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쉬는 숨과 받아들이는 삶. 02 . "박지민 정신안차려?" 결국 불호령이 떨어졌다. "지민이 너 하나때문에 이부분을 몇번째 하는거야!?" 동선을 그려둔 노트를 바닥에 내던진 선생님은 벌써 스무번도 넘게 같은곳을 넘기지 못하는 지민이의 모습에 성을 냈다. 평소 연습벌레에 춤 습득이 빠른 아이가 오늘은 영 날이 아닌지 따라가질 못한다. 컨디션이 안좋은걸 감안해서 봐줘도 너무한 모습에 결국 목소리를 높인다. "너만 힘들어? 박지민. 고개 들어. 지금 다 힘들어. 자기관리도 실력이야. 정신 똑바로 안 챙겨?!" 지민이는 눈물이 맺히는 눈을 숨기는듯 자꾸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멤버들만 안절부절 눈치를 보고있었다. "선생님. 저희 조금만 쉬었다 하면 안돼요? 벌써 세시간짼데...오늘 너무 지쳐요" 항상 불평불만 없이 열정적이던 호석이 먼저 춤연습을 멈춘적이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의외라는듯 호석을 힐끔 보더니, 멤버들을 향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네 조금 뜨더니 초심을 잃었어. 무대에서 멍을 때리질 않나. 아무데서나 쳐자지를 않나. 다음 앨범 발표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당장 콘서트도 코앞인데. 삼십분 줄테니까 마음 다잡고 와. 쟤 데리고 나가. 사내자식이 질질 짜고있네." 저도 모르게 말을 거칠게 뱉어버린 춤선생님은 결국 울음이 터져버린 지민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멤버들뿐만이 아니라 매니저형 선생님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호랑이 납셨네." "사내자식이 뭘 우냐." 윤기와 남준이는 지민이의 어깨를 톡톡치며 한마디 건네고는 작업실로 내려갔다. 고작 삼십분이 그들에게는 낭비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실 멤버들에게 오늘의 일정은 그리 벅찬 것이 아니었다. 워낙 춤 동선이 복잡하고 세밀하게 짜여있다보니까 이정도 연습시간은 당연한 일상이었고, 오늘 배우는 부분은 특별히 고난이도도 아니었다. 다만, 요즘 물이 오른 분위기와 인기덕에 센터를 맡은 지민이의 몸상태는 전체 연습시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민은 항상 누구보다도 빠르게 안무를 익히고 외워 변형까지 하던 주 멤버였다. 호석과 함께 자칭 양날개라는 멤버들의 연습을 도와주면서 연습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했다. 또한, 매번 긍정적이고 예쁜 말로 연습분위기에 활기를 주던 지민이가 웃음을 잃자 연습실에는 냉기만 흘렀다. 태형이가 아무리 장난을 쳐도 입꼬리만 올릴뿐이었다. "형 진짜 힘들면 숙소가서 쉬어요. 표정 너무 안좋아보여." 연습실 구석에서 두 무릎을 모아 고개를 파묻고 있는 지민에게 다가간 정국이 말을 걸었다. 다가가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졌다. 기다려도 대답이 없어 정국은 손을 지민의 이마에 가져다대었다. 심각했다. "형... 괜찮은거 맞아? 형? 괜찮아? 형?" 다급하게 지민을 일으키자 지민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석진이가 급하게 지민을 안아 드는데 태형이 말리고 섰다. "매니저형한테 말하고 올께. 더이상은 얘 그냥 두면 안되겠다" "말해봐야 뭐가 달라져? 자기관리 못했다는 소리나 듣겠지." "병원은 가봐야 될 거 아냐." "병원? 병원가면 소문나잖아. 병원을 보내줄것같아? 비타민 챙겨먹으라는 소리나 하겠지." "그럼 내가 데려갈꺼야" "형 멍청한 짓 하지마." "너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소문 좀 나면 어때. 당장 애가 이렇게 아픈데?! 너는 멤버가 아프던 말던 팀만 잘 되면 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정국이 눈을 도르륵 굴렸다. 합숙생활을 하면서 석진이형이 멤버에게 이렇게 모진말을 하는걸 본 적이 없다. 아니, 이런 싸움이 애초에 왜 일어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가만히 있을수밖에 없었다. 태형이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뒤로 걸어가 연습실 문을 걸어 잠갔다. 두 손으로 문을 꼭 잡아쥐는게 지민이를 데리고 나가지 못하게 굳은 수라도 쓰는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울었다. "내가 이기적이야? 내가? 이기적이란게 뭐야? 내 멋대로 하는거? 내 마음대로? 그럼 진작에 매니저형한테 얘기했지. 이미 지민이 병원도 다녀오고 입원해 있을지도 모르지. 새 앨범? 안중요해. 난 쟤 죽을까봐 겁나고 무서워" 울면서 문고리를 쥐어잡은 태형이의 모습은 너무나 모순적이었다. "근데 쟤가 고집을 부리잖아. 자기때문이라고 막 자책하고 밤마다 울잖아. 혹시 팬들이나 매니저형이 알아채서 일정 밀리고 무산되고 회사 이미지 나빠진다고 무서워하잖아. 형도 알잖아. 우리 스케쥴 빡빡해서 이제 못빼. 여섯명이서 활동하는거 지켜보는건 싫다는데 그럼 난 어떡해. " 지민이는 최근 졸도를 밥먹듯이 하고있었다. 처음엔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깨어날땐 너무나 평온하게 일어나기에 멤버들은 점차 수면부족이겠거니, 스트레스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러나 지민과 같은 방을 쓰는 태형은 밤마다 발작에 가까운 예민성을 보이는 지민의 모습과 제발 아는척하지 말라는 부탁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이 무력해져갔다. 실랑이를 벌이는 중,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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