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예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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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2016년 3월 2일. 또다시 개강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괜히 화장대 앞에 앉아 아이라인을 찌익- 그렸다가 볼품없는 내 모습에 클렌징 티슈로 눈을 벅벅 닦아내고선 작년과 다를 게 없이, 그냥 선크림에 립밤 하나만 바르고 나선 나는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뭉그적 뭉그적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나는 정말…
"…왜 이렇게 생긴 거냐."
이곳저곳 퉁퉁하지 않은 곳이 없는 몸. 내 몸에 비해 지방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울룩 불룩 살들은 튀어나오기 일쑤였고, 그러기 때문에 입을 옷이라고는 그저 티 쪼가리 하나에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 거기에다 내 몸집만 한 백팩까지 추가하면 와… 내가 봐도 정말 별로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작년보다 10킬로가 더 찐 거냐고!!!!
"겨울 방학 때 그렇게 다이어트 한다고 마음먹어놓고선…"
아… 진짜 학교 가기 싫다. 가뜩이나 작년에도 겁나 극딜 당했는데 올해는 더 심하겠구나…. 다시 한번 땅이 꺼져라 숨을 한번 푸욱 내쉬고는 정말 지옥 같은 학교를 가기 위해, 겨우 한 걸음을 내딛었다.
*
그냥 미친 척하고 휴학할 걸 그랬나.
이번에 새로 들어온 16학번 새내기들은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다들 예뻤다. 어떻게 저렇게 이쁠 수가 있는 거지? 분명 나랑 같은 인간이고, 같은 여자임이 분명한데 왜 쟤네들은 저렇게 이쁘냔 말이야… 예쁜 애들을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움츠러드는 내 몸. 정말 쪽팔려 죽겠다, 진짜…! 그냥 엄마한테 등짝 한대 맞고 휴학할걸. 그래서 살을 빼고 나서 다시 학교에….
…겨울 방학하기 전에도 그래놓고 무슨. 휴학한다고 내가 살을 뺄 수 있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냥 휴학하지 않은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휴학하고 나서 지금과 다를 게 없다면 정말 그건 나가 죽어야 될 일이었으니까. 개강 첫날 첫 수업은 하필이면 전공 수업이었기에 나는 전공 강의실에 들어가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없는 사람인 양 그렇게 숨어있었다. 뒷자리에서 동기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까 캠퍼스를 지나오면서 봤던 새내기들도 정말 예뻤지만 동기들도 가면 갈수록 더 예뻐지는 구나…. 진짜 비참하다, 비참해.
"김여주."
"…어어?!"
"뭐야, 뭘 그렇게 놀래."
갑자기 내 앞에 쭈그려 앉더니 내 눈을 마주 치곤 피식 웃는 이 아이는 권순영이라고, 작년에 1학년 과대였던 애다. 워낙 성격이 좋아서 동기들한테도, 선배들한테도 이쁨을 받던 아이였지. 근데 무슨 일로 나를 부른 거지…? 권순영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저 입술만 꾸욱 깨물고 있는데 이어 권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개강 총회 있는 날이야. 알고 있었어?"
"…개강 총회?"
"응. 단톡에 너 혼자 대답이 없었길래. 혹시 모르고 있나 해서."
당연히 몰랐지. 우리 과 단톡은 알람을 꺼버리고 살고 있었으니까.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동기들끼리 하하 호호 사랑과 우정(?) 이 넘치는 단톡에서 나는 끼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대화를 바라보면서 비참함을 느낄 바엔 그냥 모르는 척 무시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오늘 개강 총회였구나. 무슨 개강을 하자마자 그런 걸 하냐. 원래 며칠 지나고 이따 하지 않나…. 아, 안 가면 안 되ㄴ…
"안 오는 건 없어. 필참이야."
… 뭐야, 얘. 사람 마음 읽을 줄도 아는 건가. 환히 씨익 웃으며 제 자리로 돌아가는 권순영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개강 총회면 이번에 새로 들어온 16학번 애들도 있을 거고, 선배들도 엄청 많을 텐데…? 거기 있으면 나는 분명….
'야. 저 돼지 봐.'
'쟤는 진짜 꾸밀 생각이 하나도 없나 봐.'
'20대에 뚱뚱한 게 웬 말이냐-. 저건 진짜 자기 관리를 안 하는 거지.'
다시금 떠오르는 기억에 나는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는 걸 겨우 꾸욱 참아냈다. 안되겠다. 그냥 일 있다고 하고 빠져야지.
거기서 그 말들을 버텨낼 자신이 없어.
*
대충 OT가 끝나고, 나는 개강 총회를 튀기 위해 집에 가는 통학 버스를 타러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 내가 그 자리에 안 가는 게 우리 과 사람들한테도, 그리고 나한테도 좋은 일일 거야. 다들 그렇게 윈윈하는 거지, 뭐. 혹시나 권순영이랑 마주칠까 괜히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열심히 통학 버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야! 돼지!"
…설마 난가? '돼지' 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이 움찔하는 나였기에 나는 그 자리에 딱, 멈춰 섰다. 그리고 생각했지. 아, 바본가. 왜 멈춰 서. 그냥 걸어가야지! 이러면 정말 인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잖아! 다시 걸어야겠다 싶어 한 발자국 내디디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디 가냐. 설마 튀냐?"
"……."
익숙한 목소리. 뻣뻣하게 굳은 고개를 겨우 돌려 얼굴을 쳐다보는데, 얘는 진짜 하루라도 나를 안 놀리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일 나에게 욕을 퍼부어대던 동기 남자애였다. 이 새끼 이번 연도에 군대 가는 줄 알았더니, 왜 여기 있는 건데…?! 황급히 그를 퍽, 밀쳐내고 그에게서 떨어지니 '아!' 하고 탄식을 내뱉던 남자애가 말했다.
"야! 니가 치면 거의 살인행위야! 몰라?"
"……."
"아, 존나 아파. 진짜…. 힘만 더럽게 세 가지고."
하긴 그 덩치에 그 정도의 힘은 있어야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하는 그 남자애에 기분이 나빠 얼른 버스나 타러 가야겠다 싶어 자리를 뜨려는데, 갑자기 그 놈이 내 백팩을 떡- 하니 잡더니,
"어딜 도망가. 개강 총회는 하고 가야지."
"…이거 놔!"
"튀기만 해. 내일부터 아주 즐거운 학교생활이 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내 가방을 거칠게 놓고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개강 총회를 가면 분명 저 놈이 동기들을 선동해서 나를 놀릴 테고, 그럼 나는 비웃음거리가 될 게 뻔한데…. 어차피 가나, 안 가나 내가 들을 소리는 똑같을 거 같지만 저 새끼는 진짜 한다면 하는 놈이라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진짜…."
아… 울고 싶다.
*
너무나도 쫄보인 나는 결국 튈 생각도 못하고 이렇게 참석을 하러 오게 되었다. 나를 보자마자 환히 웃던 권순영은 앞자리부터 채워서 앉으라고 말을 했고, 나는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아 가방으로 배를 가리고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스마트폰이 요즘 사회에 대화를 단절하게 하고, 중독을 일으킨다고 문제가 많지만 나한테는 이게 얼마나 고마운 물건인지.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난 정말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
야, 좀 떨어져 앉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들어 그곳을 보니, 여자 동기들이 내 옆자리, 그것도 두 칸이나 띄어놓고선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나 그래도 자리 막 두 자리씩 차지하고 그러진 않는데…. 벌써부터 차오르려는 눈물에 얼른 고개를 다시 숙이고 애써 스마트폰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뭐야. 여기 두 자리는 왜 빈 거야?"
야, 전원우. 이리 와. 여기 앉자. 그 누구도 내 옆을 기피하던 와중에 이지훈이 전원우를 끌고 내 옆자리에 턱, 앉았다. …얘는 아무렇지도 않나? 내 옆이라는 게? 아직 내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한 걸까, 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알게 되면 뭐라 한 소리를 하지 않을까 괜히 이지훈 눈치만 힐끔 힐끔 보고 있는데, 내 옆자리를 앉기 싫어했던 여자 동기들이 그 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입이 찢어져라 웃으면서.
"지훈아. 잘 지냈어? 머리 염색한 거 이쁘다."
"…어."
"우리 언제 술 한 번 먹어야지! 원우랑 순영이도 같이!"
"…야, 근데 미안한데."
너 이름이 뭐냐? 이지훈의 말에 여자 동기의 얼굴이 보기 좋게 망가져갔다. …야, 이지훈. 장난 치지 마. 우리 같이 지낸 지 벌써 1년이나 됐거든?! 여자애의 말에 이지훈은 그저 심드렁하게 '미안.' 그 두 글자를 말하고는, 전원우와 앞에 나가 개강 총회를 준비하는 권순영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쟤 뭔가 이번에도 과대할 거 같지?"
"어. 안 한다고는 하는데 딱 봐도 할 거 같이 생겼어."
썩어가고 있는 여자 동기의 얼굴은 안중에도 없는지 이지훈과 전원우는 자기들끼리 얘기하기 바빴다. 아… 나는 그제야 떠올랐다. 이지훈과 전원우는 정말, 제 사람이 아니고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얘네가 나를 놀리거나 하지는 않았었지. 이렇게 내 옆에 앉은 이유도 나라는 존재 자체를 몰라서 그런 거였구나. 저 여자애가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 애는 아닌데 쟤를 모르는 걸 보면 나는 뭐…. 이유를 깨달은 나는 혼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열, 돼지! 안 튀고 잘 왔네?"
…순간 바로 내 뒷자리에서 들리는 그 놈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필 왜 또 내 뒷자리인 거야. 자리를 옮길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제 개강 총회를 시작한다는 선배의 목소리에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돼지. 2학년이 되더니 더 포동포동해졌네."
"……."
"야, 내 말 안 들려?"
그 놈의 목소리에 주변에서 키득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번 연도도 똑같아. 나는 이번 년에도 이렇게 놀림을 당하면서 학교를 다니겠지…. 옆에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이지훈과 전원우에 더 쪽팔려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쪽에서는 16학번 애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토 나올 거 같다. 진짜.
"야. 좀 숨 막히지 않냐?"
"어.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야, 돼지. 니가 산소를 다 처먹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지들끼리 깔깔대며 웃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말 구역질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속을 게워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거기. 조용히 좀 하지."
"좀 시끄러운데."
…? 저 사람은 누구지. 애들이 나를 놀리는 것 때문에 총회에 신경을 안 쓰고 있었더니 어느새 총회는 식순 3번에 적힌, 복학생 소개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앞에는 처음 보는 우리 과 사람들이 세 명이나 서 있었으니까. 나를 놀리던 동기 놈도 대놓고 저격을 당해 당황을 한 건지 약간 얼떨떨한 것 같았다. 조용해진 우리를 한번 쓰윽 둘러보던 그 사람은,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복학한 13학번 최승철입니다."
읽어주세요♡ |
안녕하세요, 차차차입니다! 일단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읽어주시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네요..ㅎㅎ.. 지금 대학교들 종강할 시즌일 텐데 다시 새 학기 개강으로 타임워프를 했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제목은 막 지은 겁니다. 뭐라 지어야 될지 몰라서... 그래서 대충 떠오르는 게 저 제목이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본격! 여주 자존감 높이기! ... 정도가 되겠네요. 보시다시피 자존감이 정말 바닥까지 떨어진 여주가 복학한 승철 선배와 뒤에 나올 세븐틴 멤버들을 만나면서 자존감을 되찾는 그런 진부한 내용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00화인 만큼 3일 동안만 구독료 무료♡ 로 하고 그 뒤에는 포인트를 올리려 합니다. 그러니 많이 많이 읽어주세요! 댓글도 달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구요ㅎㅎㅎ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