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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준] 미필적 고의(자급자족용 연애망상) | 인스티즈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너라고 하지 마요."

"그럼 동갑인데 뭐라고 해. 야?"

 

  너도, 야도 해서는 안 되는 거지. 친구 되려고 만난 사이도 아닐 뿐더러,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 또한 눈곱 만큼도 없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일'로 만난 관계인 거다. 그게 맞는 거고,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싶은 여지나 마음 같은 건 전혀 없다.

 

"할 말 끝나셨으면 가볼게요."

"너 그렇게 못된 거 못하잖아."

".....하,"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 쪽 어깨에 가방을 맸다. 더 이상 여기에 앉아 있어봤자 내 시간만 아깝겠다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세 걸음 쯤 떼었을까, 이 이야기는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연락하지 마세,"

"오늘은 안 잡아,"

 

  나의 '연락하지 말라'는 말과 그의 '오늘은 안 잡아'라는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좋네. 이거면 됐다. 딱 이게 적당한 마무리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있다. 나는 그대로 그에게서 조금씩 더 멀어져서 아예 카페를 나와버렸다.

카페 앞 도로에 세워진 그의 차가 보인다. 로또를 맞지 않는 이상 최소한 10년, 아니 20년 내에는 내가 내 돈으로 사볼 일은 없는 차. 그래, 그게 그와 나의 차이다.

 

  버스를 잡으려면 15분 쯤은 걸어야 했다. 왜 저런 카페는 인적도 드문 외딴 데에 있으면서 버스정류장이랑도 오지게 먼 걸까. 구두 신은 사람 짜증나게.

애꿎은 카페의 위치를 탓하면서도 나름 시원시원하게 걸었다. 내가 의기소침해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 또한 없었고. 그저 이제 더 이상 그의 연락을 받지 않으면 될 일이다.

 

 

 

-

 

 

 

  난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음, 회사는 아니니깐 회시원은 아니려나. 어쨌든 내가 일하는 곳은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은 아니었고, 이익은 추구하지 않으면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그런 곳이었다.

나름대로는 대학 때의 전공을 살려서 일을 잡은 것이고, 내 일에 대한 프라이드도 있었다. 사람이 좀 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으니 말이다.

  서강준, 아니, 이승환과의 인연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이승환이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홍보대사가 된 것이다.

사실 홍보대사가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로 소속사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고, 해당하는 연예인과 우리 단체의 이미지가 맞으면 홍보대사가 되고, 그런 식이었다.

홍보대사가 되었을 때 이미지가 좋아진다거나 그런 효과가 분명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너도 나도 하려고 하지, 안 하려고 일부러 피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만남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아니, 시작이 '만남'이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서강준 온다면서요?"

"그렇다던데요. 국장님이랑 다 같이 미팅한다던데요."

"윤 사원은 갈 거에요?"

"선택이에요?"

"홍보부는 필참인데, 그 외에는 참여해도 된다고 그러던데요?"

"저는 가는 즉시 야근일 것 같아요... 이 대리님이 보고 오셔서 어땠는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

 

  재밌게 봤는데, '치즈인더트랩'. 물론 유정보다 백인호를 더 좋아했다. 웹툰으로 볼 때도 유정보다 백인호를 더 좋아했다. 서브 남주에 꽂히는 특이한 습관이 있는 터였다.

어쨌건 회사에 연예인이 와도 연예인을 보러 갈 수 없는 건, 대학 때 그렇게 학교에 수많은 연예인이 왔어도 보러갈 수 없던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내 일, 내 공부가 제일 우선인 거다.

  아무튼 나는 이 대리님을 보내고 와서 내 자리에 앉았다. 부서 사람들이 제법 많이 미팅에 참석한 모양이었다. 자리들이 꽤나 휑했다. 부서에는 나를 포함해서 고작 두세 명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괜히 일한다고 생색냈나... 이런 날 머리도 식힐 겸 갔다올 걸 그랬나. 아니야, 그래도 일이 이렇게 많은데... 갔다가는 밤에 집에 엄청 늦게 갈 거야.. 따위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여보세요,"

 

  그러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받으니 홍보부 최 부장님이다. 어쩐 일이냐 물었더니 본인 책상 위에 무슨 서류를 두고 왔는데, 지금 홍보부 사람들이고 다른 부서 사람들이고 거의 다 회의실에 내려와 있어서, 내가 사무실에 있다고 해서 나한테 전화를 했단다.

2층으로 내려가 홍보부에 들렀다. 부장님 책상 위에 놓여진 서류는 제법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런 걸 두고 가시다니... 부장님도 참. 하며 챙겨서 손에 들었다.

계단을 한 층 더 내려가 1층에 다다랐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우리 회사 비전과 콘셉트 설명이 한창이었다. 난 최 부장님을 찾아서 최 부장님의 손에 서류를 쥐어드렸다.

최 부장님은 '고마워, 윤 사원.' 하면서 말갛게 웃으셨다.

  최 부장님께 서류를 넘겨드릴 임무를 완수한 나는 최대한 조용히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눈으로는 약간 (애타게) 서강준을 찾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잘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못 찾은 거라 생각하고 계단을 올라가 우리 부서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어?"

"......."

 

  눈 앞에 서강준이 있었다. 바보 같은 어? 소리를 낸 것은 누가 연예인 아니랄까봐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다. 사람 이목구비가 그렇게 자기주장이 뚜렷할 줄이야.

평생을 평평한 거울 속 평평한 내 얼굴만 보면서 살아온 내게 그런 입체적인 얼굴은 약간.... 비쥬얼 쇼크였다.

그는 눈인사를 했고, 나는 아... 안녕하세요, 하며 얼떨떨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내 인사를 받고 씨익,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워... 잘생겼다.

 

"회의 참석 안 하시나 봐요?"

"아, 네... 저는 일이 많아서."

"아... 근데 저는 좀.. 심심한데."

"회의 참석하셔야 하잖아요?"

"사실 제가 들을 건 없어요. 이거 듣고 회사 가서 다시 미팅할 테니까."

"....아..."

 

  그럴듯 했다. 사실 홍보대사라는 게 회사와 배우가 계약하는 게 아니지 않나. 회사와 회사가 한 다음에 배우한테 이야기를 해주면 되는 거지.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다시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웃는 게 참 잘생겼는데 왜 자꾸 웃는지 모르겠다... 잘생긴 얼굴 자랑하려고 웃나.

웃으니까 내 사고회로가 막혀버리는 느낌이다. 연예인을 코앞에서 보고 있다니. 뭔가 믿기지 않으면서 연예인도 사람이긴 사람이구나 한... 여러 생각이 든다.

멍해진 나를 깨우듯 그가 입을 열었다.

 

"저.. 괜찮으시면,"

"네?"

"커피 한 잔 좀 사와주실래요?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서."

 

  커피를 사와달라고? 아... 일해야 하는데... 그런데 또 예비 홍보대사님이시니깐 딱 잘라 안 된다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갔다 오자니 시간 아깝고...

망설이고 있는 나를 느낀 건지 그가 조건을 내건다.

 

"대신에, 그쪽 드시고 싶으신 거 같이 사오세요. 아주 비싼 것도 괜찮아요."

"........"

 

  내가 뭘 마시고 싶어서 버티고 있었던 건 아닌데... 그러면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요즘 내내 자바칩프라푸치노가 너어어어무 당겼는데, 다음달 연차 내고 여행 갈 생각하면서 꾸욱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회라면 자바칩프라푸치노를 아주 그냥 벤티 사이즈로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갔다올게요."

 

  그는 그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어 내게 주었다. 연예인이라 씀씀이가 커서 그런가.. 내가 이 카드 들고 튀면 어떻게 하려구 이렇게 카드를 불쑥 줘? 그것도 처음 본 사람한테.

내가 그래도 착한 사람이어서 망정이지 맘 먹고 못된 짓 하는 사람이면 어쩔 뻔 했어... 조금 친했더라면 해줄 말이 많았겠지만 오늘 초면이니까 뭐라고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다.

그는 회의실에 들어가 있겠다며 도착하면 자기한테 전화를 하라고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다. 나참, 졸지에 연예인 휴대폰 번호까지 알았네. 오늘 뭔가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

 

 

 

  다 괜찮았다. 그가 먹을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를 사온 것도, 내가 먹을 자바칩 프라푸치노 벤티 사이즈를 사온 것도. 사오고 나서 그에게 전화를 건 것도,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나 카드를 돌려준 것도. 그가 내게 고맙다고 한 것도. 나도 그에게 내가 되려 더 고맙다고 한 것도.

미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했고, 그의 소속사 측에서는 이번주 내로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고... 딱히 이렇다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잘 처리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뭔가 이상했다.

 

[오늘도 야근해요?]

[밥은 제대로 먹고 일해요? 회사 근처에 식당도 별로 없던데.]

 

  뭐 여기까지도 괜찮았다고 치자. 딱히 답을 안 할 이유도 없었고, 답을 안 하면 더 이상해질 분위기였다. 나는 오늘은 야근 안 한다고, 점심은 보통 도시락 싸서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답을 보냈다.

 

[도시락이요? 신기하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다 나가서 먹는데... ㅎㅎ]

 

  거긴 엔터테인먼트잖아요. 도심 한복판에 있을 거고, 그러면 먹을 데도 많겠죠, 뭐.. 여기보다는 낫겠지. 여긴 그쪽 말대로 근처에 식당도 별로 없는데.

왜 내가 꼬아서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좀 꼬운 느낌이 드나 보다. 보통 잘 이러지 않는데... 그냥 기분이 이상하다. 꿀꿀한 건가. 잘 모르겠다.

 

[저는 대본 리딩 왔어요.]

[지금 다시 시작한대요.]

[이따가 또 톡할게요!]

 

  내가 굳이 하라고 한 적은 없는데... 그래서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는데.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알았어요.

그래서 그 때는 그냥, 일에 지쳐서 친구가 필요한가? 기댈 곳이 필요한 건가.. 아니면 뭐, 심심한가.. 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결국 화근이 됐다.

 

 

 

-

 

 

 

  퇴근길이었다. 아홉시 쯤 된 것 같았는데. 그 날도 어찌저찌 하다 보니 서강준, 아니, 이승환과 하루종일 카톡을 주고받고 있었다. 하루종일이라고 해봐야 몇 시간 텀을 두고 주고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일을 하고 나도 일을 하니까.

  보니까 그가 매일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처럼 일정하게 출퇴근 하는 건 아니니깐 그럴 수밖에. 그래서 촬영이 있으면 촬영을 하고, 대본 리딩이나 연습 같은 것도 하고, 틈틈이 회사에 나가서 얼굴도 비추고.. 그렇게 바쁘게 지내더라.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카톡이 아닌 전화가 울렸다. 울려서 받으니 그가 한껏 처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왔다.

 

"어디에요?"

 

  카톡은 자주 했지만 전화는 처음이었다. 못내 어색해진 느낌에 얼떨떨하며 대답을 했다. 집 근처요. 퇴근 길이에요. 거의 다 왔어요.

그는 물었다. 집이 어디냐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곳 근처의 유명한 대학교 이름을 말했다. 그는 아, 거기 알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데 왜요? 라고 물었다. 어쩌면 낯선, 어쩌면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집을 알려준 것이 실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지금 가면... 만날 수 있어요?"

 

  그가 자기를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딱히 약속도 없고, 안 될 것도 없고, 내일은 토요일이었기에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는 30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30분 동안 내 머릿속은 꽤 복잡해졌다. 음... 글쎄.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느낌이 가장 컸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면 듣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여러 번 듣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편안해져서 잡생각이 덜 났다.

  어쩌면, 이미 그때 나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갈 건지에 대한 답을 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꽤 짧은 시간 안에 그가 왔다. 말로는 30분이라고 했지만 20분 정도밖에 안 걸린 것 같다. 여기서 가까운 데에서 온 모양이었다.

그는 차창을 내리며 내게 인사했고, 나에게 차에 타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차에 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며 인사했다.

 

"나갈 수는 없어요. 조금 걷고도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

"......."

 

  언제 어디에서 파파라치가 찍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사실 나도 안전한 입장은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목소리는 꽤나 지쳐보였다. 모자를 쓴 얼굴 밑으로 수척해진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며칠만에 볼살이 죄다 빠져버린 느낌. 원래 날렵했지만서도..

 

"촬영이 좀 힘들었나봐. 며칠 새 늙었죠?"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자세히 보니 수염자국도 좀 있는 게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던 모양이다. 뭐랄까.. 공휴일에 아빠들이 집에서 쉬는 것 같은 느낌?

비유가 약간 적절한 것 같지 않지만... 딱히 비유할 게 없었다.. 이해를 좀 부탁한다.

 

"보고 싶었는데. 왜인지 모르겠어."

 

  그가 혼잣말을 하듯 이야기했다. 나한테 이야기를 했는지 혼잣말로 이야기를 한 건지 정확히 알 바가 없어서 그저 가만히 있었다. 해는 제 자취를 가득 숨긴 지 오래. 세상은 온통 캄캄했다. 특히 우리 집 주차장은 더욱 더 캄캄했다. 그래서 차 안도 캄캄했고, 빛은 저 멀리서 빛나고 있는 편의점 간판에서 나오는 불빛 정도가 전부였다.

 

"이해가 안 가.. 왜 그렇게 자꾸 생각났는지."

"......"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도 모르겠어..."

"......"

 

  모르긴 몰라도 그는 많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생각대로, 예정대로 진행된 일이 아니었기에 조심스럽고 위태로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뭐가 생각대로, 예정대로 진행된 일이 아니었는지 나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때의 나는 몰랐던 게 아니라, 알면서 모르는 척을 했던 것이었다.

  미필적 고의.... 였던 거지. 알면서, 알면서 그랬지.

 

"그쪽은 알겠어요? 왜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지?"

"........"

"....모르는구나. 모르나보네... 그래. 알 수가 없지...."

 

  그는 초조한 손으로 음악을 켰다. 차 안 가득 노래가 울려퍼졌다. 피아노 곡인 것 같은데, 가사 없는 노래는 즐겨 듣지 않아서 제목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노래였다. 나는 가만히 그 노래를 듣고만 있었다.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하나 놀란 모습 없이 계속 나를 보았다.

 

"......."

"........."

 

  지속되는 침묵 속에서 노래만 울려퍼졌다. 유려한 피아노 위의 손가락이 눈 앞에 그려지는듯 했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힘들어 보이고, 위태로워 보였다. 뭐랄까. 뒤늦은 사춘기에 힘들어하는 스물한 살의 느낌이라면 적당할까.

 

"...가봐도 돼요?"

"...아뇨, 가지마요."

"........"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꽤 많이 흘렀다고 생각이 되어 그에게 물었다. 가봐도 되겠냐고. 그런데 단칼에 돌아오는 대답은 가지말라는 소리.

나는 어차피 이렇게 되어버린 거 그냥 집에 일찍 가는 건 포기하고 내 이야기나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이 어색함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졸업하자마자 바로 일을 하게 됐어요. 뭐 이런저런 생각이나 계획이 있긴 했는데.. 당장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구요.

돈을 번다고 해서 그렇게 큰 돈을 한꺼번에 벌어들이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그런 회사라도 나는 감사했어요. 워낙에 취업도 잘 안 되고.. 힘들고, 그러니까.."

"......."

"그냥, 그런 생각을 해요. 그렇게 특별함을 바라던 나도 결국은 이렇게 평범하게 되어버렸구나. 나도 어쩔 수 없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구나... 하는.

잘 이해 안 가죠? 아무래도 나랑은 많이 다를 테니까... 근데 아마 이게 승환씨를 지켜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일 거에요. 물론 나 포함."

"...날 본 적이 있어요?"

"그럼요. 치즈인더트랩도 얼마나 본방 사수를 꼬박꼬박 했는데."

"........"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그가 웃었다. 오늘 중에 그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본 게 이렇게 기쁜 일일 줄은 몰랐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게 애를 쓰며 웃었다.

 

"........"

 

  한참을 웃던 그가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눈을 마주쳐왔다. 나는 그의 눈빛을 거절하지 않았다.

 

"한마디에 기분이 확 좋아지네.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런 게 오히려 또 너무 쉽게 풀리잖아요."

"응.. 그쪽이 풀어버렸어."

"........"

 

  그가 이제 나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진짜요? 하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며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가지말라고 붙잡던 그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고마워요, 오늘."

 

  그가 고맙다고 했다. 나는 별 거 한 것도 없었다며 웃었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다음 주말에 시간 괜찮아요?"

"다음 주말이요?"

"응. 심야 영화 보러 갈까 해서."

 

  사람들의 눈이 많은 낮에는 못 돌아다니는 직업, 배우. 연예인. 그리고 서강준.

나는 일단 지금 시점에서 잡혀있는 약속은 없다고 했다. 그는 알았다며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를 들여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다시 연락이 왔다.

 

  알면서도 하는 모르는 척이 어쩌면 좀 무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버스가 끊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왜 택시조차 오지 않는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마침 휴대폰도 배터리가 나간 상태. 오늘따라 보조배터리를 안 갖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하. 집에 갈 길이 정말이지 막막하기 그지없다.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야 하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정말.

걷는데 서강준, 아니 이승환의 차가 나를 앞서서 쭉 가로지른다. 순식간의 그의 차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잡을 수도 없었고 잡을 엄두도 못냈다.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심야영화를 보기도 했고, 만나서 밥을 먹기도 했고, 보통의 친구처럼 수다를 떨기도 했다.

마음 속에서는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피어올랐지만, 그걸 누를 수 있는 의지는 없었다. 누르지 않으려고 했던 게 맞을 것이다.

그랬는데, 자꾸 그와 나의 관계를 하나의 단어로, 하나의 끈으로 규정 짓고 묶어버리려고 하는 그의 태도가 불안했다. 사실은 겁이 났다. 자신이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는 연예인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런 내가 그와 연애를 한다? 한 때는 그런 걸 동경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과 이별 끝에 온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연애는 나와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래야 내가 편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쯤이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감정소비는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는 게 맞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미안했다. 미안한 게 맞았다. 내가 애초에 그를 만나지조차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 이 순간 나에 대해 일말의 기대도, 어떠한 상처도, 가지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안했다. 그는 내가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국에는 그게 '고의'인 것을 내가 더 잘 아니까... 그게 미안했다. 일종의 양심의 가책이었다.

 

  잡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미묘한 서운함을 느낀 건 내 착각이었던가. 나는 내 마음을 이미 정해놓고 있었으면서 왜 서운함을 느꼈을까. 그가 나한테 좀 더 매달려주기를 바랬던 걸까. 그게 맞다면 나는 대체 왜 그랬을까..

이미 내가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정해놓고 있었으면서. 그에 대해서도 내 마음을 모두 정해놓고 있었던 거면서... 왜 그를 만나고, 왜 그를 그렇게 받아들여주었던가.

그래서 지금 왜 여기에서 이렇게....

 

"..........."

 

  울고 있는 걸까.

 

 

 

-

 

 

 

"......."

 

  눈을 떴다. 파란색 벽지가 그를 닮아 있다. 이불은 코발트 블루고, 베개는 스카이 블루다. 그가 쓰는 향수 향인가, 아니면 스킨 향?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향이 코를 휘감았다.

눈을 만져보았다. 얼마나 울어 제낀 건지 퉁퉁 부어있는 게 일어나서 방문을 나서기가 부끄러웠다. 벌써부터 부끄러웠다. 그의 얼굴을 보지도 않았는데.

이불을 확 머리 끝까지 덮었다가, 숨이 막혀 다시 내렸다. 그의 향이 잔뜩 퍼지는데 이불을 확 덮으니 꼭 그에게 안겨 있는 기분이어서, 그래서 훅, 다시 내려버렸다.

  침대에서 반 정도 몸을 일으켜 머리맡의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간밤에, 나는 울다 지쳐서 버스정류장 의자에 거의 엎드리듯 앉아있었고, 그런 나를 엄청 멀리서 그가 보고 있었단다. 버스도 끊기고 택시도 잡기 힘든 그 시간에, 어떻게 집에 갈까 하고 궁금했다고 그랬다. 그래서 밉지만 데리러 오려고 그랬다고... 그랬다.

나는 그의 차에 타서 또 엉엉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그의 차를 타게 된 게 자존심이 상해서? 혼자 집에 못 간 게 억울해서? 아니면 그를 다시 보니까 긴장이 확 풀려서? 왜였을까. 다였을까?

  도저히 집에 그냥 보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그가 그의 집으로 나를 데려왔다. 나는 그의 방 침대에 자리했고, 그는 거실에서 잔다고 했다. 나는 내가 거실에서 잔다고 했지만 그는 내가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잠이 들었고... 이제야 일어난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걸 보니 시간이 꽤나 흐른 모양이다. 이제 방문을 열고 나가야 하긴 하겠다.

 

".....으으...."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서 이마를 짚었는데, 거실에 있는 일인용 가죽소파에 앉아 빙글빙글 돌면서 놀던 그가 갑자기 홱 멈추더니 뾰루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머리가 아파 죽겠다며 벽에 몸을 기댔다. 그는 나를 보러 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나를 쳐다볼 뿐이다.

 

"...머리 아파요..."

"좀 아파야 돼."

"......."

 

  뭐라고?! 하는 마음에 눈을 땡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지만, 눈이 땡그랗게 커지긴 커녕 퉁퉁 부어 힘도 안 들어간다. 그런 나를 본 그가 그제야 소리를 내어 웃었다.

 

"웃지마요오...."

"웃긴데 어떡해."

"....씨이.."

"뭐? 씨이?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그가 나를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왔다. 이제 막 씻고 나왔는지 샴푸 향이 난다. 나른하다. 금방 또 잠들고 싶은 느낌.

 

"....여우 같아. 모르는 척은 혼자 다 하고."

".........."

"내가, 혼자서 얼마나 마음 졸이고, 애태우고, 어?"

"........."

"...웃어? 웃지마. 웃지마, 진짜!"

 

  그가 웃지 말라면서 내 몸을 간지럽혔다. 옆구리, 목, 허리,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다 제 손으로 한껏 간지럽히고 있다. 간지럼을 잘 참지 못하는 나는 무방비 상태로 K.O.

그리고 그는 그렇게 K.O.된 나를 번쩍 들어올려 공주님 안기를 하곤 침실로 향했다.

 

 

 

  꺄아아아악- 하는 나의 비명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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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까가 열심히 망상한 내용을 써보았읍니다...

ㅈ자까는 서강준님이 넘나 좋은 것....ㅠㅠ

자급자족 하고 갑니다.... 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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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옳습니다...
7년 전
난디
감사해여 님..♥︎
7년 전
비회원182.241
금손이시군요ㅠㅠㅠ 너무 잘 보고 갑니다 더 많이 많이 써주세요 작가님!
7년 전
독자2
하....설레네여...로늫도 글로 설레고 가여..넘 저타..ㅠㅜㅜㅜ
7년 전
독자3
이렇게 이커플도 행쇼인가욬ㅋㅋㅋㅋ 잘보고갑니다♡
7년 전
독자4
와, 너무 좋아여ㅠㅠ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ㅠㅠ 신알신 하고 갈게여ㅠㅠㅠ 서강준이라니ㅠㅠㅠ 너무 좋아여ㅠㅠ
7년 전
비회원81.224
짱짱 좋네요!! 작가님 진심 금손
7년 전
독자5
세상에ㅜㅠㅜㅜㅜㅜㅜㅜ서강준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6
잘보고갑니다 !!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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