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첫여자 그, 그 뭐냐.. 아! 니 옆집 누나 아니였어?"
이게 지금 뭔 상항이냐. 그니깐 이렇게 부끄러운 얘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추억팔이? 그야말로 죽마고우들의 추억팔이 현장이였다. 워낙 어려서부터 비밀따위 없이 지내온 우리는 서로의 치부까지도 너무나 잘아는 그런 사이였다. 그러니 술만 먹으면 나오는 얘기가 이런 부류인게 당연하다. 목적은 그냥 놀리기, 그정도?
"다 알면서 대체 왜 물어보는거냐."
"흫흐흐흫흫 제일 얌전하게 있더니만 미자딱지 붙이고 그럴줄 누가 아라겠냐고오! 역시 형님이라 불러야하나..."
저 말을 끝으로 다 뻗은 아이들 사이로 그나마 살아있던 호석이가 마침내 전사했다. 이로써 숨소리와 코고는 소리만 가득한 이 공간에 남은건 아직도 멀쩡한 민윤기와 살짝 알딸딸한 나, 둘뿐이였다.
"야, 민윤기이! 너 왜 그짓말해에?"
"뭐가 거짓말인데."
"너어! 너! 고딩때, 씨..민윤기 너! 니평생 첫여자 그 언니가 아니라... 나잖아......"
한번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 처럼,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내자신도 내가 지금 무슨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멋대로 입이 열리고 속에만 담아두고 있던 말들이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씩씩거리며 민윤기를 향해 물으니 별 감정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있다. 그렇게 보면 뭐, 뭐! 어쩔껀데!
"무슨 대답을 원하는데? 뭐, 지금와서 얘기할까? 우리 잤다고. 우리가 서로의 첫사람이라고 그렇게?"
"그...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냥 철없던 어린시절의 불장난이였다고, 술먹고 일어난 실수였다. 없던 일이라 말했던건 너야"
7년전. 당시 19살. 겨울
"그니깐 뭔 술을 먹냐고, 답답하다 정말."
"야! 부모님도 안계시고 어? 이제 우리도 3개월만 있으면 성인! 어르으은 이라꼬! 어?"
"알겠으니깐, 정신차려봐. 여기 니네집 아니잖아."
세상이 돌고 돌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느라 바빴던 애들이 부모님들의 여행으로 이렇게 한곳에 모이니 기분이 퍽 좋았다. 그래서 처음 먹는 술을 퍼마시고 꽐라 수준으로 넘어왔지만. 윤기네 집에서 벌인 술판은 어느새 다 가버린 애들을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윤기는 술에 취한 나를 아랫집인 우리집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중이였다. 그런데 민윤기. 내몸이 내몸이 아닌걸 어떡해?"야, 나도 몰라. 너 내방가서 문잠그고 잠이나 자. 빨리"
"시러어어- 윤기야 같이자면 안돼? 응? 아까 본 귀신이 왁! 하고 나오면 어뜨케..?"
"애냐? 이상한 소리말고 빨리 들어가."
*
"이제 진정이 좀 되냐?"
"응...이제 안무서워..."
"뭔 여자애가 통곡을 하고 울어 울기는. 얼른자, 토닥토닥 해줄께."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며 우는 탄소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생각한 윤기는 얇은 손목을 잡고 자신의 방 침대에 탄소를 눕혔다. 그리고 바로 옆자리에 자리잡은 윤기는 어설프게 옆에 누워 탄소의 등을 토닥였다. 방안은 시계침이 흘러가는 소리와 서로의 숨소리로 가득차고, 갑자기 자신의 품으로 쏙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허리에 손을 두르는 행동에 윤기는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가슴팍에 위치해 자신을 올려다 보고있는 동그랗고 조금한 머리통에 굳어진 손을 올려 살살,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예전엔 자주 만졌던 익숙한 촉감이였는데..어느새 다른 의미로 다가온 그 아이로 인해 몇년간 손끝조차 다가가지 않았던 곳이였다. 내가 사춘기란 열병을 앓고 있을 때 익숙했던 그아이는, 한순간 봄바람처럼 다시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왜 그아이의 생각에 꽤 즐거운지, 또는 퍽 외로운지. 집앞을 걷다 밤공기가 좋아서 뜬금없이 왜 그아이가 보고싶은지 그 감정이 모든게 묘했다. 그리고 익숙하던 그 아이의 촉감과 향기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감정을 알아챈 순간부터는 한번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보고싶어 신기하고, 신기해서 보고싶고 그러다가 한순간 모든것이 미친듯이 불안했던 저녁. 따뜻히 비치는 햇살에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가 너의 전화한통에 웃게 됬던 뜨겁던 여름날. 모든게 내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었다. 지독한 열병을 앓는 소년은 자신의 주위를 온통 감싸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게 되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있는 이 순간. 소년은 행복과 두려움 그 중간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윤기야. 내가 백번을, 천번을 아무리 봐도 우리 윤기는 입술이 제일 예뻐! 뽀뽀할래"
촉, 자신이 막을새도 없이 자신의 입술에 다녀간 온기였다. 그러더니 막을 틈도 없이 여러번 자신의 입술에 온기가 닿았다. 술에 취해 헤헤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더니 다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를 이번엔 놓치지 않고 뒷목을 잡아 자신의 입술에 꾹 눌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윤기가 뜨거운 입술을 파고들어 마침내 두개의 살덩이가 만났다. 점점 끈적이는 분위기를 따라, 뜨거운 입술이 가느다란 목선을 따라 서로에게 자신의 뜨거운 흔적을 남긴 첫사람이 되었을 땐 그들은 고작 19살이였다.
과거를 생각하느라 잠시 감겨있던 눈을 뜨자 내눈앞에 보이는건 여전히 아무말 없이 맥주잔만 보고있는 민윤기였다. 그래, 윤기말이 맞았다. 내가 그랬었지, 술먹고 일어난 해프닝. 철 없던 시절의 사고였다 그렇게 생각하자고. 펑펑 울면서 윤기에게 말하던 내모습이, 그런 나를 보면서 서툰 손길로 나를 달래주던 윤기의 모습이 바로 앞에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했다.
-19살 겨울.
목이 타는 갈증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깨질듯한 머리에 한참을 베개에 얼굴을 묻고 끙끙거리다 익숙한 향기, 익숙한 공간에 놀라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여기가 어디야?... 설마,..여기 민윤기 방이잖아?...복잡한 머리와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콤비가 되어 귓가에 울리고 마침내 침대 맞은편 책상위, 곱게 접혀놓인 내옷과 속옷을 보고 숨을 멈췄다. 비어있는 옆자리와 내몸에 입혀진 민윤기 향기가 잔뜩 베인 커다란 티셔츠. 그리고..
"....일어났어?.."
따뜻한 머그잔을 들고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온 민윤기 모습에 흩어져있던 어제의 모든 기억 조각들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어제 애들과 술을 마셨고, 잔뜩 취한 나는 윤기에게.....
"미쳤네. 김탄소 미쳤어...."
내나이 고작 19살이였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는 그렇다 치고 첫경험의 상대가 중요했다. 윤기다. 민윤기. 나와 10년을 넘게 봐온 민윤기였다. 근데 어떻게 민윤기와 내가...이건 분명히 미친짓이 분명했다. 입에선 쉴새없이 미쳤어. 이 세글자만 끊임없이 내뱉어지고 눈에선 후회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런 내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윤기가 머그잔을 내려놓고 나에게로 다가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눈물을 닦아주며 윤기는 한참을 자책하는 나를 달랬다.
"미안해.. 모든게 다 내잘못이야. 그니깐 울지마. 다 내탓이야. 미안해"
잘못한거 하나 없는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그렇게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우는 나를 달랬다.
그게 열아홉, 우리의 뜨겁고 두려웠던 첫경험이였다.
독방에서 용기받고 왔어요! 부족하지만 즐겁게 연재 해볼께요!! 제목 추천도 무척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