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하는 전정국 X 피아노 치는 너탄
ⓒ 보라고래
01
나는 지금 한시간동안 교수님과 함께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개인 지도를 받고 있다. 교수님과 내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우리의 나란히 앉은 모습만 본다면 지금, 이 상황을 눈치채기 힘들 것이다. 나란히 앉은 사제 관계 그리고 그 사이의 살벌한 분위기. 얼마남지 않은 피아노 콩쿠르에 최고의 제자만을 내보내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혀야 한다는 피아노과 교수님은 계속해서 같은 구간을 틀리는 내가 영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한쪽만 치켜 올라가 있는 눈썹과 맘에 들어하지 않는 눈동자. 내가 연습을 안한 것도 아니고……. 고작 몇번 틀렸다고 저렇게까지 화를 내야만 하나.
" 아니, 그게 아니고…! 다시 해 봐. 지금 도대체 이게 몇 번째니 성이름!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
" …죄송합니다. 다시 해볼께요. "
" 지금 이 실력으로는 네가 밤낮으로 연습한다고 한대도 널 피아노 콩쿠르에 내보긴 힘들 것 같다. "
" 열심히 연습하겠습니다…. 다시 한번만 해보면 안될까요, 교수님? "
" 마지막이야. 내 시간 필요하다는 학생이 몇 명인데, 너 하나에 내 시간을 다 소비할 수는 없잖니? "
너무나도 많이 쳐버려 손가락은 휘었고,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 어깨에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다시 열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렸다. 마지막 기회다. 이번 기회마저 날린다면…… 이번 콩쿠르에는 내가 나가지 못하게 된다. 그럼 또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하는거고, 그렇게 된다면 나의 졸업? 나의 미래? 앞날이 캄캄하다. 게다가 이 교수님에게 내 미래와 밥줄이 달린게 눈앞에 훤히 보이는데, 교수님 눈 밖에 나기라도 한다면…….
마지막 연주를 끝내고 교수님은 빼앗긴 시간들이 아까우셨던 건지 이번 콩쿠르에 날 내보내는 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며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피아노실을 떠났고, 조용한 피아노실에 남겨진 건 덩그렇게 놓여진 피아노와 그 앞에 비춰진 초라한 나.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친 전정국. 매일같이 찾아와 내 연주를 지긋이 들어주는 전정국은 얼굴이 붉어지던 그 날 이후로 한참을 찾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많아 바쁜가? 아니면 아픈건가……. 전정국을 걱정하기엔 내가 너무 지쳤고, 전정국이 속한 무용과가 힘들다는 것도 알고. 그래서 나는 방금 악보를 정리하고 피아노 뚜껑을 닫았어 정국아. 이번에는 내가 널 찾아가보려고 해.
02
" 전정국 이 개새끼야!! 내가 너한테 많은 걸 바랬냐? 내 부탁이 그냥 바쁜 나 대신에 대회 무대 올라가서 춤이나 한판 추고 오라는 건데, 그거를 하나 못해줘? 너 새끼 하나 때문에! 내가 대회 펑크 낸 게 됐잖아! 어떻게 할래? 어? 어떻게 할거냐? "
" 애초에 선배 무대, 선배가 나가셨어야죠. "
" 아니, 왜 내 말을 못 알아듣지? 내가, 어? 너한테 나 대신 나가라고 강제로 시켰냐고요, 안 나갈거면 안 나갈거라고 말을 하던가!! "
" 하…… 진짜. "
" 하? 하 진짜? 선배한테 하? "
내가 언제 이 선배라는 새끼 대신 나간다고 한 적이 있었던가? 전에는 강제로 하라고 떠밀더니 이제와서 하는 소리가 왜 안 나갔냐니. 난 제안을 거절한 적은 없지만 받아들인 적은 더더욱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시간 전, 모두가 연습에 몰두한 연습 중간에 화가 있는 대로 잔뜩 나서는 연습실로 다짜고짜 쳐 들어온 이 학과장은 내 어깨를 양손으로 밀치더니 시원한 마찰음 소리가 났다. 물론 돌아간 고개의 주인도 나고, 얼얼한 내 볼의 주인도 나고. 그렇게 주먹으로 세대 정도 맞았나… 그 다음부터 애들이 말리니까 한시간째 너 때문에 내 명성에 금이 간다느니 저딴 개소리나 지껄이고 있다.
" 정말, 정말로 죄송합니다. "
" 너 이새끼… 너 앞으로 내 눈 밖에 난 줄 알아. 알겠어?!! "
그렇게 길고 긴 금이 간 명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지루하기 짝이 없고 괜히 연습실에 있는 동기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 같아 대충 수그리고 들어갔다. 이런놈은 맞서봐야 다른 놈들한테만 피해가는 거니까, 내 자존심 하나 꺾고 빨리 끝내는게 답이다. 죄송하다 하면서 허리를 굽히니 그제서야 화가 좀 가라앉은건지 작은 눈을 내게 부라리며 눈 밖에 난 줄 알라며 협박을 하고 그제서야 연습실 문을 박차고 나간다. 지랄도 병이지…….
아까 맞은 주먹에 입안이 터져 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동기 중 한명인 박지민이 어디서 구급상자를 꺼내오더니 내 곁으로 와서 반창고를 내 얼굴에 덕지 덕지 붙이는데, 역시 이놈도 사내놈은 사내놈인지라 반창고를 흉하게도 붙혀놓는다. 예쁘게 붙이면 어디가 덧나는 것도 아니고…….
" 그러게 학과장이 하라는거 그냥 하면 좋잖아, 왜 눈 밖에 나냐……. "
" 너같으면 저 족제비같은 새끼가 하라는거 하고 싶냐. 부탁도 아니고 반강제로 부탁하는 걸. "
" 앞으로 학과장이 너만 갈굴거야, 그건 알고 있는거지? "
" 됐다……. 근데 너 지금 내 얼굴에 반창고를 몇개나 붙이는 거야? "
" 있는대로 다, 지금까지는 8개 정도?"
" 에라이, 이러고 밖에 어떻게 나가라고 !"
" 여자친구도 없는 놈이 말도 많네? 아 빨리 얼굴 대라고 !"
" 싫어!! "
더 많은 반창고를 손에 들고 다가오는 박지민의 손길을 거부하고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잠바를 챙겨서 연습실을 뛰쳐 나갔다. 딱히 갈 곳도 없고 해서 연습실로 부터 길게 뻗은 복도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저 멀리 낯익은 듯한 얼굴의 그녀가 보였다. 성이름이 이 시간에 무용과에는 왠일인가 싶어 발걸음을 빨리해 그녀의 앞에 두 발을 멈췄다.
갑자기 나타나서 마주하게 된 내 얼굴에 깜짝 놀랐던 건지 그 긴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 미소를 짓고는 이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예쁜 미소를 지어주려고 했지만 입안이 터져서 실패. 그래서 미소인지 비웃음인지 나같아도 헷갈릴만한 그런 미소를 이름이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차라리 그냥 시크한 척이나 할 걸 그랬나…….
" 너…. 너 얼굴이 왜 이래? "
" 아, 내 얼굴? 괜찮아 괜찮아. 이거 그냥 생긴 상처야! "
" 그냥 상처가 어떻게 생겨? 너 누구한테 맞았어?? "
" 에이… 지금 오빠 걱정해주는거야? "
" 걱정은 무슨… "
능글거리는 내 특유의 목소리로 이름이를 놀리니까 금새 얼굴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버리고, 또 뽀뽀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가까스로 억제했다. 나에게 진심어린 말투와 걱정스러워하는 눈빛이 참 예뻐보였다. 그냥 사귀자고 할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릴까? 지금 사귀자고 하는건 너무 갑작스러운가? 내 눈은 이름이에게 향하고 있지만 내 정신은 이미 저 세계로 빠진지는 오래고, 다시 내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을때 이름이는 내 얼굴 코앞까지 다가와 내 이마에 제 손을 얹었다.
이름이는 내가 아프다고 생각해서 내 이마에 제 손을 얹고, 다른 한손은 제 이마에 얹고는 열이 있는지 없는지 곰곰히 판단을 하기 시작했고, 갑작스런 스킨십에 내 심장 박동수는 주체 할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가까운데, 내 심장소리가 그녀에게까지 들리면 어떻하지. …그럼 정말 창피할텐데.
" 아파? 아픈건가……. 열은 없는데? "
" ……. "
" 전정국! 어디 아파? 왜 말을 안해…! "
" 이름아. "
" 응? 왜, 병원 같이 가줄까? "
" 우리……. "
" ……? 우리? "
" …연애할까? "
남자를 동물로 비유하자면 늑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늑대는 일생에 단 한명의 반려자만을 사랑하며 산다고 하는데, 내 어렸을 적 꿈은 늑대로 살아보는 것. 21살 인생 전정국.지금껏 꼴리는 대로 살아와 여기까지 왔고, 이번에는 성이름 널 위해 한번 꼴리는데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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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고래들 잘 있었어요 ? ^ㅇ^... 제가 너무 늦었죠 미안해요.. 저번주에 두편 올리기로 꼭꼭 독자님들이랑 약속했는데 그 약속 지키지 못했어요 T^T... 제가 미국에 살고
있어서 시차 계산 해보니 오늘은 제가 일요일인데 독자님들은 월요일! 너무 미안해요 약속 못지켜서! 하지만, 한 주의 시작을 설레는 정국이와 함께 시작해주세요. 이번주에는
꼭 한편 더 들고 오도록 할게요! 저 보라고래는 아기고래님들을 위해 꼭 다시 온다는 약속은 지킬게요! 아, 그리고 저번에 두번째 화 많은 분들이 칭찬해주시고 암호닉 신청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어요T^T.. 감동이었습니다. 꼭 댓글 다시고 다시 포인트 돌려받으세요! 그럼, 우리 아기고래들 다음편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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