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고등학교 시리즈
S# 1. 소꿉친구 김태형.
* 이 글은 다른 필명으로 올렸던 글을 재업로드 한 글로 동일 인물이니 놀라지 마시어요.
김태형은 잘생겼다. 그것도 존나게.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인정하기 싫은 부분이지만, 현실까지 부정해가며 김태형은 존못이다! 라고 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비참했다. 올해로 김태형을 봐온지 딱10년이 됐고, 그 10년동안 김태형은 꾸준하게도 잘생겼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럴 예정인 듯 싶었다.
당연하게도, 김태형은 인기도 많았다.얼굴 잘생겼지, 성격도 뭐……, 좀 많이 병신 같기는 하다만 그래도 나쁜 편은 아니었으니.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어느새부턴가 김태형은 흔히 말하는 일진 무리의 아이들과도 스스럼 없이 함께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태형의 호구끼가 어디로 간다거나, 사람을 패거나 하는, 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나는 그에 대해서 그닥 크게 신경을 두지 않았었다. 아, 딱 한 번 예외였던 경우는 있었지만.
그 날은 혼자서 하교를 하던 날이었다. 햇빛은 안 그래도 버림 받아 서러운 나를 태워죽일 심산인지 평소보다 두 배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그런 날이었다. 문과 전교 1등의 타이틀을 달고서, 무척이나 뻔뻔하게도 수학 교재를 옆구리에 끼고 이과 탑 오빠에게 수학 문제를 물으러 떠난, 아주 열렬한 짝사랑을 하시느라 친구를 버린 정소연을 뒤로 한 채, 나는 외로이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은 여러개였고, 나는그 중에 되도록이면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가는 길은 피하는 편이었다. 항상 하교를 할 시간이 되면 거기에서 뭉게구름들이 어찌나 피어나는지. 나는 담배라면 딱 질색이었고, 그래서 굳이 지름길인 그 길을 내버려두고서 먼 길을 돌아가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 날은 혼자여서 쓸쓸할 뿐만 아니라, 햇빛 또한나를 집어삼킬 기세였기에, 나는 애써 돌아가는 길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는 그 길을 택했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 한참을 걸어도 보이지 않는 아지랑이들에, 나는그래도 오늘 운빨이 그렇게 거지 같지는 않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그리고 단지를 벗어나는 출구 쪽을 향하던 나는, 그 출구 바로 앞 쪽에서 담배를 태우던 무리들을 결국에는 발견하고야 말았고, 내 콧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냄새들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 그 인상을 찌푸린 건 결코 앞을 더욱 선명히 보기 위함이 아니었거늘. 나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 무리를 지나치려했었다, 물론 그 무리 속에서 하얀 긴 막대를 주둥이에 물고 있는 김태형을 보지 못했었더라면.
지금 생각해도 나는 내 스스로에게 박수갈채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와,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미친 짓을 한 건지. 출구 쪽을 향해서 빠르게 내딛던 내 발의 방향을 순식간에 튼 나는, 그대로 김태형에게로 다가갔다. 나를 발견하고서 눈이 커져서는 주인을 발견한 개새끼 마냥 환히 웃어보이며 손을 흔드는 김태형에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김태형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빼내어 바닥으로 내던지고서,그대로 김태형의 뒷통수를 세차게 후려갈겼다. 빡, 둔탁한 소리와 함께 김태형의 고개가 아래로 처박혔고, 주위 병신들도 모두 정지. 반갑냐, 병신아? 내 썩을대로 썩은 표정과 날이 선 말투에 그대로 김태형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잔뜩 울상을 지은 김태형은 마치 주인에게 혼이 나 시무룩해 꼬리를 축 늘어뜨린 강아지 같았다.
허나 김태형의 그 강아지 같은 표정도 결국에는 잠깐 뿐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저 또라이가. 금세 헤헤,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김태형은 그대로 나를 제 품에 꼭 끌어안고서 몸을 흔들며 앙탈을 부려대었다. 아, ##OO아. 엄마한테 말하지 마, 응? 끊을게, 끊을게. 김태형의 되도 않는 거지같은 애교는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가관이었던 것은, 내게 무슨 년이니, 어쩌니 하는 개소리들이었다.지금 다시 떠올려도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불쾌한 언행들에, 그 당시 나는안 그래도 솟구치던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밀어올라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뭐, 다행히도 내 짜증이 뚜껑을 열고서 나와 지랄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내가 김태형의 품에서 나와 지랄을 하기도 전에, 나를 더 꽉 끌어안은 김태형이 내 머리통 위에 턱을 얹고서는 네가 뭔데 얘한테 년 소리야, 너 얘 알아? 하고 대신해서 지랄을 해준 덕분이었다. 예전부터 느꼈던 점이지만, 김태형은 스킨쉽이 항상 참 자연스러웠다. 특히 지 키가 나보다 조금 더 커졌을 무렵부터는 내 머리통을 아주 지 받침대처럼 사용하는데, 정말이지 매일 당해도 매일 좆같은 기분이 들고는 했다.
……아무튼, 김태형은 그랬다. 그리고 나는 오늘, 두 번째 예외 상황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래서 태형이랑 무슨 사이냐고.”
“친구라고.”
“태형이랑, 친구라고?”
“어.”
“걔 여자랑 친하게 안 지내, 그리고 넌 친구끼리 그렇게 막 끌어안고 그러냐?”
정말이지, 이보다 짜증이 날 수는 없었다. 그 날 같이 있었던 년들 중 하나인 건지, 내게 김태형과 무슨 사이냐며 추궁을 해대는 빨간 머리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다시 문제집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대체 뭘 처바른 건지, 아니면 뿌린 건지 코 끝을 찌르는지독한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 날 있었다면 아마도 나한테 개소리를 지껄이던 것들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썅년일세.
“와, 지 뒤통수를 쳐도 아무 말도 안하고그냥 웃더라니까?”
“김태형이? 씨발, 와……. 나는 지 털 끝도 못 건드리게 하더니.”
쉬는 시간 한 번 겁나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내 앞에 자리를 잡고서 옆에 끼고 온 친구와 시끄럽게 대화를 나눠대는 빨간 머리에, 짜증스레 잡았던 펜을 내려놓았다. 빨간 머리가 무서운 건지, 반 애들 모두가 눈치를 주면서도 차마 나가라고 하지는 못하는 모습에 괜히 전부 나 때문인 것만 같아 아이들에게 점점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무섭기는 하지. 얼굴이.
“그만 갈 생각 없냐.”
“아니, 말 해주면 간다니까?”
“……친구라고, 그냥 진짜 친구라고.”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하. 내가 그 새끼를 지금 10년 째 보고 있거든?”
“와, 존나 부럽다. 태형이를 10년이나 봤대…….”
씨발, 노답. 빨간 머리 옆에서 휴대폰에 고개를 처박고서 바쁘게 손을 움직여대던 핑크 색 머리가 내 말에 날 쳐다보며 말 꼬리를 길게 늘였다. 도저히 말이 통하는 족속들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 수준일 줄은 미처 몰랐다. 머리 색들 봐라, 무슨 파워레인저신 줄. 파워레인저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며, 나는 그대로 책상 위로 스르르 엎어졌다. 안 그래도 피곤해 자고 싶었던 걸 수학 숙제 때문에 참고, 또 참았었는데. 두 눈을 꼭 감자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는 하이톤의 목소리들에 짜증스레 얼굴 위로 문제집을 덮었다. 몸이 축 늘어졌다. 노곤노곤하고, 정말 딱 이대로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굉장히 행복한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누군가가 건드린다면, 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 존나…….”
톡톡, 내 다짐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내 문제집을 손으로 두들기는 소리에 짜증스레 작은 목소리로 욕을 읊조렸다. 간만에 단잠에 좀 빠져보겠다는데, 아. 계속해서 내 얼굴 위에 덮힌 문제집을 두들기는 손길에 짜증스레 문제집을 확 걷어내며 고개를 처들었다.
“아, 김태형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그냥 진짜 친구라고, 친구. 그 새끼가 내 앞에서 웃통을 까든, 바지를 벗든 나는 아무 감흥 없거든?”
“……아, 그.”
교실 전체에 울려퍼질 정도로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외치고 난 후에야, 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걷어내고서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감고 있던 눈을 겨우 뜰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내 문제집을 두들겨대던 손길의 주인이 파워레인저가 아닌 김태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앞에서 바지를 벗어도 아무 감흥이 없는, 바로 그 김태형.
양 손에 초코에몽과 빨대를 들고서 그 큰 눈을 껌뻑이며 나를 내려다보는 김태형을 올려다보다, 어느새 정적으로 변한 교실에 미간을 좁혔다. 어쩐지, 파워레인저들이 조금 조용해졌다 싶었더니만 김태형의 등장이라니. 오, 존나 별론데.
“……뭐야, 왜 왔는데.”
“……어, 나는 그냥 이 초코에몽 주려고 온 건데…….”
“……놓고 가.”
“……그럴까?”
헤, 어색하게 웃으며 내 책상 위에 초코에몽과 빨대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김태형이 평소와 다름 없이 내 머리를 제멋대로 헝클이다, 내 앞에 앉아있는 빨강 머리를 발견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와 그 년을 번갈아보기 시작했다.
“뭐야? 너 얘랑 아는 사이야?”
“당연히 아니.”
“근데 얘네가 여기 왜 있어?”
“…….”
역시는 역시였다. 김태형은 병신인 게 틀림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지 얘기를 나누던 걸 들었음에도 불구하고서, 순식간에 들은 걸 망각한 모양인지 내게 해맑게 물어오는 병신에 나는 그저 조용히 초코에몽에 빨대를 꽂으며 침묵을 유지했다. 내 침묵에 김태형이 아, 뭔데. 하고 내 머리를 베베 꼬아대며 칭얼댔지만 나는 여전히 침묵했다. 김태형이 찡찡대는 걸 보는 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하지만 내게는 일상적인 것들이, 파워레인저에게는 꽤나 컬쳐쇼크였는지 자연스러운 나와 김태형의 모습에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출하시더니,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교실을 나가버렸다. 아, 김태형이 온 건 존나 신의 한 수였나보다. 나는 손을 뻗어 김태형의 머리를 개새끼 머리를 쓰다듬는 것 마냥 슥슥 쓰다듬었다. 그에 맞춰 김태형이 자연스레 자신의 키를 낮추며 고개를 숙여주었다.
“잘했어.”
“어? 어……. 뭔지 모르지만 네가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와 나 존나 잘했나보다.”
“어.”
파워레인저 퇴치라니, 존나 잘했지. 암.
* * *
김태형은 인기가 많았다. 정말로, 반에 김태형을 좋아하는 아이가 한 명 정도는 꼭 존재할 정도로, 김태형은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걔한테 고백하겠다고 다른 학교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꽤나 있었으니, 김태형의 인기가 실로 얼마나 대단한지는 아마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물론, 나 또한 모를 리가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김태형은 여자 친구를 사겼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랬다. 옆 학교에 아이돌보다 더 예쁘다는 여신이 김태형에게 수줍게 번호를 달라며 휴대폰을 내밀던 것을 하교를 하던 도중에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던 적이 있는데, 나는 당연히 김태형이 드디어 연애를 하겠구나 싶었었다. 그리고 모두들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김태형의 모쏠 탈출을 축하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음 날 학교에 등교한 나는 김태형이 여신님을 깠단다! 하는 소문이 전교에 퍼진 것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전해들을 수가 있었다.
솔직히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애는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정말로 지나가다 본다면 입을 벌리고 쳐다볼만큼 예뻤는데, 대체 왜? 김태형이 뭐, 성격을 중요시 한다느니 그런 개소리를 내뱉을 리는 없고. 나는 잠시동안 김태형의 무성애자 설에 격한 공감을 하다, 얼마 가지 않아 나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김태형에 대한 관심들을 고이 접었었다.
그리고 정소연은 이에 대해서, 김태형의 박OO 짝사랑 설을 강력히 주장하고는 했다. 들으면 들을 수록 굉장히 맞는 소리였다. 물론 처맞는 소리. 김태형이, 나를? 와, 온몸에 돋는 소름에 옅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끔찍해라.
“아니, 진짜 들어봐.”
“응, 들을 가치 없어.”
“내가 보기에는 백 퍼라니까? 김태형이 너 좋아하는 거, 맞다고!”
“건우 오빠는 요즘 어떠시냐.”
“……아, 어떻기는. 물론 겁나 멋있고, 여전히 귀엽고. 수학, 크…… 괜히 이과탑이 아니다?”
단순한 년. 계속해서 짝사랑 설을 주장해대며 옆에서 조잘대는 정소연에 떡밥을 던지자, 그걸 덥썩 물고서는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짝사랑을 하면 다 저렇게 병신이 되는 건가. 그런 거라면 정말이지, 짝사랑 같은 건 평생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급식에는 먹을 반찬이 한 개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나는 애꿎은 밥을 젓가락으로 뒤적이다 한숨을 내쉬고서 젓가락을 입에 물었다. 여전히 앞에서는 건우 오빠가 어제는 어쨌니, 저쨌니 거리는 정소연의 헛소리를 들어대며 머릿 속으로 먹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들을 한참 작성해대고 있을 때였다.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철제 식판과 음식들에 나는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서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그리고는 급식 배식대에서 별로 멀지 않은 위치에서 넘어진 박지민의 모습을 발견하고서야, 내 간을 떨어트릴 뻔한 것이 박지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아, 저 병신이 진짜. 박지민이 넘어지자마자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며 날뛰어대는 박지민의 친구들을 바라보다, 어렴풋이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쯧쯧, 혀를 찼다. 저 새끼도 짝사랑 때문에 저 고생이구나. 대체 그게 뭐라고.
“진짜 박지민도 짝사랑 나 못지 않게 유명하게 한다…….”
“와, 너 못지 않은 거면 좀 심각한데.”
“쟤가 쟤네 반 반장 좋아하는 거 모르는 애 찾는 게 아마 더 힘들 걸?”
“……여기 하나 있네, 그 찾기 힘든 애.”
너는 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단호한 정소연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잘만 살고 있는데 뭐. 박지민이 9반 반장을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딱히 반찬이 없어 맨 밥만 씹어대며, 나는 어차피 내일이면 망각할 사실을 되뇌였다.
가만히 생각을 하고 있자니, 조금씩 궁금한 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짝사랑.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만,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나, 소설 혹은 영화 속에서의 묘사를 보고 있자면 그리도 간질간질 하고 좋을 수가 없는, 그런 거였다, 짝사랑이란. 문득 고개를 들어 정소연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건우라는 이름만 나와도 좋아 죽으려드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야, 정소연.”
“엉, 왜.”
“……짝사랑 하면 어때?”
“……뭐냐, 갑자기. 어디 아프세요?”
“아니, 그냥…….”
“뭐, 어떻기는. 그 사람 얘기만 들어도 좋고,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좋고. 세상 만물들이 근사해보이고, 어…… 근데 또 가장 행복하게 해주면서, 가장 우울하게 만들기 쉬운 게 짝사랑이지. 뭐만 하면 또 우울해진다?”
“……아, 한마디로 되게 뭣같은 거네.”
풋풋한 짝사랑을 그딴 식으로 매도하지 말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정소연에, 나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식판을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잔반을 버리기 위해서 뒤를 돌아 걸어가자마자 내 뒤를 바짝 쫓아오며 옆에서 끊임 없이 짝사랑에 대한열강을 해대는 정소연에, 나는 괜한 질문을 던졌다는 생각을 했다.
* * *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나오는 답은 한 가지 뿐이었고, 나는 그 답이 그다지, 달갑지가 못 했다.
OO야, 누가 너 부르는데? 라는 반 친구의 말에 부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 복도에 나온 나는, 웬 처음 보는 남자애가 수줍게 폰을 내미는 모습에 멍청하게 두 눈을 껌뻑이며 그 남자애를 바라보았다. 어, 이거 어디서 본 상황인데. 그, 그 때 그 여신이 김태형한테 했던 짓인데 이거.
“번, 번호 좀!”
“…….”
“나, 너 지켜본 지 꽤 됐어. 좋, 아해, OO야.”
아, 세상에 신이시여.저가 내민 핸드폰을 받아들지 않는 날 힐끔, 쳐다본 남자아이가 해오는 고백에, 나는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이런 일을 당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원하지도 않았던지라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당연하게도 이 아이를 받아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하나 둘씩 모여들며 수군거리는 아이들에 막막함은 그 크기를 점점 키워갔다. 구경꾼들까지 생긴 이 상황에서, 나는 이 아이에게 단호하게 싫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뭐냐, 이게?”
“……어, 김태형.”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데.”
모여있는 인파들이 어째 조금 갈라진다 싶었더니만, 내 앞으로 불쑥 다가온 김태형에 당황스러움은 배가 되었다. 아, 하필 왜 이럴 때에 정소연이 주장하던 개소리가 떠오르는 건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나와 남자 아이를 번갈아보는 김태형에,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김태형의 팔목을 붙잡았다.
“아, 씨발, 좀 놔 봐.”
……아? 굳은 표정으로 저의 팔목을 붙잡은 내 손을 뿌리치는 김태형에, 나는 순간 멍해져 그 자리에 서서 손을 뻗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김태형이 나를 뿌리쳤다. 거기다가 욕까지 내뱉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나는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무엇보다도…….
“야, 김태형.”
“너 뭐냐고, 왜 박OO랑 이러고 있냐고.”
“야, 씨발 김태형. 뒤질래?”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니, 내가 얘랑 뭐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내가 뭘 했다고 나한테 짜증을 내고 지랄인가 싶은 마음에 저 깊은 속에서부터 절로 욕이 우러나왔다. 내 거친 욕설에 금방이라도 남자애를 줘 팰 듯이 굴던 김태형이 움찔하더니 가만히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고, 김태형 때문에 잔뜩 쫄아서 우물쭈물하던 남자애는 넋을 놓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진짜 뭣 같게.
“나 아직 얘랑 한마디도 안 섞어봤거든? 왜 네가 먼저 나서서 지랄인데.”
“…….”
“뭘, 뭐야. 존나 딱 보면 모르냐?”
“…….”
“고백 받은 거잖아, 병신아. 나도 이유는 진짜 모르겠는데 쟤가 내가 좋대. 어, 진짜 대체 왜지?”
“…….”
“……아무튼, 왜 지랄이야 지랄이.”
“그래서, 저 새끼 받아주게?”
“남이사 받든 말든.”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고, 기가 찼다.김태형의 물음에 얼굴을 구기며 애잔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김태형을 바라보다, 어느새 조용해진 주위에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쳐다봤다. 복도를 가득 메우고서 웅성대던 아이들은, 김태형의 물음에 대한 내 답을 기다리는 건지 뭔지 다들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좆같은 상황이었고, 여전히 김태형은 굳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억. 진짜 딱,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갑작스레 김태형은 나를 끌어안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새끼는 또 왜이러나, 싶었지만 나는 그저 조용히 가만히 안겨있어주었다. 이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임을, 몇 번의 뿌리침을 통해서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그랬더니만, 다시 평소와 같이 호구로 돌아온 김태형이 아아, 하고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 이건 또 뭔 신종 지랄이야.
“OO야, 우리가 남이야? 응? 응?”
“놓고 얘기할 의사는 없냐……?”
“야, 네가 OO가 좋아하면 얼마나 좋아했다고. 나보다 더 오래 좋아했어? 내가 훨씬 더 오래 됐거든?”
“아니, 뭐 그딴 걸로 존나 유치하게…….”
“…….”
“……뭐?”
마치 우리 아빠가 더 잘생겼어! 하고 외치는 아이 마냥 저가 더 오래됐다며 틱틱대는 김태형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김태형을 밀쳐내어 그 품 안에서 빠져나왔다.뭐, 뭘 해? 밀쳐진 그대로 두 눈을 껌뻑이며 뻔뻔하게도 나를 쳐다보는 김태형을 보다, 당황스러움과 민망함에 순식간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주변에서 대박, 대박 거리는 환호 소리가 들려왔고 그 사이에는 간간히 욕설도 섞여있는 듯 했다. 저를 빤히 바라보는 나에게 어깨를 으쓱여보이며 입 모양으로 왜? 하고 묻는 김태형의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듯한 낯짝을 바라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둘 중 누구를 받아줄까, 당연히 김태형이 아닐까, 아니다 혹시 모른다, 하는 추측들이 당사자의 앞에서 난무했다. 그 때, 때마침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모두 탄식을 내뱉으면서도 도저히 흩어질 생각을 않고서 모두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주춤대기만 하였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 된 이 상황에서 나는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떫은 표정이 도저히 펴지지가 않아 나는 그 표정 그대로 김태형을 똑바로 주시하며 말했다.
“둘 다 내 눈 앞에서 사라져줬으면 하는데.”
“…….”
“지금 당장. 종 친 거 안 들려?”
* * *
체 할 것 같다. 아니, 이미 체 한것 같다.와, 중학교 2학년 때 대차게 선배의 고백을 깐 이후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던 고백을 갑작스레 두 번이나 받은 나는 그대로 순식간에 학교의 인기 스타가 되었다.물론 고백을 받았다, 라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둘 다 깠다. 근데 그 중 한 명이 김태형이다. 라는 것 때문이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아무 사이 아니라며, 하고 지랄을 해대는 파워레인저를 무찌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애들은 또 얼마나 지랄을 해대는지.
그리고 사실 그 지랄들보다 훨씬 벅찬 것은, 내 눈 앞에 앉아 있는 김태형이었다. 대체 여기에 얘가 왜 앉아 있는 걸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내 머리에서는 도저히 흡족한 대답이 나오질 못했다.
“……정소연은.”
“응? 건우 형 옥상 정원에 있다고 말해줬더니 바로 뛰어가던데?”
“……하. 친구를 잘못 사겼지, 내가.”
“내 요구르트 먹을래? 내가 이걸 양보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 OO야. 쩔지, 내 마음이야.”
“응, 그 마음 제발 넣어둬.”
단호하게 김태형의 입 안으로 탕수육을욱 여넣는 나에도 아랑곳 않고서 그걸 또 받아먹고 있는 김태형에,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
“……응, 생각이라는 걸 하긴 하는구나.”
“걔한테 되게 고마운 거 있지?”
“……하.”
“네가 딱히 남자에 관심도 없고, 그래서 그냥 나도 굳이 고백 안 하고 있었거든?”
“…….”
“물론 존나 하고 싶었는데, 내가 갑자기 OO야, 좋아해! 이러면 네가 당황할 게 뻔하잖아. 그치?”
“그것도 존나 갑자기였거든?”
“뭐, 까이기는 했지만…….”
“…….”
“아, 근데 진짜 나는 왜 까인 거야? 응? 나 별로야? 야, 솔직히 내가 얼마나 잘하는데.”
차라리 벽이랑 대화를 하고 말지.상당히 일방통행으로 이뤄지는 대화 내용에 결국 나는 김태형과의 소통을 포기하고서 다시 식판에 얼굴을 처박았다.
“어, 형 안녕하세요.”
“어,전정국. 안녕.”
“밥 맛있게 드, 아! 아 누나 같이 가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급식을 퍼먹는 일에 열중하던 나는 김태형에게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에 소심하게 고개를 약간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1학년 명찰을 단 남자아이는 김태형에게 고개를 까딱여 인사를 하더니만, 급하게 누군가의 뒤를 쫓아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며 사라져버렸다.
“전정국? 와, 잘생겼네.”
“…….”
“……아, 왜 뭐. 표정 펴.”
“쟤가 잘생겼어?”
“…….”
“내가 더 잘생겼는데? 저런 스타일 좋아해? 응?”
하하, 병신 새끼 진짜.좋다고 얘기했다가는 살인이라도 저지를 기세로 정국이라는 아이가 지나간 길을 노려보는 김태형에 나는 다시금 고개를 식판에 처박았다. 다 먹을 때까지 절대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근데 진짜 나는 왜 까인 거야? 내가 뭐가 문젠데?”
“…….”
“솔직히 얼굴 잘생겼지. 성격도 이만하면 좋지. 야, 맞아. 나 그 날 이후로 담배도 끊었다?”
“…….”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
“나 공부도 아예 손 놓은 거 아니다? 응?”
“……김태형.”
“야, 그래도 나 좋다는 애들 꽤 있었……, 응?”
“넌 존나 그 입이 문제야.”
앞에서 쉴 새 없이 입을 놀려대는 김태형의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는 5교시 수업 시간에 어떻게 하면 선생님에게 한 들키고 잠을 잘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한참 심각하게 고찰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라고는 하지만 사실 내가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진짜로 김태형의 말을 한 귀로 흘려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뻔뻔한 김태형의 자화자찬들을 가만히 앉아 듣고 있던 나는, 결국 짜증스레 젓가락을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으며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지금 네가 하는 말에 진심 같은 거 존나, 눈곱만큼도 안 보이거든?”
“…….”
“적당히 시끄럽게 굴고, 밥 좀 먹게 꺼져.”
와, 존나 단호했어. 이 정도면 됐다.머릿 속에서 둥둥 떠다니던 말들을 결국 입 밖으로 뱉어내자, 속에 맺힌 응어리들이 싹 가라앉는 기분이었다.그제야 조금 조용해진 김태형에 만족스레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며 다시 젓가락을 집어든 찰나, 내 손에 들려있던 젓가락이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뭐야, 씨발? 그리고 물론 당연하게도 그 범인은 김태형이었다. 내 젓가락을 뺏어든 김태형은 화가 난 건지 겁나 씩씩대면서 분을 못 이겨 제 입술을 짓이기며 나를 매섭게 쳐다보는 중이었다.
“와, 진짜 마상. 완전 마음의 상처.”
“……내놔.”
“내가 별로라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내가 이해를 해볼게.”
“…….”
“근데, 내 진심을 막 그런 식으로 매도하고 그러면 나 진짜 마음 아프거든?”
“……하.”
“뭐, 전교생 앞에서 고백이라도 해야 믿어줄래? 어? 그러면 받아줄 거야?”
“그래.”
“……어?”
“네가 무슨 수를 쓰든, 전교생 앞에서 고백하면 내가 받아줄게.”
“…….”
“그니까 내 젓가락 내놔, 씨빠빠야.”
나를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며 젓가락을 내어주지 않는 김태형을 한심하게 바라보다, 나는 그대로 김태형의 손에 쥐여있던 내 젓가락을 뺏어들었다. 진짜? 진짜 받아준다고 했다? 내게 재차 물으며 확인 사살을 해오는 김태형에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요구르트 뒷꽁무니를 이로 짓이겼다. 아, 역시 요구르트는 밑으로 쪽쪽 빨아먹는 재미지.
“해보든지.”
“무르기 없다!”
내 말에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급식실 전체에 울려퍼질 정도로 소리를 친 김태형이 히죽히죽 미친 놈 마냥 웃어제끼더니 아예 입까지 벌려가며 환히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내게 이따 봐, 자기야! 하고 외치고서는 급식실 밖으로 황급히 뛰어나가는 김태형을 보며 나는 느릿하게 식판을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워, 내가 왜 지 자기야 미친놈이.
* * *
김태형은 또라이였다. 그것도 완전 제대로 된 진성 또라이. 9살 때는 제 키보다 세 배는 더 높은 곳에 제 친구들까지 데리고 올라갔다가 엉엉 울며 김태형을 제외하고는 다들 내려오지 못 해 119를 부르기도 했었고, 13살 때는 지네 집 커튼을 태워먹기도 했었으며, 16살 때는 급식 빨리 처먹겠다고 2층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었다. 물론 이 외에도 김태형의 또라이 짓을 나열하자면은 아마 밤을 새워도 모자랄 듯 했다.
그리고, 나는 김태형이 얼마나 또라이인지를 그동안 그렇게나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봐왔던 인간 중 하나였건만, 그걸 귀찮다는 이유로 간과했다는 것을 굉장히 뼈저리게 후회하는 중이었다.
급하게 교실 뒷 문을 박차고 들어온 방송부 부장이 하는 말에, 나는 그대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까, 아직 늦지 않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김태형이 방송실로 갔다고 했다. 1학년 방송부 아이를 협박해 키를 뺏어갔단다, 그 미친놈이. 나는 점심 시간에 급식실에서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이 떠올라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쳐왔다.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키를 뺏겼다며 급하게 저에게 달려 온 1학년의 얘기를 듣고서, 부장은 곧바로 내게로 찾아온듯 싶었다. 김태형이 또라이라는 걸 모르는 아이는 아마도 우리 학년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 아이 또한 굉장한 불안감에 휩싸인 듯 했다. 하하, 곧 이 친구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건가.
“나랑 지금 같이 방송실 좀 가줄 수 있을까?”
“…….”
“김태형은, 그,좀…… 무서워서.”
“가자, 가…….”
쭈뼛쭈뼛, 내게 조심스레 부탁을 해오는 부장에게 어색하게 웃어보인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사실 부탁은 내가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건 전적으로 말을 함부로 뱉은 내 잘못이었으므로. 존나 뛰어야했다. 당장 달려가서 김태형의 미친 짓을 막아야했다. 제발, 아직 나는 자퇴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단말이다.
‘아, 아. 아, 뭐가 이렇게 복잡해. 다루기 존나 어렵네.’
“아, 씨발. 아!”
당장이라도 교실을 박차고 나갈 준비를 하고서 부장에게 말을 건네려던 순간,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지직대는 소리와 김태형의 목소리에, 나는 욕설과 함께 소리를 내질렀다. 어, 어.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부장을 뒤로 한 채, 나는 그렇게 존나게 뛰기 시작했다. 왜 교실은 4층 끝이고 방송실은 2층인 걸까, 씨발.
‘어, 방송 되는 중인 건가? 아. 잘 들려요, 여러분?’
“아, 제발 닥쳐 김태형!”
‘OO야, 듣고 있어? 나 한다면 진짜 하는 거 알잖아!’
김태형의 재수없는 웃음소리가 내 이름과 함께 전교에 울려퍼졌다. 정신 없이 복도를 질주하는 나를 보며 수군대는 아이들에 당장이라도 이렇게 달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야하나 진지하게 고민이 됐지만, 일단은 저 방송부터 멈춰야했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OO야, 좋아해! 나랑 사귀자! 와, 진짜 했다. 우리 학교 급식실 빼고 다 방송 되죠? 지금 여러분들 다 들은 거죠?’
“아, 씨발…….”
‘OO가 내 거다, 내 거. 완전 빼박이네. 나랑 결혼까지 해야겠다, OO야.’
결혼 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김태형의 개소리가 절정을 찍을 바로 그 때, 나는 그대로 방송실의 문을 열어젖혔고, 마이크를 잡고서 헤실헤실 웃어대던 김태형을 발견하고서 머리 끝까지 열이 올라 그대로 김태형에게로 달려가 거세게 머리통을 내려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어, 헐. 와, OO야.”
“당장 마이크 안 꺼? 너 이거 징계감이야. 아니, 물론 그 전에 내 손에 죽겠지만.”
“왜, 마이크 끄면 뭐 하려고?”
흐흐,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말꼬리를 늘이며 몸을 베베 꼬아대는 김태형에, 내 얼굴은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경이로운 수준으로 미쳤구나.
“미친, 개소리야! 진짜 죽고 싶지, 너. 또 부모님 학교에 모셔오려고? 아줌마한테 죄송하지도 않냐?”“아, OO야 그거 알아? 우리 엄마도 너 며느리로 삼으면 딱 좋을 것 같다고 그랬다?”
“……워.”
“아까 분명히 약속했다? 무르기 없기!”
“아, 놓으라고. 이 미친 새끼야!”
뭐가 그리도 좋은 건지, 대형 사고를 치고서 해맑게 웃으며 나를 덥썩 끌어안는 김태형에 유체이탈, 딱 영혼이 육체를 탈출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쪽. ……쪽?
“도장까지 찍었다! 끝, 끝이야. 이거 방송 탔다? 와, 박OO 이제 완전 내 거 인증.”
“김태형! 너, 너 이리 와!”
“아, 헐. 쌤!”
“당장 마이크부터 꺼. 너는 진짜 오늘 죽을 줄 알아!”
그대로 얼음. 으하하, 경쾌하게 웃어대며 선생님에게 잡히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방송실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망을 쳐대는 김태형을, 나는 그대로 굳은 채로 서서 마냥 바라보기만 했다. 급하게 마이크를 끄는 부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는 방금 그 소리가 내 입술에 김태형이 뽀뽀를 해서 난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사건이 일어난 후 1분이 지나고서야 겨우 그러한 현실을 자각한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주저 앉으며 빽, 소리를 내질렀다. 아, 김태형 이 씨발 놈아!
* * *
방탄고 대신 전해드립니다
그래서 저번에 그 방송실 커플 결국 사귀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궁금해 하는뎈ㅋㅋㅋㅋㅋ 익명이요!
좋아요 113개 댓글 10개
정소연 박OO
김남준 박OO
박지민 박OO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최고였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OO 박지민 ㅎㅎ? 네가 할 말? 급식실 ㅎㅎ?
박지민 박OO ...미안
박OO 아니요 저ㄹ대 안 사귑니다
김태형 예 사귑니다
박OO 절대 아니요
김태형 예쁜 사랑 할게요 ^^♡
박OO 김태형 제발 개소리 좀 하지마
* 방탄고등학교시리즈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굉장히 깨알 같이 겹치는 장면들을 찾아보는 재미들이 쏠쏠합니다!
또라이 같은 여주보다 더 또라이 같은 김태형.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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