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국의 제2황자, 민남준
시간을 달려서
04
w.예랑
민윤기,그는 떠났다. 아리송한 미소를 품에 안긴 채. 선물은 그의 동생을 통해 전해준다고 하였다. 그것은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내게 남몰래 선을 긋는 이유. 그와 나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상하게도 그는 다른 황자들과는 달리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현실에선 당연시되던 일인데 게임 속에 있다보니 주제를 모르고 설쳐대서일까, 내심 섭섭했다.끝끝내 그는 의미모를 미소만을 남긴채 가버렸다.
"홉,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물어보지 말라고 해도 물어볼 거 잖아."
그새 홉과 편해져서 몇 번 장난을 쳐 봤더니 아직도 저런다. 쫌생이.
"너 내가 니 생각 다 들린다고 했지."
"음? 내가 무슨 생각했는데?"
저걸 때릴 수도 없고, 홉에게 얄밉게 샐쭉 웃었다. 내 본래 성격이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이건 사기라고 하는 홉의 말은 무참히 씹고는 내 말을 했다.
"민윤기랑 나랑은 원래 무슨 사이야? 내가 고백이라도 옛날에 한 거야?"
"…그게 왜 궁금한데?"
"아니 그냥, 생각한 것보다 너무 안 친한 것 같길래. 나 어색해서 죽는 줄 알았어."
"……"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 침묵만을 지키는 홉이 답답해서 한 번더 물어보려했는데, 홉이 그 순간 입을 뗐다.
"민윤기가 너를 멀리하면,"
"……"
"그냥 너도 똑같이 멀리해."
"……"
그게 편해, 얘기하는 홉이 어딘가 슬퍼보여서 더이상 말을 걸 수 없었다. 그저 알겠다고 작게 말하기만 할 뿐이였다. 그러고 보면 은근 홉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 같다. 상관없으려나….
-
"황녀님, 여긴 뭐 하는 곳입니까?"
"황녀님, 여기 들어가 봐도 되는 겁니까?"
"황녀님은 언제까지 일하셔야 합니까?"
"황녀님, 너무 오래 일하시는 거 아닙니까? 화국에선 노비들도 쉬면서 일합니다."
다른 나라의 손님들보다 더 빨리 온 화국의 지민은 심심해서 그런 건지 바빠 죽겠는데 자꾸 나에게 들러붙는다. 살짝 귀찮긴 한데, 또 방에 들어가 혼자 놀라고 그러면 삐질 거 같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왜 빨리 와가지곤.
"황녀님, 혹시 방금 제가 귀찮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대답이 늦지 않습니까."
"……"
"전 황국에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얼마전에 처음 온 거라 지리도 몰라서 궁궐안에만 있을 수 있는데…. 황녀님 전 그냥 제 방에 들어가 있겠습니다. 혼자. 일 열심히 하시고,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동정심 유발 작전인 걸 알면서도 강아지마냥 쳐다보는 눈길에 마음이 약해지는 건 사실이다. 화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 남겨두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지민황자님."
"왜 부르십니까?"
"놀러갈까요?"
"…제가 먼저 놀러가자고 한 거 아닙니다. 황녀님이 그러신 겁니다, 그죠?"
생각보다 좋아하는 지민황자님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진, 저잣거리에 나갈 테니 채비 좀 하자."
"황녀님, 지금 나가도 되겠습니까? 아직 축하연 마무리도 덜 되지 않았습니까."
됐어, 내가 나간다는데 누가 말려 짐짓 허세를 부리곤 진이 안 된다고 할까봐 빠르게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또 넘어지십니다! 진의 말은 무시하고.
-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궐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황녀랍시고 맨날 궐에만 처박혀 있고, 이게 뭐야. 실은 몰래 나온 것이 지민때문도 있었지만 내가 나오고 싶어서였다. 꼭 역사책에서 본 옛날 저잣거리 모습같았다. 엿도 팔고, 비단을 파는 데도 있고, 예쁜 색깔 종이를 파는 곳도 있었다. 생각보다 물건이 다양해서 놀랐다. 재미없어 할 줄 알았는데 지민도 황국 시장은 처음이라 신기한 것인지 이것저것 많이 보았고, 진은 그런 우리 둘을 그저 묵묵히 따라갈 뿐이였다. 그래도 나이가 더 많다고 이런 데도 많이 와봐서 그런 건가.
"황녀님, 이리로 와보세요!"
"또 무엇이에요?"
"선물."
지민이 선물이라면서 건낸 것은 도저히 이 곳에서 산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귀해 보였다. 물끄러미 본 반지는, 꽃모양 보석이 달려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생일선물."
얘는 꽃모양 보석이 달린 반지를 주게 되면 공략 성공.
나 또 성공한 건가.
-
몰래 궐내로 들어갔다. 혼낼 준비를 한 상궁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백국에서 손님이 와 계시다며 이끄는 시녀들의 손짓에 이끌려 정신없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하얀색, 하얀색? 남준인건가?
남준이라면 그나마 안심이었다. 지난 번 홉이 공략법이랍시고 가르켜준 얘기들 중 대부분이 남준얘기였다.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이유를 물을 틈새도 없이 몰아치는 정보들에 기억하기 바빴으므로.
"어, 남준오라버니!"
"…날 기억해?"
"그럼요. 제가 남준 오라버니를 어떻게 잊겠습니까. 어렸을 때는 황국에 자주 놀러 오시더니 섭섭합니다."
"말 낮추거라. 실은 내가 네게 경어를 써야 한단 걸 너도 잘 알잖아."
그 말을 내뱉는 남준이 너무 슬퍼보여 괜스래 더 밝은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홉이 말해준 대로라면 남준은 안쓰러운 사람이었다. 민윤기, 그가 태양이라면, 남준은 달같은 사람. 충분히 밝지만 늘 윤기의 그늘에 가려진 사람이었다. 동생의 그늘에 가려졌던 날 보는 듯해 동질감도 들었고. 이래저래 보지도 않았으면서 정이 가던 그런 사람이었다.
"오라버니. 제가 오라버니께 달을 닮았다고 했던 것 기억나셔요?"
"…그래, 그랬지. 형님껜 태양을 닮았다고 했고 말이야."
"이것은 윤기오라버니껜 비밀인데요, 실은 전 달이 더 좋답니다!"
"…뭐?"
"전 햇빛에 나가면 그 뜨거운 기분이 싫어요. 달은 은은하니 얼마나 좋아요, 그렇죠?"
그는 내 말을 듣더니 변하지 않았구나, 작게 읊조렸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오라버니."
"초대해줘서 고맙네요, 황녀마마."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푸흐흐, 웃었다.
"이 것은 형님이 네게 전하라고 준 것이다. 안에 서신도 들어있다고 하니 나중에 읽어 보아라."
"꽃병…, 입니까?"
"그래. 서쪽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힘들게 구한 것이니 예쁜 꽃을 심거라."
왜 하필 꽃병일까 생각하다가도 내가 원체 꽃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던터라 잘 되었다 싶었다. 꽃병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품에 안았다. 내 방 볕이 잘 드는 곳에 가져다 놓거라, 시녀에게 일렀다.
-
드디어 준비한 축하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나가기 전까지 계속해서 정국이 준 반지를 껴야 할까, 지민이 준 반지를 껴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끼지 못 했다. 이래서 홉이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 걸까.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쥔 것을 놓지 못 하다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나란 아이는 충분히 그럴 만큼 한심한 아이다.
간소히 하라 그리 얘기했건만, 축하연은 모든 것이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청국,화국에서는 제1황자들이 왔고, 백국에서는 황제인 윤기오라버니를 대신해 2황자이신 남준 오라버니가, 흑국에서는 사신만이 자리했다. …저만치서 태형도 보였고. 영의정의 아들이라고 했으면서 왜 저렇게 멀리 있는 거야. 내가 조금 더 가까이 오라고 했다 전하라고 진에게 일렀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신경쓰였다. 딱히 즐거운 자리일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리한 황자들끼리 이리도 신경전이 거셀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적막이 감도는 축하연장에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는데, 그걸 또 그새 본 것인지 정국이 말을 걸었다.
"누님, 그렇게 진지한 표정 짓지마. 안 어울려."
응 그래….황자들 기싸움 틈바구니에 끼여 어울리지도 않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고 말았다.
"그새 친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네."
"남준오라버니, 저 원래 친한 사람들 많았어요!"
"많긴 무슨. 너 항상 형님과 나랑만 놀았잖아."
"저기, 저도 친했었거든요?"
"애송이님은 빠지는 게 좋을 거 같다만,"
원래 이런 사람들이 아닌데. 진짜 왜 이러는 거야…. 분위기라도 바꾸자 싶어 주최자인 내가 몸소 발버둥쳤다.
"음, 서로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자기소개라도 할까요?"
"싫어. 딱히 친해지고 싶은 사람도 없고."
"피차일반."
…도대체 나보고 뭘 어떡하란 거지.
"황녀님께서 부러 말하신듯 싶은데, 모두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왠일로 태형이 먼저 그렇게 말해왔다. 조용히 있던 그가 말을 하자 놀랐는지 황자들이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누구냐?"
"귀하신 황자님들에 비하면 비천한 신분이라, 말하기 부끄럽습니다만."
묘하게 비꼬는 어투에 황자들이 화를 내는 것 아닐까 걱정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가장 먼저 남준오라버니가 그에게 성을 내었다.
"네 말이 맞다면 더더욱 네 소개를 해야할 둣 싶구나."
"……"
"어서 말하라 하지 않느냐? 귀라도 먹은 게야?
늘 남의 위에 군림만 할 것 같은 그가 봉변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측은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왜일까.
"오라버니 이제 그,"
"황국 영의정의 아들, 김태형이라고 합니다. 기대를 하셨다면 죄송한 마음이군요."
"……"
"아, 참고로 말하자면 제 아버지께선 황녀님과 저와의 약혼을 추진 중 이십니다."
"…뭐라?"
"네 말이 참말이냐?"
"누님,아니지?"
약혼이라는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황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약혼,이라. 그 자가 황국의 권자자리를 탐내고 있는 것은 알았으나 제 아들과 날 약혼 시킬 생각까지 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안 그래도 정략결혼을 당해야 하는 입장이라 심란한데 왜들 이러시는 건지."
능글거리는 그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인 건지, 그의 본심인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 혹여 부러우신거라면 제가 아버지께 부탁드려 약혼을 취소해 달라고 해 보죠."
"누님을 모욕한다면 네 그 나불대는 입뿐만 아니라 목 위에 달린 것또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내 정국이 그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네 아비가 아무리 황국의 영의정이라 한들, 화국에 오면 한낱 귀족일 뿐이다."
오고가는 날카로운 말들에 머리가 아파왔다. 어지러웠다. 머리가 핑-도는 느낌에 헛발을 내딛었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알게 된 것은 그의 여유로운 미소라 생각했던 것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 것이라는 것. 그 것이 그 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
"황녀님께서 쓰려지셨습니다. 신경전은 그만하시죠."
"누님이?"
"…혹시 몸이 안 좋은 게야?"
"간혹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으시면 이러십니다. 그럼 저는 황녀님을 궁안에 모시러,이만."
황녀를 가뿐히 안아 올리곤 걸어가는 진의 등 뒤에 각기 다른 4명의 불꽃 어린 시선이 닿았다.
"홉, 난 왜 이렇게 이 사람들이 불쌍하지."
"누가."
"그냥 다. 모든 것이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인데도 그냥 안쓰러워."
"그러면 안돼."
"…응?"
"너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해."
할멈의 눈에 띄게 된, 너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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