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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片誌), 기록의 조각.

Prologue

 

 

 

 

"후-."

 

 

 

지훈은 여러 의미가 내포된 한숨을 쉬며 태일의 서재 -그 곳은 태일이 생전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었다.- 의자에 떨어지듯 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지훈은 아무 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 것도 믿기지 않았기에 눈물 또한 나지 않았다.

분명히 사실이 아닐 것이다.

진실도 아닌 것을 진실인 마냥 떠들고 다니는 머저리들에게 지훈은 화가 났다.

 

 

"이태일이 죽긴 뭘 죽어. 병신같은 새끼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훈은 수전증 걸린 사람마냥 손을 벌벌 떨어대며 태일이 가장 아끼는 책상을 쾅, 쳤다. 씨발, 좀 말이 되는 소릴 해야..

 

 

[툭.]

 

 

태일의 책상 유리 한 켠에, 보란 듯이 끼워져 있던 흰 봉투가 조롱하듯 떨어졌다.

 

 

"...뭔데, 이건."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훅, 끼치는 불안감에 지훈의 두 눈동자는 달달 흔들렸다.

지훈은 아닐거야, 나 지금 무슨 생각 하는걸까. 말도 안되는 생각 하지 말자, 하고 온 몸의 솜털이 바짝 설만큼 불안스런 본능의 감을 부정하며 그것을 주웠다.

하지만, 그 편지엔 분명히 태일의 글씨, 분명 그가 덜덜 떨고 울면서 썻을 법한 글씨체로 "지훈에게." 라고 쓰여 있었다.

지훈의 직감이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이, 허구가 아닌 실제 존재하는 일이라고.

결국 현실은 그를 끝까지 조롱하고 비웃었다.

 

 

"..."

 

 

지훈은, 착잡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흰 봉투를 지익- 하고 뜯었다.

가지런한 글씨, 몇 번 썼다 지웠다, 결국 지훈이 재작년 생일 때 사주었던 잉크펜으로 정성스레 쓴 글자, 그 글자에 얼룩진 눈물, 그 눈물에 번진 글자.

분명한 태일의 것이었다.

 

 

[안녕, 지훈아.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면, 우린 더 이상 만나지 못할거야.

왜냐고 의문을 품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넌 그러지 않을 걸, 왜냐면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즈음의 상황이 네 의문의 답을 알려 줄 거거든.

요새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근데 마음이 아픈 것보단 몸이 아픈 게 더 나은 것 같다.]

 

 

지훈은 고작 편지의 넉 줄을 읽고 어깨를 들썩였다.

이제야 그 사실이 현실로 와 닿았다. 그 애는 이제 없다.

왜, 몰랐을까. 너의 아픔, 너의 감정, 너의.. 마음을 왜, 몰랐을까, 나는.

 

 

 

 

 

 

편지(片誌), 기록의 조각.

Prologue

 

 

 

 

[지훈아. 기억 해? 우리 처음 만났던 날, 중학교 1학년 때 말이야.

우리 그 날 처음 봤었거든? 넌 기억할런지 모르겠는데, 아마 못할 걸. 나한테만 인상깊은 일이었거든.

봄이었어.

꽤 늦은 시간 하교하는데, 네가 내 이름을 불렀어. 이태일, 하고.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기에 뭘까, 하고 뒤돌아봤고. 그 때 널 처음 봤어.

그 때, 내 시야가 어땠는 줄 알아? 내가 그 때 봄이었다고 했잖아.

네 뒤론 석양, 그리고 네 주위론 벚꽃.

가장 중요한 피사체인 넌 환하게 웃었고, 나는 내가 살았던 그 짧은 시간동안 가장 눈부셨던 황홀경을 경험했어.

그 때 너 진짜 예뻤어.]

 

 

기억 나, 병신아. 그 때 우리 같은 반이었잖아.

너는 체구가 가장 작았고, 애들과 섞이려 하지도, 섞이고 싶어 하지도 않았잖아.

나 기억 해. 다 기억한다고. 왜 그게 너 혼자만의 추억이야.

 

 

지훈은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고, 나머지를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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