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세요? "
[여주야!]
" ...누구세요? "
[야 나야. 고3때 반장했었던 김정현!]
" 아..헐! 야 완전 오랜만이다 "
[잘 지냈어?]
"난 잘 지냈지. 너는? "
[나도 뭐 그럭저럭. 요샌 뭐 하고 지내?]
"그냥 회사다니고 있지 뭐."
[그렇구나.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아 그건 그렇고]
[다다음주 수요일에 동창회하거든. 올거지?]
" 응? 동창회? "
[응. 아 맞다. 민윤기도 온대.]
너와 나의 거리, 1cm
01
w. 일센치
끌림 - 샌디 브라운
민윤기. 10년동안 까맣게 잊고있었다.
고3시절 퍽퍽했던 내 삶의 한줄기 오아시스, 말 한마디로 그 날 하루 기분마저 송두리째 흔들었던
너를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진단 말 그땐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겠냐며 난 절대
못 잊는다고 온몸으로 부정했었는데, 10년이란 세월은 너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잊을만큼 길었나보다.
이름 석 자만으로도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너와의 기억에 얼떨결에 간다고 말하곤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꺼진 핸드폰 화면 위로 29살의 나와 19살 풋풋했던 내가 겹쳐 비쳤다.
윤기야 난 꽤 많이 변했는데, 너도 많이 변했을까?
***
" 여주야 너 몇반이랬지? "
" 나 3반. 너는? "
" 아, 난 1반인데 이번엔 헤어지겠다.. "
난 영원히 고3같은거 안 될줄 알았는데, 눈 감았다 뜨니 벌써 열아홉이 된지도 한 달이나 흘렀다.
고3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더라.
공부에 큰 흥미가 없던 나에게 방학도 주말도 모두 반납이란 기정사실은 꽤나 큰 충격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야자를 끝마치면 그 길로 학원까지 다녀야한다는 사실은 여리디 여린 내 유리멘탈에게 꽤나 큰 충격을 가해왔다.
물론 고1때도, 고2때도 방학에 학교를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땐 고3이 아니니 할 필요가 없겠지란 안일한 생각으로 어떻게든 미뤄왔는데
고3이 된 지금은 더 이상 미룰 방법 조차 없이 해야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니 그래. 학교 야자. 방학 보충. 주말 보충. 그것까진 괜찮았다. 근데 뭐? 학원? 그것도 야자 마치고?
나 야자 끝나면 11신데 어머니...?
-
고3 첫 날부터 야자라니 우리 학교엔 고3의 인권같은건 존재하지 않나보다.
원래 첫날은 빨리 마쳐서 애들이랑 떡볶이도 먹고 좀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참. 고3은 사람이 아님을 누누히 강조하는 우리 학교 쌤들이 그럴리가 없지..
3년을 다녀도 도저히 적응이 되지가 않는 짜고 싱겁고 밍밍한 석식을 꾸역꾸역 배에 채워넣고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저녁하늘을 보며 느릿느릿 가기싫다는 발걸음을 억지로 잡아끌어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학교가 공학이란거 내가 일전에 말했었나..? 공학이긴 한데 분반이라 공학의 아름다움 같은거 없다.
여고다니는 친구들은 항상 기지배 복 받았다고 부럽다고 입을 털지만 다시 한번 공학의 아름다움 같은거 없다.
아. 아니다, 딱 하나 있다. 8반 이었나 9반 이었나. 어쨋든 이과에 민..머였더라 어쨌든 우리 학교의 꽃이 하나 있다.
애들이 하도 찬양하길래 얼마나 잘생겼나 지나가는 길에 슬쩍 훔쳐봤는데 진짜 잘생겼더라.
하얀 피부하며 한 번 쓸어보고 싶은 흑갈색 머리카락하며 말랐는데 또 어깨는 어찌나 넓은지.
가히 우리 학교의 꽃이라 할 만큼 그 애는 잘생겼었다.
뒤늦게 민윤기 덕질을 시작한 내가 친구들에게 그 애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애의 인적사항을 줄줄 읊는데 내 친구지만 좀.. 스토커 같았다.
" 미친년. 내가 그렇게 잘생겼다 귀에 딱지가 앉게 말해도 들은 척도 안하더니. "
" 아 뭐. 뭐! 빨리 이름이나 말해달라고 "
" 9반 민윤기. "
" 민윤기? "
" 어. 이름도 존나 이쁘지 않냐? 이름만 들어도 발릴거같다...하 "
" 9반이면 이과네? "
" 어. 근데 공부도 잘해. 농구도 잘해. 내 마음도 잘 죽여. "
" 니 마음은 별로 안 궁금하고. 여친은 있대? "
" 야 그 얼굴에 없겠냐? 1반에 그 뭐라더라. 머리 길고 청순하게 생긴 애 "
" 김민희? "
" 아 어! 걔랑 100일인가 됐을 걸. "
" 아 진짜? 아깝다. "
" 여친 없었으면 뭐. 민윤기는 너 쳐다도 안볼걸ㅋㅋㅋㅋ "
" 아 뭐래. 그건 너겠지 "
-
야자시간을 민윤기 얘기로 불태우고 학원 엘레베이터 앞에 도착한 나는 지금 일생일대의 고민중이다.
이대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학원을 갈 것인가. 첫 날부터 째고 폭신한 침대로 뛰어 들 것인가.
내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뒤돌아 나서려는 순간 무언가 앞길을 막아섰다. 교복으로 보아하니 우리 학굔거 같은데 누구..?
소심하게 눈을 치켜떠 위를 바라보자 하얀피부에 흑갈색 머리카락. 민윤기가 서있었다.
너무 놀라면 발이 안 움직인다는 얘기가 진짜란걸 그 날 깨달았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애가 엘레베이터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 자리에 망부석 마냥 서있었다.
" 거기서 뭐해. 안 탈거야? "
" .......어..? 어 아니아니, 타! "
" 너도 4층? "
" 아, 응! "
" 처음 보는데 문과야? "
" 아, 응. 너는..? "
" 난 이과. "
" 아.. 그렇구나. 저기..! "
" 응? "
" 아, 아냐. "
" 다 왔네. 공부 열심히 해 "
먼저 엘레베이터를 나서는 뒷 모습을 바보처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 이름. 말해주고 싶었는데.
-
" ....아! ..ㅇ아! 여주야! 여기 봐야지. 자꾸 딴 생각할래? "
" 아. 죄송합니다. "
수업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
아까 그 대화를 몇 번이나 곱씹어봤는지 이젠 대사를 외울 지경이다.
정신차려, 김여주. 너 고삼이다. 게다가 쟤는 여친도 있다며.
근데 아까 엘레베이터에서 나 탈때까지 기다려준거 아닌가? 나한테 혹시 관심있는거 아냐?
에이 설마. 그냥 모두에게 다정한 애인가 보지. 아, 목소리 좋던데 다시 듣고싶다.
김민희 걔보단 내가 더 이쁜 거 같은데, 김민희 무슨 복을 쌓았길래...
" 김여주!! 너 고삼이라고. 집중하자 "
" ..죄송합니다 "
1시간 30분을 그냥 우주로 내던졌다. 수업도, 민윤기 생각도 제대로 한 게 아무것도 없다.
수업도 미적지근, 민윤기 생각도 미적지근. 밍밍한게 그냥 내 성적같다. 어쩜 똑바로 하는게 아무것도 없는지.
새삼스레 멍청한 내 머리 탓을 했다.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시간은 12시 30분.
내일 학교가려면 6시 반에는 일어나야하는데. 집에 가면 한시. 씻으면 한시 반. 그럼 다섯시간?
다섯시간밖에 못 잔다니. 이건 잠빼면 시체인 나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아 진짜.. 엄마 미워..
울상을 지으며 학원 복도를 빠르게 빠져나가려는 차에 이과반도 수업을 마쳤는지 문을 열고 나오는 민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 안녕. 또 만났네 "
교복마이 단추를 잠그며 내게 인사하는 민윤기에게 한 번, 늦은 시간에 잠겨버린 그의 목소리에 두 번. 거하게 치였다.
엄마.. 엄마 딸 오늘 계탔어..
떨리는 목소리가 혹여나 그에게 들킬까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어 짧은 한마디를 겨우 뱉어냈다.
" .. 아, 어 안녕 "
" 안 피곤해? "
" 아..조금..? "
" 그렇구나. "
짧은 대화가 끊겼다.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노잼인걸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와의 대화를 저런 식으로 끝마치다니...
민윤기는 이제 나를 학원 같이다니는 노잼 문과 여자애로 기억할 것이다. 이름 모를 노잼 여자애..
시무룩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엥..? 이미 문이 열려있다. 학원 문 자동문 아닌데...?
눈에 물음표를 가득 띄운채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민윤기가 내가 나올때 까지 문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의 배려심도 빛났지만 그의 잘빠진 손가락에 곱게 끼워진 커플링도 빛났다.
새삼스레 자각하게 됐다. 아. 민윤기 여친있었지.
근데 왜 저렇게 다정하게 굴어서 괜히 사람 오해하게 한대. 괜히 설레게.
얼떨결에 그와 엘레베이터까지 같이 타게 됐다.
엘레베이터 속엔 여전히 그와 나만이 있지만 아까와는 달리 정적만이 흘렀다.
잘가라는 그의 인사에 괜히 퉁명스레 그래. 라고 짧게 대답해도 그는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겠지.
여자친구의 전화라도 온 듯 액정화면에 비친 이름 몇 자를 흐뭇하게 보더니 재잘거리며 민윤기가 멀어진다.
고백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차인 기분이다. 기분나빠.
_
그와 함께 학원을 다닌지도 벌써 3주가 지났다. 언제나 그를 엘레베이터 앞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학원 수업을 마치고 학원 문을 나설때면 그는 언제 나타난건지 항상 내 앞에 나타나 문을 잡아주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매일 그의 손을 바라보지만 언제나처럼 반지는 빛났다. 반지가 말을 할리 없지만 왠지 반지의 말이 들리는 것만 같다.
" 부럽냐? "
' 응 '
' 그것도 존나 부럽다'
" 부럽다 "
" 어? 뭐라고? "
" ㅇ,아니야! "
아씨. 쪽팔리게 입밖으로 내뱉으면 어쩌냐 멍청이 김여주.
이제 민윤기는 나를 노잼 문과 여자애가 아닌 혼잣말하는 음침한 노잼 문과 여자애로 기억할 것이다.
오늘은 도저히 민윤기와 엘레베이터를 못 탈것 같아 계단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민윤기는 항상 학원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쭉 걸어간다. 그의 여자친구와 전화를 할때도 안할때도 있지만 대체로 전화를 하는 것같다.
나는 학원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넌 뒤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도로 건너 민윤기를 보는 것은 퍽퍽한 닭가슴살 같은 고3생활을 적셔주는 콜라와도 같지만
그가 여자친구를 향해 보이지도 않을 웃음을 날리는 걸 바라만 보는 내 마음은 타들어가는 걸 보아 그는 몸에 나쁜게 확실하다.
이제 콜라 안 마셔. 스프라이트 마실거야. 나쁜 민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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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 앞머리 + 똥머리 처음봐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