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올 것 같지 않았던 첫 중간고사가 끝이 났고, 얼마 안 있을 수련회를 위해 준비할 게 많았다.
중간고사 끝나고 주말이 지나면 바로 수련회라 가지고 갈 옷을 준비하기에도 바빴지만,
수련회 장기자랑에 빠지지 않는 김태형 덕분에 참가하지도 않는 나는 주말 내내
장기자랑 연습을 봐 주느라 바빴다. 나는 참가하지도 않는데 이게 무슨 고생이람.
놀러 가기 전 날, 차 안에서 먹고 가서 먹을 과자를 사기 위해 나와 수정이는 김태형과 전정국, 정호석, 김남준을 데리고 마트에 갔다.
함께 갔다는 표현보다는 나와 수정이가 데리고 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이유는 그 넷이서 초딩 못지 않게
마트를 활보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와 수정이는 보호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전정국이 나았는데, 나와 수정이가 표정이 굳는 걸 보고는 셋을 말리기는 했지만,
그 셋이 전정국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김태형은 김남준과 정호석이랑 함께 장난을 치며 마트를 뛰어다니기에 바빴고, 수정이는 그런 셋을 말리느라 바빴다.
셋은 뛰어다니고 수정이는 그런 셋 잡으러 다니고.
넷이 그렇게 가버리자 남은 건 나와 전정국 단 둘이었다.
카트를 끌던 김태형이 가버려서 내가 카트를 끌고 있자 전정국은 자신이 끌겠다며 카트를 가져갔다.
뒤에서 보니까 뒷모습도 잘생겼네. 어깨도 넓고.
내가 안 따라오는 걸 알았는지 앞서 가던 전정국이 멈추더니 뒤돌아 보며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민망해라.
"우리 과자는 뭐 살까?"
"과자면 뭐든 맛있지. "
"그렇긴 한데 김태형이 초딩 입맛이라 단짠이 아니면 또 안 먹어요.
입맛 하나는 더럽게 까다롭다니까?"
"김태형이랑 엄청 친한가 봐?"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친구였다니까. 하기 싫어도 친구가 될 수 밖에 없었어.
아, 저거 김태형이 엄청 좋아하는데, 우리 저것도 담자."
내 키는 왜 이렇게 작은 것이며, 김태형이 좋아하는 과자는 왜 이렇게 높게 있는 것인가.
과자를 담기 위해 손을 뻗고 까치발까지 들었지만, 나한테는 너무 높았다.
내가 낑낑거리고 있자 전정국이 옆으로 와 과자를 꺼내줬다.
"키 좀 커라."
이렇게 또 한 번 전정국한테 반한다.
이렇게 같이 장을 보고 있으니 꼭 전정국과 둘이서만 장을 보러 온 것 같았다.
교복만 아니었으면 아주머니들한테 신혼부부 소리 듣는 건데.
그렇게 필요한 것들을 다 담고나니 예산보다 더 오바되어 산 것 같았다.
"지금 잠깐 계산해 봤는데, 돈 더 나올 것 같아. 우리 저 과자 빼자."
"너 먹고 싶다며. 그냥 사."
"저거 사면 우리 돈 부족해. 그냥 사지 말자. 나 저거 안 먹어도 돼."
"돈 모자르면 내가 낼 테니까 그냥 담아."
다행히 생각보다 돈이 많이 오버되지는 않았다. 가지고 있던 돈보다 약 오천원정도 더 나왔고 전정국이 모자른 돈을 더 계산했다.
계산해서 포장을 하고 있는데 왠지 전정국한테 미안해져 내 지갑에 있던 팔천원을 전정국에게 내밀었다.
"그냥 내가 낼게. 이거 받아."
"내가 다른 과자 먹자고 많이 더 나온 거잖아. 내가 낼게."
"내가 미안해서 그래. 응?"
"내가 과자 다 먹을 거라서 내가 돈 낸 거야. 빨리 가자. 우리 늦게 가면 정수정 애들 반 죽이겠다."
전정국의 시선을 따라가자 고객센터 앞에 있는 의자에 셋을 앉히고는 화를 내고 있는 수정이가 보였다.
짐을 다 들고 앞서 걸어가는 전정국을 졸졸 쫓아가며 나는 또 다시 의미 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담은 과자들만 아니었어도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거다. 오히려 남았을 수도 있다.
근데 왜 돈을 내 주지? 설마..... 그래, 아닐 거야. 그냥 자기가 다시 받기 민밍하니까 그랬겠지.
전정국의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내가 이제는 중증인 것 같았다.
수정이와 애들이 있는 쪽으로 가자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고, 수정이는 마침 잘 왔다는 듯이 나에게 다다다 얘기를 꺼냈다.
아니, 얘네 진짜 미친 것 같다니까? 어떻게 가만히 있지를 못 해.
나 진짜 다섯 살짜리 아기 보는 줄 알았어. 빨리 가자. 나 지금 집 안 가면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아.
수정이의 말에 애들은 수정이 눈치를 보며 먼저 마트를 빠져 나갔다. 그러게 수정이 성격 알면 가만히 좀 있지.
어떻게 제일 시끄러운 애들이랑 시끄러운 거 싫어하는 수정이랑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수정이를 달래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면서 그 세 명 귀 안 간지러웠으려나 몰라. 수정이가 욕 엄청 했는데.
집에서 학교가 제일 가까운 김남준과 정호석이 내일 이 과자들을 가지고 오기로 하고 헤어졌다.
전정국과 수정이는 같은 방향이라 따로 가고 나와 김태형은 갈림길에서 내일 여기서 9시까지 보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근데 나 내일 뭐 입지?
수정이와 밤새 뭐 입을지 고민하다가 나는 테니스 스커트에 청자켓을 입기로 했다.
아침에 김태형한테 놀러가는 애가 불편하게 입었다고 한 소리 듣기는 했지만 어차피 집에 올 때는 피곤에 쩔어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올 게 뻔한데
갈 때라도 예쁘게 입고 가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전정국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학교에 도착하니 전정국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무지티에 청바지, 평소에 좋아한다고 했던 신발을 신었을 뿐인데 잔뜩 꾸미고 온 애들보다 훨씬 잘생겨 보였다.
역시 옷걸이가 좋아야 옷태가 산다니까.
김태형은 맨 뒷자리에 앉아야 된다면서 버스로 뛰어갔고 수정이는 그런 김태형에게 자신이 앉을 거라며 김태형을 뒤쫒아 갔다.
버스에 올라타자 맨 뒷자리에는 이미 김태형, 김남준, 정호석, 그리고 수정이가 차지해 있었다.
그럼 나 전정국이랑 둘이 앉아야 되는 건가...? 전정국은 좋지만 아직 단둘이 앉기에는 어색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뼛거리고 있으니 전정국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 앉았고
빨리 오라며 손짓하는 김태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정국 옆에 앉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막 앉았을 텐데 전정국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괜히 오늘따라 치마가 신경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담요라도 가지고 오는 건데. 계속 치마만 만지작거리는 내가 보였는지 전정국이 들고 있던 자신의 남방을 내 무릎 위에 덮어줬다.
"고마워."
"그러니까 왜 짧은 걸 입고 오냐. 가서는 바지만 입어."
그 시끄러운 틈 사이에서도 우리 대화를 들은 건지 정호석이 놀리기 시작했다.
"둘이 뭐냐~ 혹시 그렇고 그런 사이?"
"뭐래, 내가 짧은 거 입고 와서 그냥 전정국이 자기 옷 빌려준 거거든."
"그러니까 왜 전정국이 옷을 빌려 주냐고~"
"맞아, 나도 뒤에서 전정국이 바지만 입으라고 하는 것도 다 들었다. 그게 뭐겠어? 여자 친구 단속이지."
김태형과 정수정은 둘이 싸우느라 우리에게 관심도 없었고 하필 우리 바로 뒤에 앉은 정호석과 김남준이 우리를 괴롭혔다.
정호석과 김남준도 김태형 못지 않게 시끄러웠고, 장난도 김태형보다 많이 쳤으면 많이 쳤지 덜 치는 인물들은 아니었다.
대꾸를 해 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는 눈을 감았다. 전정국은 뭐 애초에 걔네 장난에 관심도 없었고.
내가 고개를 돌려 잠이라도 잘 심산으로 눈을 감자 내 귀에 뭐가 닿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서 확인하자 전정국이 꽂고 있던 이어폰 한쪽이었다.
"시끄러우니까 노래 들으면서 가자."
전정국이 내미는 한쪽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눈을 감자 잔잔한 음악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조금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도착을 했나 싶어 눈을 떴더니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었다.
근데 나 지금 어디에 기대고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이거 전정국 어깨니...?
망했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드니 내 머리에 기대고 있던 전정국 머리도 같이 들리며 전정국이 깼다.
드디어 미쳤구나. 아니, 어떻게 전정국 어깨에 기대서... 그것보다 전정국 머리 어떡하지.
"아!"
"헐, 미안해. 나한테 기대고 있는지 몰라서..."
"괜찮아. 근데 너 엄청 잘 자더라."
"내가 원래 좀 잘 자. 아니, 근데 너 머리 아파서 어떡해."
"괜찮다니까, 근데 아까처럼 하고 자면 안 되냐. 엄청 편한데."
"어? 그, 그래."
나 방금 바보처럼 말 더듬은 거 맞지. 다행히 애들은 다 내린 건지 앞자리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그 시끄러운 넷이 없어서 다행이야. 나는 다시 전정국 어깨에 기댔고 전정국은 내 머리에 기댔다.
아까처럼 몰랐다면 잘 잤겠지만 전정국 어깨에 기댄 것을 안 이상 떨려서 어떻게 자겠냐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큰 착각이었다.
어디에서든 눈만 감으면 잠을 자는 내가 아니었던가. 떨림도 잠시 나는 곧 바로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또 한 번 정호석의 놀림을 받아야 했지만 내 귀에 그게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나는 또 한 번 전정국의 행동에 의미 부여를 하기에 바빴으니까.
도착을 해서 여자는 여자층에 짐을 풀고, 남자는 남자층에 짐을 풀고, 1층에서 집합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수련회라 그런가 중학교 때와는달랐다. 그냥 조금 힘든 수학여행 느낑이랄까.
아까 전정국과의 일로 멍을 때리고 있자 수정이가 어깨를 툭 치며 무슨 일 있냐며 물어왔다.
나는 없다며 짐을 마저 풀었고, 수정이는 속일 사람을 속이라며 빨리 말해보라고 했다.
내가 전정국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직 아무도 알지 못 했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전정국을 모르는 중학교 때 친구들 뿐?
수정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 이따 저녁 먹고 말을 해 주겠다는 말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어떻게 수련관 밥이 학교 급식보다 맛있지?"
"너한테 맛없는 것도 있냐?"
김태형은 입을 가만히 두지 않으면 가시가 돋는 병에 걸린 게 분명했다.
아니면, 나한테 시비를 걸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든가. 둘만 있을 때 놀리는건 괜찮았다.익숙하니까.
전정국 앞에서 저렇게 항상 놀려대니 괜히 자존심도 상하고, 전정국도 나를 이상하게만 볼 것 같았다.
내가 무시하고 밥만 먹자 내가 삐친 걸 눈치 챘는지 김태형이 말을 걸었다.
"또 삐쳤네. 오빠가 쁘띠첼 줄까?"
"아니."
"너 쁘띠첼 좋아하잖아."
"근데 네가 주는 건 안 먹으려고."
옆에서 정호석이 그럼 자기가 먹겠다며 김태형의 쁘띠첼을 뺏어 식당을 나갔고,
김태형은 그런 정호석을 잡겠다며 덩달아 뛰어나갔다. 진짜 덤앤더머라니까.
김남준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먹고 오라는 말을 남기고는 김태형과 정호석의 식판까지 치우고 식당을 나갔다.
내가 밥을 늦게 먹는 편이라 수정이가 항상 나를 기다렸다. 전정국도 김남준을 따라나갈 줄 알았더니
내 맞은 편에 앉아 내가 먹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앞과 옆에서 그 시선을 모두 느끼니 부담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봐. 다 먹었으면 나가도 돼. 나 안 기다려도 되는데."
"괜찮아, 나 쁘띠첼 안 먹는데 너 먹어."
김태형만큼 먹을 걸 좋아하는 전정국이 쁘띠첼을 안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마다 입맛은 다른 거니까. 전정국이 준 쁘띠첼까지 클리어 하고는 셋이서 식당을 빠져나왔다.
숙소로 가니, 장기자랑 준비가 한창이었다. 여장을 하는 남자애들도 있었고, 보기 힘들 정도로 야하게 꾸미는 여자애들도 있었다.
김태형과 전정국, 정호석, 김남준은 넷이서 춤을 추기로 했는데 내가 볼 때는 김남준만 잘한다면 꽤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남준이 춤을 못 추는 건 아닌데, 자기만의 흥이 있다고 해야 하나... 사실 못 춘다.
좋게 포장을 하고 싶었지만, 김남준의 춤 실력은 포장 불가다.
그렇지만, 난 김남준과 정말 친하다고 생각한다. 남준아, 내 마음 알지?
강당으로 가기 전, 의상까지 맞춰 입고 연습 중인 전정국을 보니 새삼스럽게 또 한 번 반하는 것 같았다.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저 정도면 크고, 춤까지 잘 추니 안 반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댄스부인 정호석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전정국 좋아하는 여자애가 늘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부터 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요즘 전정국 괜찮다고 하는 애들이 많던데......
우리 괜찮은 것 같냐는 김태형의 물음에 대충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당으로 이동했다.
레크레이션이 시작됐고, 전정국이 춤 추는 모습을 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차라리 전정국이 실수를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 나 너무 나쁜가. 그렇지만 좋아하는 남자를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건 별로지 않은가.
애들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준비를 위해 무대 뒷쪽으로 향했고,
제발 여자애들이 전정국한테 반하지 않기를 바라며 빨리 무대가 시작하길 바랐다.
독자님들 잘 지내셨나요?
제가 너무 늦었죠 ㅠㅠ 그동안 컨디션이 별로였어서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아 못 왔어요 ㅠㅠ
사실 오늘 글도 급하게 써서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독자님들 기다리실까 봐 빨리 왔어요.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 주시고 맞춤법이나 문제점 등은 댓글로 피드백 주세요!
[암호닉 목록]
[녹차라떼] [아카정국] [쿠앤크]
[뱁새☆] [우유] [열렬]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자칭여신 박규리 실물느낌 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