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p de Foudre 특별편(이라고 쓰고 번외 아닌 번외라 읽는다)
부제 ; 두 개의 시선-1
내가 기억하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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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랑은 제발 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엄청 빌고 또 빌었다. 짝 바꿀 날이 되면 전 날부터 간절하게 기도했던 나였다.
어떤 책에선 이렇게 말했다. 우주엔 끌어당김의 법칙이 있는데, 우주는 간절히 바라면 우리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원하는 걸 끌어다 준다고.
"네 옆 자리 전원우네."
제비를 뽑는 그 순간까지도 빌었건만, 칠판 위에 자리 뽑기 당번이 이름을 써내려가기 시작했고, 끝까지 비어있던 전원우 자리 옆에는 내 이름 석자가 가지런히 적혔다.
그 책은 순 거짓말이었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영혼 없이 웃어 보았지만 하늘이 노래질 뿐이었다. 난 전원우의 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단 말이야.
아니야, 괜찮을 거야. 괜찮겠지! 얘가 날 얼마나 신경쓴다고 내가 이런담. 짐을 다 옮기고 자리에 앉았다.
"시험 끝날 때까지 자리는 안 바꾼다."
아, 선생님. 제발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리를 들은 건지, 전원우가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 죄 진 것도 아닌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전원우의 눈빛에 몸이 수그라드는 것 같았다.
시선을 급히 돌렸다. 아직까지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은 시선에 얼굴이 다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듯 했다.
"싫은 거 알아."
"........"
"불편하게 안 해."
그래, 내가 바라던 바인데. 왠지 모르게 그 짧은 틈 사이에 엄청난 벽이 세워진 기분이 들었다.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심리적 괴리감. 말을 마치자마자 전원우는 교과서를 꺼내 들었고, 정말 나를 성가시게 할 만한 그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불편하지 않았다. 좋았다. 좋은 거겠지.
*
문제를 푸려다 계산 실수를 한 게 눈에 띄어서 지우개를 꺼내려고 필통을 뒤져봤다. 필요할 때는 꼭 없더라. 지우개가 없었다.
내 앞자리 아이와 옆자리 아이 모두 깊은 숙면을 취하고 있어서 빌릴 수가 없었다. 아, 남은 건 전원우밖에 없네.
'이거, 선생님이 전해 주래.'
전원우가 아파서 오지 않았던 날, 선생님이 전원우 몫을 나에게 전해주라고 하셨다. 다음 날 좋지 않은 안색으로 학교에 등교한 전원우에게 심호흡을 두 번 하고 말을 건넸다.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걸까. 활짝 웃어주길 바란 건 아닐테고.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그에 걸맞게 전원우는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만 한번 끄덕이곤 내 손에서 프린트를 낚아챘다.
'피...필기한 거 보여줄까?'
'아니.'
딱딱한 말들에 괜히 나섰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아, 맞다. 나 얘랑 사이 안 좋았었지. 괜한 오지랖을 부렸네. 혼자서도 잘 할텐데.
수업 몇 번 빠진 건 자기가 알아서 할텐데. 무슨 용기로 전원우에게 말을 걸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전원우는 나에게 일말의 방해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원우에게 뭘 빌려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옛날처럼 날 바라볼 거니까.
"써."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던 중, 문제지 위로 지우개 하나가 굴러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전원우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쓰라며 말하고 있었다.
벙 쪄서 아무말도 안 하는 나를 의식한 건지, 흰 손을 뻗어 지우개를 잡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너 쓰라고."
"......."
"필요하면 말을 하면 될 거 아니야."
*
전원우랑 짝을 해서 얻은 게 하나 생겼다. 바로 감기. 감기가 제대로 옮아 버렸다. 밤엔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었더니 열은 내렸지만, 목이 아이에 나가고 말았다.
기침도 계속 나오고, 머리도 띵하고. 그냥 학교를 쉬라는 엄마의 말을 마다하고 가방을 싸서 학교에 왔다. 1교시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온 걸 후회했지만.
"너 어디 아파?"
"......아니, 괜찮아."
"뭐가 괜찮아! 목소리도 안 나오는데.... 약은 먹었어?"
"응."
"아프면 보건실 갈까? 데려다 줄게."
쉬는 시간을 틈 타 책상에 엎드리고 누우니 빈 옆자리에 누군가가 와서 앉았다. 김태형이었다. 걱정스런 눈으로 쉴 틈 없이 말할 거리를 쏟아내는 김태형에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걱정시키기 싫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 호의가 부담스러워서였을까. 몇 분 후에 김태형이 내 어깨를 토닥이고는 교실을 나갔다.
열감 때문에 뿌연 시야를 되짚으며 주위를 훑었다. 언제 교실에 들어왔는지 모를 전원우가 보였고, 전원우가 옆에 앉았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전원우의 책을 배고 엎드려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나, 책을 전원우의 책상에 놓아 주었다.
열 때문에 상기된 볼이 전원우의 그 알 수 없는 눈빛 때문에 더 뜨거워졌다.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이런 걸까.
미련하다는 듯한 그 눈빛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입을 앙 다물고 서둘러 엎드렸다.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선생님이 나를 깨우라고 말씀하셨다. 일어나야겠지.
"선생님, 오늘 김세봉 감기가 좀 심하대요."
"아, 그래? 그럼 엎드려 있으라고 해. 보건실은 안 가도 괜찮고?"
"지금 잠든 것 같아요. 다음 시간에 데리고 갈게요."
전원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데.... 그냥 보건실에 가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지 않았지만 잠든 척 그냥 누워 있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 왜 학교에 와선....
얼마나 잠들었을까, 일어나 보니 시계가 벌써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진짜 오래 잤네. 아까보단 한결 나아진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비비고 주변을 살폈다.
탁, 하고 책상에 무언가를 놓는 소리가 들리고 전원우가 의자를 끌며 앉는 소리도 들렸다. 뭔가 싶어 책상 위를 보니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아, 생글생글 웃고 있는 김태형도 보였다.
"목감기에 좋은 거?"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면 좋고, 배도 좋고. 꿀물 같은 거 마셔도 좋고.
찬 거 절대 먹으면 안 되고....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이 꿀물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글씨체인데.... 마침 눈에 들어오는 게 전원우의 교과서였다.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닮아 있는 글씨체였다.
그렇지만 전원우가 이런 걸 써서 나한테 줄 리가 없었다.
"......세봉아, 그거 뭐야?"
"아, 이거.... 나도 몰라. 누가 줬나 봐."
"그...거 내가 준 거야."
김태형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김태형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보건실은."
"......아, 안 가도 괜찮을 거 같아. 아까 대신 말해줘서...."
"그럼 됐고."
전원우가 대뜸 보건실은, 이라고 묻자 사고 회로가 정지되는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자기 할 일은 다 끝냈다는 듯 말을 잘라내는 전원우였다.
그래, 이게 너답지. 한참동안 그 포스트잇을 매만지고 있다가 전원우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포스트잇이 보였다. 우연찮게도 똑같은 색이었다.
너가 그럴 리가 없지, 혹시 너인가, 하고 생각하는 내가 바보지. 전원우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식겠다, 빨리 마셔."
"......어?"
"따뜻할 때 마셔야 할 것 아니야."
아, 꿀물.... 그래. 쳐다보지도 않고 툭 던져지는 전원우의 말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뚜껑을 열었다. 김태형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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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쿱데포드레로 돌아왔습니다 !!!!
비록 특별편이지만요ㅠ_ㅠ 다음 특별편은 원우의 시선이겠죠?
이번 편은 이 일화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썼어요 헤헤
이걸 얼굴책에서 딱 봤는데 너무 원우같더라구요 그래서 독방에 글도 썼었답니다 보신 분이 계시려나요!
그리고 이렇게 부분적으로...(?) 글도 쪄 왔답니당 원우ㅠㅠㅠㅠㅠ너무나ㅠㅠㅠㅠ설레는 것...
본 편도 빨리 찾아올게요!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암호닉은 다시 목록을 정리하면...(랜섬웨어 ㅂㄷㅂㄷ...)그 때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