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 "
울리는 목소리가 조금 비틀어졌다.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반지하의 공간에서 태민이 마른침을 삼키었다. 마른 몸이 조용히 들썩이는 것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왜……. 기범이 버석한 입술을 떼어 대답했다. 온종일 담배를 몇 갑씩 피워댄 기범은 제 목이 누군가에게 긁히는 듯한 통증을 느끼었다. 그럼에도 부름에 대답하는 것은, 네가 손을 떨고 있어서…….
공간이 너무 좁아 그렇다. 기범은 몇 발자국이나 떨어져 있는 사내의 불안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음에도 제 시선이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부정했다. 뼈대가 툭 튀어나온 손을 들어 제 사내에게 뻗자 삐끗하는 목소리가 또다시 작은 방을 울린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태민기범] 달구경
태민은 어릴 때면 종종 기범과 함께 달구경을 나가곤 했다. 그 해 여름날엔 밤하늘이 검지 않고 짙은 남색을 띄었다. 희고 예쁜 달이 언제나 좋다며 태민은 꿈결같은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기범은 잡힌 제 손을 꼬물거리며 불퉁한 얼굴로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희었던 운동화 끝이 때가 타 더러워졌다. 기범이 입술을 삐죽였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태민이 보면 또 잔소리를 할 터였다. 그에 반해 기범은 운동화가 지저분해지든 밑창이 닳든 제 발을 직직 끌며 걸음을 옮기면 그만이었다. 모든 것은 해지게 되어 있어. 기범이 제 신발끈을 묶어주는 태민을 내려다보며 언젠가 말했었다. 들은 건지 만 건지, 반질한 머리통이 말이 없었다. 운동화 같은 거 신경 안 써도 된다고. 기범이 따박따박 말하자 태민이 햇살같이 웃으며 끈을 매듭지었다. 형 운동화잖아요.
기범은 입을 다물었다. 내리쬐는 열기가 기범의 뺨을 데웠다. 얼굴 타겠어, 기범이 중얼거렸다. 기범은 여러모로 낮이 싫었다. 모른 척 구는 태민도.
태민은 열 아홉이 된 이후로 달구경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태민은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 고왔던 달을 제 눈에 담지 않았다. 기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아르바이트를 끝낸 저를 데리러 온 태민을 위해 준영은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달빛을 가리었다. 태민은 저를 위해 구름을 가져다 준 기범을 사랑했다. 태민에게는 사랑할 대상이 필요했고, 기범이 그 옆에 있었다. 태민은 연기를 머금은 기범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둘 다 눈을 감지 않고 키스했다. 진득하게 감아 오는 혀에 소름이 돋은 기범이 제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담배를 떨어트렸다. 사랑해요. 키스를 끝낸 태민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형을 사랑해요. 기범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죠? 태민이 물었다.
넌 날 사랑하지 않아. 관계 도중 기범이 울면서 한 말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 손으로 기범의 도드라진 날개뼈를 쓰다듬은 태민이 느리게 고개를 내려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요. 태민이 기계적으로 말했다. 제 등에 고개를 파묻고 속삭이는 것에 기범이 흐느끼며 밭은 숨을 뱉어내었다. 나는 형을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어……. 태민의 추삽질에 기범이 힘도 쓰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사람아, 옆에 있어 주세요. 기범이 피가 맺히도록 제 입술을 깨물었다. 응? 태민이 저를 보챘다. 기범은 제 두 손으로 차가운 바닥을 짚었다. 손가락 사이로 냉기가 스며들었다. 담배, 피우고, 싶, 어… 기범이 헐떡이며 말했다. 태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랑 하는 도중에 그걸 찾아요? 기범의 울음 사이로 헛웃음이 섞여 들어갔다. 그게 나잖아. 연기. 구름. 네 연막. 어머니… 기범이 끝내 말하지 못한 것들을 삼키고 손톱을 세워 바닥을 긁어내렸다. 태민은 파정하는 순간에도 기범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기범은 더듬거리며 담뱃갑을 찾았다.
태민은 한동안 틱, 틱 하며 불을 붙이지 못하는 기범의 라이터를 멍하니 바라보다 제 재킷을 들어 주섬주섬 라이터를 꺼내어 기범에게 건내주었다. 어두운 방 안을 순간적인 불빛이 확 하고 밝혔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직까지도 기범은 제 태민을 위해 담배를 피웠다.
" 어머니가 보고 싶어. "
기범이 들었던 손을 다시 찬 바닥에 내리었다. 저와 제 사내는 말이 없었다. 잔뜩 구겨진 이불이 기범의 발치에서 밀려났다. 태민이 웅크리고 있는 쪽으로 기어간 기범이 덜덜 떨리는 태민의 손에 입맞췄다. 달……. 기범이 기어이 태민과 눈을 맞추었다. 달구경 하러 가자, 태민아…….
그 때 너는 달을 올려다 보고 있었지.
달이 참 예쁘다고, 너는 웃으며 말을 했다.
나는 달도 별도 모두 네 눈 속에 심어 놓은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어.
그래, 나는 언제나 네 눈에 비친 달빛만 바라보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