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은 예뻤다
네 번째 이야기
w. 마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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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정국은 지민을 끌고 복도로 나왔다. 지민을 이끌고 한참을 걸었을까. 음악실처럼 보이는 곳으로 정국이 지민을 거칠게 집어 넣었다. 정국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그런 정국이 개의치 않고 평온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런 지민의 태도가 어이가 없었는지 정국은 헛웃음을 쳤다. 지민은 창가에 있는 피아노 의자에 자리잡아 애꿎은 피아노 건반만 쓸었다. 노을의 빛이 건반에 반사되어 붉은 빛이 났다.
"형 뭐하자는 거야"
"뭐가"
"뭐? 집에 같이가? 도대체 왜 걔랑 엮이려고 해"
"....."
"형이 나한테 그랬지"
"....."
"엮이면 걔만 위험해진다고"
"알아"
"그걸 아는데 왜...!"
"근데 정국아"
"....하, 왜"
"이상해"
"뭐가"
"어떻게 이름까지 똑같을 수가 있지"
"...."
"너도 이상하다고 느꼈지?"
"그건 우연의 일ㅊ..."
"내가 탄소를 처음 만난 게"
"...."
"16살이야"
"...."
"19살의 모습을 내가 모를 것 같아?"
"...."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그여자가 나한테 짓던 웃음을"
"....형"
"똑같아... 그냥 똑같다고... 정국아... 그여자야... 내가 탄소를 어떻게 잊어..."
"정신차려, 누나는"
"...."
"죽었잖아"
"....정국아"
"형, 아니 박지민. 김탄소는 그여자가 아니야 그여자는 죽었어 형이 똑똑히 봤잖아"
"...."
"....가자"
정국이 지민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지민은 허탈한 얼굴을 한 채 정국에게 기댔다. 정국은 지민을 조용히 토닥일 뿐이었다. 노을은 계속해서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정국과 지민은 교실로 향했다. 자습시간이었는지 반이 조용했다. 자는 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민의 시선이 탄소에게로 꽂혔다. 탄소는 누가 들어온지도 모른 채 무언가 열심히 적으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민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자리로 향했고 정국은 그런 지민을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지잉-, 지민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바라본 지민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임무다...'. 지민은 작게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거칠게 가방으로 쑤셔넣었다. 정국이 옆에서 왜그러냐는 듯이 쳐다보자 지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정국은 대충 상황을 파악했는지 자신의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지민도 자신의 짐을 챙기고 수업이 끝나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밖으로 향했다.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지민이 무언가 생각난듯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자신 때문에 빨개진 탄소의 손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는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지민이었다. 정국이 지민을 부르자 그제서야 지민은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쪽지 줬으니깐... 괜찮겠지"
"약... 발라줄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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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밤은 아니었는데. 택시를 타고 쪽지에 적힌 장소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려 벌써 깜깜한 밤이 되었다. 카드로 택시비를 결제해고 택시에서 내리자 눈 앞에 바로 커다란 저택이 보였다. 시끌시끌한 것이 안에서 파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우리집도 큰 편인데, 엄청 크네. 영화에서만 나올 것 같은 크기의 저택에 감탄하고 있을 때 내 옆으로 외제차 한 대가 지나갔다. 저 차를 따라가면 입구인가. 저택이 너무 크고 담장도 높아서 어떻게 입구를 찾아야 하나 했는데 잘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차를 빨리 쫓았다. 다행히도 차의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학생 누구야"
"ㅇ,예?"
"여기 함부로 들어오는 거 아니야"
"저... 저희 아빠 아니, 김석진씨 찾으러 왔는데요"
"김석진? 누구더라..."
"전해줄 물건이 있어서 이거만 전해주고 나올게요"
"미안하지만 안돼"
"진짜 이것만 전해주면 되는데..."
"그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네..."
도대체 김석진은 이런 곳을 왜 온 거야. 대충 대문 안을 들여다 보니 사람들이 드레스와 양복을 입은 채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언뜻 봐도 부잣집 도련님 같은 사람도 보이고 어느 회사 사장님처럼 나이가 지긋이 있어보이는 남자도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신기해서 마냥 쳐다보고 있을 때 남자들 사이에 둘러쌓여있는 여자의 단발머리가 눈에 띄었다. 왜 익숙한 거지. 계속해서 드는 익숙한 느낌에 단발머리 여자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봤다. 블랙미니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몸이었다.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그녀의 탄탄한 허벅지가 눈에 띄었다. 어딘가 많이 익숙한 허벅지. 순간적으로 아침에 보았던 박지민의 다리가 생각났다. 나랑 비교되게 탄탄했던 다리. 에이, 설마.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까 그 경호원 같은 사람이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 박지민...?"
블랙미니드레스를 입은 단발머리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와인잔을 들고 눈이 휘어접히게 웃고 있는 박지민. 어떤 남자와 팔장을 낀 채 햇살 같은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왜 박지민이 이런 곳에 있지. 나는 기다리라는 경호원의 말도 잊은 채 홀린 듯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경호원들은 어딜 갔는지 나를 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박지민이 있는 곳으로 어느 정도 성큼성큼 걸어갔을까. 갑자기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박지민을 쫒던 내 시야를 가렸다.
"얘 너 몇 살인데 여기 왔니?"
"비켜주세요"
"어머 얘 말하는 거 봐. 교복 입은 거 보니깐 고등학생 같은데 너 어디 학교야?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죄송한데 제가 많이 바쁘거든요. 좀 비켜주실래요?"
"어린 게 싸가지 없이..!"
순간 여자가 들고 있던 와인을 나에게 부었다. 새하얀 내 교복 와이셔츠가 빨갛게 물들어갔다. 와인을 맞은 것이 억울하기 보다는 앞으로 김석진의 잔소리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컸다. 분명히 나한테 잔소리를 해대겠지. 김석진에게 잔소리를 들을 생각에 조금 짜증이나 미간을 찌뿌리자 여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파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화려한 복장 속에 와인이 얼룩진 교복을 입은 나의 모습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다. 괜히 김석진 딸 노릇 한다고 나섰나.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게 되었다. 앞에서는 여자의 비웃음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 때.
"지금 감히 누구한테 행패야"
"ㅈ,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박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장미향에 고개를 들자 박지민이 여자의 머리에 와인을 병채로 들이 붓고 있었다. 여자는 당황한 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고 박지민은 그런 여자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봤다. 여자가 계속해서 행패를 부리자 박지민은 조용히 여자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박지민이 속삭이는 것을 들은 여자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무언가에 쫓기듯이 파티장을 급하게 달아났다. 박지민은 내 어깨 위로 자신의 겉옷을 걸쳐주며 조심스레 내 어깨를 감쌌다. 그제서야 박지민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는데 학교에서와는 달리 짙은 눈화장이 잘 어울렸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좀 더 성숙하고, 더 묘한.
"일단 어디든 들어가자"
"지민언니가 여긴 어떻ㄱ..."
"그건 나중에, 지금은 사람들이 다 쳐다보니깐"
박지민은 그렇게 나를 룸으로 데려갔다. 어디선가 담요까지 구해와 나에게 꼼꼼히 둘러준 뒤 내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왜 박지민은 여기에 있는 걸까. 그것도 이렇게 성숙한 차림새로.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정적 속에 있었을까. 박지민이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들어왔어"
"....아빠한테 뭐 갖다주러 왔는데"
"이런데 함부로 발 들이는 거 아니야. 옷도 다 젖고 이게 뭐야"
"고마워"
"됐어~ 나 기대서 좀 잔다?"
박지민이 내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왔다. 박지민만의 장미향이 진하게 풍겼다. 학교에서보다 더욱 진하게 풍기는 듯 했다. 기분 탓인가. 장미향 사이로 비릿한 냄새가 살짝 느껴졌다. 금새 잠든 걸까. 미동도 없는 박지민을 바라보니 아기처럼 숨을 색색거리며 자고 있었다. 진한 화장 때문인가 낯선 분위기가 풍겼다. 나는 천천히 박지민의 얼굴을 관찰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눈썹, 속눈썹이 긴 눈, 동글하지만 높은 코, 그리고... 붉게 물든 입술. 도대체 정체가 뭘까.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흘러져 나오는 것이 슬슬 나도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박지민의 머리에 기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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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만큼 잠에 든거지. 눈을 떠보니 박지민은 온데간데 없고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어깨엔 아직도 박지민의 겉옷이 걸쳐져 있었다. 장미향이 은근히 풍기는 게 기분이 좋았다. 이제 슬슬 김석진을 찾으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경호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아 나 여기 몰래 들어온 건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를 내쫒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갑자기 앞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 나를 향해 들었다. 저건 뭐지. 물건을 자세히 보려 한 걸음 다가서자 철컥 소리가 들리더니 묵직해 보이는 그 물건을 내 이마에 댔다. 아 총이구나. 응? 총...?
"누구야"
"ㅈ,저기 이것좀 내려놓ㄱ"
"네 짓이지"
"예?"
"여태까지 안도망가고 요즘 킬러는 이렇게 멍청하나?"
"저기요... 전 그냥 여기 물건 전해주려ㄱ"
"S그룹 부사장"
"....예?"
"네가 방금 죽인 거 맞지"
"아니 저기 제 말 좀 들으라니깐요..!!"
내가 움직이자 내 이마에 더 세게 총구를 들이미는 남자였다. 이대로 갔다간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도저도 못하고 눈알만 굴릴 수 밖에 없었다. 남자의 손가락에서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이는 순간 문이 부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 비누향.
"지금 뭐하는 거야!!"
"수상한 외부인이 있어ㅅ"
"당장 총 안내려놔? 나한테 죽고 싶어?"
"킬러로 의심가는 인물입니다"
"지금 감히 더러운 손으로 누굴 만지는 거야"
"...예?"
"내 딸한테 손 떼라고"
문을 부시듯이 열고 들어온 김석진이 나를 보더니 흥분한 말투로 남자에게 말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운 표정이었다. 김석진은 정말 남자를 죽일 기세로 쳐다봤고 남자는 나를 놓아주며 김석진에게 고개를 숙인 뒤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김석진은 여기까지 뛰어온 건지 이마에 땀이 뒤덮여 있었다. 내가 김석진에게 다가가 이마에 땀을 닦아주기 위해 조심스레 손을 갖다대자 김석진이 매섭게 내 손을 쳐냈다.
"김탄소!! 여기가 어디라고 와!!"
"....ㅇ,아빠?"
"내가 밤에는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
"너 약은 먹은 거야? 왜 아빠 말을 안들어!!"
김석진이 무섭게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김석진의 무서운 모습에 당황한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그런 나를 보고 이내 정신을 차린 건지 김석진의 얼굴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ㄸ,딸... 미안... 아빠가 너무 놀래서"
"...."
"아빠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마... 응?"
"....아빠"
"우리 딸 다친 데는 없어?"
"....응"
"하... 이리와 우리 딸"
김석진이 나를 감싸안아왔다. 낯선 모습을 봐서인지 처음으로 김석진이 안아주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김석진이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나를 껴안았고 나는 말 없이 김석진의 등을 두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김석진이 안겨있던 나를 거칠게 떼어냈다. 내가 어리둥절하게 서있자 김석진이 내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조금씩 느껴지는 고통에 김석진을 바라보자 김석진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 나 아파..."
"...."
"아빠! 나 아프다니깐...? 이 것 좀 놔"
"...."
"....아빠? 어디 아파?'
"....너"
"응?"
"...장미향"
"뭐라고?"
"너 이 향수 어디서 났어"
"...왠 향수?"
"지금 너한테 나는 장미향..!! 왜 이 향이 너한테도 나는 거야..!!!"
"앗...! 아빠... 나 진짜 아파..."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났다. 장미향이라니. 내한테 걸쳐져 있던 박지민의 겉옷에서 장미향을 맡은 것 같았다. 왜 저렇게 불안해 하는 걸까. 뭐가 김석진을 불안하게 만든 것일까. 내가 낸 신음을 들은 것인지 그제서야 나를 놓아주는 김석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쭉 봤지만 김석진이 낯설게 느껴졌다. 김석진이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마이를 내 어깨에 두르며 내 헝클어진 머리를 조금씩 정리해줬다.
"딸... 아빠가 오늘 미안해"
"아빠... 같이 집에 가자"
"오늘은"
"...."
"딸 먼저 가있어. 아빠가 기사 불렀으니깐 집 가서 약 꼭 먹고 먼저 자"
"아빠는...?"
"아빠는 아직 할 게 남아있어서"
"...같이 가면 안돼?"
"아빠가 차까지 데려다 줄게"
결국 김석진은 나를 차까지 데려다줬고 차는 내게 인사할 틈도 없이 출발해버렸다. 차에서 내리고 도착한 집이 갑자기 너무 크게 느껴졌다. 원래도 컸지만. 이게 김석진의 빈자린가.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맨발로 걸으며 방으로 향했다. 침대 맡에 올려진 하얀 통에서 약을 꺼내 먹은 후 침대에 누워 다시 생각했다. 김석진을 그렇게 불안하게 만든 건 무엇일까.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었을까. 김석진은 그곳에 무엇을 하러 간 걸까.
박지민, 너의 정체는 뭘까.
+
안녕하세요 마몽입니다 :)
벌써 네 번째 이야기에요~
생각보다 많은 분이 암호닉을 신청해주셔서 많이 놀랐어요
함께 잔잔하고 오래오래 가요 ㅎㅎ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 같네요
특히 제 보잘 것 없는 글이 독방에 추천이 되다니 너무 영광입니다
댓글로 힘주는 이쁜이들 너무 고마워요
암호닉 ctrl+F로 있나 없나 확인해 보시고 빠졌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아직 가나다순으로 정리는 못했는데 나중에 보기 좋게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이쁜이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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