상을 쓴 성용이 자철이 말릴 새도 없이 자철의 턱끝을 살짝 쥐고, 빠르게 제 엄지손가락을 자철의 아랫턱에 대고 밑으로 꾹 눌러 이와 입술을 떼버렸다.
그에 자철이 당황해서 허둥대는 동안 성용이 딱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입술 좀 깨물지 마라…뭐가 그렇게 불안한거냐, 너는.˝
˝…그러는 너는 뭐가 그렇게 당당한건데.˝
˝당연히 당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사람 좋아하는게 뭐, 쪽팔릴일이야?˝
˝좋아하면 안 될 사람을 좋아하는게 문제지.˝
˝좋아하면 안 될 사람? 그럼 좋아하지 않게 해주던가.˝
˝…뭐?˝
˝그 빌어먹을 좋아하면 안 될 사람, 안 좋아하게 해주라고. 니가 가서 그 잘난 세상님께 나같은 놈들 싹 다 모아서 여자인 사람 좋아하게 만들어주라고 좀 해라.˝
˝…˝
˝…그렇게 해주지도 못 하면서 세상은 참 이기적이지 않냐. 누가 같은 성인걸 몰라? 두 눈 멀쩡히 달렸는데 같은 남자새끼인걸 누가 모르냐고.˝
´성´ 얘기가 나오자 카페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기성용과 구자철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조금씩 향하기 시작했다.
정장 멀쩡히 차려입은 중년의 두 남자가 카페에서 같은 성, 남자에 관한 얘기 하는 것이 신기했나보다.
그에 구자철은 ´야, 좀 작게 말해.´ 하고 속삭였고, 구자철의 말에 저를 향한 몇 시선을 둘러보며 확 인상을 찌푸린 기성용이 ´지랄마, 들으라해.´ 하고 심드렁하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뭐, 성향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현실 다 외면하고 낭만만 찾아서 남자 만나는 줄 아냐? 넌 내가 여자 안 만나 본 줄 알지? 우리집에 있는 내 와이프는 뭐라고 생각하냐? 와이프랑 같이 산 지 10년이 훌쩍 넘어가. 이 지랄까지 해봐도 성 적으로 관심가고 맘 가는 사람은 남자새끼인걸 나보고 뭐 어쩌라고?˝
˝…미친놈아, 니가 이 카페있는 건물 회사 사장이란 걸 인식해라….˝
˝닥쳐봐. 그냥 들어.˝
흥분해서 한껏 들어올렸던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푹 꺼친 성용이 조금씩 이성을 찾고있었다.
점점 온순해져가는 눈으로 앞에 놓인 자철이 미리 시켜둔 커피 두 잔을 흘끗 쳐다 본 성용이, 컵을 제 앞으로 끌어다 두 잔 모두를 조금 맛본다.
그러더니 ´이 자식아, 한 갠 내 거야…´하는 자철의 말을 무시한 채 한 컵에 시럽을 조금 부어넣었다.
진득히 퍼지는 시럽을 보며 자철은 짐짓, 눈을 치켜떴다.
나이들어가면서 만나는 횟수도 뜸해졌는데 아직도 기억하네, 나 달달한거 좋아하는거… 하고 자철은 생각했다.
시럽을 부은 커피를 자철 앞으로 밀어 준 성용이 살짝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기 보단, 맘 가는 상대가 단지 남자일 뿐인거다.˝
˝…˝
˝그리고, 그 맘을 사랑으로까지 키우게되면 낭만이 생기지.˝
˝…˝
˝이 자식아, 내가 철없는 게이라 남자를 찾아 낭만을 쫓는게 아니라-˝
˝…˝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서 낭만이 생기는거다. 여자던 남자던 관계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데 낭만은 당연한 옵션 아니냐. 본성이도, 자람이도 그걸 아는거지.˝
˝…나 참….˝
˝너처럼 마음 묻고 빛만 찾아 쫓아다니는 놈들이 뭘 알겠냐, 나같은 사람들을. 그림자에 익숙해지다보니 빛 같은거 안 받아도 좋다. 이젠 오히려 어둠이 편해.˝
이제 완전히 저들에게 쏠려버린 카페 안 사람들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기성용을 알수없는 눈으로 쳐다보던 구자철은 문득, 언젠가 이만큼 나이가 들어 기성용을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던 것이 생각났다.
그것을 지금 해야겠다. 과연 너는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
꽤 어려울텐데 말이지…확신을 줄까, 아니면 얼버무릴까.
˝24년 전 그 때 내가 말 안한게 있는데.˝
˝…˝
˝…?˝
˝…24년 전이면…열아홉. …참 나, 그냥 헤어지던 날이라고 해라. 무튼 그때 안 한 말이 뭔데.˝
˝…그 때 우리 어머니 자살기도 하신 건 아냐.˝
˝…˝
기성용의 미간이 짐짓 찌푸려진다. 전혀 몰랐다는 눈치.
그런 기성용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던 자철이 덤덤하게 계속 말을 이었다.
˝낳아준 부모마저 죽음으로써 등돌리려는 사랑이다. 부모님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을만큼 현실적이지 못한 그런 사랑을 아직도 지지하는거냐?˝
˝당연히 부모님 목숨을 잃게 할 순 없지. …하지만 그 전에 설득할 순 있다, 어떻게든. 네가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 할만큼 네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거야.
…그래, 열 번 양보해서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치자. 그런데 뭣보다 나한테 헤어지자 말하던 그 때의 네 눈 말이야, 지금도 기억하거든?
개학식날 행여 놓칠새라 네 두 손 꽉 붙들고 펑펑 울면서, 나는 아버지가 허락해주셨는데 너는 어떠냐고 묻던 날 보며 아주 한심해 죽으려던 그 눈. 잔인하게도 방학 한달만에 넌 말끔히 마음을 묻어버렸지. 결국엔 나보다 현실을 더 사랑했어, 넌.˝
˝…˝
˝24년 전이라면 나도 말 안한게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경찰이셨잖냐. 그 때 아버지가 서재 서랍장에서 총 꺼내오셔서 나한테 겨누고 쏴 죽인다고 하시던 걸 목숨걸고 설득했었는데…넌?˝
˝…˝
˝좀 물어보자, 너 어느 정도까지 부모님 설득해봤냐?˝
˝…˝
˝뭐, 친구는 이해해주는 놈들만 골라서 그 녀석들하고만 조용히 공유하면되고, 세상에 널린 혐오자들은 무시하면 그만이야. 하지만 부모님은 고를수도, 무시할수도 없어 오로지 설득뿐이지. 그래, 설득. …자 이제 말해봐. 그 때 너는 얼만큼까지 설득해봤냐고.˝
자철은 입이 딱 다물어졌다. 할말이 없었다. 총을 겨누셨다니…정말 처음 듣는 얘기였다.
처음 성용과의 관계를 아셨을 때, 눈 앞에서 수면제를 한 주먹 쥐시던 어머니 앞에서 무조건 헤어지겠다고, 그러니 제발 그만 두라고 빌었었던 열아홉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그 딱 한 순간에, 그 딱 하루만에…. 그 때, 하필 방학 하루 전에 걸려버려 각자 부모님들의 엄한 감시 속에 꽉 얽매여 방학동안 만나기는 커녕 연락도 못 했던 그 한 달 동안-
너는 설득을, 나는 포기를.
너는 30일간 전쟁을, 나는 30일간 안식을….
자살기도를 하시려는 어머니 앞에서 나도 같이 수면제를 한 주먹 쥐며 설득해 볼 용기가 왜 나지 않았을까.
왜 네 손을 놓을 생각만 했을까.
맞다.
그때 나는 너보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현실을 더 사랑했다. 그래서 그렇게 헤어지고나서 내게 1, 2년을 더 끈덕지게 매달리던 너를 현실적이지 못 하다고 욕하기만 했었다.
이제서야 조금 깊게 시간을 되돌려 네가 드디어 날 포기한다고 했던 스무살 초반, ´잘 생각했어.´ 라고 대답했던 내 마음속을 솔직하게 들여다봤다.
오랜 시간 전의 일인데도 기다렸단 듯이 물 위의 기름마냥 두둥실 떠오른다.
네가 돌연 날 놓아주자 갑자기 들이닥친 공허함에 심장이 쿵 떨어졌던 걸 ´현실적으로´ 모른척 했던 그 때의 마음이.
웃기네 정말. 아주 웃기는 일이야….
자철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금새 깜깜해진 시야 위로 수면제 통을 손바닥 위에 탈탈 털으시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의 허리를 끌어안고 엉엉 울던 자신이 다시 또 드리워진다.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지마, 성용이랑 헤어질게. 우리가 잘못된거야. 나 깨달았어, 우리가 현실적이지 못한거야. 그냥 좋아하면 단 줄 알았어. 현실적으로 살게.」
그렇게 현실적으로 빛만 쫓으며 아등바등 살아 온 지난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대답은 어쩌면 당연히 아니오, 였다.
자철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런 자철을 바라보던 성용이 제 넥타이를 정돈하며 씩, 웃는다.
ㅡ이제 알았냐.
너무 빛만 쫓아다녀도 눈이 멀어버린다는 걸.
솔직해져. 어둠 속에 있어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촛불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왜 몰라.
푹 숙여 훤히 드러난 자철의 한껏 올린 앞머리를 조심조심 정리해주던 성용이 속으로 저리 읊조렸다.
그걸 들을 리 없는 자철은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가 괜히 본성이 욕을 툭툭 해본다.
˝본성이녀석…이름만 기본성이지 제 아버지 닮아서 기본성이 없어 아주…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우리 착한 자람이를…˝
˝무슨 소리. 아주 본성에 충실한 놈이지, 우리 아들.˝
˝짜증나…˝
자철이 끝내 한 손으로 제 눈을 가리고 의자 등받이에 제 상체를 한껏 기댔다.
맥이 탁- 풀리면서 20년 넘게 쌓아 온 담이 무너지고, 무너진 담 위로 어둠이 차오르는 그 낯선 느낌에 화들짝 놀라 주저앉은 열아홉의 자철 앞으로 열아홉의 성용이 다가왔다.
앳된 얼굴의 성용은 품 안 가득 초를 껴안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멋드러지게 웃으며 자철에게 초 하나를 내민다.
자철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눈으로 그 웃는 얼굴을 올려다보다, 이내 자신도 말갛게 따라 웃어버렸다.
그리고 자철은 성용이 내민 초를,
있는 힘껏 잡았다.
4. (작은 에피소드) 가정파탄범
성용은 사장임에도 불구하고 근 일주일 간 늦은 야근을 하고있다. 요새 잘 나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 왜 그런진 몰라도…정말 잘 나간다.
작지도,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회사였는데…역시 인생은 한 방이야. 성용은 오늘도 기분좋게 홀로 남아 늦은 시간까지 남은 서류를 직접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을 나서는데 새벽 공기가 너무 차지 않은 것이, 기분이 아주 최상이다.
성용이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회사를 막 빠져나오던 그 때였다.
˝뭐가 그리 조-타고 콧노래까지 부르새-여?˝
이 목소리는… 에이, 설마.
˝어- 아주 쌩을 까시네. 개새끼다 조온-나 개새끼. 쌩까였으니까 난 그냥-울어야겠다, 나는- 어쩌겠어 뭐-˝
성용이 경악에 찬 얼굴로 뒤를 돌았다. 성용이 돌아본 곳엔, 회사 입구 쪽의 문에 바싹 붙어 헤롱거리는 자철이 있었다.
아무렇게나 풀어 헤쳐진 정장에, 손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서류가방이 안 봐도 비디오다. 제 일 끝나자마자 혼자서 술 쳐먹고나서 계속 저기에서 저러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자람이가아- 아부지가 허락할 줄 몰랐다면서- 아주 고맙대- 아주아주아주아주- 고맙대.˝
˝구자철, 너….˝
˝이쁜 사랑 하겠댄다…나-참, 미-이-칀 새끼…남자가 이쁜 사랑이 뭐냐? …멋찐 사랑 해야지이이-어? 안 그러냐? 안 그러냐고~ 어???˝
구자철이 잔뜩 풀린 눈으로 술냄새를 폴폴 풍기며 비틀비틀 성용에게 다가오려는 걸, 성용이 후다닥 뛰어가 저지했다.
스텝 보니 세 걸음 째에 자빠질 수 있었어…너 이 새끼, 나한테 감사한 줄 알아라…. 라고 생각한 성용이 피식 웃으며 자철의 어깨를 단단히 잡아올렸다.
˝허락은 했는데, 막상 기분은 싱숭생숭하고…어디다 풀 데는 없고…. 뭐 그래서 술 좀 마셨냐?˝
˝…아니이.˝
응? 성용이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였다. 어떻게 알았지, 하는 동그란 눈으로 저를 쳐다봐야 맞는데 자철은 가만히 고개를 젓고있었다.
그럼 뭔데?
˝이 말 꼬옥-하고 시펐는데, 도저히 맨 정신으론 못 하겠더라고오-…˝
˝…뭔데.˝
˝… …´미안해´, 이거….˝
돌연 자철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당황해 뭐가 미안하냐 묻는 성용에게 자철은 몇 십 분을 그냥 미안하단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자철은 꽤 오랫동안을 더 그러다가 이내 지쳐버린건지, 저보다 조금 더 큰 성용의 어깨에 푹, 제 이마를 갖다 대었다.
˝끄으으…내가 잘못했어.˝
˝…가지가지한다. 야, 집에 데려다 줄….˝
˝용서해주라….˝
˝…뭐, 다 지난일인데 용서고 뭐고….˝
˝…울 어머니가 허락은 안 해주고 돌아가셨지만, 꿈에라도 나오시면 어떻게든 설득해볼게….˝
˝뭐…?˝
˝목숨걸고…해볼게….˝
뜬금없는 자철의 고백에 성용은 기가막혔다.
하지만, 이내 제 어깨에 이마를 갖다 댄 자철의 어깨를 넌지시 끌어안으며 성용이 난감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 새끼, 이거 아주 가정파탄범인데…˝
[기구]현실적인 내가 낭만적인 너에게 고함.
written by. jjj
jjj's) 동성애에 관한 짧은 고찰입니다. 그냥 요즘 동성애가 대두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가볍게 끄적여봤어요...ㅎ...
구자철선수는 동성애자지만 어찌보면 안타깝고 약삭빠르게 현실을 택했던 그런 인물? 입니다. 동성애자인 것을 숨기고 어떻게든 아무렇지도않게 살아가려는...
근데 기성용선수는 아님..ㅎ 내가 조으면 아무도 못 말림ㅗ 내가 다 이겨버릴꺼임...이런 마인드.
물론 세상이 원하는건 구자철선수같은 유형이겠지만, 저는 기성용선수같은 유형을 응원함당...ㅠㅠ...
진짜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인 것 뿐인데 멸시받는게 너무 맘 아파여.......ㅠ........... 공부 안하고 있는 저도 너무 맘 아파여.....ㅋㅋㅋ......
전에 쓰던것처럼 독자분들이 좋아해주시던 망상글이 아니라 진지병 돋는 똥글 투척해서 죄송해요....안 올리려고 했는데...그냥 쉬어가는 타임으로 하나 올리고 싶었져요.....재미도 없을거에요 거의 진지한 대화형식이라........흡........끝까지 봐주시는분이 계시기나 할지....ㅎ...^^....ㅠ.....
공부 안 되는 밤이네요 참....ㅠㅠㅠ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