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 하시겠습니까?
빌어먹을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웅웅 울렸다. 이토록 칠흑같은 어둠을 맞아본 적이 없어서일까, 나는 절망 사이에 갇혀 부유하는 몸을 마구 휘저었다.
“씨발, 그런 얕은 수에 넘어갈 것 같아?”
두려움에 질 수 없어 호기롭게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거세게 흔들어보아도 빛 한줄기 보이지 않는다.
후후, 명백한 비웃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선명한 적의에 피비린내까지 감돈다.
하얗게 질려가는 머릿속을 다잡아 이 미친놈을 만나기 직전의 기억을 애써 떠올려 본다.
그러니까, 크랙 스트릿(Crack Street)에서 비기를 만났고, 값싸게 질 좋은 코케인을 구했고, 버려진 놀이공원에서 실컷 약을 했지. 절박했어.
잠깐, 얼마나 들이켜 댔던 거야. 빠르게 회전하던 톱니바퀴가 일시에 멎는다.
평소처럼 다가오던 괴물들, 비명들. 너바나의 노래가, 늘어진 테이프 소리와 뒤엉켜 지옥의 고함을 질러왔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했더라.
빌어먹을 코케인을 모조리 코 안에 털어넣었지.
곧장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서 축축한 모래 위에 대자로 쓰러졌다.
아, 이게 죽음이구나. 이렇게 죽는 거구나. 몸이 감각을 잃자 정신은 배로 맑아졌다. 브루클린 특유의 쓰레기 냄새가 코에 감돌았다.
좀전부터 내 주변을 맴돌던 검은 고양이를 중심으로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스물 두 해의 쓰레기 같은 뒷골목 인생.
앞으로 다시는 기타를 잡을 수 없겠지. 서러움 보다도 체념이 앞섰다.
신이 존재한다면, 다음 생에는 정말 인간답게 살게 해주세요…,
야-옹. 길게 우는 고양이의 울음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아니, 감으려 했다.
지랄하고 있네.
“…?”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고? 그렇게 좆같이 기회를 버려놓고?
어딘가 쉰 듯한 목소리가 웅웅 울려왔다.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은 포기하고 무거운 눈만 겨우 떴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뒷모습이 희미한 빛을 냈다.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있는 듯한 누군가의 실루엣이었다. 초록색 뒷통수가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쉰 목소리에는 지루함과 짜증이 묻어 있었다.
너에게 다음 생애 같은 건 없어.
‘그’가 서서히 일어났다. 여기는 어디일까. 그러고 보니 내 얼굴 위로 쏟아지던 소나기가 그친 지 오래이다. 저건 신일까.
나는 신 같은 게 아냐.
생각을 고스란히 읽혔다. 놀랍다기보다는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부터 머리를 스쳤다. 신이 아니라면 ‘저것’의 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아직 죽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코케인을 많이 마셔서 새로운 환각을 보는 것일지도.
미안하지만 이건 환각이 아냐. 넌 확실히 죽었어. 그리고 나는…,
그가 천천히 내 쪽으로 돌아선다. 얼굴을 기대하며 마주한 그는, 실체를 띠고 있지 않았다.
그를 정면으로 본 순간 생전의 그 어떤 경험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절망과 혐오, 공포, 두려움, 살기가 화살처럼 나를 향해 박혀왔다.
숨조차 쉴 수 없는 무게였다.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건…,
압도감.
그래, 압도감이었다. 엄청난 존재를 만났을 때, 감히 그 존재의 힘을 가늠하기 조차 어려울 때 닥쳐오는 무력감.
본능적으로 그의 존재를 직감했다. 악마. 저건 악마일 수밖에 없어. 폐부를 찌르는 악취에 숨을 헐떡였다. 공중으로 너털웃음이 흩어진다.
정-답.
“…”
원래 같았으면 네 영혼은 저승사자의 낫에 산산조각이 났겠지만, 운 좋게도 마침 내가 심심했던 터라.
선택권을 줄게.
첫째. 그냥 원래 예정되었던 대로 뒤져버리거나.
둘째. 나와 계약을 체결해서 제 2의 인생을 사는 방법이 있지.
나는 당신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당신의 충실한 종이 되어 당신을 돕고 지킬 거야.
물론 모든 계약이 그렇듯, 당신도 나에게 그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해야겠지.
“나에게 뭘 원하는 거지? 나는 돈도 없고 몸도…”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 종잇조각 같은 것엔 관심이 없어. 물론, 연약하기 그지없는 몸뚱아리도 원하지 않아. 나는 다만, 너의 영혼을.
“내…영혼?”
너의 영혼을 갖고 싶을 뿐이야.
*
파우스트 읽고 급 꽂혀서../////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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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