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루민] 세인트폴리아 (Saintpaulia.) 05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e/c/8/ec8dfe7fbc50276e95861464e250242e.gif)
"반장님, 이런새끼는 하루빨리 잡아야죠."
"잡는건 나중이야. 우선 천천히 조사만 해."
최근에는 피해자가 없어. 일을 좀 쉬는 모양이던데. 아마 당분간은 녀석도 별 문제 안일으킬거야. 빠르게 말을 마친 남자가 크리스에게 가보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게임에 방해된다는 모양새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꾸벅 인사를 한 크리스가 휴게실을 나섰다. 손에 들려있는 종이뭉치를 조금 세게 쥐었다.
세인트폴리아 (Saintpaulia.)
5
"좀 기대도 되죠?"
민석이 제게로 기대려는 여자를 기분나쁘지 않게 밀어냈다. 조심스러운 손길이였음에도 여자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는지 민석을 살짝 흘겨보곤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독한 향수냄새에 미간을 찌푸린 민석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오는게 아니었는데. 민석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오랜만에 단체로 회식이나 하자며 신나게 얘기하던 과대의 얼굴이 머리속에 둥둥 떠올랐다. 거기서 거절했어야 했어.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잔에 가득찬 맥주를 젓가락으로 휘휘 젓던 민석이 옆테이블을 힐끗 돌아봤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종대가 박수까지 쳐가며 웃고있었다. 그러다 뒤에있는 벽에 머리를 콩 박고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종대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민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금 앞에있는 맥주잔에 시선을 고정시킨 민석이 테이블 위로 올려놓은 팔에 턱을 기대고 엎드렸다.
쉽게 말해서 부분기억상실이라고 할 수 있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안경을 손으로 고쳐쓰며 말했다. 부분기억상실이요? 의아함에 민석이 되물었다. 예전에 쇼크로 의식을 잃은적이 있으셨다던데. 차트를 뒤적거리며 묻는 의사에게 민석이 고개를 몇번 끄덕였다. 한참이나 차트를 들여다보던 의사가 손에 쥐고있던 볼펜을 차트위로 얹어놓으며 민석의 눈을 마주해왔다.
보통 기억상실이라는건 사고 후유증으로 많이 생기죠. 교통사고 같은거요. 예외로 무언가에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거나 스트레스 같은걸로도 생길 수 있어요. 김민석씨는 아마도 후자에 해당되는 것 같네요. 대부분의 부분기억상실에 걸린 사람들은 살면서 가장 안좋은 기억이나 나쁜기억. 혹은 떠올리기도 싫은 슬픈 기억을 잃어버려요. 그래서 궂이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찾으려고 애쓰지 않죠. 근데 민석씨는 좀 다른 것 같네요? 민석이 멎쩍게 웃어보였다. 역시 좋은 기억은 아니였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 민석이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그런 민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의사가 축 쳐진 민석의 어깨에 손을 갖다대었다. 제 어깨에 와닿는 손길에 민석이 조금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민석씨처럼 기억을 되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 잃어버린 기억의 의미가 조금 다르겠죠. 절대로 잊고싶지 않은 정말 기뻤던 일을 잃어버렸거나, 민석이 마주잡은 손을 꽉 쥐었다. 나긋하게 말하던 의사의 목소리가 좀전과는 다르게 조금 진지해져있었다. 이내 민석의 귓가로 내려앉는 단호한 목소리에 민석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면,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거나.
"왜 안마시고 보고만있어?"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테이블에 엎드려있던 민석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컵에 가득 찬 맥주가 살짝 출렁였다.
"아, 준면이형."
민석의 맞은편에 털썩 앉은 준면이 앞에있는 안주를 조금 집어먹었다. 항상 반듯한 이미지의 준면은 술자리에서 마저도 쉽게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여자후배들의 권유에 이미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을텐데도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는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석의 앞에있던 맥주잔을 제게로 가져간 준면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맥주를 목 안으로 삼켰다. 크으. 눈가를 조금 찌푸린 준면이 잔을 머리위로 털며 웃어보였다. 그런 준면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민석이 준면을 따라 살짝 웃었다.
"복학한 기분이 어때? 처음 입학했을때랑 비슷하려나."
"그럴리가요."
"마냥 좋은건 아닌가보네."
뭐,나름 괜찮아요. 이런 자리만 아니면. 민석이 살짝 옆테이블을 가리켰다. 이번엔 종대에게 기대려고 하는 여자를 종대가 어색하게 웃으며 밀어내고 있었다. 여자는 이번에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앞에있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 여자를 보던 준면의 표정이 조금 구겨졌다. 나도 이런 자리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네. 장난스럽게 말하는 준면에 민석이 살짝 웃었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기대고 있던 민석이 앞에있는 안주만 만지작 거렸다. 그런 민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준면이 저도 테이블 위로 올려놓은 팔에 턱을 괴었다.
"뭔데 그래."
나긋하게 들리는 준면의 목소리에 민석이 안주를 만지작 거리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테이블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들어 맞은편의 준면을 바라봤다. 저와 똑같은 포즈로 준면이 민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잡한 표정인데?"
"그렇게 보여요?"
"응. 되게 많이."
뭔데 그래. 다시한번 묻는 나긋한 목소리에 민석이 살짝 시선을 내리깔았다. 만지작 거리던 사과 조각이 조금 뭉게졌다.
"고민돼서요."
"응?"
"찾아야 할지 아니면 찾지 말아야 할지 고민돼서요."
"뭐 잃어버렸어?"
조금 진지해진 준면의 얼굴에 민석이 살짝 웃었다. 당장이라도 같이 찾아줄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뭘 잃어버렸는데? 핸드폰? 지갑?"
약간은 걱정하는 듯한 준면의 목소리가 민석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민석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옆에 놓여있던 핸드폰과 지갑을 들어 준면의 눈앞에 흔들어보였다. 그게 아니면 뭔데? 준면이 더욱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들려오는 민석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그냥 이대로 모른 체 지내면 편할 것 같아요. 괜히 머리 아플 일도 없고. 그리고,"
"..."
"울지 않아도 되고."
"..."
"근데 한편으로는 찾고싶어요. 정말 저한테 소중한 걸 수도 있으니까. 아니, 소중한 걸 거에요. 분명히."
민석이 가슴 언저리를 매만졌다. 일정한 박자로 뛰는 심장이 민석의 손에 선명하게 전해졌다.
"소중한 거라면 당연히 찾아야 되는 거 아니야?"
"..."
"니가 잃어버렸다는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나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을 것 같은데?"
"..."
"말 그대로 정말 소중한거잖아."
준면의 진지한 목소리가 민석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준면을 마주보던 민석이 다시 시선을 테이블로 내리깔았다. 민석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맞아요. 소중한거니까 찾으면 당연히 기쁘겠죠. 이대로 잃어버린다면 굉장히 슬플거고."
"그러니까 더욱 찾아야지. 대체 뭔데 그래? 같이 찾아줄게."
"근데 형."
술잔 부딪히는 소리,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저마다 한탄을 늘어놓는 소리, 그와는 다르게 즐겁게 웃는 소리들이 어지럽게 묶여 귓가에 웅웅 울렸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준면과 민석의 목소리만 서로에게 선명하게 전해졌다. 이내 준면의 귓가에 닿아오는 민석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욱 낮아져 있었다.
"..왠지 찾아도 슬플 것 같아요."
"아 왜 벌써가! 2차 안갈거야? 2차 가야지!!"
저마다 흩어지려는 사람들을 종대가 못마땅한 듯이 쳐다봤다. 오랜만에 다같이 모였는데 벌써 헤어지면 되겠어? 어? 종대의 목소리가 거리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취기가 오른 듯 발음이 잔뜩 뭉게져있었다. 내일보자 종대야! 혹여나 붙잡힐까 사람들이 급하게 인사를 하며 흩어졌다. 저에게서 멀어지는 사람들에 종대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진짜 이러기야? 그럼 나 혼자 간다? 야! 나 혼자 간다고!"
"혼자는 무슨."
민석이 종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갑자기 제 입을 막는 손길에 놀라 발버둥치던 종대가 그 손의 주인이 민석인걸 알고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았다.
"민석아, 넌 나 안버릴거지? 그치? 역시 난 너밖에 없어. 이쁜새끼."
"아 좀 떨어져 징그러."
제 볼에 뽀뽀를 해대는 종대를 민석이 기겁하며 밀어댔다. 언젠가 크리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종대가 낯선 사람들이랑 술마시게 놔두면 절대 안된다고. 여전히 제게 뽀뽀를 해대는 종대의 머리를 민석이 밀어냈다.
"2차는 어디로 가지? 너네집으로 갈까? 응?"
"2차는 무슨 2차. 나 집에 갈거야."
야 김민석! 너까지 날 버릴 줄 몰랐다 진짜.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크리스한테 니가 나 괴롭혔다고 다 말할거야! 니가 날 이렇게 배신해도 되는거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종대의 입을 민석이 다시한번 틀어막았다. 얘때문에 못살아 진짜. 민석이 핸드폰을 꺼내 통화목록을 주르륵 내렸다. 뭔데 어디다 전화하는건데. 제 한쪽팔에 매달려 찡찡대는 종대를 가볍게 무시한 민석이 핸드폰을 귓가에 갖다대었다.
"크리스, 혹시 지금 집이에요?"
크리스? 민석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에 종대가 눈을 반짝였다. 크리스야? 나 바꿔줘. 민석아 나 바꿔줘. 나 크리스랑 통화할래. 핸드폰을 빼앗으려는 종대의 손을 붙잡아내린 민석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쉿.안들려. 작게 소근거리는 민석의 말에 종대가 입을 꾹 닫았다. 우리 크리스 목소리가 안들리면 안되지. 그럼그럼.
"집에 있다니 다행이네요. 종대 택시태워서 보낼게요. 네."
전화를 끊은 민석이 여전히 제 팔에 매달려있는 종대를 질질 끌었다. 크리스 집에있대? 나 지금 크리스 집에 가? 응? 쉴새없이 질문하는 종대를 겨우겨우 택시에 태운 민석이 나이가 지긋한 기사에게 공손히 주소를 말했다. 지갑에서 만원짜리 지폐 몇장을 꺼낸 민석이 잘 부탁한다며 돈을 내밀었다. 기사가 걱정 말라는 듯 웃어보였다.
"도착하면 나한테 꼭 전화해. 알았지?"
민석의 당부에 종대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슬슬 움직이는 택시에 종대가 민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덩달아 손을 흔들어준 민석이 못말린다는 듯 웃었다.
"아직도 안가고 뭐해?"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보던 민석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형이야말로 아직 안갔어요?"
준면이 한쪽에 주차해놓은 제 차를 가리켰다. 대리불렀거든.태워다줄까? 민석이 절레절레 손을 내저었다. 집 가까워요.걸어가면 돼요. 살짝 웃는 민석을 따라 준면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그럼 나 먼저 갈게,조심히 들어가. 준면이 민석의 어깨를 작게 토닥였다.
"민석아."
"네?"
차로 향하던 준면이 다시금 민석의 앞으로 다가왔다. 저를 살짝 끌어안는 준면의 팔에 당황한 민석이 얼떨결에 준면의 등에 손을 올렸다.
"생각해봤는데, 꼭 찾았으면 좋겠어."
"..."
"소중한거잖아."
제 등을 쓰다듬는 손길에 민석이 준면의 어깨에 살짝 고개를 묻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가 불안한 듯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애초에 손톱이 짧아 물어뜯을 것도 없었지만 남자는 손톱을 물어뜯는 걸 멈추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거야.왜이렇게 전화가 안와. 불안한 듯 서성거리던 남자가 발에 걸리는 애꿎은 의자만 툭 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의자가 어두운 방 안에 나뒹굴었다. 여긴 또 왜이렇게 어두워. 괜스레 짜증을 낸 남자가 침대 옆에 놓여있는 스탠드를 켰다. 방을 밝히는 작은 주황색 빛에 그제서야 남자의 얼굴이 어렴풋이 비쳤다. 검붉은 색의 머리가 눈을 가려 불안함에 흔들리는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부르르르.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급하게 전화를 받은 남자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전화하는데 손이 부러져? 아니면 입이 닳아? 왜이렇게 늦게 전화해. 불안해 죽는 줄 알았잖아 미친새끼야!"
건너편의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성질이야. 태연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조금 어이없어진 남자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지금 내가 성질 안내게 생겼어? 그래서 지금 어딘데? 목표는? 주변에 사람은 없고? 총에 탄은 몇개나 들어있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다다다 내뱉는 말에 건너편의 남자가 조금 짜증을 내었다. 좀 하나씩 물어볼 순 없냐?
"이게 다 니새끼가 전화를 빨리 안 해서 그런 거 아니야. 나도 상황은 알아야지."
지금은 골목길. 주변에 집이 한두개정도 있긴 한데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야. 니가 생각하는 것 보다 몇배는 더 허름한 곳이거든. 목표는 50미터 앞에. 술을 마셨는지 어쨌는지 정상적인 걸음은 아니네. 약간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에 사람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인다. 총에 들어있는 탄은 두개. 이제 됐어?
빠르게 말을 마친 남자가 조금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한번 말하는데, 조심해. 요즘 짭새들 분위기가 이상하단 말이야. 잠깐, 근데 왜 탄이 두개밖에없어?"
두개밖에라니.하나면 충분해. 단호한 목소리에 검붉은 머리의 남자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 너라면 그렇겠지. 그래도 만약이란게 있잖아."
남자가 다시금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절대 그런일이 생겨선 안 되지만, 만약에 누군가 널 본다면. 그러니까 목격자가 있다면 남은 탄으로 죽여. 절대 살려둬선 안돼. 내 말 알아들었지?"
'한두 번 하는것도 아닌데 왜 유난이야.'
"말했잖아. 짭새들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아무튼, 너라면 잘 해결할 거라 믿어. 이만 끊는다."
이제야 불안한 게 좀 놓였는지 좀 전 보단 진정이 된 목소리였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통화를 끝내려는 남자를 건너편 남자가 조금 급하게 붙잡았다.
'타오.'
"미친새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이름을 불러?"
제 이름을 내뱉는 목소리에 기겁을 한 타오가 펄쩍 뛰었다.
'아 미안미안. 근데 K. 여긴 개미새끼 한마리도 없다니까.'
"개미새끼라도 들으면 안돼. 알잖아. 그리고 내가 어제도 몇번이나 말했지만, 오늘 하루는 니가 K야."
'그러니까 애초에 니 일을 왜 나한테 떠넘기는 건데.'
"그럼 어떡해. 손이 이지경인데."
타오가 잘 쥐어지지 않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 깊게 패인 칼자국이 선명했다. 근육이 손상됐는지 제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이 야속했다.
"아무튼, 더이상 시간 지체하면 안되니까 이만 끊을게. 행운을 빌어 일회용K."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제 안해 이런거.'
뭐? 작은 목소리에 타오가 되물었다. 잘 안들려서 그런것도 있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그랬던게 더 컸다. 타오가 애꿎은 스탠드만 껐다 켰다 했다. 그에 따라 방 안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했다. 여전히 검붉은 머리칼에 가려져 타오의 눈빛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를 묘한 기분에 타오가 핸드폰을 귓가로 더욱 바짝 대었다. 묘한 느낌이 썩 좋진 않았다. 이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스탠드를 만지작 거리던 타오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방 안이 온통 어두워졌다.
'이것만 해결하면 나 손 뗄거야. 오늘이 지나면 절대 날 찾지마.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 하지도 마.'
"..야."
'만약에 위쪽에서 나에 대해 물으면 그냥 모른다고 해. 아니, 죽었다고 해.'
"잠깐만. 니가 지금 무슨 얘길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말 그대로야. 오늘 이후로 난 죽은거야. 알겠..'
"아니,안들을래. 일단 급한 불 부터 끄자. 니 앞에 목표. 그새끼부터 해결해."
'...'
"해결하면 다시 전화해. 꼭 해야돼. 끝인사는..그때하자."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타오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몇번 헝클어뜨린 타오가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눈이 그제서야 확연하게 드러났다. 깊은 눈이 조금 젖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냥 태워준다고 할 때 얻어타고 올 걸 그랬나. 차가운 새벽 공기가 민석의 옷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입고있는 검정색 저지를 턱까지 꽁꽁 여민 민석이 으스스 떨리는 몸에 팔짱을 꼈다. 마치 이세상에 혼자만 남겨진듯 주변이 온통 조용했다. 괜시레 오싹한 기분이 들어 민석이 걸음을 재촉했다. 골목 모퉁이를 돌은 민석이 후우 하고 숨을 내뱉었다. 민석의 입에서 옅은 입김이 새어나왔다. 여긴 낮에도 으스스 하더니 새벽엔 더하네. 사람도 안 사는것 같은데 그냥 싹 밀어버리면 얼마나 좋아.
탕-.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재촉하던 민석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잠시 그자리에 멍하게 서있던 민석이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제 귀가 이상한게 아니라면 분명 방금 전 그 소리는,
"..총?"
큰 소리는 아니였지만 뭔가에 막힌듯 둔탁하게 들린 소리는 분명 총소리와 비슷한 것이었다. 범죄와 관련된 영화를 워낙에 좋아하는 종대 덕에 취향에 안맞는 장르의 영화를 몇번 본 민석이 그 영화속에서 나오던 소리와 방금 전 제가 들었던 소리를 비교했다. 다른것이라고 하기엔 그 끔찍한 소리가 너무나 비슷해서 민석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떡하지? 어떡해. 분명 총소리였는데. 사람 죽은거 아니야? 아니, 잠깐만. 방금전에 총소리가 들렸다면 분명 총을 쏜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 거잖아. 미친. 신고해야되나? 아 어떡해. 크리스한테 전화할까. 민석이 입을 틀어막고있던 손을 내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화면을 누르는 민석의 손이 덜덜 떨렸다.
"..제발..크리스.."
터벅터벅. 뒤에서 들리는 작은 발소리에 통화목록을 뒤지던 민석이 숨을 흡 들이켰다. 민석의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금씩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이내 우뚝 멈췄다. 민석이 떨리는 손으로 다시금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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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왜때문에 타오한테 설레는거죠...ㅠ +(글 수정하다가 삭제해버린 나레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신알신 울려서 6편인줄 알았던 독자님들 죄송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6편은 최대한 빨리 올게요ㅠㅠ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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