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규의 연애일기
2016. 04. 17 (일)
동창회를 간다던 너.
늦어도 12시 까지는 꼭 오겠다며, 연락은 꼬박꼬박 되게 하겠다며 못 가게 했던 내게 조르더니 결국 빨리 오라는 허락을 받고 기분 좋게 나갔지.
그런데 왠걸. 약속은 무슨, 연락은 한 통도 되질 않았고 열 두시가 훌쩍 넘어가는데도 들어 오지 않는 너였어.
화가 났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였으니까. 매번 화를 내고 혼을 내도 달라지지 않는 너의 태도에 화가 날 대로 나버렸어.
이번엔 쉽게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 차올랐지.
" 김여주, 몇 시야 지금. "
" 어..? 왜 안 자고 있어? "
" 잔말 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 해. 몇 시냐고 묻고 있잖아. "
" ... 세시. "
" 말이 되냐? "
" 미안, 이렇게 늦을 줄은 몰랐어. 네가 기다리고 있을 줄도.. "
" 내가 자고 있었으면, 일찍 들어왔었다고 거짓말이라도 할 생각이였나 봐. "
" 아니, 그런 건 아니야. "
" 내가 가지 말라고 했던 거, 네가 조르고 졸라서 결국 보내줬지. "
" ..응. "
" 믿고 보내줬으면 믿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 그래도, 클럽 가자고 하는 건 안 갔어 ! "
" 일찍 오겠다며. 술 안 마시니까 열두시 안에 온다고 네가 니 입으로 말했잖아. "
" 친구들이 계속 붙잡아서... "
" 그놈의 친구들 진짜 지겨워 죽겠다. 친구들이 붙잡으면 넌 니 발로 못 나와 ? 니가 10살짜리 애도 아니고. "
한숨을 깊게 내쉬고 잠시 맴돈 정적.
속상했어, 어느 순간부터 너한테 화 내는 일이 잦아지고 우리가 자꾸만 다투는 게.
예전에는 너한테 화는 커녕 짜증도 내지 않았었는데,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생각이 복잡해지니 나지 않을 것 같던 최악의 결론까지 생각이 닿아버렸어.
" ...잠시 떨어져 지낼래 우리 ? "
내 말에 생각지도 못 했던 건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는 너.
나도 원치 않는 일이지만, 자꾸만 싸우는 게 서로가 서로의 소중함을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한 말이었어.
" 무슨 뜻으로 말 하는 거야, 김민규? "
" 넌 나 보다 네 친구들이, 밖에서 자유롭게 노는 게, 밤 늦게 돌아 다니는 게 더 중요해 보여. "
" 그런거 아ㄴ… "
" 김여주, 내 말 똑바로 들어. "
" ... "
" 내가 지금 너한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너한테는 우리가 같이 사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는 거야. "
그렇잖아, 내가 더 중요했다면, 소중했다면 친구들이 잡아도 미안하다고 하면서 나와의 약속을 지켰어야지.
적어도 네가 나를 많이 사랑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인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진 말아야지.
기다리고 걱정하고 있을 나에게 늦어서 혼날 것 같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나에게 실망해서 나를 더는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불안을 가지고 있었어야지.
그게 나를 정말 사랑한다는 표시가 아닐까?
" 요즘, 너한테 갈수록 실망 하는 일이 많아. 너도 알고 있잖아. "
" ... "
"너, 나 안 사랑하지. "
" 무슨 소리야, 널 왜 안 사랑해. "
"근데 이렇게 실망 시킬 수 있어? 계속 이러면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
내 말이 상처가 됐는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는 네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화도 났어.
무슨 말이라도, 변명이라도 해 주면 좋겠다고 수 백번 수 천번 되뇌였는데 돌아 오는 말은 미안해 한 마디가 전부였지.
그래 더이상 네가 할 말이 뭐가 있겠어, 이해가 가다가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나봐.
" 더 할 말은, 없고? "
" ..그냥, 나는 네가 그렇게 생각 할 줄 몰랐어. "
" 나라고 너한테 화 내는 게 좋겠냐 ? "
" 아니... "
" 나, 너 되게 좋아해. 사랑하고. "
" … "
" 그동안 봐왔으면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내가 너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
" ... "
" 근데 이건 아니잖아.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고 화 내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
" ... "
" 이게 너랑 내가 꿈 꿔오던 사랑이야? 애초에 그냥 같이 살지 말 걸 그랬나 봐, 이럴 줄 알았으면. "
" 그래도, 민규야 제발.. "
" 내가 너한테 화 내고 있는 이 상황도 난 싫어. 내가 왜 화를 내야 하는데? 안 그러냐? "
" 미안... "
" 매번 미안하다고 하잖아. 그래 놓고 바뀐 게 뭐 있어? 미안하기만 하고 바뀔 생각은 하나도 없잖아 너. "
"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자꾸만 … "
" 그래, 그러니까 좀 떨어져 지내자. 계속 이런 식이면 내가 너를 더는 사랑하지 않을까봐 겁나. "
" 민규야. "
" 그렇게 부르지 마 제발. 마음 약해지게 하지 좀 마. 그냥, 한 달만. 한 달만 응? "
한 달만 떨어져 지내자고, 애원 하듯이 말해 버렸어.
민규야, 라고 부르는 네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해서 자꾸만 약해지는 마음에 너를 더는 보기가 힘들었어.
네 잘못이 크긴 했지만, 생각 없이 나가는 듯한 내 말에 혹여 네가 상처 받을까봐 걱정도 됐고.
" 말 심하게 해서 미안. 내일 너 없는 시간에 필요한 짐만 챙겨 나갈게. "
" 민규야, 이렇게 헤어지는 건 아니잖아. "
" 헤어지는 거, 그런 거 아니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말고. 서로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 다시 만나자. "
" ..하, 이런 상태로 너 보내면 내 마음은 ? "
" 그럼 애초에 네가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아니야 ? "
" 맞아, 맞는데 나는 네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어. 너무 극단적이잖아. "
" ..그래야 네가 바뀔테니까. "
" 그래서 네가 내린 결론이 이거야? "
" 이게 우리 사이에 기회가 될지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지만, 서로를 위한 일이야. 우리 둘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
" 진짜 못됐다 김민규... "
" 내가 하는 말에 상처 받지 마, 미안. 지금은 더이상 너 못 보겠다. 나가볼게. "
그 말을 끝으로 늦은 시간, 내가 원래 살던 오피스텔로 향했어.
가는 내 마음도, 보내는 네 마음도 편할 일 없었겠지만 우린 조금 멀어질 필요가 있었어.
한 세 달을 떨어져 지냈던가, 시간이 시간인 지도 하루가 흘러가는 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린 것 같아.
그동안 네게서 연락도 참 많이 왔고, 내 오피스텔에 찾아 온 적도 많지만 그때마다 힘들게 널 밀어냈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서 도저히 맨 정신으로 버틸 자신이 없어 술로 지새운 날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을만큼 많아.
다시 돌아만 가면 되는 걸, 너한테 상처줬던 내가 자꾸만 떠올라 넋을 놓은 채로 하루하루를 지샜어.
내가 이렇게 힘들어 했다는 걸, 네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세 달쯤 지나니까 진심으로 알겠더라. 난 너랑 같이 살아야 해.
너 아니면 누가 내 성질 받아주겠어. 너 아니면 누가 내 건강 챙겨줘. 너 아니면 누가 내 세끼 챙겨줘.
이유는 끝없이 많지만, 그냥 떨어져 살아 보니까 알겠어. 너랑 살아야 내 삶이 온전히 돌아간다는 거.
그래서 마음을 먹은 날, 세달만에 너한테 연락을 했지. 내가 같이 살던 집으로 가겠다고.
뜬금없겠지만 이 확신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 참 많이 힘들었다 싶어서 급하지만 연락을 한 거야.
매번 밀어내다가 뜬금없이 만나자는 내 연락에 당황했는지 얼버무리는 네가 새삼 귀엽다고 느껴졌어.
약속한 시간, 오랜만에 와 보는 동네 그리고 같이 살던 예쁜 집.
낯설게 느껴지는 집 대문에 이질감을 느끼고 조심스레 비밀번호를 눌렀어.
0526 너와 내가 만나기 시작한 날. 바꾸지 않은 비밀번호에 왠지 모를 울컥하는 감정이 일더라.
떨리는 마음으로 연 문 앞에 서있는 네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아서 멈칫하던 것도 잠시 성큼성큼 다가가 안아버렸어.
" 미안, 너무 오래 기다렸지. "
내 말을 듣는 순간 참아왔던 건지 울음을 터뜨리는 너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어.
네 울음소리에 나도 울컥 눈물이 나서 꾹꾹 참으려 얼마나 노력했던지.
" 이기적인 놈이라 미안해. 너 힘들어 할 때 밀어내기만 해서 미안. 내가 너무 멋대로였지..
그날, 그렇게 가고 다른 날 너 몰래 짐까지 챙겨 나갔을 때 네가 얼마나 괴로워 했을 지 알아.
나 찾아 올 때마다 너 밀어내느라 나도 너무 괴로웠어. 그간 살아온 게 사람 사는 게 아닌 것 처럼 지냈고. "
" ... "
" 필요해, 네가. "
" ... "
" 마지막으로 이기적으로 굴게. "
"... "
" 같이 살자, 우리. "
말이 끝나자 마자 내 품을 더 파고들면서 이제는 아예 소리까지 내며 우는 네가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어. 애기 같았거든.
이렇게 작고 여린 애를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게 밀어냈었을까. 내가 참 못된 놈이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울음을 그쳐가는 너를 내려다 보며 괜찮다고 토닥토닥 두드려 줬어. 예전에 넌, 이렇게 하면 울음을 그쳤었거든.
습관이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거라고 하는 건가. 금방 뚝 하는 너를 보며 아기 같은 습관은 여전하구나, 느꼈어.
펑펑 운 게 창피했는지 품에서 떨어져 휴지로 얼굴을 닦으며 내 앞에 서는 너였어.
" 너 진짜 미워. "
" 미워? 나 집에 다시 갈까? "
" 아니... "
" 그럼? "
" 몰라, 미워 진짜. "
" 안아줘? "
" 응, "
한참을 안고 있는 채로 조잘조잘 맘에 쌓아뒀던 말들을 꺼냈었어.
잠이 많은 너였기에, 아침마다 내가 깨워주지를 않으니 지각을 일삼았고 회사에서 혼이 나고 돌아오면 항상 위로해주던 내가 있었는데
아무도 없어서 너무 외로웠다고. 참 보고 싶었다고, 다시 돌아만 오면 정말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매일 밤 되뇌었다고.
내게 연락이 왔을 때 꿈만 같았다고 얘기하는 네 모습에, 싸웠던 날 모진 말을 했던 나를 원망했어.
조금만 더 참을 걸, 아무리 화가 났어도 너를 원망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내가 한 말들에 상처 받았을 네가 너무 안쓰러웠어.
" 그날 그렇게 가고 참 후회 많이했다, 나. "
" 알아. 너 나한테 화 내고 나면 마음 편히 자는 걸 못 봤으니까. "
" ..나 많이 원망했지. "
" 응, 진짜 헤어지자고 할까 봐 무섭기도 했고.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데 어쩌지 싶었어. "
" ... "
" 아무리 화를 내도 단 한번도 외박 한 적 없던 넌데, 그렇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줄 몰랐어. "
" 매몰차게 굴었지만, 내 딴에도 참 힘든 결정이었어. "
" 응, 알아. 네가 나를 얼마나 예뻐해줬었는데, "
" 지금도 너 예뻐해. "
" ..오랜만에 들으니까 부끄럽네. "
그간 고생한 기억이 너를 보고 너를 마주하고 너와 대화를 나누고 너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들에 금세 잊혀졌어.
너를 홀로 둔 그 기간들을 후회로 지새웠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거야.
그 시간 동안 깨달은 게 참 많거든. 네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내가 너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가장 잘 알게 된 시간이 아닐까 싶어.
" 돌아가자.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처럼. "
" ... "
" 그리고, 결혼도 서두르자. "
" ... "
" 당당하게 부부생활 하고 싶어. 애기도 낳고. 살림도 제대로 차리고. "
잠시의 헤어짐은 결국 우리에게 끝이 아닌 기회가 됐고, 서로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경험이였던 것 같아.
다시 만난 그 집에서 너를 안고 입을 맞췄을 때, 그 기분이란. 나는 아마 전생에 세상이라도 구했나 봐.
마음놓고 너를 다시 예뻐할 수 있어서, 너를 다시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힘든 시간 잘 이겨내줘서 고맙고, 그 자리 그대로 기다려줘서 또 고마워. 참 많이 사랑한다 김여주.
오늘도 글을 보러 와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 드립니다. 독방에서 추천을 받고 오신 분들이 몇몇 계시던데, 추천해주신 분도 추천 받고 읽으러 오신 분도 너무 감사해요. 추천할 만 하면 독방에서 자주 추천해주세요 제 글 ! 부끄럽지만 ㅎㅎ. 이 글도 미리 작성 해둬서 텀이 짧게 왔네요, 다음 편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오래 기다려주셔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ㅠㅠ. 그러니 여러분들이 소재를 팍팍 투척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여러분들의 댓글 하나하나가 제게 참 큰 힘이 됩니다 ! 짧게라도 조금의 시간을 내서 적고 가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암호닉] 신청해요. ← 암호닉은 요런식으로 마음껏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 좋은 하루가 됐길 바라며 내일도 좋은 하루 되길 바래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 해날과 함께 ♡ 규애 / 호시기두마리치킨 / 성수네 꽃밭 / 밍니언 / 누텔라 / 설레임 / 불낙지 / 밍꾸 / 호시십분 / 우양 / 버승관과부논이 / 전주댁작가의 말 ( 읽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